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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장 12절-24절, 주석과 해설 정리

창세기 37장 12절부터 24절의 말씀에는, 양을 치는 형들을 찾아 세겜으로 간 요셉이 형들의 계획 하에 구덩이에 던져지게 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요셉은 어떻게 될까요? 생명의삶 큐티와 새벽설교를 위한 주석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


창세기 37장 12절-24절, 주석과 해설 정리



창세기 37장 12절-24절, 주석과 해설 정리



12절, 세겜


당시 야곱의 가족이 거하던 헤브론 계곡(35:27, 37:1)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100 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13절, 네 형들이 세겜에서


야곱이 양을 치는 자식들을 염려한 것은 얼마전(34장) 그곳에서 불상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아들들이 다시 세겜으로 간 것은 아마도 (1) 하나님이 주신 두려움(35:5)이 여전히 그 땅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2) 아니면 그들이 위험을 무릅 쓸 만큼 대담한 자들이었음을 의미한다.



14절, 그를 … 보내니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 대한 형들의 미움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몰랐던 것 같다. 그 이유는 (1) 간악한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아비는 물론 요셉에게까지 교묘히 숨겼기 때문일 것이다. (2) 또한 이것은 장차 이루어질 구속사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야곱의 눈을 가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들에서 양치는 다른 아들들과는 달리 요셉만은 집에 있도록 허용한 것은 다시 한번 요셉에 대한 야곱의 편애를 보여 주고 있다.



15절 말씀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당시 유목민들은 풀과 물을 찾아 양 떼를 곳곳으로 몰고 다니면서 먹여야 했다. 따라서 헤브론에서 이곳까지 하루가 더 걸리는 100 km 정도의 거리를 걸어 온 요셉은 이미 세겜을 떠난 형들의 행방을 몰라 이곳 저곳을 찾아다녀야 했을 것이다.


네가 무엇을 찾느냐

‘누구를 찾느냐’ 라고 묻지 않고 이처럼 물은 것은 요셉이 아마 가축을 잃어서 헤매는 것으로 추측했기 때문일 것이다.



16절, 형들을 찾으오니


형제들을 애타게 찾는 요셉의 모습에서 (1) 맡은 사명에 충실하며(15-17절) (2) 진정한 형제 우애를 지닌 그의 충직하고 따스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다.



17절, 도단


‘우물’을 뜻하는 ‘도트’의 쌍수로서 ‘두 우물’이란 뜻이다. 위치는 세겜 북방 약 30 km 지점으로 도보로 4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이다. 한편 고고학자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거주지를 이 지역에서 발견함으로써 이곳에 세겜보다 더 좋은 목초지가 있었음을 입증했다. 지금은 폐허가 되었으나 이곳은 아직도 옛 이름 그대로 불리워지고 있다.



18절, 죽이기를 꾀하여


중혼(29:16-30)과 편애로 인한 이복 형제들간의 시기와 갈등은 결국 형제 살인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치닫고야 말았다(잠 29:10).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일부 일처제란 건전한 결혼 윤리와 그로 인한 차별 없는 자녀 사랑만이 가정의 평화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9절 말씀


서로 이르되

여기서 절제하지 못한 말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발단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꿈 꾸는 자

‘소유하다’, ‘자기의 것으로 하다’란 뜻을 지닌 동사 ‘바알’에서 유래한 ‘임자’(소유주) 혹은 ‘명수’(名手, master)란 ‘바알’과 ‘꿈’이란 명사 ‘할롬’의 복수형이 합쳐져 ‘꿈들의 주인’ 혹은 ‘꿈들의 명수’란 뜻. 즉 조롱과 경멸 그리고 증오심을 나타내는 말로 ‘꿈장이’ 또는 ‘몽상가’란 뜻이다. 이것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요셉이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동기이며 요인이었다.



20절, 자, 그를 죽여


뿌리 깊은 야곱 집안의 거짓과 간사성이 또 한번 번뜩거린다(27:19, 20, 34:13). 이처럼 야곱은 속임에 대한 대가를 외삼촌 라반(29:25)과 자식들에게서 되돌려 받은 것이다.



21절, 구원하려 하여


장자로서 르우벤은 동생 요셉의 안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요셉을 죽이려는 그 음모에 대해서 르우벤이 즉시로 반대하며 저지하지 않았던 이유는, (1) 근친 상간의 죄를 범한(35:22) 이후 장자로서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거나 (2) 다른 형제들의 분노가 가라앉은 후에 지혜롭게 요셉을 구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22절, 또 … 이르되


‘말하다’란 뜻의 동사 ‘아마르’의 과거형에 ‘그리고’란 접속어가 붙어 뜻이 강조되었다. 즉 요셉을 구하자는 르우벤의 처음 발언이(21절) 설득력을 갖지 못했지만, 두 번째 제안에서는 강력한 자기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



23절, 채색옷을 벗기고


아버지의 편애를 상징하는 이 옷은(3, 4절) 요셉의 형들에게 질투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24절, 구덩이에 던지니


이때 요셉은 눈물로 형들의 동정을 애걸했는데 이 장면이 어찌나 애달펐던지 20여년이 지난 후에도 형들의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었음을 볼 수 있다(42:21, 22). 훗날 선지자 아모스는 이 비정함을 심판 직전의 타락한 이스라엘의 모습에 비유했다(암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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