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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묵상] 요한복음 7장 37절-52절, 나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새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서론: 광야의 갈증에서 실로암의 외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끝없는 모래바람을 뚫고 걷던 광야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출애굽기 17장, 르비딤에 도착한 백성들은 타는 듯한 갈증 앞에 모세를 원망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생존을 위협하는 갈증은 인간을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시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 마른 바위가 터져 시원한 강물이 쏟아졌을 때, 이스라엘은 비로소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놀라운 구원의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축제의 절정은 제사장이 금 항아리에 실로암 못의 물을 길어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이 부어질 때마다 광야의 기적을 추억하며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 화려한 의식 속에서도 사람들의 표정 뒤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가뭄'이 서려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과를 내고, 좋은 차를 타고, 화려한 조명 아래 있으면서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 도대체 내 마음은 왜 이렇게 텅 비어 있을까? "라는 공허함에 시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본론: 생수의 근원과 성령의 역사 이 '공허함'과 '결핍'이야말로 현대인이 겪는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아무리 SNS에 행복한 사진을 올려도 내면의 사막화는 막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초막절 축제의 마지막 날, 물 붓는 의식이 끝난 고요한 성전 마당에 예수님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집니다.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오늘 우리는 이 외침 속에서 우리 영혼을 적실 진짜 생수를 만나야 합니다. 1. 생수는 종교적 형식이 ...

[2월 23일 묵상] 요한복음 7장 25절-36절, 안다고 생각할 때 잃어버리게 되는 것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새 찬송가 151장, 만 왕의 왕 내 주께서 서론: "익숙한 길에서 잃어버린 방향 감각" 여러분, 혹시 아침 출근길이나 자주 가는 목적지로 향할 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 내가 아는 지름길 '로 핸들을 꺾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길은 내가 십 년 넘게 다닌 길인데, 이 시간에 여기가 막힐 리가 없어"라는 확신으로 자신 있게 들어섭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예상치 못한 도로 공사나 돌발 사고로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시계만 보며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가진 '익숙함'이라는 데이터가 사실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위험한지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사람들도 딱 이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고향이 어디인지, 그 가족이 누구인지 조금 '안다'는 사실 하나로 메시아를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라는 그들의 당당한 선언은, 사실 가장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의 연수가 쌓일수록 ' 교회의 관습 ', ' 익숙한 성경 구절 ', ' 직분 '이라는 익숙한 경로에 매몰되어, 정작 내 삶의 핸들을 쥐고 계신 주님의 실체와 그분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을 놓치고 살 때가 많습니다. 본론 특히 오늘처럼 분주한 새벽, "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겠지 "라는 익숙함에 갇혀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다 안다는 그 오만이 사실은 주님께로 가는 길을 막는 '영적 정체 구간'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의 견고한 선입견을 깨뜨리고,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믿음을 가로막...

[2월 22일 묵상] 요한복음 7장 14절-24절, 사람의 영광인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새 찬송가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서론: '자격'을 묻는 시대, 진리의 근원을 찾아서 최근 한 달 사이, 우리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는 전문직종의 권위와 그 자격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었습니다. 특정 분야의 정책 변화를 두고 전문가 집단과 정부,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서 "누구의 말이 옳은가?", "그 제안의 숨은 의도는 무엇인가?"를 따지는 고통스러운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주장이 담긴 본질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자격'이나 '학벌', 혹은 '집단 이기주의' 여부를 먼저 따지며 불신을 키워갔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은 " 진정으로 믿을 만한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 권위의 정당성 '에 대한 도전은 성경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구약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와 다단, 그리고 아비람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지도력이 하나님의 선택이 아닌, 인간적인 독점이라고 비난하며 외적인 평등을 내세워 영적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모세가 배운 학문이나 그의 지위가 그를 지도자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 권위의 근거였음을 그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 속 유대인들 역시 동일한 실수를 범합니다. 명절 중간에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향해 그들은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라며 학문적 배경, 즉 '스펙'을 문제 삼습니다. 그들...

[2월 21일 묵상] 요한복음 7장 1절-13절, 세상의 시계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사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새 찬송가 544장, 울어도 못하네 서론: "증명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세상의 비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2026년의 한국 사회를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키워드는 바로 '증명(Proof)'과 '속도(Speed)'입니다. 서점가에는 '남들보다 10년 앞서가는 법', '초격차의 비밀', '빠른 은퇴를 위한 투자'와 같은 제목의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합니다. SNS를 열면 저마다 "내가 이만큼 행복하다", "내가 이만큼 성공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진들이 넘쳐납니다. 청년들은 스펙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못할까 봐 밤잠을 설치고, 직장인들은 성과를 빨리 내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공포 속에 시달립니다. 심지어 신앙생활조차 "내가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를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빨리 증명해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숨어 있지 마. 세상 밖으로 나와서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여줘. 지금 당장!" 본론: 세상의 '쇼'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살라 이러한 시대적 풍조는 우리 영혼을 지치게 만듭니다.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은 무능력처럼 느껴지고, 기다림은 시간 낭비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도 이와 똑같은 압박을 받으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예수님께 "능력이 있다면 숨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증명해 보이라"고 다그칩니다. 과연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의 재촉과 인정 욕구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의 시계가 아닌, 하나님의 시계를 사는 지혜를 배우기를 소망합니...

