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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묵상] 고린도후서 8장 16-24절, 첫인상보다 오랜 열매가 더 중요합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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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8장 16-24절, 첫인상보다 오랜 열매가 더 중요합니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새 찬송가 333장, 충성하라 죽도록 서론: 첫인상으로 판단하는 시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얼마나 빨리 판단합니까? 말을 시원시원하게 잘하고, 처음 만났을 때 예의가 바르면 금세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서툴렀거나 한 번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오래도록 좋지 않게 바라봅니다. 첫인상이 판단의 기준이 되고, 한 번의 실수가 그 사람의 이름표가 됩니다. 성경에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메시아, 즉 예수님을 만났다고 전하며 그가 '나사렛 예수'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당시 가난하고 천대받던 동네인 '나사렛' 출신이라는 말만 듣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보지도 않고서 말입니다. 첫인상을 넘어, 출신에 대한 편견으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낮추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전달할 연보를 맡을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돈을 다루는 일입니다. 선한 뜻으로 모은 헌금이라 해도 잘못 처리하면 교회가 상처를 입습니다. 한 사람의 명예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친분이나 첫인상으로 사람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사람을 한 번의 인상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본론 1. 사람의 성품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드러납니다. 바울은 디도와 함께 보낼 한 형제를 소개하면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받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을 유창하게 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첫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 교회가 그의 삶을 보았고, 그를 믿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22절에 나오는 또 다른 형제는 여러 가지 일에서 간절함이 여러 번 확인된 사람...

[11월 10일 묵상] 고린도후서 8장 1-15절, 헌금을 얼마나 해야만 합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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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8장 1-15절, 헌금을 얼마나 해야만 합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새 찬송가 317장,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서론: 광야 같은 인생, 그리고 사르밧 과부 사회학자들은 은퇴 이후 현대인이 겪게되는 가장 깊은 불안 요인으로, 경제적 자립도의 감소와 사회적 고립감을 지목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땀 흘려 일하면 가정을 세우고 자녀들을 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터에서 물러나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수입보다 지출이 더 커지는 경제적 상황을 보면서 형언하기 힘든 허탈감과 막막함이 밀려오게 됩니다. 살아갈 날은 긴데 수입은 줄어들고 병원비와 생활비는 계속해서 늘어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냉정하게 가진 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려 합니다. 평생 모아둔 자산이 얼마인지, 몇 평짜리 집에 사는지로 인생의 성패를 손쉽게 평가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기준 앞에 서면, 평생 믿음을 지켜 온 우리들도 이웃을 돕고 돌보는 일을 고민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남을 돕고 헌금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입니다. 헌금과 구제는 어디까지나 곳간에 여유가 넘쳐나는 부자들의 전유물,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를 떠올려 보십시오. 가뭄 속에서 그 여인의 손에는 통 밑바닥의 가루 한 움큼과 병 밑에 고인 얼마 안 되는 기름뿐이었습니다. 아들과 마지막 음식을 먹고 죽으려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엘리야 선지자가 찾아와 그 작은 조각을 먼저 가져오라고 요청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가혹해 보였지만, 그 여인이 빈 손이라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주의 말씀을 의지해 마지막 것을 내어놓았을 때,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는 놀라운 하늘의 공급을 맛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바로 이와 동일한 은혜의 신비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론 1. 내 소유를 넘어서는 은혜의 신비 사도 바울은 예...

