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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묵상] 시편 2편 1절-12절,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72장, 만왕의 왕 앞에 나오라 새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서론 오늘 이 새벽, 오직 주만 바라보며 하늘의 은혜를 구하며 나오신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새벽에 기도하러 왔는데도 마음이 조용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자녀 걱정, 건강 문제, 돈 문제, 앞으로의 일을 주께 맡기러 왔는데, 여전히 마음 속에 가득하여 염려가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몸은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아직 세상 소식과 걱정 속을 오갑니다. 조용히 눈을 감아도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계산이 돌아갑니다. “이 일은 어떻게 되지?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 앞으로 괜찮을까?” 새벽은 고요한데, 마음은 고요하지 않습니다. 시편 2편도 조용히 시작하지 않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 세상이 들끓습니다. 왕들이 모이고 권력자들이 서로 의논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맞서는 대상은 단순한 제도나 종교가 아닙니다. “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입니다. 이 반역은 세상 밖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생명의 길로 믿는다고 말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나를 묶는 결박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내 뜻, 내 계획, 내 걱정을 왕처럼 붙듭니다. 주님께 맡긴다고 말하면서도, 밤새 마음으로는 내가 붙들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은 흔들리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세상은 흔들려도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에게 피하는 사람이 복 있습니다. 본론 1.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왕을 세우셨습니다. 1절은 열방의 소란을 보여 줍니다. 1절을 다시 제가 읽겠습니다. 시편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분노하며”라는 말은 히브리어 רָגְשׁוּ(라그슈)로, 마음과 세상이 함께 들끓는 모습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평안을 주지...

[7월 1일 묵상] 시편 1편 1절-6절, 메마른 영혼이 다시 뿌리내리는 길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서론: 우리는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에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몸은 아직 무겁고, 마음에는 어제의 걱정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 문제, 건강 문제, 생활의 염려, 누군가를 향한 서운함이 마음 한쪽에 앉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조용히 물으십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느냐? 그리고 어디에 심겨 있느냐?” 창세기의 롯을 생각해 봅니다. 롯은 어느 날 갑자기 소돔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소돔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다음 소돔 가까이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돔 성문에 앉았습니다. 죄는 늘 그렇게 옵니다. 우리를 갑자기 끌고 가지 않습니다. 조금씩 익숙하게 만들고, 어느새 그 자리가 편안하게 느껴지게 만듭니다. 시편 1편은 그 길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몰라서만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보다 사람의 말, 염려의 말, 세상의 계산에 더 오래 마음을 내어주기 때문에 흔들립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십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 말씀의 시냇가에 다시 심기라.” 본론 1. 악의 자리에 오래 머물지 마십시오. 1절은 복 있는 사람을 먼저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피하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가면히 보면, 여기에는 영혼이 무너지는 순서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걷다”는 הָלַךְ(할라크), “서다”는 עָמַד(아마드), “앉다”는 יָשַׁב(야샤브)입니다. 걷다가, 서다가, 앉습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생각처럼 보입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 그러다가 그...

[6월 30일] 고린도전서 16장 13절-24절, 사랑으로 굳게 서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새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서론 새벽에 기도하러 나오려면 먼저 깨어야 합니다. 알람이 울려도 몸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은 다릅니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먼저 깹니다. 기다리는 일이 있으면 사람은 깨어납니다. 성경에도 그런 밤이 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깨어 기도하라 .” 그러나 제자들은 잠들었습니다. 마음은 원했지만 육신이 약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그랬습니다. 은사도 있었고 지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열했고, 다투었고, 사랑 없이 자기주장을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편지의 마지막에서 짧고 강하게 권면합니다.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 고린도전서 16장 13-24절은 바울의 마지막 권면과 문안, “마라나타”의 기도와 은혜의 축복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우리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피곤하면 쉽게 흔들립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지만 마음이 굳어질 때가 있습니다. 옳은 말을 하면서도 사랑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조용히 섬기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새벽에 우리를 다시 깨우십니다. “ 네 힘으로 강한 척하지 말고, 내 은혜 안에서 굳게 서라. 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 .”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깨우는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깨어 믿음에 굳게 서십시오. 바울은 먼저 말합니다. 13절입니다. 고린도전서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여기에는 네 개의 명령이 이어집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헬라어로 Γρηγορεῖτε(그레고레이테)입니다. 한 번 정신 차리고 끝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계속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굳게 서라”는 στήκετε(스테케테)입니다...

