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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묵상] 창세기 21장 22절-34절, 신실한 약속, 영원한 언약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여러분의 마음속에 어떤 걱정거리나 불안감이 자리하고 계십니까? 혹시 풀리지 않는 관계의 문제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깊은 숨을 내쉬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우리 삶에는 예기치 않은 갈등과 어려움들이 찾아와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평안을 빼앗아갈 때가 많습니다. 특히, 힘들게 얻어낸 기쁨과 안정 뒤에 찾아오는 또 다른 문제들 앞에서, '과연 내 삶에 진정한 평화는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인 이삭의 탄생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아브라함은 다시금 현실적인 문제와 씨름해야 했습니다. 바로 우물 문제였습니다. 물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우물은 곧 생명과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중요한 문제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오늘 우리는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이 맺으신 영원한 언약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우리 삶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참된 평화와 안전을 누릴 수 있을지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본론 1. 삶의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정하라. 본문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함께 언약을 맺자고 제안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창세기 21: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능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고백입니다. 이방 민족의 왕이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고백하며, 그 신실하신 하나님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을 맹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아비멜렉과의 관계에서 여전히 ...

[1월 30일 묵상] 창세기 21장 1절-21절, 불신의 비웃음이 기적의 웃음으로 변할 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새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에도 '정말 이럴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혹은 '이렇게까지 되어야만 할까?' 싶어 마음 아파했던 순간들이 있으신가요? 늙은 부모에게 자녀가 태어나고, 자녀의 탄생으로 인해 또 다른 자녀가 쫓겨나는 이야기... 마치 막장 드라마 같은 오늘 본문은, 사실 우리 삶의 한 단면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때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하고, 너무 오래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언제쯤 내 삶에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이 힘든 상황은 언제쯤 끝날까?’라는 질문으로 밤잠 설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오늘 우리는 이삭의 탄생과 하갈의 추방이라는 다소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우리의 절망과 실수를 뛰어넘어 성취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시는지 함께 묵상하며,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다시 붙잡는 은혜의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본론 1.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 오늘 본문의 1절과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2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이 말씀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와 감동이 담겨있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사라는 90세였습니다. 이미 생물학적으로는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마 사라를 보며 비웃었을 것이고, 그들의 약속은 허황된 꿈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사라 자신도 처음에는 약속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 (창 18:12). 그러나 하나님은...

[1월 29일 묵상] 창세기 20장 1절-18절, 반복되는 나의 실패, 변함없는 주의 은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새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서론: "또 시작이네..." 반복되는 우리의 모습 성도 여러분,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오늘 우리는 창세기 20장을 통해 너무나 인간적인, 어찌 보면 실망스러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만납니다. 혹시 '데자뷔(기시감)', 어디선가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오늘 본문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이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던 사건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건만, 위기의 순간이 닥치자 아브라함의 옛 습관, 두려움이라는 고질병이 또다시 튀어나옵니다. 본론 이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다르겠지, 이제는 믿음으로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현실의 문제 앞에서 또다시 무너지고 타협하는 나약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반복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1. 두려움은 믿음의 눈을 가리고 옛 습관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땅으로 이주했을 때, 그는 또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1절에 그의 속마음이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20: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아브라함은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인 그랄 사람들의 위협만 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놓쳤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브라함에게서 사라지자,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습니다. 그 두려움은 그를 다시 거짓말이라는 옛 습관으로 몰아갔고, 결국 약속의 어머니인 사라를 이방 왕에게 빼앗기는 치명적인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우리가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실의 두려움이 내 믿음의 눈을 가리지 않게 하기 위...

[1월 28일 묵상] 창세기 19장 24절-38절, 뒤를 돌아보지 않는 새벽의 믿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새 찬송가 499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서론 성도 여러분, 이 새벽 하나님의 전을 찾으신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새로운 하루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오늘도 어제와 같은 문제들로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과 세상이 주는 달콤한 유혹들이 우리 발목을 잡을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어둡고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처럼 쏟아지는 심판의 현장,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에 벌어지는 참담한 인간의 실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무거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 이 새벽을 깨우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실까요? 본론 1.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적이고 준엄합니다. 해가 돋을 때 평화로워 보이던 소돔과 고모라에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습니다(24절). 하나님은 죄악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급박한 탈출의 순간에 비극이 일어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17절을 보면, 천사들은 분명히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여기서 '돌아보았다'( נָבַט, 나바트 )는 것은 단순히 고개를 돌린 실수를 넘어선,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녀의 시선에는 소돔에 두고 온 재물, 화려한 삶, 세상의 즐거움에 대한 깊은 미련과 애착이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발은 소돔을 빠져나왔지만, 그녀의 눈은 소돔을 아쉬워하며 바라보았고 마음은 여전히 소돔 한복판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구원의 문턱에서 심판의 상징인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1월 27일 묵상] 창세기 19장 12절-23절, 새벽을 깨우는 자비의 손길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새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서론: 익숙함과의 결별이 주는 어려움 샬롬, 샬롬. 오늘 이 새벽,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나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오늘 새벽 따뜻한 이불속에서 나오기가 혹시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익숙한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새벽을 깨우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자리, 죄악된 습관의 자리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그곳이 주는 익숙함과 달콤함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롯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소돔 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코앞에 닥쳤음에도 그는 머뭇거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머뭇거릴 때조차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강권적으로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본론 1. 심판의 경고 앞에서도 머뭇거리는 인간의 연약함 오늘 본문 12절에서 두 천사는 롯에게 소돔 성의 멸망을 예고하며, 가족들을 데리고 속히 떠날 것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13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려 하신다"라고 천사들이 재촉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분명하고 단호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경고 앞에서의 반응은 충격적입니다. 롯의 사위 될 사람들은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14절). 하나님의 심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롯의 모습입니다. 15절에 동이 틀 때에 천사들이 재촉하지만, 16절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19: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여기서 '지체하다'(מ...

