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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묵상] 고린도후서 1장 23절-2장 17절,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심을 줍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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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23절-2장 17절,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심을 줍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새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서론: 아프게 한 사람이 더 아픕니다 저는 아이한테 모진 소리를 해 놓고 밤새 잠을 설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니까 말한다면서 상처만 남긴 일, 있지 않습니까. 반대로 하기 싫은 말을 끝내 삼키고 모른 척한 일도 있을 겁니다. 그때는 그게 사랑인 줄 알았지요. 솔직히 편한 쪽을 고른 겁니다. 저는 그걸 온유라고 불렀습니다. 겁이 났을 뿐인데 말입니다. 아내와 다툰 날도 그렇습니다. 먼저 말 걸면 지는 것 같아서 저녁 내내 텔레비전만 봤습니다. 사랑한다면서 정작 제 체면만 사랑한 겁니다. 바울이 꼭 그랬습니다. 고린도교회와 틀어졌습니다. 방문하겠다던 약속을 미뤘고, 약속도 못 지키는 사람이라는 욕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변명하지 않고 속을 열어 보입니다. 그 속에 우리 가정과 직장의 얼굴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오늘 새벽, 같이 들여다보겠습니다. 본론 1. 사랑해서 아프게 해도 우리는 서툽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가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2장 1절입니다. 고린도후서 2: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가면 또 서로 아프니까 안 갔다는 겁니다. 그 대신 편지를 썼습니다. 2장 4절입니다. 고린도후서 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 편지를 눈물로 썼답니다. 쓰면서 울었다는 말입니다. 사도라는 사람이 말입니다. 영웅 같은 모습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무릎이 풀려 버린 목회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책망하려면 화가 나야 겨우 입이 열리고, 화가 풀리면 또 입을 닫습니다. 사랑의 말을 제대로 할 힘이 우리에게 없습니...

[11월 2일 묵상] 고린도후서 1장 12-22절, 오해를 당할 때 어떻게 합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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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12-22절, 오해를 당할 때 어떻게 합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억울한 오해를 당할 때 우리의 반응 우리는 평생 한결같고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반듯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가족을 위해 뼈아프게 헌신하고 교회에서 묵묵히 땀 흘려 오신 우리 성도님들이 가장 가슴 아파하는 순간이 언제입니까? 바로 나의 순전한 진심이 왜곡되고, 가까운 가족이나 오랜 교우에게 뜻밖의 억울한 오해를 살 때입니다. 평생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수록 그 억울함의 깊이는 더 깊어집니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교회를 어떻게 섬겼는데 나를 이렇게 대하나" 싶어 배신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내 결백을 증명하려고 핏대를 세우며 싸우거나, 사람에게 깊이 실망하여 마음의 문을 닫아걸어 버립니다. 고린도 교회를 자식처럼 품었던 사도 바울 역시 바로 이런 기가 막힌 자리에 서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복음의 큰 은혜를 전해 주고 싶어 방문을 계획했으나, 교회의 상처를 덜어주려는 깊은 배려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바울의 눈물겨운 사랑을 몰라주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을 향해 "상황 따라 말을 바꾸는 변덕쟁이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비난하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는, 오해의 깊은 골짜기 속에서 성도가 굳게 붙잡아야 할 믿음의 반석은 무엇입니까? 본론 1. 오해 앞에 무너지는 바울의 결백함 먼저, 사도 바울은 사람의 인정에 기대던 인간적인 열심이 억울한 오해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본문 속에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본문의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11월 1일 묵상] 고린도후서 1장 1-11절, 하나님은 왜 우리 고난을 그대로 남겨 두십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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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장 1-11절, 하나님은 왜 우리 고난을 그대로 남겨 두십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새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서론 우리는 흔히 아무런 아픔 없이 탄탄대로를 걷는 인생을 좋아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늘 평탄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 달리 현실의 걸음에는 뜻밖의 거센 파도가 덮칩니다. 뜻하지 않은 질병과 사업의 위기, 가족 간의 갈등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립니다. 믿음으로 살아보려 애를 쓰는데도 삶의 형편은 더 막막해지기만 합니다. 바로 이때 우리 마음에서 깊은 의심과 탄식이 솟구칩니다. 