[6월 29일 묵상] 고린도전서 16장 1절-12절, 주께서 허락하시면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큰 기적의 이야기에는 쉽게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오병이어가 일어나는 장면 앞에서는 누구나 “하나님이 일하신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조금 다릅니다. 얼핏 보면 아주 평범합니다. 연보를 어떻게 모을지, 바울이 언제 갈지, 디모데를 어떻게 맞을지, 아볼로는 왜 지금 가지 않는지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성숙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부터 4절은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를, 5절부터 12절은 바울의 계획과 디모데, 아볼로에 대한 당부를 전합니다. 우리의 약함도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계산적으로 굴 때가 많습니다. 주의 뜻을 따른다고 말하면서도 내 계획을 더 붙듭니다. 함께 교회를 세운다고 하면서도 사람을 세우기보다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우리에게 묻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주의 뜻 앞에 진실로 엎드리고 있는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은혜는 계획으로 드러나고, 믿음은 허락을 기다립니다. 본론 1. 은혜는 계획으로 드러납니다. 바울은 1절에서 연보를 말하면서 “ 성도를 위한 연보 ”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연보는 원어 λογεία(로게이아) 입니다. 단순한 회비나 세금이 아니라, 성도를 돕기 위해 모으는 사랑의 헌신을 뜻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갈라디아 교회들에도 같은 원칙으로 명했다고 말합니다. 즉,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교회의 질서 있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매주 첫날에”,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형편에 따라”는 원어 εὐοδῶται(유오도타이) 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형편과 공급을 따라 드리라는 뜻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드릴 수 있고, 적게 가진 사람은 적게 드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액수 ...

[6월 28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50절-58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새 찬송가 333장, 충성하라 죽도록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다 보면 죽음이 마지막 말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마음은 쉽게 지치고, 오래 붙들고 기도한 일도 금세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 내가 이렇게 애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결국 다 사라지는 것 아닌가 .” 그런데 오늘 바울은 그 흔들리는 마음 앞에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마지막 말씀을 하신다고 말입니다. 바울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마지막 나팔에 모든 성도가 변화되며, 사망의 독침은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잃었고, 그러므로 성도의 수고는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고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죽음의 두려움과 수고의 허무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를 꾸짖기보다 흔들리는 우리 심령을 먼저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성도의 끝은 썩음이 아니라 변화이고, 패배가 아니라 승리이며, 허무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본론 1. 성도의 끝은 썩음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 나라의 유업에 대해 선언합니다. 5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몸 자체가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죽음 아래 놓인 현재의 상태로는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영광을 그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썩어짐을 뜻하는 원어 φθορά(프토라)와 썩지 아니함을 뜻하는 ἀφθαρσία(압타르시아)를 대비시켜, 지금 우리의 존재가 유한하고 약하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51절을 통하여 이렇게 선언합니...

[6월 27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80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새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묻게 됩니다. “이 몸이 이렇게 약해지는데, 정말 부활이 있을까?” 병원에 다녀오고, 여기저기 쑤시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고 나면 부활은 교리책의 문장이 아니라 내 현실 속의 질문이 됩니다. 성경에도 그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 35절입니다.  고린도전서 15: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이건 장난스러운 질문이 아니라, 두려움이 묻어 있는 질문입니다. 끝이 정말 끝이 아닌지, 무덤이 인생의 마지막 장소인지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바울은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보게 하고,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소망으로 이끕니다. 오늘 우리의 연약함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입술로는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눈앞의 약함과 죽음의 현실 앞에서는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성도의 몸은 무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흙에 묻힌 몸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의 몸으로 다시 일으키십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 앞에서 이렇게 귀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내 눈에 보이는 연약함보다, 주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게 하소서.” 본론 1. 하나님은 묻힌 몸을 영광으로 일으키십니다. 36절부터 44절까지 바울은 씨앗의 비유를 들고, 이어서 네 번의 강한 대조로 부활의 몸을 설명합니다. 이 구절들 중에 4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먼저 말합니다. 씨앗이 땅에 들어갈 때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거기서 전혀 새로운 생명의 형체를 일으키십니다. 38절의 핵심은 사람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그 뜻대로” 몸을 주...

[6월 26일 묵상] 고린도전서 15장 20절-34절,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62장, 부활하신 구세주 새 찬송가 160장, 무덤에 머물러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죽음 앞에 서면 갑자기 말이 줄어듭니다. 건강 이야기를 할 때는 웃으며 말하다가도, 병원 이야기, 장례식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담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장년의 시기를 지나는 우리는 이 문제를 더 현실적으로 느낍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주변의 이별 소식이 잦아지고, 어떤 날은 “내 앞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릅니다. 또 죽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허무도 우리를 흔듭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남는 것이 없는 것 같고, 버티며 살아왔는데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바로 그 자리에 복음의 문을 엽니다.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한 분만의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미래를 여는 사건입니다.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을 함부로 살지 않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꼭 붙들어야 할 한 문장이 있습니다. 주님이 살아 계시면, 우리의 미래도 살아 있습니다. 이 진리가 오늘 우리 마음에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본론 1.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미래를 이미 여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첫 열매라는 말은 헬라어 ἀπαρχή(아파르케) 입니다. 단순히 첫 번째라는 뜻이 아닙니다. 뒤따를 수확 전체를 보증하는 첫 열매라는 뜻입니다. 곧, 예수님의 부활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부활을 미리 열어 놓으신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만 살아나셨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 예수님께 속한 자들도 반드시 살게 된다 ”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