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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묵상] 사사기 21장 13-25절, 왕이 없던 자리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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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1장 13-25절, 왕이 없던 자리 사사기 21장 13-25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새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서론: 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우리가 읽은 말씀은 마음 편히 읽기 어려운 본문입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남자 육백 명이 살아남았고, 이스라엘 회중은 그들에게 평화를 선포합니다. 이제 모든 일이 수습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 평화의 뒤편에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여인들의 눈물이 있습니다. 야베스 길르앗에서 끌려온 여자 사백 명이 베냐민 사람들의 아내가 됩니다. 그래도 이백 명이 부족하자, 이번에는 실로의 딸들을 붙잡아 오게 합니다. 한 가지 죄를 심판하려고 시작한 일이 또 다른 죄들을 낳았습니다. 그 죄를 수습하려다가 더 약한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문제는 해결된 듯 보이지만, 상처는 더 깊어졌습니다. 성경은 이 광경을 가리키며 “그래도 베냐민 지파를 살렸으니 잘한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묻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가? 오늘 본문은 옛날 이스라엘이 실패자들임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좋은 뜻으로 시작했다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옳은 말을 붙들다가 사랑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이 새벽,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우리 마음의 왕좌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본론: 자기 소견을 내려놓고 참된 왕을 바라보십시오 1. 회개해야 또 다른 죄를 짓지 않습니다. 먼저, 13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21:13,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이스라엘은 림몬 바위로 피신한 베냐민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포했습니다. 전쟁을 끝내고 한 지파를 다시 품으려 한 것...

[10월 13일 묵상] 사사기 21장 1-12절, 그들은 무의미한 눈물을 흘렸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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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1장 1-12절, 그들은 무의미한 눈물을 흘렸다 사사기 21장 1-12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1장 1-12절, 내 손으로 수습하지 못할 때 임하는 은혜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새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서론: 울면서도 하나님을 탓하는 우리의 모순 새벽 제단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동족 베냐민 지파와의 내전이 끝났습니다. 기브아의 추악한 죄악을 징벌하려던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베냐민의 남자 육백 명만 남고 성읍과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모조리 학살당해 한 지파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살육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온 백성이 벧엘에 모여 저녁까지 대성통곡을 하며 하나님 앞에 웁니다. 이튿날에는 일찍 일어나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겉보기엔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는 예배 같지만, 그들의 말은 여전히 자신들은 무죄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혈기를 못 이겨 형제 지파인 베냐민을 도륙해 놓고는, 왜 이런 일이 생겼냐며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울기는 우는데 진정한 자기반성이 없습니다. 잘못은 자기가 저지르고 책임은 하나님께 떠넘기는 이 모습이, 새벽마다 부르짖으면서도 내 고집과 자존심을 꺾지 않는 오늘 우리의 모습과 겹쳐 보이지는 않습니까? 잘 되면 내 탓이고, 안 되면 하나님 탓입니까? 본론 1. 하나님을 원망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벧엘에서 통곡하며 내뱉은 말을 보십시오. 3절은 그들의 비뚤어진 속내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21: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여러분, 이 질문의 주어를 보십시오. 마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를 없...

[10월 12일 묵상] 사사기 20장 29-48절, 명령 따라 순종하는 복병이 되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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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29-48절, 명령 따라 순종의 복병으로 엎드리십시오 사사기 20장 29-48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29-48절, 상처를 덮는 승리의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기브아의 높은 언덕과 무너진 우리의 계산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산전수전 겪으며 나름대로 삶의 요령도 생겼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눈도 갖추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살아가면 갈수록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아진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식 문제는 왜 마음대로 해결되지 않습니까? 부부 관계는 왜 여전히 삐걱거립니까? 내가 맞고 상대가 틀렸는데 왜 내 영혼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맙니까? 제가 이스라엘에 살던 시절, 집 근처 ‘베이트 하니나’라는 아랍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텔-엘-풀’ 언덕을 자주 찾았습니다. 꼭대기에는 1967년 3차 중동전쟁 직전 요르단 후세인 왕의 미완성 여름 별장 골조가 흉물스럽게 서 있는데, 그곳이 성경의 기브아입니다. 사방이 내려다보여 아래에서 기어오르는 군사를 공격하기 딱 좋은 요새입니다. 베냐민 지파에게는 이 지형적 장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총회군은 40만 대군이었고 명분도 옳았습니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1차와 2차 전투에서 도합 4만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지형의 험준함도 잊은 채, 내 힘만 믿고 고집부린 이스라엘이 완전히 패배했던 현장이었습니다. 본론: 명령에 순종했을 때 승리한 이스라엘 1. 허물어지는 인간의 열심 이스라엘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쪽은 베냐민인데, 공의를 세우겠다며 칼을 뺀 자신들이 왜 참패해야 하는지 원망이 치밀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비슷합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땀 흘려 봉사했는데 왜 내 뜻대로 안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신 것은 이스라엘의 분노 뒤에 숨은 교만이었습니다...

