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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묵상] 이사야 2장 1절-22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가짜 안전자산과 썩어질 신뢰 새벽 공기를 뚫고 주님의 제단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요즘 주변을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안정적인 노후와 미래를 위해 투자를 고민합니다. 부동산을 사고 주식을 분석하며,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안전자산을 마련하려고 애를 씁니다. 통장 잔고가 든든하고,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집 한 채가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반대로 경제가 흔들리거나 가진 것이 줄어들면 금세 마음이 불안해져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남 유다 백성들의 마음도 우리와 똑같았습니다. 그들의 땅에는 은과 금이 가득했고 보물이 끝이 없었습니다. 마구간에는 힘센 군마들이 넘쳐났고,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해 줄 최신식 병거들이 가득했습니다. 게다가 앞날을 잘 맞춘다는 이방의 용한 점술가들을 들여와 미래를 대비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모든 것이 완벽하고 안전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그것은 안전자산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독이었습니다. 풍요로움은 이내 하나님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지독한 교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손으로 깎아 만든 우상 앞에 절하며 스스로를 지키려 했습니다. 오늘 이 아침, 이사야 선지자는 겉만 번지르르한 우리 인생의 가짜 안전자산들의 실체를 아주 날카롭게 폭로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진짜 안전한 곳,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의 산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본론 1.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가 주의 길을 배우라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유다를 향해 소망의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마지막 날에 여호와의 성전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단순히 화려한 건물이 세워진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헛된 자랑을 제치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임재가 가장 높이 드러날...

[7월 17일 묵상] 이사야 1장 21절-31절, 우리를 의의 은금으로 빚으시는 주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새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서론: 겉포장 뒤에 숨겨진 녹슨 우리의 초심 여러분, 혹시 아끼던 소중한 물건이 시간이 흐르면서 빛을 잃고 녹슬어버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처음 손에 쥐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고 반짝반짝 빛이 났는데, 시간이 지나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잊고 살다 보니 어느새 거뭇거뭇하게 녹슬어버린 은그릇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주 거칠게 뒤흔드는 아픈 질문으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어쩌다가 그 신실하던 성읍이 창녀가 되었는가?"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한 엄격한 정죄나 도덕적인 훈계가 아니라, 배신에 대한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딸처럼 지극하게 사랑하고 아꼈던 예루살렘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겉포장만 번지르르하게 남겨둔 채 타락해 버린 모습을 보며 흘리시는 하나님의 피눈물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다짐하지 않습니까? "오늘 하루는 정말 주님만 사랑하며 신실하게 살아야지." 하지만 복잡한 세상 한복판으로 나아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당장의 이익을 쫓다 보면,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품었던 첫사랑과 초심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예배라는 아름다운 외형과 겉포장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삶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정의를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우리의 서글픈 영적 실상을 아주 투명하게 거울처럼 비추어줍니다. 본론 1. 은혜를 잃어버린 인생의 서글픈 실상 먼저 우리는 21~23절을 통해, 은혜의 본질을 잃어버린 우리 영혼의 가슴 아픈 현실을 대면해야 합니다. 본래 정의와 공의가 가득하던 신실한 성읍 예루살렘이 이제는 살인자들의 소굴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비참한 영적 추락을 우리의 일상 언어로 정확하게 지적하십니다. 22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이사야 1: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찬...

[7월 16일 묵상] 이사야 1장 1절-20절, 오라 우리가 변론하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새 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서론 여러분, 혹시라도 엄숙한 법정의 모습을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영국의 법정에 가면 서기가 큰 소리로 “여왕의 법정이 지금 개정됩니다!” 하고 외치며 모든 사람을 기립시킵니다. 우리 나라의 법정이나 미국 법정에서도 판사가 들어설 때 “모두 일어나십시오!” 하고 장내를 정돈하지요. 검은 법복을 입은 판사가 엄숙한 눈빛으로 피고인이나 검사, 변호사들을 훑어보고 자리에 앉을 때, 법정 안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거대한 우주적 법정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선지자는 하늘과 땅을 배심원으로 소환하며 우렁차게 외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 외침은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최고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법정을 여시고 재판을 시작하신다는 엄숙한 선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아침 세상이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일터와 가정에서 우리는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부단히 애를 씁니다. 하지만 우리 내면에는 감출 수 없는 영적 피로감과 마음의 무거운 짐이 가득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들도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연약함과 영적 게으름의 가면을 쓴 채, 껍데기만 남은 종교적 의무감으로 예배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 다들 그렇게 사니까 괜찮겠지 " 하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풀리지 않는 영적 번아웃과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바로 그런 우리를 향해 우주적 법정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씌워진 위선의 가면을 벗기시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십니다. 이 아침에 주님의 법정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상한 영혼이 진정으로 살아나는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7월 15일 묵상] 시편 15편 1절-5절,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던지는 가장 깊은 질문 유명한 두 신학자, 폴 틸리히와 칼 바르트 사이에 아주 흥미로운 토론이 있었습니다. 틸리히는 교회가 세상의 질문에 답해주는 ' 대답하는 신학 '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상이 아파하고 궁금해하는 문제에 교회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참 솔깃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칼 바르트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아닙니다. 세상은 스스로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조차 모릅니다. 질문과 해답 모두 하나님이 계시해주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5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직접 가르쳐주시는 가장 절박한 질문이자, 동시에 가장 완벽한 해답을 담은 생명의 처방전입니다. 여러분, 요즘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많이 흔들립니까? 끊임없이 널뛰는 부동산 소식에 내 집 마련과 주거의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직장 안에서 내 평가가 어떻게 될까 마음 졸이기도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예기치 못한 재정적 손실 앞에 서면, 우리의 마음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요동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 가장 안전한 곳,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의 자리 '를 갈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다윗은 바로 그 갈망을 담아 하나님께 인생의 가장 엄중한 질문을 던집니다. 시편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이 질문은 단순히 "누가 예배당 건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라는 뜻이 아닙니다. " 누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까? "라는 삶의 가장 깊은 질문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과 우리의 뼈아픈 한계 하나님은 2절부터 5절까지 아주 구체적...

