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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묵상] 창세기 27장 15절-29절, 감각보다 말씀을 붙드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새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서론: 무엇이 당신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새벽에도 어김없이 주님 앞에 나온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평강과 위로가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약 20여년 가까이 시력의 변화가 전혀 없어서, 안경테와 안경알만 바꾸고 도수는 그대로였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노안이어서 돋보기도 사용하는데, 저는 시력의 변화가 없는 이유가 궁금해서 안과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원래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노안도 늦게 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원래 시력이 매우 나빴는데, 시력이 나쁘기 때문에 노안이 늦게 온다는 말씀에, 참 인생은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습니다. '단점, 혹은 고난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본론 오늘 말씀도 "시력" 혹은 "노안"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단순히 육신의 노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영적인 시력에 관한 말씀입니다. 창세기 27장 1절은 이삭의 상태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이것은 단순한 시력이 나빴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보다 장남 에서가 사냥해온 고기를 더 사랑했던 '영적 비만'이 가져온 영적 시력 상실입니다. " 요즘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입맛'이나 '걱정'은 무엇입니까? " 우리는 때로 재정적인 고민, 사람들의 평가, 질병이나 내 몸의 컨디션에 대한 '감각'은 예민하게 반응하느라, 이미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를 속이는 육신의 감각을 내려놓고 영혼의 귀를 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감각은 ...

[4월 18일 묵상] 창세기 26장 34절-27장 14절, 우리의 실패를 덮으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 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새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요하고 하나님을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새벽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떼어내어 하나님 앞에 머무는 이 시간이, 여러분의 영혼에 깊은 안식을 주는 새벽예배의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즘 우리 삶의 속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숨이 가쁠 때가 많습니다. 다들 너무나 열심히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또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나버리는 '번아웃(Burnout)'을 경험하기도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깊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삶을 내가 온전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상,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자녀,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보다 나아진 것 같지 않은 내 자신의 연약한 모습 때문에 남몰래 눈물지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정서적으로 소진되어 "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며 주저앉고 싶은 순간들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옵니다. 하지만 여러분, 괜찮습니다. 그 지치고 상한 마음 그대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주님의 품으로 나아오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의 말씀은, 완벽하고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처럼 실수하고, 흔들리고, 때로는 실패하는 연약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아침, 부서진 우리 삶의 틈새로 스며드는 따뜻한 은혜와 회복의 빛을 함께 발견해 봅시다. 본론 1. 눈먼 이삭과 우리의 영적 피로감 오늘 본문 27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창세기 27: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평생...

[4월 17일 묵상] 창세기 26장 12절-33절, 양보의 골짜기에서 발견한 르호봇의 축복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서론: 다툼의 시대, 생존의 우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나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고대 중동에서 '우물'은 단순한 식수원이 아니라 가문의 생존과 직결된 최후의 생명줄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생명과 관련된 우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시기하여 빼앗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온유함을 유지했고, 결국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각자의 우물이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승진, 사업터의 거래처, 고단한 살림살이를 버티게 하는 소중한 재정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우물을 지키려 매일 발버둥 칩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내 밥그릇을 빼앗기고 경쟁에서 영영 도태될 것만 같은 깊은 불안감이 우리 영혼을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날 선 말을 내뱉고, 때로는 가까운 이웃과도 쉼 없이 다투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아픈 현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속 이삭은 억울하게 생명줄을 빼앗기는 위기 속에서도, 세상의 팍팍한 생존 공식과는 전혀 다른 십자가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본론 1. 시기와 다툼을 넘어서는 온유함 이삭이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의 마음에 시기가 불타오릅니다. 그들은 이삭의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흙으로 메워버리고, 이삭을 내쫓습니다. 억울한 일입니다. 분노할 만한 상황입니다. 이삭이 골짜기로 물러나 다시 우물을 파자, 그랄 목자들이 " 이 물은 우리의 것 "이라며 다툽니다. 그래서 그 우물 이름을 다툼이라는 뜻의 '에섹'이라 불렀습니다. 이삭이 다른 우물을 파니 또 다툽니다. 그곳은 대적함이라는 뜻의 '싯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놀라운 것은 이...