[2월 20일 묵상] 요한복음 6장 60절-71절,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서론: 혼란한 국제 정세 속, 변치 않는 진리를 찾아서 할렐루야. 어두운 밤을 지나 생명의 빛으로 오신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국제 정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요동치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들과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경쟁자가 되는 냉혹한 현실을 목격합니다. 나라 간의 약속도, 경제적인 협력도 '이익' 앞에서는 종잇장처럼 찢어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민낯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존을 위해 "누가 나에게 떡을 줄 것인가?"를 계산하며, 더 힘 있는 쪽, 더 이익이 되는 쪽으로 줄을 서기에 바쁩니다. 이러한 세태는 비단 국제 사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신앙 현장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입니다. 내게 유익이 되면 따르고,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거나 내 생각과 다르면 가차 없이 등울 돌리는 '계산적인 신앙'이 만연해 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이익을 좇는 무리'와 '진리를 따르는 제자'가 갈라지는 결정적인 순간을 보여줍니다. 떡을 보고 모여들었던 수천 명의 군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그 황량한 자리에서, 주님은 오늘 새벽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 세상이 다 변하고 떠나가는 이때, 너희도 가려느냐? " 이 질문 앞에 우리의 중심을 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육신의 이해득실을 넘어, 살리는 영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오늘 본문 60절을 보면 제자들 중 여럿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고 수군거립니다. 여기서 '어렵다(σκληρός, 스클레로스)'는 말은 내용이 난해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어적으로 '거칠다, 불쾌하다, 받아...

[2월 19일 묵상] 요한복음 6장 41절-59절, 영원한 생명을 위한 참된 양식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35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새 찬송가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서론: 풍요 속의 빈곤, 무엇으로 허기를 채우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 주님의 전을 찾으신 여러분에게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탐식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TV 채널을 돌리면 온통 맛있는 음식을 먹는 '먹방'과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넘쳐납니다. 사람들은 맛있는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을 마다하지 않고, 건강보조식품과 유기농 식단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합니다. 서점에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몸에 좋은 음식에 관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몰두하며, 육체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잘 먹고 건강을 챙기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겪는 마음의 병과 영혼의 공허함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육체는 비대해졌지만 정신은 빈약해졌고, 수명은 늘어났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잃어버렸습니다. 화려한 식탁 앞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갈증 때문에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호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눈에 보이는 떡, 육신의 양식만으로는 결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이와 똑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 육신의 배부름이 너무나 좋아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했고, 기적을 더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서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배를 채워줄 '떡'에는 관...

[2월 18일 묵상] 요한복음 6장 30절-40절, 결코 내쫓지 않으시는 사랑, 그 영원한 양식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새 찬송가 544장, 울어도 못하네544 서론: 무엇이 당신의 배를 채우고 있습니까? 할렐루야, 이 새벽 주님의 전을 찾으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눈을 뜨면서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셨습니까? 혹시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버티나",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하는 염려가 여러분의 마음을 짓누르지는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육신을 가진 존재라 배고픔을 느낍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본능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거나 밥을 찾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육신의 배는 밥을 먹으면 채워지는데, 우리 마음의 허기는 아무리 좋은 것을 채워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재정의 자유를 얻고 부유해지면 든든할 것 같은데, 막상 부와 명예가 쌓이고 나면 그걸 잃을까 봐 불안합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면 끝날 줄 알았는데, 취업 걱정, 결혼 걱정이 꼬리를 뭅니다. 마치 구멍 난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목마름'과 '배고픔'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 즉 '표적'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이것만 해결해 주시면, 이 증거만 보여주시면 내가 안심하겠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들도 똑같았습니다. 그들은 어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떡을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하지만 날이 밝자 배는 다시 고파졌고, 그들은 예수님께 찾아와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합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만나를 줬는데,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겠습니까?"(30-31절). 오늘 이 새벽, 우리의 시선이 눈에 보이는 썩어질 양식에서, 영원히 배고프지 않은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께로 옮겨지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만이 우리 영혼의 유일한 만족, '생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