[7월 14일 묵상] 시편 14편 1절-7절, 정말 하나님은 없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새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서론: 우리가 탄 세상이라는 배의 방향 여러분, 혹시 '바보들의 배'라는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키를 잡은 선장도 없고, 지도나 나침반도 쓸데없다며 바다에 던져버린 채, 그저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표류하는 배의 이야기입니다. 승객들은 소리칩니다. "우리에겐 목적지 따위는 필요 없어! 우리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게 진짜 자유야!" 참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모습이지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꼭 이 '바보들의 배'와 닮아 있지 않습니까?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을 보십시오. 가계부와 은행 앱을 열어볼 때 새어 나오는 깊은 한숨, 홀로 방에 누워 미래를 생각할 때 밀려오는 쓸쓸함과 불안함 속에서,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열심히 돈 벌어라. 네 삶은 네가 책임져야 해. 이 팍팍한 세상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니? 네 힘만 믿어라." 이것이 바로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들이 매달리는 일상의 목소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이런 세상의 흐름을 향해 아주 엄중한 진실을 던집니다. 1절을 보십시오.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머리가 나쁜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대학을 나오고,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재테크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면 성경은 그를 향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더 두려운 사실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일에는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일상 속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염려하고, 내 힘으로만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 역시 ' 무신론자 '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참 많...

[7월 13일 묵상] 시편 13편 1절-6절,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65장,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서론: 인생의 긴 밤을 지나는 이들에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새벽 공기를 맞으며 주님의 제단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삶의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무거운 짐들을 저마다 하나씩 짊어지고 말입니다. 몇 년 전, 평생을 따뜻한 믿음으로 살아가던 귀한 집사님이 암 투병을 하셨습니다. 가족들과 성도들이 밤낮으로 그 곁을 지키며 간호했고, 매일 밤 눈물로 치유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병세는 깊어져만 갔고, 집사님은 병상에서 쓸쓸히 물으셨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침묵하실까요? 저는 정말 괜찮은데, 저를 돌보느라 온 가족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실까요?" 오늘 우리는 이 집사님의 아픈 질문 속에서, 시편 13편을 기록한 다윗의 절규를 보게 됩니다. 본문 1절과 2절에서 다윗은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 어느 때까지니이까 "를 네 번이나 반복하여 외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나이까." 우리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고통의 크기보다, ' 끝이 보이지 않는다 '는 절망감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잊으신 것 같고, 주님의 얼굴을 내게서 돌리신 것 같다는 영적인 소외감입니다. 영혼의 어둠이 몰려올 때, 우리는 마음속에 끝없는 번민과 슬픔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오늘 이 새벽, 혹시 이러한 소리 없는 절망의 밤을 지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본론 1. 침묵의 한복판에서 드리는 기도 다윗은 이 기막힌 침묵 속에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는 낙심하여 기도의 자리를 떠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며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깊은 고독과 절망을 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정직...

[7월 12일 묵상] 시편 12편 1절-8절, 일곱 번 단련한 여호와의 말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서론 여러분, 어제 하루 동안 세상에서 어떤 말들을 들으셨나요? 스마트폰을 켜자마자 쏟아지는 자극적인 뉴스들과 SNS의 화려한 과장 광고들, 혹은 직장에서 누군가가 툭 던진 가시 돋친 한마디에 온종일 마음이 쓰이진 않으셨습니까? 단톡방에서 오가는 가벼운 뒷담화나 교묘하게 포장된 거짓말에 마음이 상해 밤잠을 설쳐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참 많은 말 속에 파묻혀 살아갑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그 수많은 말 중에서 정작 내 상한 영혼을 진심으로 채워주고 끝까지 책임져 줄 '진실한 말'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말의 전쟁은 에덴동산에서 일어났습니다. 간교한 뱀은 하와에게 다가와 아주 달콤하고 매끄러운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하나님이 진짜로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비틀어 의심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거짓은 역사가 아주 깊고, 그 파괴력 또한 어마어마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2편의 다윗도 바로 이러한 세상의 악한 말들이 주는 공격 속에서 깊은 고독과 아픔을 느끼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있습니다. 본론 1. 거짓과 아첨이 판치는 세상에서의 탄식 다윗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믿을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기가 막힌 현실을 보며 탄식을 쏟아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시편 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다윗이 보기에, 세상에 진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자취를 감춘 것만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절을 보면, 사람들이 이웃에게 빈말을 건네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은 상대방과 진심으로 소통하려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 상대를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고 다스리기 위한 '조종(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