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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묵상] 시편 19편 1-14절, 다윗은 왜 말과 마음의 묵상이 열납되기를 원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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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9편 1-14절, 다윗은 왜 말과 마음의 묵상이 열납되기를 원했습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78장, 참 아름다워라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서론 우리는 웅장한 전시관에 들어설 때 벽면에 적힌 작가의 이름과 작품 설명부터 먼저 찾아보곤 합니다. 미술관에서 유명한 명화를 마주하면, 사람들은 그림 구석에 조용히 새겨진 화가의 낙관(서명)을 확인하며 그 거장의 숨결을 느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하늘과 궁창이 나옵니다. 시인은 광활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넓게 펼쳐진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증언합니다. 미술관의 캔버스처럼 이 거대한 우주 전체가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의 서명이 선명하게 새겨진 살아있는 초대형 전시관입니다. 해는 매일 아침마다 기쁨으로 솟아오르고, 지치지 않는 용사처럼 하늘 끝에서 끝까지 거침없이 내달립니다. 그 열기가 지구상에 닿지 않는 구석이 없듯,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온 세상에 소리 없이 그러나 뚜렷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아침 떠오르는 저 해와 푸른 하늘을 당연한 배경처럼 생각하고 맙니다. 온 우주가 쉬지 않고 창조주의 영광을 노래하는데, 정작 우리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과 내 좁은 근심에 갇혀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창조 세계를 통해 당신의 신실하심을 온 땅에 나타내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본론 1. 말씀 앞에서 내세울 것 없는 인간 본문의 12절과 13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시편 19:12-13,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거룩하고 완전한 말씀의 거울 앞에 선 시인은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지 않고 깊은 탄식을 쏟아냅니다. 인간은 자신이 한 콩알만한 일은 크게 기억하면서도 들보같은 자기 허물은 깨닫지 못하는 눈먼 존재입니...

[10월 29일 묵상] 시편 18편 16-29절,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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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 16-29절,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는가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새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서론: 흙탕물에 빠진 손자와 할아버지 물가에 나간 대여섯 살배기 어린 손자가 발을 헛디뎌 깊은 웅덩이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흙탕물을 허우적대며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때 둑 위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네가 평소에 어른 말씀 잘 듣고 착하게 굴었으니 건져주마" 하고 조건을 따지겠습니까. 옷에 진흙이 튀든 신발이 벗겨지든 상관없이 곧장 물속으로 손을 뻗어 아이 멱살이라도 잡고 끌어당깁니다. 아이가 잘나서 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달라고 애타게 부르짖는 내 핏줄이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행실을 보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허우적대는 그 연약한 생명을 건져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뛰어듭니다. 우리는 평생 예수를 믿었다고 자부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엉뚱한 계산들을 합니다. 내가 젊어서부터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는데, 십일조도 바치고 평생 교회를 섬겼는데 왜 내 노년은 이리 고단한가? 왜 내 자식의 앞길은 저리 꽉 막혀 있는가? 우리 마음 속에 교묘한 거래의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래의식은 곧 내 열심과 공로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내겠다는 종교적 오만입니다. 하나님을 내 손으로 쥐고 흔들려는 이 깊은 교만의 민낯을, 오늘 새벽 주님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합니다. 본론 1. 인간의 열심은 허물어집니다. 다윗은 평생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해 유다 광야의 메마른 골짜기와 짐승의 굴속을 전전했습니다. 십수 년 동안 도망자로 살면서 다윗이 뼈저리게 깨달은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완력으로는 결코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숨을 곳이라고 찾아 들어간 동굴이 도리어 덫이 될 뻔했고, 믿었던 사람들은 밥 먹듯이 배신했습니다. 내 의지와 힘으로 버티려던 모든 자리가 무너져 내릴 때, 다윗은 두 손을 들고 고백합니다. 본문 1...