[11월 9일 묵상] 고린도후서 7장 2-16절, 낙심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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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7장 2-16절, 낙심한 자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 새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서론: 메마른 광야 속에서 찾은 은혜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가슴 저미도록 와닿는 구절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42편 4절에서 " 오른쪽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 탄식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날을 피해 컴컴한 아둘람 굴속에 웅크리고 앉아 질렀던 비명이었습니다. 정신의학자이자 하버드 의대 교수였던 조지 베일런트는 수십 년에 걸친 종단 연구 끝에 아주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삶의 모진 풍파를 견디게 만드는 힘은 혼자만의 결기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잡아주는 단 한 사람과의 따뜻한 연결이다. 사람은 고립될 때 무너지고, 진실하고 따뜻한 손이 그를 붙잡아 줄 때 다시 숨을 쉽니다. 사도 바울의 현실도 그러했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쇠로 만든 로봇이 아니었습니다. 드로아에서 복음의 큰 문이 열렸음에도 사랑하는 동역자 디도를 만나지 못하자 마음의 안식을 찾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역시 낭만적인 휴식처가 아니었습니다. 밖으로는 이교도와 대적자들의 매서운 공격이 빗발쳤고, 안으로는 고린도 교회가 풍비박산 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사도의 목을 죄어왔습니다. 몸과 마음이 탈진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던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디도의 발걸음을 통해 바울의 상한 심령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단한 삶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새벽 기도의 자리를 지키시는 성도님들께 묻습니다. 안팎으로 몰아치는 삶의 짐에 짓눌려 쓰러져가는 이웃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직접 전달하는 ' 살아있는 디도 '로 서 있습니까? 본론 1. 하나님은 성도의 발걸음을 통해 위로하십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먼저 봅시다. 고린도후서 7: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

[11월 8일 묵상] 고린도후서 6장 1절-7장 1절,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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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6장 1절-7장 1절,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새 찬송가 440장,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서론: 세상의 시선과 로뎀나무 탄식 현대 사회심리학자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는 가장 깊은 불안과 우울의 핵심 원인으로 ‘ 상대적 박탈감 ’과 ‘ 사회적 투명인간화 ’를 꼽습니다. 평생을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해 왔음에도 은퇴의 문턱에 서서 줄어든 멈춘 수입, 퇴직 후 사라진 직함, 남들의 아파트 평수와 자녀들의 성공을 비교하며 스스로 좌절해 버립니다. 세상의 무대에서 밀려나 가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두려움이 은연중에 영혼을 갉아먹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엘리야 선지자를 떠올려 보십시오. 갈멜산에서 단 한번의 기도로 하늘의 불이 내렸고 승리를 거두었던 영적 거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쓰러졌을 때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당대 최고의 선지자조차 남들과 비교하는 순간, 극심한 자기 비하와 낙심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파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연약함입니다. 오늘 이 새벽, 인생의 후반전을 지나고 계신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남들의 화려한 형편을 곁눈질하며 ‘나는 왜 이 나이 먹도록 변변히 남겨둔 재산도 없을까, 내 삶은 왜 이렇게 초라할까’ 한숨짓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 교회 안팎에서 극심한 모욕을 받았습니다. 화려한 외모도 없고 늘 굶주리며 매 맞는 죄수의 몰골이라는 조롱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눅 들지 않고 세상의 잣대를 뒤엎는 당당한 신앙으로 응답합니다. 바울을 굳건하게 세웠던 그 거룩한 신비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론 1. 세상 기준을 꺾어버린 십자가 본문 8절과 9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향한 세상의 가혹한 평가와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

[11월 7일 묵상]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이제는 아무도 육체대로 보지 아니하노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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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1-21절, 이제는 아무도 육체대로 보지 아니하노라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새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서론: 사람의 외모와 하나님의 시선 구약의 사무엘상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보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새 왕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맏아들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습니다. 훤칠한 키와 당당한 체구, 늠름한 인품을 보자마자 사무엘은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확신했습니다. 과연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실 자가 주님 앞에 섰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생각을 단호하게 멈춰 세우셨습니다. 그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온 대선지자조차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함정에 이토록 쉽게 걸려 넘어졌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짚어냈듯, 현대 문명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사람이 걸친 옷과 아파트 평수, 학벌과 재산이라는 외적 간판으로 가치를 매기는 쇼윈도와 같습니다. 물건마다 가격표를 붙이듯, 사람의 영혼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장을 달아줍니다. 정말 마음 아픈 일은, 세상에서 겪던 그 서글픈 잣대가 어느새 우리 마음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새벽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면서도, 예배당 문을 열고 나가면 내 가족과 자녀, 심지어 곁에 있는 교우들을 바라볼 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눈으로 저울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16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두려운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오늘 주님은...

