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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묵상] 요한복음 9장 13절-23절, 안식일의 주인인가, 전통의 노예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새 찬송가 359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서론: ‘원래 그래왔다’는 전통의 감옥 우리 사회에는 ‘전통’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대물림되는 부정적인 관습들이 참 많습니다. 대학가의 가혹한 신고식, 직장의 경직된 서열 문화, 혹은 "우리 때는 다 그랬어"라며 불합리함을 정당화하는 태도들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전통의 특징은 ‘사람’보다 ‘형식’을, ‘생명’보다 ‘질서’를 우선한다는 점입니다. "원래 그래왔다"는 한마디는 모든 합리적인 의심과 변화의 노력을 잠재워 버립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개개인의 고통은 무시되고, 살아있는 혁신은 숨을 죽입니다. 본론 이러한 현상은 신앙의 세계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전통’이라는 견고한 매뉴얼에 갇혀 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눈을 떴다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경이로운 생명의 사건이 눈앞에 펼쳐졌음에도 그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에 진흙을 이겼으니 그는 죄인이다"라며 정죄의 칼날을 휘두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 인간의 근본적인 연약함 '인 영적 맹목과 고집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나만의 ‘ 영적 매뉴얼 ’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서 그 틀 밖에서 일하실 때 오히려 불편해하곤 합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도 "내 신앙 경력으로는 이게 맞아", "우리 교회 방식은 이래야 해"라는 경직된 사고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새벽, 우리를 가두고 있는 부정적인 전통의 담벼락을 허물고, 참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법(Rule)에 갇혀 생명(Life)을 잃어버린 종교적 소경 바리새인들은 눈을 뜬 사람을 데려다가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기적의 신비가 아니라 '안식일 규정 위반 ...

[3월 1일 묵상] 요한복음 9장 1절-12절, 불행의 원인을 묻는 인생에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하는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서론: '왜'라는 질문에 갇힌 현대인의 초상 현대인의 가장 큰 고민은 단연 ‘ 불확실성 ’과 그로 인한 ‘ 인과관계에 대한 집착 ’입니다. 우리는 공정한 세상에 산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고난이 닥치면 본능적으로 그 원인을 과거에서 찾으려 애를 씁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병에 걸렸을까?", "우리 아이가 방황하는 건 내가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혹은 "직장에서의 이 갑작스러운 퇴사가 내 역량 부족 때문일까?"라는 자책 섞인 질문들이 우리를 밤잠 설치게 합니다. 특히 재테크 실패나 자녀 교육 문제, 혹은 갑작스러운 건강 검진 결과 앞에서 우리는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며 스스로를 정죄하거나 타인을 원망하는 감정의 굴레에 빠지곤 합니다. 본론: 어둠을 이기고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질문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 그들은 "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라고 묻습니다. 고통을 오직 '심판'이나 '인과응보'의 틀로만 해석하려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의 이 낡은 질문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으십니다. 1. 과거의 '원인'이 아닌 미래의 '목적'을 선포하십시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3절입니다. 요한복음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주님은 지금 제자들의 시선을 '과거의 죄'에서 '미래의 영광'으로 옮겨놓고 계십니다. 세상은 불행을 보면 과거를 캐묻습니다. 원인을 규명해야...

[2월 28일 묵상] 요한복음 8장 42절-59절, 진리의 음성을 듣는 자가 누구인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새 찬송가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서론: 떨기나무의 음성이 오늘의 새벽으로 약 3,500년 전, 미디안 광야의 한 모퉁이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80세의 노인 모세가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 섰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 라고 답하셨습니다. 이 선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상징하는 선포였습니다. 하지만 그 거룩한 음성을 직접 들었던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음성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비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라는 말을 듣거나 혹은 타인들에게 그러한 말을 하곤 합니다. 특히 부부 사이나 부모 자녀 관계에서 같은 한국말을 쓰는데도 도무지 소통이 안 되어 답답함에 가슴을 친 적이 있으실 겁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바로 곁에서 말씀하셔도 그것은 소음이나 비난으로 들릴 뿐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음성을 제대로 '청종'하고 있는지, 아니면 유대인들처럼 내 생각의 틀에 갇혀 진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본론: 진리의 음성을 듣는 자의 정체성 1. 영적 소속은 '말씀을 듣는 귀'로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영적 혈통을 날카롭게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마귀의 특징은 진리에 서지 못하고 자기 것을 ...

