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10월 27일 묵상] 시편 17편 1-15절, 하나님의 귀에 속삭인 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시편 17편 1-15절, 하나님의 귀에 속삭인 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새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서론 시장 통에서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느라 온갖 소음이 가득해도, 멀리서 내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는 바로 알아듣는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음에 불과하지만, 자식을 둔 부모에게는 그 작은 부름 하나에도 귀가 번뜩 뜨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식과 부모 사이에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끈이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17편에도 다윗이 하나님을 부르는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아주 간절하게 부르짖습니다. 시편 17: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이 간구가 '쉐마(שְׁמָע)'라는 한 단어로 시작합니다.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을 향해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실 때 쓰셨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당연히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놀랍게도 연약한 인간 다윗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제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단순히 소리를 귓가로 흘려듣지 마시고, 내 아픈 속사정을 귀담아들으신 뒤 제발 구원해 달라는 애절한 부르짖음입니다. 어떻게 미천한 사람이 감히 크고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이토록 당당하게 귀를 기울여 달라고 조를 수 있겠습니까? 그 비결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사랑의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격식을 차리느라 머뭇거릴 틈이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고 있었기에, 숨이 막히는 억울함 속에서도 곧장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 매달렸던 것입니다. 본론 1. 주님은 우리를 눈...

[10월 26일 묵상] 시편 16편 1-11절, 비바람 속에서 왜 비닐우산을 고집하십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시편 16편 1-11절, 비바람 속에서 왜 비닐우산을 고집하십니까 함께 하는 기도 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서론: 짙은 안개와 우리의 불안함 얼마 전 늦은 밤, 인적 드문 국도를 홀로 운전하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갑자기 시야를 집어삼킨 짙은 안개 때문에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시속 20킬로미터까지 줄여야 했습니다. 바로 앞 가드레일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문득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 안개가 도대체 언제 걷힐까, 길의 끝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런 막막함이 온 마음을 휘감았습니다. 우리가 통과하는 삶의 자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한 고비를 겨우 넘겼다 싶으면 또 다른 파도가 들이닥치고, 건강의 문제든 자녀의 아픔이든 생계의 위기든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들립니다. 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 이 어두운 길을 더 헤매야 합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삶의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는 한순간에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찬송을 부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돈 생각과 병원 검사 결과,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에 얽매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온실 같은 삶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성경이 약속한 신앙이 아닙니다. 살아 숨 쉬는 한 시련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성도의 능력은 시련이 없는 인생을 만드는 데 있지 않고, 닥쳐오는 시련 앞에서 허둥대지 않고 담담하게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오늘 시편 16편을 기록한 다윗 역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절박한 위기 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은 뜻밖에도 깊은 평온과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본론 1. 허물어지는 인간의 열심과 헛된 피난처 다윗이 처한 상황은 목숨이 위태로운 낭떠러지와 같았습니다.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극한의 고립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자리에서 자...

[10월 25일 묵상] 야고보서 5장 13-20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야고보서 5장 13-20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새 찬송가 471장,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서론 10여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몸이 무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도 잘 되었고, 뭐든지 하룻밤 자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보충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엔 아무렇지 않게 뛰어넘던 턱 하나도 이제는 발끝을 살피며 조심조심 디뎌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새벽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들도 내 몸을 챙기기보다는 가족들을 챙기느라 이곳 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줄로 압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 자신의 장인인 사울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여러 차례 죽을 뻔 하였지만, 그 때마다 다윗은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믿고 의지하였습니다. 바울 역시 선교 여행을 떠나고 체포되어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러 갈 때에도, 자신의 곁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여러 위기와 고난 속에서도 바울이 절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주께서 그를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지키시고 바울을 붙드신 우리 예수님께서, 오늘 이 새벽에 주님 앞에 나온 우리 모두를 붙드시고 지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지친 우리를 찾아 오신 주님 본문 13절과 14절은 삶의 모든 굽이마다 우리가 머물러야만 하는 자리를 짚어줍니다. 고난을 만나면 기도하고, 마음이 고요하고 기쁠 때는 찬송을 부르라 하십니다. 그리고 몸이 아플 때는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이끄십니다. 15절에는 이러한 약속이 적혀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여기서 '병든 자'라고 할 때 쓰인 헬라어 원어가 참 각별합니다. "병든 자"를 헬라어 성경에는 κάμνοντα (캄논타)라고 표현합니다. 원래 이...

[10월 24일 묵상] 야고보서 5장 7-12절, 길이 참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야고보서 5장 7-12절, 길이 참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69장,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서론 새벽 찬 공기를 뚫고 예배당 문을 밀고 들어오실 때,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발걸음이 참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셨습니까. 평생 가족들 먹이고 입히느라 뼈마디가 다 닳았는데,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버린 지금도 가슴에 얹힌 짐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자식들 앞가림하는 일은 여전히 살얼음판 걷듯 조마조마하고, 평생 손때 묻혀 일군 삶의 터전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갑니다. 젊었을 적에는 내 힘으로 열심히 뛰고 발버둥 치면 세상도, 사람도 내 뜻대로 바꿀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밤잠 안 자며 땀 흘리면 금세 좋은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살아보니 어떻습니까. 인생이라는 게 참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슴에 품은 피눈물 나는 기도는 왜 이리 응답이 더딘지, 하나님은 왜 나를 이 답답하고 고단한 세월 한가운데 이렇게 오래 묶어두시는지 야속한 마음마저 듭니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속으로 수없이 묻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 왜 우리는 이 모진 세월 속에서 끝도 없이 참고 또 참아야 합니까. 오늘 야고보 사도는 억울하게 손해를 보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성도들을 향해 단호하게 입을 엽니다. 길이 참으라.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뜯어보면, 그저 이 악물고 분을 삭이며 속병을 앓으라는 세상의 체념이 아닙니다. 이른 새벽 무거운 마음을 안고 주님 앞에 엎드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말씀 앞에서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칼바람 속에서 끝내 길이 참아야 하는 진짜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본론: 깨어지는 내 뜻과 붙드시는 하나님의 열심 1. 내 고집과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참을성은 내 계획과 힘으로 상황을 어떻게든 통제해보려는 오기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

