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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묵상] 요한복음 12장 20절-33절, 십자가, 영광과 생명을 낳는 한 알의 밀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이 새벽을 깨우신 여러분의 삶에, 하늘로부터 내리는 신령한 평강과 소망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수차례 "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드러내기를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인 몇 명이 빌립을 찾아와 "예수님을 뵙고자 한다"라고 청했을 때, 주님은 마침내 선포하십니다. "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라고 말입니다. 이방인들이 주님을 찾는 이 사건은 단순히 호기심 많은 이방인들의 방문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문이 유대라는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으로 확장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인 ' 십자가 '를 향해 걸어가실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영적인 알람이었습니다. 본론 우리는 매일 아침 바쁜 출근길과 자녀 양육, 그리고 생계를 위한 고단한 채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내가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내 삶에 풍성한 결실이 맺히기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과 '영광'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는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 비밀은 바로 '죽음'을 통해 '생명'을 낳는 '한 알의 밀알'의 원리입니다. 1. 십자가의 역설: 죽어야 열매를 맺는 한 알의 밀알 예수님은 24절에서 장엄한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24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

[3월 12일 묵상] 요한복음 12장 12절-19절, 어떤 왕을 기다리십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 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41장, 호산나 호산나 새 찬송가 151장, 만 왕의 왕 내 주께서 서론: 내 욕망의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 새벽,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고독했던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갓생(God-生)' 을 살고 싶어 합니다. 내가 계획한 모든 일이 퍼즐 조각처럼 딱딱 맞고,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 만큼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군중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지금 흥분 상태입니다. 바로 전날, 죽어서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표적을 보았거나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분이라면 로마의 압제를 끝내고 우리에게 배불리 먹는 나라, 강한 나라를 만들어 주겠구나!"라는 확신이 그들 안에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만의 '갓생'을 꿈꾸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를 외칩니다. "주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이 외침은 사실 "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내 억울한 상황에서, 내 질병에서 나를 지금 당장 꺼내주소서!"라는 외침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화려한 환호성 사이로 너무나 뜻밖의 모습으로 등장하십니다. 위풍당당한 군마가 아니라, 작고 초라한 '어린 나귀' 를 타고 말입니다. 본론 오늘 이 새벽,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힘 있는 '정복자 예수'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내 죄를 대신해 죽으러 오신 '어린 나귀를 탄 예수'를 기다리는가?"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1. 군중들의 열광과 '정치적 메시아'라는 오해 명절을 맞아 예루살...

[3월 11일 묵상] 요한복음 12장 1절-11절, 십자가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헌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211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새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서론: 이익만을 찾는 인생, 옥합을 깨뜨리는 신앙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엄숙한 걸음의 서곡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살면서 ‘가성비’ 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적은 비용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척도가 된 시대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어느덧 우리의 영성 안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이 정도 기도하면 응답하시겠지?", "이 정도 봉사하면 복 주시겠지?"라는 식의 ‘계산기 신앙’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계산기 신앙의 정점에 서 있는 한 사람과, 그 계산기를 완전히 내버린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본론: 세 가지 관점으로 본 헌신과 갈등 베다니의 한 잔치 자리, 그곳에는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가 있었고, 분주히 섬기는 마르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잔치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꾼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마리아의 돌발적인 행동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마리아가 깨뜨린 옥합에서 흐르는 향기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 순전한 예배 '의 본질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1. 계산을 멈출 때 시작되는 진정한 예배 먼저, 우리 함께 3절을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그 가치입니다. 순전한 나드 한 근은 당시 노동자의 일 년 치 임금인 '300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수천만 원에 달하는 ...