[1월 26일 묵상] 창세기 19장 1절-11절, 모두가 눈 먼 밤, 집 안으로 끌어당긴 구원의 손길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새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서론: 어두워진 세상의 문턱에서 길을 잃은 우리 최근 한 일간지 기사에는 ' 집단적 공감 불능과 디지털 군중 심리 '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에게 무차별적인 언어 폭력을 가하고, 죄책감 없이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현대판 소돔'이라 명명한 기사였습니다. 이 칼럼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도덕적 기준을 상실한 채, 오직 자신의 욕망과 집단의 광기에 함몰되어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모습은 성경 속 소돔의 풍경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삭막해지고, 우리가 믿었던 '안전한 울타리'인 가정, 직장, 이웃 관계마저 위태로워 보입니다. "어떻게 세상이 이럴 수 있을까?"라는 한탄 섞인 불안감과 "나만은 안전할 수 있을까?"라는 고립감이 현대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와 유사한 사람들의 광기 앞에 서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온 군중들이 손에 돌을 들고 그녀를 죽이려 했을 때입니다. 살기등등한 '집단 폭력'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정죄의 돌을 드는 대신, 땅에 글을 쓰시며 그들의 양심을 비추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여인을 보호하시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롯 역시 소돔이라는 거대한 광기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롯은 예수님처럼 군중을 잠재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만이 그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정한 '문'이 무엇인지 깨닫고자 합니다. 본론: 심판의 밤, 은혜의 문 1. 세상의 성문에 앉아 있으나 천사를 영접하는 삶 먼저, 오늘...

[1월 25일 묵상] 창세기 18장 16절-33절, 공의의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새 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일 뉴스틀 통해 세상의 부조리하고 악한 소식들을 접합니다. 무고한 이들이 고통받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것 같은 현실을 마주할 때 우리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이 솟아오릅니다.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살아 계시다면 왜 이런 악을 두고 보시는가?" 뉴스를 보며 세상의 악에 분노하면서도, 정작 하나님 앞에서는 침묵하게 되는 우리의 무력함을 마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 답답하고, 혹시나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까 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 역시 멸망을 앞둔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며 동일한 고민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담대하게 도전합니다. 오늘 이 새벽,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기도의 기초는 하나님의 언약에 있습니다. 본문 17절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엄청난 계획을 한낱 인간인 아브라함과 공유하십니다. 왜일까요? 19절이 그 답을 줍니다.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단순히 그 혼자 잘 먹고 잘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하나님의 성품인 '의와 공도'를 이 땅에 실현할 언약의 파트너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시고, 그가 이 문제에 개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신학자 나훔 사르나는 이 장면을 고대 근동의 신화들과 비교하며 하나님과의 차이점을 강조합니다....

[1월 24일 묵상] 창세기 18장 1절-15절, 일상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법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새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서론: 나른한 오후, 뜻밖의 방문객 새벽을 깨우며 주님 앞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 일상이 너무 분주해서, 때로는 너무 지쳐서 영적인 감각이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도 그렇습니다. "날이 뜨거울 때에"(1절)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정오, 모든 활동이 멈추고 더위를 피해 그늘로 들어가며, 나른함이 몰려오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도 장막 문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장 평범하고, 어찌 보면 가장 영적으로 나태해지기 쉬운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기도를 드릴 때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설거지 통 앞에 서 있을 때, 꽉 막힌 출근길 차 안에서 한숨 내쉴 때, 지쳐서 소파에 누워있을 때, 바로 그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으로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지중에 찾아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말씀의 깊이 속으로 1. 부지중에 오시는 주님을 '달려가' 영접하십시오 아브라함은 정오의 더위 속에서도 길 위의 세 사람을 보자마자 어떻게 하였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18: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달려가서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다시 말해서 최선을 다하여 맞이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인지 천사인지 처음엔 몰랐을 것입니다. 그저 도움이 필요한 나그네로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영성은 '부지중에' 일어난 만남을 '최고의 섬김'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고운 가루 세 스아를 반...