[10월 11일 묵상] 사사기 20장 8-28절, 결론을 내리고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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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8-28절, 결론을 내리고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사기 20장 8-28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8-28절, 나의 힘을 포기하는 엎드림의 시간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서론: 응답을 구하지만 묻지 않는 우리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내용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저도 새벽에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한 기도의 제목들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에 나오면서, 하나님께 묻기보다는 이미 내 생각이 꽉 차 있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의 자리에 앉자마자 막힘없이 내가 정한 청구서부터 하나님께 내밀지는 않습니까. 자녀의 혼사나 취직, 은퇴 후의 거처, 마음에 차지 않는 교우와의 갈등에서 내가 취할 행동까지 이미 결론을 다 내놓은 채 앉아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중에 답을 미리 정해놓고 묻는다는 '답정너'라는 속어가 있지요. 낯부끄럽지만, 매일 새벽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와서 보이는 모습이 '답정너'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구한다면서도 내 마음에 드는 응답만 하나님께 조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삶의 운전대는 넘겨주지 않는 고집,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사십만 군대가 꼭 그랬습니다. 형제인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땅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스라엘 총회는 거룩함을 지키겠다는 의분으로 미스바에 모여, 제비뽑기로 전투병을 추리고 보급 부대까지 조직했습니다. 군사와 보급 계획을 제 머리로 다 짜놓고서야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미 결정해 놓은 전쟁에 대한 요식 행위였습니다. 본론: 깨어지는 자기 의와 십자가의 온전한 굴복 1. 계산된 열심과 패배한 40만 대군 그들이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드린 질문의 핵심을 보...

[10월 10일 묵상] 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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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사사기 20장 1-7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1-7절, 분노가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서론: 분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부의 사회학자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분노 시대"로 정의를 내립니다. 도로 위에서 운전자들은 분노 속에서 운전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정치 속에도 분노가 가득 차 있고, 가정에도 분노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나와 생각이 다르면 거부하고 분노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분노하고 다투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고, 나 자신도 분노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의 해명에는 관심이 없고 듣지도 않으며, 내 생각과 내 감정만을 중시하면서 분노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이스라엘 총회도 자신들의 감정에만 충실하였습니다. 사건의 전후를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레위인의 첩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온 이스라엘 지파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일어났습니다. 미스바에 집결한 군사만 무려 사십만 명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여호와 앞에” 모였다고 증언합니다. 겉모습만 보면 불의를 참지 못해 달려 나온 거룩한 영적 각성을 한 것 같습니다. 기브아의 패륜을 심판하겠다며 피를 흘릴 기세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총회 뒤에 숨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십만 명이 모여 피 끓는 의분을 쏟아내면서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는 사람이 사십 만명 중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엎드려 묻는 간절한 기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본론: 내 소견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1. 자기 의(義)에 취해 칼을 빼어 들다. 총회 한복판으로 걸...

[10월 9일 묵상] 사사기 19장 22-30절, 소돔과 고모라와 무엇이 다릅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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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22-30절, 소돔과 고모라와 무엇이 다릅니까 사사기 19장 20-3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22-30절, 나의 참된 왕은 누구입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새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서론 오늘 본문을 설교해야 할 때에는, 항상 저의 속이 답답했습니다. 솔직히 본문은 설교하지 않고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한가운데 왜 이런 역겨운 범죄 실화가 빠짐없이 박혀 있는지, 참 고민이 됩니다. 본문 속에는 나그네를 맞이한 집을 에워싸고 문짝을 두들겨 패는 불량배들, 그리고 방 안에 틀어박혀 제 목숨 하나 건지겠다고 벌벌 떠는 남자들이 나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 아닙니까? 네,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롯의 집 문지방을 뜯어내려던 소돔의 불량배들과 기브아 사람들이 소름 돋도록 똑같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족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먹여 살리신 언약 백성들이 살던 성읍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달아놓고, 뚜껑을 열어보니 소돔보다 나을 게 전혀 없었습니다. 오늘 이 참담한 민낯을 우리가 직접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하나님은 성경 속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을 섬겼다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소돔과 고모라와 무엇이 다르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 앞에서 오늘 우리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본론 1. 악한 사람들, 비겁한 사람들 문밖에서 폭도들이 날뛸 때, 집주인 노인은 기가 막힌 제안을 던집니다. 24절입니다. 사사기 19: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을 대신 끌어낼 테니 너희 눈...

[10월 8일 묵상] 사사기 19장 11-21절,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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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21절,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사사기 19장 11-2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11-21절, 신앙의 문은 열려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서론 여러분, 길 한복판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도 못 본 척 지나친 적이 있습니까? 눈은 분명히 마주쳤는데 마음속에서 얼른 계산부터 합니다. 괜히 나섰다가 일이 커지면 어쩌지. 누군가 돕겠지. 저도 이런 본문 앞에서는 쉽게 남을 꾸짖지 못하겠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미루고, 형편이 뻔히 보이는데도 모른 척한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말씀을 펴 놓고도 마음 한쪽이 부끄러워집니다. 기브아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습니다. 내 얼굴도 그들 사이에 보입니다. 레위인 일행은 여부스를 지나 기브아로 갑니다. 여부스는 이방인의 성읍이고,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이 낫겠지. 그런 기대였을 겁니다. 그런데 해가 지도록 아무도 문을 열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여행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짚도 있고 양식도 있고 포도주도 있었습니다. 잠자리 하나면 됐습니다. 그 작은 자리마저 내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브아의 죄는 요란한 함성보다 먼저, 조용한 외면에서 시작됐습니다. 본론 1. 왕이 사라진 마음은 이웃을 외면합니다 사사기는 이 시대를 한 문장으로 진단합니다. 제가 사사기 21장 25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다는 말은 왕궁이 비었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말씀보다 내 형편이 앞섰고, 이웃의 고통보다 내 평안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그러자 사람을 보면서도 짐으로만 여기게 됐습니다. 기브아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을 겁니다. 하루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