[10월 23일 묵상] 야고보서 4장 13절-5장 6절,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왜 죄입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야고보서 4장 13절-5장 6절, 선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왜 죄입니까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 하여서 새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서론 시골집 마당 한구석에 가을걷이하고 남은 마른 짚단이 쌓여 있는 모습이 기억나실 겁니다. 만약에, 요즘 같이 바람 많이 부는 날씨에, 짚단 옆에 불씨가 희미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피운 불이 아니니까", "바람이 불지 않으면 괜찮겠지" 하면서 그냥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 불씨를 즉시 밟아 끄지 않고 방치하면 온 집안이 잿더미가 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불을 지르는 것만 불장난이 아닙니다. 활활 타오를 위험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발을 뻗어 밟지 않는 무관심 역시 집을 태우는 일과 다름없습니다. 성경을 펼쳐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이 뻔히 보이는 마음의 불씨를 지적하십니다. 선지자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을 알면서도 반대편 다시스로 가는 배 밑바닥에 숨어 잠을 청했던 것처럼, 우리는 해야 할 바를 몰라서 넘어지는 때보다 훤히 알면서도 내 욕심과 게으름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때가 훨씬 많습니다. 현대 심리학자들도 사람들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을 때 겪는 가장 깊은 회한은 '내가 저지른 잘못'보다 '그때 베풀 수 있었는데 베풀지 못한 손길', 곧 "행하지 않음에 관한 후회"라고 입을 모읍니다. 본론 오늘 본문 4장 17절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며 시작이 됩니다. 야고보서 4: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 사도는 도대체 왜 착한 일을 하지 않은 소극적인 침묵까지 무거운 '죄'라고 부르고 있을까요. 금요일 이 고요한 새벽, 주님께서는 우리가 살아야 할 두 가지의 중요한 삶의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1. 교만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내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밀어내고...

[10월 22일 묵상] 야고보서 4장 1-12절, 기도가 막히고 매일 다투는 진짜 이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야고보서 4장 1-12절, 기도가 막히고 매일 다투는 진짜 이유 야고보서 4장 1-12절, 십자가의 겸손을 보이신 예수님을 본 받아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하는 기도 새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새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서론 어린아이들이 방 안에서 장난감 하나를 가운데 두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소리치며 토라지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알록달록한 장난감 때문에 다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장난감에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장난감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먼저 만지고 싶고, 내가 더 재미있게 놀고 싶다"는 아이 마음속 고집이 부딪히는 까닭입니다. 어른들의 세상도 이와 꼭 같습니다. 우리도 겉으로는 돈이나 자존심, 혹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얼굴을 붉히고 고집을 부립니다. 하지만,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투정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성인이면서도 아이들처럼 고집을 부리고 화를 내고 다투는 것일까요?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이 부끄러운 물음에 아주 분명한 진단을 내려줍니다. 성도들 사이에 생기는 불화와 갈등은 바깥 환경이나 상대방의 허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짚어냅니다. 내 속에서 솟아나는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고, 세상의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다 보니 마음의 중심이 무너져 내린 결과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겪는 문제가 사람 사이의 갈등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난 데서 왔음을 짚어줍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다툼의 뿌리를 살펴보고 하늘이 주시는 참된 화평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본론 1. 내 안의 욕심을 버리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야고보는 7절을 통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본문에서 '대적하라'로 번역된 헬라어는 '안티스테미'(ἀνθίστημι)입니다. 이 말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발을 ...

[10월 21일 묵상] 야고보서 3장 13-18절, 위로부터 난 지혜로 예수를 닮으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이미지
야고보서 3장 13-18절, 위로부터 난 지혜로 예수를 닮으라 야고보서 3장 13-18절, 하늘의 온유함으로 살아나는 삶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지혜와 미쉬나 아보트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마주합니다. 그때마다 우리 마음속에는 지혜를 향한 간절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길인지, 복잡하고 거친 세상살이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묻곤 합니다. 유대인의 오랜 지혜를 담은 문헌인 '미쉬나 아보트'를 보면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짚어주는 랍비들의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랍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함이 지혜보다 앞서는 사람의 지혜는 오래도록 보존되지만, 지혜가 행함보다 앞서는 사람의 지혜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지혜보다 앞서야 그 지혜가 굳건히 서지만, 지혜를 앞세우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의 지혜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 바로 성경과 유대 전통이 일관되게 고백해 온 지혜의 모습입니다. 지혜란 서재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쌓아 올리는 복잡한 지식이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온유한 마음으로 매일의 삶을 살아내는 정직한 발걸음을 의미합니다. 본론 1. 마음의 중심을 거룩하고 진실하게 가꾸라 야고보 사도는 17절에서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지혜를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그 뿌리가 되는 내면의 덕목들을 밝힙니다. 17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위로부터 난 지혜의 첫 번째 특징은 '성결'입니다. 원어로 '하그노스'라 불리는 이 말은 아무런 흠이나 얼룩이 묻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물에 흙탕물이나 기름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