[2월 27일 묵상] 요한복음 8장 31절-41절, 진리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자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서론: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자유'가 강조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며, 내 생각과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된 세상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대인들의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 무언가에 강하게 묶여 있습니다. 새벽의 정적을 깨고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 어제 하루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스마트폰의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시간을 빼앗기는 '도파민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 끝없이 치솟는 물가와 대출 이자 앞에서 '경제적 압박의 노예'가 되어 밤잠을 설칩니다. 뿐만 아닙니다. SNS 속 타인의 화려한 일상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에 시달리거나, 직장 상사의 눈치와 주변의 평판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 진정한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갑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외치지만, 정작 내 마음의 평안 하나 내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 아닙니까? 본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화려한 혈통 뒤에 숨겨진 차가운 진실을 들추어내십니다. 그들이 사실은 '죄의 종'이며, 그 죄의 사슬이 그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를 옥죄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사슬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자유하고 싶다"는 우리의 막연한 갈망이 어떻게 "진리 안에서의 참된 자유"로 바뀔 수 있는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1. 진정한 제자는 말씀의...

[2월 26일 묵상] 요한복음 8장 21절-30절,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새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서론: 장대 위의 놋뱀, 그리고 우리의 시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걷다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을 때, 그들 진영에 불뱀이 나타났습니다. 치명적인 독에 물려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 죽어갈 때, 하나님은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장대 위에 '놋뱀'을 높이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리라." 이 구약의 사건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들려 올려질 인자'에 대해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아래의 문제' 혹은 '세상의 문제'에 함몰되어 살아갑니다. 어제 마친 업무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채,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만원 지하철과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오늘 하루를 걱정하는 우리 일상의 고단함은, 때로 우리 시선을 하늘이 아닌 발바닥 밑의 흙먼지에만 고정시키게 만듭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잊은 채 당장의 갈증과 결핍에만 매달리는 것, 이것이 바로 본문이 지적하는 인간의 비극적 실존인 '아래에서 난 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는 독에 물려 죽어가는 자처럼 땅만 보던 시선을 들어, 우리를 위해 높이 들리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론 1. 소속의 경계 — 당신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자신의 근본적인 차이를 '공간적 기원'으로 설명하십니다. 23절입니다. 요한복음 8: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래'와 '이 세상'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중심성에 갇힌 죄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땅에서 난 자는 땅의 언어만 이...

[2월 25일 묵상] 요한복음 7장 53절-8장 20절, 정죄의 돌을 내려놓고 은혜의 빛으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서론: 가면 뒤에 숨은 현대인의 불안과 정죄의 돌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 완벽함 '이라는 거대한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SNS의 화려한 사진 뒤에는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초라한 자아와 도덕적 문제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혹시라도 내 실수나 과거가 탄로 날까 봐 늘 불안해하며, 그 불안을 감추기 위해 역설적으로 타인의 허물을 찾아내 '디지털 돌팔매질'을 퍼붓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 잠시나마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난의 돌을 던지고 돌아선 뒤 우리 마음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공허하고, 언젠가 그 돌이 나를 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우리 인생의 '어두운 구석'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 그리고 그녀를 죽여서라도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려 했던 군중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본론: 정죄를 넘어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 오늘 새벽,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어제 하루, 당신의 마음에는 정죄의 돌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용서가 있었습니까?"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으로 나아갑시다. 1. 죽음의 정죄를 멈추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고 와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율법대로 돌로 칠 것인지, 아니면 사랑을 말하며 율법을 어길 것인지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시고는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종교 지도자들은 여인의 죄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인을 '도구'로 삼아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

[2월 24일 묵상] 요한복음 7장 37절-52절, 나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새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서론: 광야의 갈증에서 실로암의 외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끝없는 모래바람을 뚫고 걷던 광야 시절을 떠올려 보십시오. 출애굽기 17장, 르비딤에 도착한 백성들은 타는 듯한 갈증 앞에 모세를 원망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생존을 위협하는 갈증은 인간을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시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 마른 바위가 터져 시원한 강물이 쏟아졌을 때, 이스라엘은 비로소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놀라운 구원의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축제의 절정은 제사장이 금 항아리에 실로암 못의 물을 길어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이 부어질 때마다 광야의 기적을 추억하며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 화려한 의식 속에서도 사람들의 표정 뒤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가뭄'이 서려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과를 내고, 좋은 차를 타고, 화려한 조명 아래 있으면서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 도대체 내 마음은 왜 이렇게 텅 비어 있을까? "라는 공허함에 시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본론: 생수의 근원과 성령의 역사 이 '공허함'과 '결핍'이야말로 현대인이 겪는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아무리 SNS에 행복한 사진을 올려도 내면의 사막화는 막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초막절 축제의 마지막 날, 물 붓는 의식이 끝난 고요한 성전 마당에 예수님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집니다.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오늘 우리는 이 외침 속에서 우리 영혼을 적실 진짜 생수를 만나야 합니다. 1. 생수는 종교적 형식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