[10월 28일 묵상] 시편 18편 1-15절, 나의 힘이 되신 주님 품 안에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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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 1-15절, 나의 힘이 되신 주님 품 안에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서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아이가 낯선 방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방의 불이 꺼졌다면,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까요? 잠잠했던 아이의 행동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사방이 깜깜해지면 아이는 벽의 두께나 방의 크기 따위는 보지 못합니다. 그저 온몸이 굳은 채로 아빠를 부르며 웁니다. 아빠, 어디 있어? 무서워. 그때 어둠 속에서 아빠의 큼직하고 따뜻한 손이 아이의 작은 손을 덥석 감싸 쥡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울음이 뚝 그칩니다. 여전히 방은 어둡고 바깥바람은 창문을 덜컹거리는데, 아빠 손 하나로 아이의 세상은 순식간에 평화로워집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공동묘지가 있는 나지막한 산을 넘어 동상동 시장을 가곤 했었습니다. 대낮이지만 나무가 울창했기에 다소 어두웠고, 길 양쪽으로는 무덤들이 많았기에 시장 가는 것이 두렵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양손을 잡아 주시면 무덤도 어두운 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본론 오늘 우리 새벽의 마음자리가 꼭 그렇지 않습니까. 거친 세상살이 속에서 앞길은 캄캄하고, 몸과 마음이 지치고 두려운데, 우리는 그저 본능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으러 이 고요한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1. 사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부르짖으십시오. 다윗이 시편 18편을 노래하면서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그 배경을 성경은 사울 왕의 추격과 온갖 대적의 칼날에서 건짐을 받은 날이라고 증언합니다. 18장의 표제어와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편 18:1,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

[10월 27일 묵상] 시편 17편 1-15절, 하나님의 귀에 속삭인 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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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7편 1-15절, 하나님의 귀에 속삭인 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새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서론 시장 통에서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느라 온갖 소음이 가득해도, 멀리서 내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는 바로 알아듣는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음에 불과하지만, 자식을 둔 부모에게는 그 작은 부름 하나에도 귀가 번뜩 뜨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식과 부모 사이에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끈이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17편에도 다윗이 하나님을 부르는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아주 간절하게 부르짖습니다. 시편 17: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이 간구가 '쉐마(שְׁמָע)'라는 한 단어로 시작합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실 때 쓰셨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당연히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놀랍게도 연약한 인간 다윗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단순히 소리를 귓가로 흘려듣지 마시고, 내 아픈 속사정을 귀담아들으신 뒤 제발 구원해 달라는 애절한 부르짖음입니다. 어떻게 미천한 사람이 감히 크고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이토록 당당하게 귀를 기울여 달라고 조를 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사랑의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격식을 차리느라 머뭇거릴 틈이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고 있었기에, 숨이 막히는 억울함 속에서도 곧장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 매달렸던 것입니다. 본론 1. 주님은 우리를 눈...

[10월 26일 묵상] 시편 16편 1-11절, 비바람 속에서 왜 비닐우산을 고집하십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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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6편 1-11절, 비바람 속에서 왜 비닐우산을 고집하십니까 함께 하는 기도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서론: 짙은 안개와 우리의 불안함 얼마 전 늦은 밤, 인적 드문 국도를 홀로 운전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갑자기 시야를 집어삼킨 짙은 안개 때문에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시속 20킬로미터까지 줄여야 했습니다. 바로 앞 가드레일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문득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 안개가 도대체 언제 걷힐까, 길의 끝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런 막막함이 온 마음을 휘감았습니다. 우리가 통과하는 삶의 자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고비를 겨우 넘겼다 싶으면 또 다른 파도가 들이닥치고, 건강의 문제든 자녀의 아픔이든 생계의 위기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들립니다. 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 이 어두운 길을 더 헤매야 합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삶의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는 한순간에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찬송을 부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돈 생각과 병원 검사 결과,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에 얽매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온실 같은 삶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성경이 약속한 신앙이 아닙니다. 살아 숨 쉬는 한 시련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성도의 능력은 시련이 없는 인생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닥쳐오는 시련 앞에서 허둥대지 않고 담담하게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오늘 시편 16편을 기록한 다윗 역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절박한 위기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은 뜻밖에도 깊은 평온과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본론 1. 허물어지는 인간의 열심과 헛된 피난처 다윗이 처한 상황은 목숨이 위태로운 낭떠러지와 같았습니다.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극한의 고립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자리에서 자...

