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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묵상] 시편 18편 30-50절, 내 힘으로 한 일은 무엇입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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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 30-50절, 내 힘으로 한 일은 무엇입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새 찬송가 303장, 날 위하여 십자가의 서론: 나의 현실 어린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시장에서 장바구니를 함께 들고 돌아오는 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두 손으로 손잡이 한쪽을 꼭 쥐고 힘차게 걷습니다. 자기 딴에는 이 무거운 짐을 자기가 온 힘을 다해 들고 간다고 여깁니다. 집 문을 열자마자 엄마를 향해 자랑스럽게 외칩니다. “엄마, 내가 이 무거운 걸 다 들고 왔어요!” 하지만 진실은 무엇입니까? 아이의 아빠가 옆에서 허리를 굽힌 채, 손잡이 밑을 단단히 받쳐 들고 있었습니다. 팔이 아프도록 짐의 무게를 온전히 홀로 감당한 사람은 바로 아빠였습니다. 아이는 단지 아빠의 커다란 손 위에 자기 작은 손을 얹어놓았을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꼭 이와 닮아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오랜 세월 땀 흘려 봉사하고, 남들이 꺼리는 자리를 지키며 이런저런 열매를 맺을 때 우리 마음에 슬그머니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하게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마음 밑바닥에서는 “그래도 내가 이만큼 버텼지, 내가 이 새벽을 깨웠고, 내 물질과 청춘을 바쳐 교회를 세웠지”라는 은밀한 공로 의식과 섭섭함이 마음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 짐을 다 든 것처럼 착각하며 종교적인 보상 심리에 목말라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노년에 이른 다윗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쏟아놓은 감사의 고백입니다. 다윗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증언하는 감사의 참된 본질은 무엇입니까? 1. 영웅은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다윗을 물맷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때려눕힌 타고난 영웅으로 기억하길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다윗은 결코 위인전에 나오는 영웅이 아닙니다. 사울의 칼날을 피해 광야의 먼지 구덩이를 굴러다녔고,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는 목숨을 구걸하려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

[10월 29일 묵상] 시편 18편 16-29절,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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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 16-29절,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는가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새 찬송가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서론: 흙탕물에 빠진 손자와 할아버지 물가에 나간 대여섯 살배기 어린 손자가 발을 헛디뎌 깊은 웅덩이에 빠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흙탕물을 허우적대며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때 둑 위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네가 평소에 어른 말씀 잘 듣고 착하게 굴었으니 건져주마" 하고 조건을 따지겠습니까. 옷에 진흙이 튀든 신발이 벗겨지든 상관없이 곧장 물속으로 손을 뻗어 아이 멱살이라도 잡고 끌어당깁니다. 아이가 잘나서 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달라고 애타게 부르짖는 내 핏줄이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아이의 행실을 보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허우적대는 그 연약한 생명을 건져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뛰어듭니다. 우리는 평생 예수를 믿었다고 자부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엉뚱한 계산들을 합니다. 내가 젊어서부터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는데, 십일조도 바치고 평생 교회를 섬겼는데 왜 내 노년은 이리 고단한가? 왜 내 자식의 앞길은 저리 꽉 막혀 있는가? 우리 마음 속에 교묘한 거래의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거래의식은 곧 내 열심과 공로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내겠다는 종교적 오만입니다. 하나님을 내 손으로 쥐고 흔들려는 이 깊은 교만의 민낯을, 오늘 새벽 주님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합니다. 본론 1. 인간의 열심은 허물어집니다. 다윗은 평생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해 유다 광야의 메마른 골짜기와 짐승의 굴속을 전전했습니다. 십수 년 동안 도망자로 살면서 다윗이 뼈저리게 깨달은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완력으로는 결코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숨을 곳이라고 찾아 들어간 동굴이 도리어 덫이 될 뻔했고, 믿었던 사람들은 밥 먹듯이 배신했습니다. 내 의지와 힘으로 버티려던 모든 자리가 무너져 내릴 때, 다윗은 두 손을 들고 고백합니다. 본문 1...