[4월 16일 묵상] 창세기 26장 1절-11절, 두려움을 넘어 언약을 붙드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가끔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며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겠다고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던 아브라함의 부끄러운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그 치명적인 죄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삭은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요? 1절은 그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 바로 생존을 위협하는 극심한 '흉년'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흉년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불황, 턱없이 치솟는 물가와 무거운 대출 이자, 그리고 자녀들의 불확실한 미래라는 차가운 기근이 수시로 불어닥치기 때문입니다. 평온할 때는 흔들림 없이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생존의 위기가 코앞에 닥치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보다 내 경험이나 금방 들통날 거짓말, 세상의 편법을 먼저 의지하려는 것이 바로 연약한 우리의 적나라한 본성입니다. 오늘 이 고요한 새벽, 밑바닥까지 드러난 이삭의 실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연약함마저 덮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바라보며 우리의 무너진 믿음을 다시 굳건히 세우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삶의 흉년과 하나님의 명령 고대 근동 사회에서 흉년은 곧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재난이었습니다. 극심한 기근이 찾아오자, 이삭은 나일강이라는 풍부한 수원이 있어 웬만해서는 가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비옥한 땅, 애굽으로 내려가려 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가장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

[4월 15일 묵상] 창세기 25장 19절-34절, 팥죽 한 그릇과 영적 장자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새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서론: 피곤한 현실 속에서 잃어버리는 영원한 가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고요한 새벽,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기도의 자리로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고대 근동 사회와 구약 성경에서 ‘장자의 명분’, 즉 장자권은 단순히 가족 내의 서열이나 호적상의 순서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장자권은 아버지의 재산을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로 상속받는 경제적이고 실질적인 권리였을 뿐만 아니라, 가문을 대표하여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적 권위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속사적으로 ‘메시아가 오실 언약의 통로’가 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광스럽고 거룩한 영적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토록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영적 특권을 너무나도 허무하고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잃어버린 한 사람, 바로 에서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혹시 여러분은 너무 피곤하거나 배가 고파서, 혹은 당장의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순간적인 감정에 휘말려 뼈저리게 후회할 결정을 내리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당장의 현실적인 결핍과 고통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곤 합니다. 혹은 “당장 내 코가 석 자인데, 예배가 밥 먹여주나? 당장 살기 힘든데 신앙이 무슨 소용인가?” 당장 눈앞에 닥친 피곤함과 굶주림이라는 현실의 결핍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영적 특권을 가볍게 여기고 세상의 위로와 쉽게 맞바꾸려 하는 우리의 육신적 본성과 연약함.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고발하고 있는 인간의 뼈아픈 실존이자, 에서가 보여주는 타락한 본성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보며, 영원한 가치를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인간의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본문은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에 찾아온 깊은 시련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약속...

[4월 14일 묵상] 창세기 25장 1절-18절, 믿음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새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서론: 인생의 노을 앞에서, 우리는 진정 무엇을 남길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캄캄한 어둠과 고요를 뚫고 생명의 빛이신 주님의 전으로 나아온 이 거룩한 새벽,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위로가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 마지막 순간, 그 엄숙한 퇴장의 시간을 진지하게 상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타락한 본성을 지닌 우리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한 번은 이 땅에서의 육신의 장막을 벗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됩니다. 우리가 그 마지막 순간, 인생의 붉은 노을 앞에 서 있을 때, 우리 삶에는 과연 무엇이 남게 될까요? 우리는 종종 죽음 앞에서 깊은 허무함을 느끼거나, 세상에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내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자녀에게 물려줄 두둑한 통장 잔고와 부동산, 혹은 세상이 오랫동안 기억해 줄 자신의 명예와 번듯한 사회적 업적을 남기려 평생의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본론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영원한 가치, 썩지 아니할 가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길고 길었던 지상 여정이 마무리되는 가슴 벅찬 퇴장의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던 아브라함의 마지막은 결코 쓸쓸하거나 허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마지막은 '영적 바톤 터치' 라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사명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뜻깊은 새벽,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에 반드시 새기고 돌아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기는 삶' 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발자취를 보여주는 오늘 본문...

[4월 13일 묵상] 창세기 24장 50절-67절, 저물 때에 들에서 묵상하다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새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이른 새벽 시간, 피곤한 육신을 이끌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격적인 말씀에 앞서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일화를 먼저 나누고자 합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는 치밀하고 원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이라고 단호하게 기록합니다. 자신의 가장 선한 계획마저 철저히 막혔을 때, 바울은 드로아로 내려가 밤을 지새우며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 이 낯선 부르심 앞에서 바울은 고집을 꺾고 즉각 순종합니다. 사도행전 16장 10절은 "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라고 증언합니다. 내 길이 철저히 막혔을 때, 그것이 오히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새롭고 완벽한 길의 시작임을 겸손히 인정했던 것입니다. 본론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매일 아침 복잡한 출근길에 오르며, 팍팍한 살림살이와 끝이 보이지 않는 자녀들의 진로 고민 앞에서 우리는 자주 길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늘 계획대로 수월하게 풀리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불안과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의 걸음을 완벽하게 이끄시는 주권자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바울을 마게도냐로 이끄셨던 성령님께서, 오늘 본문 속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을 주관하시며 척박한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1. 내 삶의 모든 걸음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음을 굳게 고백하십시오. 아브라함의 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