[7월 15일 묵상] 시편 15편 1절-5절,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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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던지는 가장 깊은 질문 유명한 두 신학자, 폴 틸리히와 칼 바르트 사이에 아주 흥미로운 토론이 있었습니다. 틸리히는 교회가 세상의 질문에 답해주는 ' 대답하는 신학 '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이 아파하고 궁금해하는 문제에 교회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참 솔깃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칼 바르트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아닙니다. 세상은 스스로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조차 모릅니다. 질문과 해답 모두 하나님이 계시해주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5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직접 가르쳐주시는 가장 절박한 질문이자, 동시에 가장 완벽한 해답을 담은 생명의 처방전입니다. 여러분, 요즘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많이 흔들립니까? 끊임없이 널뛰는 부동산 소식에 내 집 마련과 주거의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직장 안에서 내 평가가 어떻게 될까 마음 졸이기도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예기치 못한 재정적 손실 앞에 서면, 우리의 마음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요동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 가장 안전한 곳,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의 자리 '를 갈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다윗은 바로 그 갈망을 담아 하나님께 인생의 가장 엄중한 질문을 던집니다. 시편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이 질문은 단순히 "누가 예배당 건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라는 뜻이 아닙니다. " 누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라는 삶의 가장 깊은 질문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과 우리의 뼈아픈 한계 하나님은 2절부터 5절까지 아주 구체적...

[7월 14일 묵상] 시편 14편 1절-7절, 정말 하나님은 없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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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새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서론: 우리가 탄 세상이라는 배의 방향 여러분, 혹시 '바보들의 배'라는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키를 잡은 선장도 없고, 지도나 나침반도 쓸데없다며 바다에 던져버린 채, 그저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표류하는 배의 이야기입니다. 승객들은 소리칩니다. "우리에겐 목적지 따위는 필요 없어! 우리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게 진짜 자유야!" 참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모습이지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꼭 이 '바보들의 배'와 닮아 있지 않습니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을 보십시오. 가계부와 은행 앱을 열어볼 때 새어 나오는 깊은 한숨, 홀로 방에 누워 미래를 생각할 때 밀려오는 쓸쓸함과 불안함 속에서,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열심히 돈 벌어라. 네 삶은 네가 책임져야 해. 이 팍팍한 세상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니? 네 힘만 믿어라." 이것이 바로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들이 매달리는 일상의 목소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이런 세상의 흐름을 향해 아주 엄중한 진실을 던집니다. 1절을 보십시오.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머리가 나쁜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대학을 나오고,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재테크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면 성경은 그를 향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더 두려운 사실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일에는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일상 속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염려하고, 내 힘으로만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 역시 ' 무신론자 '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참 많...

[7월 13일 묵상] 시편 13편 1절-6절,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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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65장,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인생의 긴 밤을 지나는 이들에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새벽 공기를 맞으며 주님의 제단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삶의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무거운 짐들을 저마다 하나씩 짊어지고 말입니다. 몇 년 전, 평생을 따뜻한 믿음으로 살아가던 귀한 집사님이 암 투병을 하셨습니다. 가족들과 성도들이 밤낮으로 그 곁을 지키며 간호했고, 매일 밤 눈물로 치유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병세는 깊어져만 갔고, 집사님은 병상에서 쓸쓸히 물으셨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침묵하실까요? 저는 정말 괜찮은데, 저를 돌보느라 온 가족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실까요?" 오늘 우리는 이 집사님의 아픈 질문 속에서, 시편 13편을 기록한 다윗의 절규를 보게 됩니다. 본문 1절과 2절에서 다윗은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 어느 때까지니이까 "를 네 번이나 반복하여 외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나이까." 우리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고통의 크기보다, ' 끝이 보이지 않는다 '는 절망감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잊으신 것 같고, 주님의 얼굴을 내게서 돌리신 것 같다는 영적인 소외감입니다. 영혼의 어둠이 몰려올 때, 우리는 마음속에 끝없는 번민과 슬픔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오늘 이 새벽, 혹시 이러한 소리 없는 절망의 밤을 지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본론 1. 침묵의 한복판에서 드리는 기도 다윗은 이 기막힌 침묵 속에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는 낙심하여 기도의 자리를 떠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며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깊은 고독과 절망을 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정직...