[3월 10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47절-57절, 인간의 계략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섭리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 산 위에 서론: 중동의 포성과 하나님의 주권 최근 다시금 격화된 중동 지역의 전쟁 소식은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수천 년간 이어진 갈등과 보복의 고리는 끊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계산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꼬아놓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인류의 운명이 소수 권력자의 결단이나 무기의 화력에 달린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존을 위해, 혹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최악의 수를 두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전 세계를 떠돌고 있습니다. 본론: 인간의 계산 위에 선 하나님의 섭리 오늘 본문 속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똑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부활했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기적이 아닌 '정치적 위기'였습니다. 로마의 눈치를 보며 쌓아온 안정이 무너질까 두려워진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합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나 진리에 대한 탐구는 없었습니다. 오직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47절) 라는 자구책만 가득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중동 지역의 포성이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처럼, 본문의 공의회 역시 인간적인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혼란스러운 인간의 모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오늘 새벽 붙들어야 할 진리는 명확합니다. 세상이 요동치고 인간의 악한 혀가 날을 세울지라도, 역사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 이십니다. 1.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간의 어리석은 선택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보여 주신 표적을 부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표적이 가리키는 '메시아'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땅'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48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3월 9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38절-46절, 나흘이나 지나 냄새가 나도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365장,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서론: 마른 뼈의 골짜기에서 서울의 아파트 숲까지 구약의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한 골짜기에 이릅니다. 그곳에는 죽은 지 오래되어 바싹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의 대답은 “주께서 아시나이다”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절망, 생명의 기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죽음과 절망의 상태가 바로 에스겔이 마주한 현실이었습니다. 이 '마른 뼈의 골짜기'는 2026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과 참 닮아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침체, 고독사로 대변되는 관계의 단절,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번아웃되어 영혼이 바싹 말라버린 직장인들의 뒷모습까지. 우리는 겉으로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의 무덤'을 하나씩 품고 삽니다. "이제는 늦었어", "우리 집 문제는 해결 안 돼", "내 신앙은 여기까지야"라는 포기라는 수의를 입은 채 말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마르다 역시 "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라며 현실적인 장벽 앞에 무너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 무덤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십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생기가 불어와 군대를 이루었듯, 오늘 이 새벽 우리 삶의 팍팍한 일상과 막막한 미래라는 무덤 속에 주님의 생기가 불어오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끝'이라고 말하는 그 지점이 바로 주님이 '영광'을 시작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1. 불신앙의 돌을 옮겨 놓으십시오. 예수님은 무덤 앞에 이르러 " 돌을 옮겨 놓으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마르다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며 ...

[3월 8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28절-37절, 주님의 눈물, 그 속에 담긴 사랑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서론: 시대의 어둠 속에서 찾는 하나님의 얼굴 2026년 현재, 우리가 마주한 국제 정세는 여전히 안개 속을 걷는 듯 불안정합니다. 다시 시작된 중동의 멈추지 않는 포성과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 그리고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평화'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벌써, 주유소마다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절망은 마치 구약성경의 욥이 모든 소유와 자녀를 한순간에 잃고 재 가운데 앉아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라며 울부짖던 그 극한의 고통과 어쩌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욥의 고난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깨어진 세상 속에서 신음하는 인류의 보편적 절규를 대변합니다.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고난과 고통으로 절망하던 욥이나, 불확실함 속에서 혼란스럽고 삶의 어려워지는 오늘 우리는 모두 어두움 속을 헤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본론: 슬픔의 현장에 새겨진 하나님의 눈물 이른 새벽, 어제 마셨던 쓴 커피 한 잔의 기운으로 겨우 몸을 깨우면서, 여전히 피곤함을 느낍니다. 매달 돌아오는 대출 이자나 도통 마음을 열지 않는 사춘기 자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욥처럼,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리아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탄식을 내뱉곤 합니다. "주님, 제가 이토록 힘들 때 도대체 어디 계셨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그 ' 하나님의 부재 '를 경험하며 눈물 흘리는 이들을 향해, 우리 주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위로의 복음의 현장입니다.   1. "만약에"라는 후회를 넘어 찾아오시는 주님 나사로의 죽음에 슬퍼하던 마리아가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 그 발 앞에 엎드려 말합니다. 32절입니다. 요한복음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3월 7일 묵상] 요한복음 11장 17절-27절, 죽음을 깨우는 선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새 찬송가 164장, 예수 부활 했으니 서론: 현대인이 외면한 죽음, 그 차가운 진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 죽음 '은 철저히 격리되고 소외된 단어입니다. 과거에는 집 마당에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마지막을 맞이했다면, 이제 죽음은 병원의 하얀 벽과 기계 소리 가득한 중환자실, 그리고 차가운 장례식장 지하실로 숨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통계'처럼 취급하거나, 의학의 발달로 언제든 미룰 수 있는 '정복 대상'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우리 삶에서 보이지 않게 될수록,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 기괴한 방식으로 우리를 짓누릅니다. 누군가는 죽음을 '완전한 소멸'로 보며 허무주의에 빠지고, 누군가는 죽음 이후의 불확실성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쾌락에만 매몰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마주하는 ' 슬픔과 고통 '의 시간 중에 우리는 가장 깊은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현대인의 마음속에 거대한 상처와 구멍을 내기도 합니다. 본론: 절망의 자리에 임한 생명의 주 오늘 본문의 마르다 역시 이 현대적인 절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나흘, 유대인들의 관점으로 보면 영혼마저 몸을 완전히 떠나버린 '절대적 끝'의 시점입니다. 현대 의학이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장례 절차가 끝난 것과 다름없는 이 절망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미 늦었다"는 체념과 마주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이미 ' 마감 기한 '이 지나버려 악취가 나기 시작한 꿈이나 관계, 혹은 영적인 생명력이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주님은 그 차가운 무덤가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1. "만약에"라는 과거의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