[10월 28일 묵상] 시편 18편 1-15절, 나의 힘이 되신 주님 품 안에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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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 1-15절, 나의 힘이 되신 주님 품 안에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서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아이가 낯선 방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방의 불이 꺼졌다면,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까요? 잠잠했던 아이의 행동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사방이 깜깜해지면 아이는 벽의 두께나 방의 크기 따위는 보지 못합니다. 그저 온몸이 굳은 채로 아빠를 부르며 웁니다. 아빠, 어디 있어? 무서워. 그때 어둠 속에서 아빠의 큼직하고 따뜻한 손이 아이의 작은 손을 덥석 감싸 쥡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울음이 뚝 그칩니다. 여전히 방은 어둡고 바깥바람은 창문을 덜컹거리는데, 아빠 손 하나로 아이의 세상은 순식간에 평화로워집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공동묘지가 있는 나지막한 산을 넘어 동상동 시장을 가곤 했었습니다. 대낮이지만 나무가 울창했기에 다소 어두웠고, 길 양쪽으로는 무덤들이 많았기에 시장 가는 것이 두렵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양손을 잡아 주시면 무덤도 어두운 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본론 오늘 우리 새벽의 마음자리가 꼭 그렇지 않습니까. 거친 세상살이 속에서 앞길은 캄캄하고, 몸과 마음이 지치고 두려운데, 우리는 그저 본능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으러 이 고요한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1. 사망의 깊은 골짜기에서 부르짖으십시오. 다윗이 시편 18편을 노래하면서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그 배경을 성경은 사울 왕의 추격과 온갖 대적의 칼날에서 건짐을 받은 날이라고 증언합니다. 18장의 표제어와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편 18:1,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

[10월 27일 묵상] 시편 17편 1-15절, 하나님의 귀에 속삭인 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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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7편 1-15절, 하나님의 귀에 속삭인 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새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서론 시장 통에서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느라 온갖 소음이 가득해도, 멀리서 내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는 바로 알아듣는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음에 불과하지만, 자식을 둔 부모에게는 그 작은 부름 하나에도 귀가 번뜩 뜨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식과 부모 사이에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끈이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17편에도 다윗이 하나님을 부르는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아주 간절하게 부르짖습니다. 시편 17: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이 간구가 '쉐마(שְׁמָע)'라는 한 단어로 시작합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실 때 쓰셨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당연히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놀랍게도 연약한 인간 다윗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단순히 소리를 귓가로 흘려듣지 마시고, 내 아픈 속사정을 귀담아들으신 뒤 제발 구원해 달라는 애절한 부르짖음입니다. 어떻게 미천한 사람이 감히 크고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이토록 당당하게 귀를 기울여 달라고 조를 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사랑의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격식을 차리느라 머뭇거릴 틈이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고 있었기에, 숨이 막히는 억울함 속에서도 곧장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 매달렸던 것입니다. 본론 1. 주님은 우리를 눈...

[10월 26일 묵상] 시편 16편 1-11절, 비바람 속에서 왜 비닐우산을 고집하십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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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6편 1-11절, 비바람 속에서 왜 비닐우산을 고집하십니까 함께 하는 기도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서론: 짙은 안개와 우리의 불안함 얼마 전 늦은 밤, 인적 드문 국도를 홀로 운전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갑자기 시야를 집어삼킨 짙은 안개 때문에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시속 20킬로미터까지 줄여야 했습니다. 바로 앞 가드레일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문득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 안개가 도대체 언제 걷힐까, 길의 끝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런 막막함이 온 마음을 휘감았습니다. 우리가 통과하는 삶의 자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고비를 겨우 넘겼다 싶으면 또 다른 파도가 들이닥치고, 건강의 문제든 자녀의 아픔이든 생계의 위기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들립니다. 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 이 어두운 길을 더 헤매야 합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삶의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는 한순간에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찬송을 부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돈 생각과 병원 검사 결과,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에 얽매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온실 같은 삶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성경이 약속한 신앙이 아닙니다. 살아 숨 쉬는 한 시련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성도의 능력은 시련이 없는 인생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닥쳐오는 시련 앞에서 허둥대지 않고 담담하게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오늘 시편 16편을 기록한 다윗 역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절박한 위기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은 뜻밖에도 깊은 평온과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본론 1. 허물어지는 인간의 열심과 헛된 피난처 다윗이 처한 상황은 목숨이 위태로운 낭떠러지와 같았습니다.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극한의 고립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자리에서 자...