내가 이토록 열심히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데 왜 내 삶에는 눈물과 슬픔이 끊이지 않는가? 우리는 고난 앞에서 금세 하나님을 무능력하다고 오해하거나, 반대로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교만함에 빠져 버리는 연약한 죄인들입니다. 내가 내 삶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매번 무너집니다. 본문의 사도 바울 역시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아시아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극심한 절망을 겪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소망조차 완전히 끊어지는 벼랑 끝에 섰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그 자리가 은혜의 시작점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묻는 고난과 위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본론 1. 힘에 겹도록 애를 써 봐도 본문의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고린도후서 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바울은 여기에서'힘에 겹도록' 고난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힘에 겹도록"(휘페르 뒤나민, ὑπὲρ δύναμιν)이라는 말은, 인간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10월 31일 묵상] 시편 19편 1-14절, 다윗은 왜 말과 마음의 묵상이 열납되기를 원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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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9편 1-14절, 다윗은 왜 말과 마음의 묵상이 열납되기를 원했습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78장, 참 아름다워라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서론 우리는 웅장한 전시관에 들어설 때 벽면에 적힌 작가의 이름과 작품 설명부터 먼저 찾아보곤 합니다. 미술관에서 유명한 명화를 마주하면, 사람들은 그림 구석에 조용히 새겨진 화가의 낙관(서명)을 확인하며 그 거장의 숨결을 느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하늘과 궁창이 나옵니다. 시인은 광활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넓게 펼쳐진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증언합니다. 미술관의 캔버스처럼 이 거대한 우주 전체가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의 서명이 선명하게 새겨진 살아있는 초대형 전시관입니다. 해는 매일 아침마다 기쁨으로 솟아오르고, 지치지 않는 용사처럼 하늘 끝에서 끝까지 거침없이 내달립니다. 그 열기가 지구상에 닿지 않는 구석이 없듯,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온 세상에 소리 없이 그러나 뚜렷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아침 떠오르는 저 해와 푸른 하늘을 당연한 배경처럼 생각하고 맙니다. 온 우주가 쉬지 않고 창조주의 영광을 노래하는데, 정작 우리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과 내 좁은 근심에 갇혀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창조 세계를 통해 당신의 신실하심을 온 땅에 나타내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본론 1. 말씀 앞에서 내세울 것 없는 인간 본문의 12절과 13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시편 19:12-13,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거룩하고 완전한 말씀의 거울 앞에 선 시인은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지 않고 깊은 탄식을 쏟아냅니다. 인간은 자신이 한 콩알만한 일은 크게 기억하면서도 들보같은 자기 허물은 깨닫지 못하는 눈먼 존재입니...

[10월 30일 묵상] 시편 18편 30-50절, 내 힘으로 한 일은 무엇입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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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 30-50절, 내 힘으로 한 일은 무엇입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새 찬송가 303장, 날 위하여 십자가의 서론: 나의 현실 어린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시장에서 장바구니를 함께 들고 돌아오는 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두 손으로 손잡이 한쪽을 꼭 쥐고 힘차게 걷습니다. 자기 딴에는 이 무거운 짐을 자기가 온 힘을 다해 들고 간다고 여깁니다. 집 문을 열자마자 엄마를 향해 자랑스럽게 외칩니다. “엄마, 내가 이 무거운 걸 다 들고 왔어요!” 하지만 진실은 무엇입니까? 아이의 아빠가 옆에서 허리를 굽힌 채, 손잡이 밑을 단단히 받쳐 들고 있었습니다. 팔이 아프도록 짐의 무게를 온전히 홀로 감당한 사람은 바로 아빠였습니다. 아이는 단지 아빠의 커다란 손 위에 자기 작은 손을 얹어놓았을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꼭 이와 닮아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오랜 세월 땀 흘려 봉사하고, 남들이 꺼리는 자리를 지키며 이런저런 열매를 맺을 때 우리 마음에 슬그머니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하게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마음 밑바닥에서는 “그래도 내가 이만큼 버텼지, 내가 이 새벽을 깨웠고, 내 물질과 청춘을 바쳐 교회를 세웠지”라는 은밀한 공로 의식과 섭섭함이 마음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 짐을 다 든 것처럼 착각하며 종교적인 보상 심리에 목말라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노년에 이른 다윗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쏟아놓은 감사의 고백입니다. 다윗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증언하는 감사의 참된 본질은 무엇입니까? 1. 영웅은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윗을 물맷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때려눕힌 타고난 영웅으로 기억하길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다윗은 결코 위인전에 나오는 영웅이 아닙니다. 사울의 칼날을 피해 광야의 먼지 구덩이를 굴러다녔고,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는 목숨을 구걸하려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