[1월 23일 묵상] 창세기 17장 1절-27절, 비웃음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서론: 침묵의 미학, 기다림의 가치 사회심리학에는 ‘ 시간적 비일관성(Hyperbolic Discounting)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보상이 멀리 있을수록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작은 성과에 쉽게 굴복하는 인간의 본성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거대한 ‘이삭’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 내 결핍을 채워줄 ‘이스마엘’이라는 대안에 집착하곤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조급함은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도 나타납니다. 주님은 곧장 달려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더 유하시며” 의도적인 침묵을 선택하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주님의 늦장 대응에 절망하며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이라며 원망했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골든타임을 지나 하나님의 전능함을 드러낼 ‘부활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 역시 13년이라는 긴 침묵의 터널을 지납니다. 우리는 ‘ 새벽 배송 ’처럼 즉각적인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며 불안해합니다. “ 내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밤잠 설쳐본 적 없으신가요? 이러한 성과 지향적 신앙은 우리를 영적 탈진으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가능성이 0%가 된 99세에 나타나 ‘엘 샤다이’의 역사를 선포하십니다. 1. 인간의 소망이 멈출 때, 하나님의 전능함이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에게 닥친 13년의 침묵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의'가 죽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86세에 얻은 이스마엘을 보며 그것이 최선이라 믿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물학적 가능성이 완전히 메마른 99세에 나타나셨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99세라는 숫자는 ...

[1월 22일 묵상] 창세기 16장 1절-16절, 내 방법이 실패한 자리에서 만난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서론: '지름길'이라는 이름의 유혹 여러분,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속도'가 곧 실력인 시대입니다. 당일 배송을 넘어 새벽 배송이 당연해졌고, 인터넷 창이 3초만 늦게 떠도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의 영성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제목이 속히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묻기보다 내가 먼저 움직이고 싶은 유혹에 시달립니다. "하나님, 제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이제는 제가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마음은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아브람과 사래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지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변한 것이 없고, 육체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흘러만 갑니다. 오늘 설교를 듣는 성도님들 중에도, 자녀 문제, 경제적인 결핍, 혹은 관계의 회복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여전히 '광야'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지친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조급함을 내려놓고, 실패의 현장까지 찾아오시는 '살피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의 방법으로 이루려 하지 마십시오. 본문을 보면,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께서 주신 후손에 대한 약속을 자신들의 방법으로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도움이 필요할 만큼 연약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2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사래의 제안은 당시 가나안의 관습으로는 매우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대안이었습니다. 여종을 통해 ...

[1월 21일 묵상] 창세기 15장 1절-21절, 가장 안전한 방패, 가장 큰 상급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서론: 승리 뒤에 찾아온 어두운 그림자 할렐루야. 이 새벽에 주님 전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큰일을 치르고 난 뒤, 갑자기 밀려오는 허탈감이나 막연한 불안감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열심히 달려왔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이 딱 그런 상태입니다. 그는 바로 앞장 14장에서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강력한 네 왕의 연합군과 싸워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용기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은 "이 후에"라고 시작합니다. 그 승리의 흥분이 가라앉고, 차가운 현실이 아브람을 덮쳤습니다. "패배한 적들이 보복하러 오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과, "이렇게 싸워 이겨봤자 물려줄 자식 하나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하는 깊은 허무함이 그를 짓눌렀을 것입니다. 본론: 두려움을 이기는 하나님의 처방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하루 치열하게 살았지만, 오늘 아침 눈을 뜨면 또다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이 두려움 속에 있는 아브람을,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실까요?   1. 문제 해결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현존 아브람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우리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더 많은 군사를 주겠다"거나 "네 재산을 지켜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 내가 너의 방패다. 내가 너의 상급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

[1월 20일 묵상] 창세기 14장 1절-24절, 두 왕 사이의 선택, 당신의 복은 어디서 오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새 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서론: 성공 뒤에 찾아오는 위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밤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이 새벽,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큰 위기를 넘겼을 때, 혹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긴장이 풀리고, 교만이 싹트기 쉽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그는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집에서 기른 사병 318명을 데리고 나가, 강력한 네 왕의 연합군을 격파하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엄청난 전리품과 함께 돌아오는 아브람은 지금 인생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성공의 정점에서, 아브람은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왕을 만납니다. 이 만남은 단순한 환영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에게 "너의 복의 근원이 진정 누구인가?"를 묻는 영적인 시험대였습니다. 본론 우리는 매일 아침, '오늘 하루 무엇을 의지하며 살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오늘 이 새벽, 아브람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참된 복이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참된 복의 근원을 알아보는 눈 먼저 아브람에게 나타난 왕은 살렘 왕 멜기세덱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14: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는 갑자기 나타나서 지친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주'를 대접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을 축복하며, 이 놀라운 승리가 아브람의 능력이 아니라 "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께 있음을 선포합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의 시선을 자신의 성공에서 하나님께로 돌려놓았습니다. 아브람은 이 신비로운 왕 앞에서 즉시 반응합니다. 전리품의 십일조를 그에게 드립니다. 이것은 단순한 세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