[10월 25일 묵상] 야고보서 5장 13-20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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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장 13-20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새 찬송가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서론 10여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몸이 무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도 잘 되었고, 뭐든지 하룻밤 자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보충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엔 아무렇지 않게 뛰어넘던 턱 하나도 이제는 발끝을 살피며 조심조심 디뎌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새벽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들도 내 몸을 챙기기보다는 가족들을 챙기느라 이곳 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줄로 압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 자신의 장인인 사울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여러 차례 죽을 뻔 하였지만, 그 때마다 다윗은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믿고 의지하였습니다. 바울 역시 선교 여행을 떠나고 체포되어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러 갈 때에도, 자신의 곁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여러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바울이 절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주께서 그를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지키시고 바울을 붙드신 우리 예수님께서, 오늘 이 새벽에 주님 앞에 나온 우리 모두를 붙드시고 지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지친 우리를 찾아 오신 주님 본문 13절과 14절은 삶의 모든 굽이마다 우리가 머물러야만 하는 자리를 짚어줍니다. 고난을 만나면 기도하고, 마음이 고요하고 기쁠 때는 찬송을 부르라 하십니다. 그리고 몸이 아플 때는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이끄십니다. 15절에는 이러한 약속이 적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여기서 '병든 자'라고 할 때 쓰인 헬라어 원어가 참 각별합니다. "병든 자"를 헬라어 성경에는 κάμνοντα (캄논타)라고 표현합니다. 원래 이...

[10월 24일 묵상] 야고보서 5장 7-12절, 길이 참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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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5장 7-12절, 길이 참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서론 새벽 찬 공기를 뚫고 예배당 문을 밀고 들어오실 때,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발걸음이 참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셨습니까. 평생 가족들 먹이고 입히느라 뼈마디가 다 닳았는데,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버린 지금도 가슴에 얹힌 짐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자식들 앞가림하는 일은 여전히 살얼음판 걷듯 조마조마하고, 평생 손때 묻혀 일군 삶의 터전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갑니다. 젊었을 적에는 내 힘으로 열심히 뛰고 발버둥 치면 세상도, 사람도 내 뜻대로 바꿀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밤잠 안 자며 땀 흘리면 금세 좋은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살아보니 어떻습니까. 인생이라는 게 참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슴에 품은 피눈물 나는 기도는 왜 이리 응답이 더딘지, 하나님은 왜 나를 이 답답하고 고단한 세월 한가운데 이렇게 오래 묶어두시는지 야속한 마음마저 듭니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수없이 묻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 왜 우리는 이 모진 세월 속에서 끝도 없이 참고 또 참아야 합니까. 오늘 야고보 사도는 억울하게 손해를 보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성도들을 향해 단호하게 입을 엽니다. 길이 참으라.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뜯어보면, 그저 이 악물고 분을 삭이며 속병을 앓으라는 세상의 체념이 아닙니다. 이른 새벽 무거운 마음을 안고 주님 앞에 엎드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칼바람 속에서 끝내 길이 참아야 하는 진짜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본론: 깨어지는 내 뜻과 붙드시는 하나님의 열심 1. 내 고집과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참을성은 내 계획과 힘으로 상황을 어떻게든 통제해보려는 오기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