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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묵상]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이제는 아무도 육체대로 보지 아니하노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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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1-21절, 이제는 아무도 육체대로 보지 아니하노라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새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서론: 사람의 외모와 하나님의 시선 구약의 사무엘상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보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새 왕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맏아들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습니다. 훤칠한 키와 당당한 체구, 늠름한 인품을 보자마자 사무엘은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확신했습니다. 과연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실 자가 주님 앞에 섰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생각을 단호하게 멈춰 세우셨습니다. 그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온 대선지자조차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함정에 이토록 쉽게 걸려 넘어졌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짚어냈듯, 현대 문명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사람이 걸친 옷과 아파트 평수, 학벌과 재산이라는 외적 간판으로 가치를 매기는 쇼윈도와 같습니다. 물건마다 가격표를 붙이듯, 사람의 영혼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장을 달아줍니다. 정말 마음 아픈 일은, 세상에서 겪던 그 서글픈 잣대가 어느새 우리 마음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새벽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면서도, 예배당 문을 열고 나가면 내 가족과 자녀, 심지어 곁에 있는 교우들을 바라볼 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눈으로 저울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 16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두려운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오늘 주님은...

[11월 6일 묵상] 고린도후서 5장 1-10절, 텐트가 찢어져도 새 집이 있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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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10절, 텐트가 찢어져도 새 집이 있습니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새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서론: 내 천막이 흔들릴 때 새벽에 눈뜰 때 몸이 천근만근인 날, 다들 있으시지요. 저도 오늘 새벽 이불 속에서 쑤시는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좀 더 잘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알람을 두 번이나 끄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님들, 참 귀하고 반갑습니다. 가끔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하시던 어르신들을 떠나보내 드리는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장례를 집례하고 모든 일정이 마치고 교회에 돌아오면, 슬픔과 함께 찾아온 건 허탈함이었습니다. 평생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시며 자녀들을 키우셨는데, 마지막 화장장에서 나온 건 품에 안기는 작은 유골함 하나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제 자신에게 참 부끄러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도 결국 저렇게 빈손으로 갈 텐데, 나는 지금 도대체 뭘 붙들고 바쁘게 사는가.'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러한 생각들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천막을 깁고 꿰매는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거친 천을 만지며 살았으니, 자기 몸이 천막처럼 낡아가는 걸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았을 겁니다. 매를 맞고, 굶주리고, 배가 부서지는 파선을 겪으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에서는 영원한 천국을 노래하지만,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인생의 여러 내용들을 걱정합니다. 입술은 하늘을 말하는데 마음은 땅바닥에 묶여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바울은 바로 이 연약하고 부끄러운 우리 속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본론 1. 낡아가는 텐트: 내 힘으로는 버틸 수 없습니다 먼저 본문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

[11월 5일 묵상] 고린도후서 4장 1-18절, 질그릇이어서 다행입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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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4장 1-18절, 질그릇이어서 다행입니다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서론: 금 간 그릇을 감출 수 있을까요 어제 하루도 참 많이 낙심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는데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아침부터 책상 위에 두었던 책을 찾았는데, 아무리 찾고 뒤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찾아도 안 되자, 목사라는 사람이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고는 사람들을 만나고 성도님들을 만나는 교회에서는 사람 좋은 얼굴로 "다 은혜입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제 모습이 참 쓰라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습니까. 이 새벽에 기도하러 나와 앉아 계시니 겉보기엔 다들 믿음이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속은 어떻습니까. 마음의 금이 쩍쩍 가 있지 않습니까. 그 깨진 틈을 들키지 않고 숨기려고, 우리는 하루하루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살아갑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바울을 보며 수군거렸습니다. 거짓 사도들이 들어와 바울을 마구 깎아내렸지요. 말주변도 없고 몸도 병약한 데다, 매 맞고 감옥이나 들락거리는 사람이 무슨 사도냐는 비난이었습니다. 바울인들 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편지를 열며 뜻밖의 고백을 꺼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이를 악물고 억지로 버텨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전혀 다른 이유가 그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론 1. 내 힘은 바닥났습니다. 해마다 첫날 새벽이면 성경 통독도 하고, 화도 덜 내고, 기도 자리도 지키겠노라 결심합니다. 그런데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지켜가고 있는 것이 몇 개나 됩니까. 손으로 꼽기도 민망합니다. 또 가족에게 상처 주는 말을 쏟아냈고, 말씀보다 스마트폰을 더 오래 들여다봤습니다. 굳은 결심이 사흘을 못 가 무너질 때마다 자책하지 않습니까. 나는 왜 맨날 이 모양일까. 성도 여러분, 맞습니다. 우리는 원래 그런 모양입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하나님도 이미 다 아십니다...

[11월 4일 묵상] 고린도후서 3장 1-18절, 추천서가 필요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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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3장 1-18절, 추천서가 필요했습니까 함께 할 찬송가 새 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새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서론: 추천서를 요구하는 사람들 오늘 본문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화려한 추천서를 내밀며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말은 서툴고 외모는 볼품없고 고난만 당하니 진짜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의 추천서가 무엇입니까? 1절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고린도후서 3: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바울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추천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 말은 변명이 아니라 언약의 시대가 바뀌었다는 선언입니다. 본론 1. 그리스도의 편지, 성령의 추천서 바울은 말합니다. 2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3: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당시 편지는 파피루스에 먹으로 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이 아니라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손으로 쓰신 돌판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돌판은 단단하지만 차갑습니다. 죄인이 그 율법 앞에 서면 정죄만 남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돌판 앞에서 깨졌습니다. 율법은 선하지만 죄인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31장 33절에는 구원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마음에 기록하리라”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 36장 26절도 약속합니다. “ 돌같은 마음을 제하고 살같은 마음을 주리라 ”라고 말입니다. 이 약속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고린도 성도들의 돌같은 마음을 깨뜨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새겨 주셨습니다. 술주정뱅이가 기도...