[10월 29일 묵상] 시편 18편 16-29절,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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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 16-29절,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는가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새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서론: 흙탕물에 빠진 손자와 할아버지 물가에 나간 대여섯 살배기 어린 손자가 발을 헛디뎌 깊은 웅덩이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흙탕물을 허우적대며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때 둑 위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네가 평소에 어른 말씀 잘 듣고 착하게 굴었으니 건져주마" 하고 조건을 따지겠습니까. 옷에 진흙이 튀든 신발이 벗겨지든 상관없이 곧장 물속으로 손을 뻗어 아이 멱살이라도 잡고 끌어당깁니다. 아이가 잘나서 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달라고 애타게 부르짖는 내 핏줄이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행실을 보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허우적대는 그 연약한 생명을 건져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뛰어듭니다. 우리는 평생 예수를 믿었다고 자부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엉뚱한 계산들을 합니다. 내가 젊어서부터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는데, 십일조도 바치고 평생 교회를 섬겼는데 왜 내 노년은 이리 고단한가? 왜 내 자식의 앞길은 저리 꽉 막혀 있는가? 우리 마음 속에 교묘한 거래의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래의식은 곧 내 열심과 공로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내겠다는 종교적 오만입니다. 하나님을 내 손으로 쥐고 흔들려는 이 깊은 교만의 민낯을, 오늘 새벽 주님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합니다. 본론 1. 인간의 열심은 허물어집니다. 다윗은 평생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해 유다 광야의 메마른 골짜기와 짐승의 굴속을 전전했습니다. 십수 년 동안 도망자로 살면서 다윗이 뼈저리게 깨달은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완력으로는 결코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숨을 곳이라고 찾아 들어간 동굴이 도리어 덫이 될 뻔했고, 믿었던 사람들은 밥 먹듯이 배신했습니다. 내 의지와 힘으로 버티려던 모든 자리가 무너져 내릴 때, 다윗은 두 손을 들고 고백합니다. 본문 1...

[10월 28일 묵상] 시편 18편 1-15절, 나의 힘이 되신 주님 품 안에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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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 1-15절, 나의 힘이 되신 주님 품 안에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서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아이가 낯선 방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방의 불이 꺼졌다면,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까요? 잠잠했던 아이의 행동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사방이 깜깜해지면 아이는 벽의 두께나 방의 크기 따위는 보지 못합니다. 그저 온몸이 굳은 채로 아빠를 부르며 웁니다. 아빠, 어디 있어? 무서워. 그때 어둠 속에서 아빠의 큼직하고 따뜻한 손이 아이의 작은 손을 덥석 감싸 쥡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울음이 뚝 그칩니다. 여전히 방은 어둡고 바깥바람은 창문을 덜컹거리는데, 아빠 손 하나로 아이의 세상은 순식간에 평화로워집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공동묘지가 있는 나지막한 산을 넘어 동상동 시장을 가곤 했었습니다. 대낮이지만 나무가 울창했기에 다소 어두웠고, 길 양쪽으로는 무덤들이 많았기에 시장 가는 것이 두렵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양손을 잡아 주시면 무덤도 어두운 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본론 오늘 우리 새벽의 마음자리가 꼭 그렇지 않습니까. 거친 세상살이 속에서 앞길은 캄캄하고, 몸과 마음이 지치고 두려운데, 우리는 그저 본능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으러 이 고요한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1. 사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부르짖으십시오. 다윗이 시편 18편을 노래하면서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그 배경을 성경은 사울 왕의 추격과 온갖 대적의 칼날에서 건짐을 받은 날이라고 증언합니다. 18장의 표제어와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편 18:1,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