[11월 6일 묵상] 고린도후서 5장 1-10절, 텐트가 찢어져도 새 집이 있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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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10절, 텐트가 찢어져도 새 집이 있습니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새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서론: 내 천막이 흔들릴 때 새벽에 눈뜰 때 몸이 천근만근인 날, 다들 있으시지요. 저도 오늘 새벽 이불 속에서 쑤시는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좀 더 잘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알람을 두 번이나 끄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님들, 참 귀하고 반갑습니다. 가끔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하시던 어르신들을 떠나보내 드리는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장례를 집례하고 모든 일정이 마치고 교회에 돌아오면, 슬픔과 함께 찾아온 건 허탈함이었습니다. 평생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시며 자녀들을 키우셨는데, 마지막 화장장에서 나온 건 품에 안기는 작은 유골함 하나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제 자신에게 참 부끄러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도 결국 저렇게 빈손으로 갈 텐데, 나는 지금 도대체 뭘 붙들고 바쁘게 사는가.'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러한 생각들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천막을 깁고 꿰매는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거친 천을 만지며 살았으니, 자기 몸이 천막처럼 낡아가는 걸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았을 겁니다. 매를 맞고, 굶주리고, 배가 부서지는 파선을 겪으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에서는 영원한 천국을 노래하지만,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인생의 여러 내용들을 걱정합니다. 입술은 하늘을 말하는데 마음은 땅바닥에 묶여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바울은 바로 이 연약하고 부끄러운 우리 속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본론 1. 낡아가는 텐트: 내 힘으로는 버틸 수 없습니다 먼저 본문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

[11월 5일 묵상] 고린도후서 4장 1-18절, 질그릇이어서 다행입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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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장 1-18절, 질그릇이어서 다행입니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서론: 금 간 그릇을 감출 수 있을까요 어제 하루도 참 많이 낙심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는데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아침부터 책상 위에 두었던 책을 찾았는데, 아무리 찾고 뒤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찾아도 안 되자, 목사라는 사람이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만나고 성도님들을 만나는 교회에서는 사람 좋은 얼굴로 "다 은혜입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제 모습이 참 쓰라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습니까. 이 새벽에 기도하러 나와 앉아 계시니 겉보기엔 다들 믿음이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속은 어떻습니까. 마음의 금이 쩍쩍 가 있지 않습니까. 그 깨진 틈을 들키지 않고 숨기려고, 우리는 하루하루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살아갑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바울을 보며 수군거렸습니다. 거짓 사도들이 들어와 바울을 마구 깎아내렸지요. 말주변도 없고 몸도 병약한 데다, 매 맞고 감옥이나 들락거리는 사람이 무슨 사도냐는 비난이었습니다. 바울인들 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편지를 열며 뜻밖의 고백을 꺼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이를 악물고 억지로 버텨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전혀 다른 이유가 그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론 1. 내 힘은 바닥났습니다. 해마다 첫날 새벽이면 성경 통독도 하고, 화도 덜 내고, 기도 자리도 지키겠노라 결심합니다. 그런데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지켜가고 있는 것이 몇 개나 됩니까. 손으로 꼽기도 민망합니다. 또 가족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냈고, 말씀보다 스마트폰을 더 오래 들여다봤습니다. 굳은 결심이 사흘을 못 가 무너질 때마다 자책하지 않습니까. 나는 왜 맨날 이 모양일까. 성도 여러분, 맞습니다. 우리는 원래 그런 모양입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하나님도 이미 다 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