[7월 12일 묵상] 시편 12편 1절-8절, 일곱 번 단련한 여호와의 말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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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서론 여러분, 어제 하루 동안 세상에서 어떤 말들을 들으셨나요?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쏟아지는 자극적인 뉴스들과 SNS의 화려한 과장 광고들, 혹은 직장에서 누군가가 툭 던진 가시 돋친 한마디에 온종일 마음이 쓰이진 않으셨습니까? 단톡방에서 오가는 가벼운 뒷담화나 교묘하게 포장된 거짓말에 마음이 상해 밤잠을 설쳐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참 많은 말 속에 파묻혀 살아갑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그 수많은 말 중에서 정작 내 상한 영혼을 진심으로 채워주고 끝까지 책임져 줄 '진실한 말'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말의 전쟁은 에덴동산에서 일어났습니다. 간교한 뱀은 하와에게 다가와 아주 달콤하고 매끄러운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하나님이 진짜로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비틀어 의심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거짓은 역사가 아주 깊고, 그 파괴력 또한 어마어마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2편의 다윗도 바로 이러한 세상의 악한 말들이 주는 공격 속에서 깊은 고독과 아픔을 느끼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본론 1. 거짓과 아첨이 판치는 세상에서의 탄식 다윗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믿을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기가 막힌 현실을 보며 탄식을 쏟아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시편 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다윗이 보기에, 세상에 진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자취를 감춘 것만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절을 보면, 사람들이 이웃에게 빈말을 건네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상대방과 진심으로 소통하려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 상대를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고 다스리기 위한 '조종(ma...

[7월 11일 묵상] 시편 11편 1절-7절,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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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새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서론: 인생의 안전핀이 뽑혀 나갈 때 여러분, 요즘 어떤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나 밤잠을 설치신 적 있으십니까?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병원 연락을 받았을 때, 혹은 평생을 바쳐 다니던 직장에서 갑작스레 그만두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마음은 크게 흔들립니다. 세상일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삶을 든든히 붙들어 주던 안전핀이 갑자기 뽑혀 나가는 것 같은 순간, 우리 마음은 크게 요동치며 저마다 살길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바로 그런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평생 믿고 의지하던 사회 질서와 사람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참담한 상황이었습니다. 곁에서 그를 돕던 신하들이 다윗의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왕이시여, 지금은 여기 머물 때가 아닙니다. 어서 새처럼 저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숨으십시오!" 이 말은 참으로 그럴듯한 조언처럼 들립니다. 원수들은 이미 어두운 곳에 숨어 화살을 겨누고 있고, 나라의 법과 질서라는 기초는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신하들은 한탄하며 외칩니다. "기초가 이렇게 무너졌는데 의인인들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세는 이미 기울었으니 어서 목숨이라도 건지십시오!" 하지만 다윗은 이 그럴듯한 사람의 조언을 향해 단호하게 외칩니다. "내가 이미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내게 산으로 도망치라고 말하느냐?" 다윗은 세상이 흔들릴 때 세상이 주는 피난처를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이 위기의 순간에 전혀 다른 차원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본론 1.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하늘 보좌를 봅시다 다윗이 사람들이 권하는 '산'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함께 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11: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