[11월 3일 묵상] 고린도후서 1장 23절-2장 17절,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심을 줍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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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23절-2장 17절,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심을 줍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새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서론: 아프게 한 사람이 더 아픕니다 저는 아이한테 모진 소리를 해 놓고 밤새 잠을 설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니까 말한다면서 상처만 남긴 일, 있지 않습니까. 반대로 하기 싫은 말을 끝내 삼키고 모른 척한 일도 있을 겁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지요. 솔직히 편한 쪽을 고른 겁니다. 저는 그걸 온유라고 불렀습니다. 겁이 났을 뿐인데 말입니다. 아내와 다툰 날도 그렇습니다. 먼저 말 걸면 지는 것 같아서 저녁 내내 텔레비전만 봤습니다. 사랑한다면서 정작 제 체면만 사랑한 겁니다. 바울이 꼭 그랬습니다. 고린도교회와 틀어졌습니다. 방문하겠다던 약속을 미뤘고, 약속도 못 지키는 사람이라는 욕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변명하지 않고 속을 열어 보입니다. 그 속에 우리 가정과 직장의 얼굴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오늘 새벽, 같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본론 1. 사랑해서 아프게 해도 우리는 서툽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가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2장 1절입니다. 고린도후서 2: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가면 또 서로 아프니까 안 갔다는 겁니다. 그 대신 편지를 썼습니다. 2장 4절입니다. 고린도후서 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 편지를 눈물로 썼답니다. 쓰면서 울었다는 말입니다. 사도라는 사람이 말입니다. 영웅 같은 모습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릎이 풀려 버린 목회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책망하려면 화가 나야 겨우 입이 열리고, 화가 풀리면 또 입을 닫습니다. 사랑의 말을 제대로 할 힘이 우리에게 없습니...

[11월 2일 묵상] 고린도후서 1장 12-22절, 오해를 당할 때 어떻게 합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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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12-22절, 오해를 당할 때 어떻게 합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억울한 오해를 당할 때 우리의 반응 우리는 평생 한결같고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반듯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가족을 위해 뼈아프게 헌신하고 교회에서 묵묵히 땀 흘려 오신 우리 성도님들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순간이 언제입니까? 바로 나의 순전한 진심이 왜곡되고, 가까운 가족이나 오랜 교우에게 뜻밖의 억울한 오해를 살 때입니다. 평생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수록 그 억울함의 깊이는 더 깊어집니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교회를 어떻게 섬겼는데 나를 이렇게 대하나" 싶어 배신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내 결백을 증명하려고 핏대를 세우며 싸우거나, 사람에게 깊이 실망하여 마음의 문을 닫아걸어 버립니다. 고린도 교회를 자식처럼 품었던 사도 바울 역시 바로 이런 기가 막힌 자리에 서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복음의 큰 은혜를 전해 주고 싶어 방문을 계획했으나, 교회의 상처를 덜어주려는 깊은 배려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바울의 눈물겨운 사랑을 몰라주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향해 "상황 따라 말을 바꾸는 변덕쟁이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비난하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는, 오해의 깊은 골짜기 속에서 성도가 굳게 붙잡아야 할 믿음의 반석은 무엇입니까? 본론 1. 오해 앞에 무너지는 바울의 결백함 먼저, 사도 바울은 사람의 인정에 기대던 인간적인 열심이 억울한 오해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본문 속에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본문의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11월 1일 묵상] 고린도후서 1장 1-11절, 하나님은 왜 우리 고난을 그대로 남겨 두십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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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1-11절, 하나님은 왜 우리 고난을 그대로 남겨 두십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새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서론 우리는 흔히 아무런 아픔 없이 탄탄대로를 걷는 인생을 좋아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늘 평탄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 달리 현실의 걸음에는 뜻밖의 거센 파도가 덮칩니다. 뜻하지 않은 질병과 사업의 위기, 가족 간의 갈등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립니다. 믿음으로 살아보려 애를 쓰는데도 삶의 형편은 더 막막해지기만 합니다. 바로 이때 우리 마음에서 깊은 의심과 탄식이 솟구칩니다. 내가 이토록 열심히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데 왜 내 삶에는 눈물과 슬픔이 끊이지 않는가? 우리는 고난 앞에서 금세 하나님을 무능력하다고 오해하거나, 반대로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교만함에 빠져 버리는 연약한 죄인들입니다. 내가 내 삶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매번 무너집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 역시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아시아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극심한 절망을 겪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소망조차 완전히 끊어지는 벼랑 끝에 섰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그 자리가 은혜의 시작점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묻는 고난과 위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본론 1. 힘에 겹도록 애를 써 봐도 본문의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바울은 여기에서'힘에 겹도록' 고난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힘에 겹도록"(휘페르 뒤나민, ὑπὲρ δύναμιν)이라는 말은, 인간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