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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묵상] 이사야 37장 21절-38절, 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서론: 우리는 무엇으로 구원받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려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냈을 때나 사람들이 칭찬할 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질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열심히 봉사했으며, 나름대로 선하게 살아왔기에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도 교회 행사를 문제 없이 잘 진행 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말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철저하게 준비를 잘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무엇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지에 대해 분명히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 이유를 백성들의 의로움에서 찾지 않으심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함이라"(사 37: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구원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은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포위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운명이 마치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백성들이 의로웠기 때문인가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이사야서에 의하면, 유다는 하나님을 떠났고 우상숭배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

[8월 28일 묵상] 이사야 37장 1절-20절, 절망의 편지를 받았던 날에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서론: 압도적인 현실과 무력한 인간 몇 해 전, 주일 새벽에 갑자기 오른쪽 발가락에 극심한 통증이 생겼습니다. 양말도 신발도 신을 수 없었고 걷는 것도 힘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그저 통증으로 고통스러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주일이니 병원을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일을 정신 없이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통풍이라는 질병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서게 됩니다. 예상치 못한 질병이 찾아 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우를 맞이합니다. 무너지는 경제적 형편, 깨어진 관계와 같은 문제들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를 덮쳐 오고, 우리는 무기력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본론 히스기야 왕과 유다 백성에게 앗수르는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현실의 파도와 같았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최강의 제국 앞에서 유다는 너무나 작고 무력해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본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의 크기에 압도될 때, 우리는 그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크기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은 위기보다 크신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게 합니다. 1. 기도는 현실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는 행동입니다. 위기를 만난 히스기야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군사력을 점검하거나 외교적 해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현실을 그대로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14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 37:14,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히스기야는 위급한 상황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자신의 믿음의 고백을 ...

[8월 27일 묵상] 이사야 36장 1절-22절, 그럴듯한 목소리를 조심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새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서론 : 모든 거짓은 거짓처럼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빚으시고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뱀으로 형상되어지는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하와에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열매를 먹어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사탄은 에덴동산에서도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으리라”하신 말씀을, 하와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인 “죽지 아니하리라”와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로 바꿨습니다. 사탄의 거짓말이 하와에게는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도 목회를 하며 성도들을 만나고 많은 분들과 대화할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이미 제가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듯하게, 혹은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환경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거짓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해도, 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 속의 랍사게도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논리적이고도 현실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것이 너무 악해 보여서가 아니라 너무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1. 거짓된 설득은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한다.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난 랍사게의 첫 번째 전략은, 유다 백성들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5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이사야 36:5,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랍사게는 유다 백성들의 가장 큰 두려움을 건드렸습니다. 랍사게는 “애굽은 믿을 수 없다”, “유다는 군사력이 약하다”, 반면에 “앗...

[8월 26일 묵상] 이사야 35장 1절-10절, 사막에서 피어난 백합화를 보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 182장 강물 같이 흐르는 기쁨 서론 지난 여름은 참 더웠습니다. 모두에게 힘들고 더운 여름이었지만, 점심 시간에 동네를 돌며 운동하는 저에게는 특히 더 힘든 더위였습니다. 단 100미터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흘러 내리고 목이 탑니다. 가지고 간 500ml의 물병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의 무더웠던 여름 날씨보다 기온이 더 높이 올라가는 곳이 시내 광야이고 유대 광야입니다. 그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 백성을 떠올려 보십시오. 목이 타들어 갑니다. 며칠을 걸어 마침내 물을 찾았지만, 삼킬 수 없는 쓴물입니다. 사람들의 무릎이 꺾입니다. 손에서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굳은 관절에서 뚝뚝 소리를 내며 먼저 반응합니다. 문을 나서면,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요동칩니다. 쉼 없이 들려오는 전쟁이나 자연 재난, 다투는 소식들에 한숨이 납니다.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정신이 혼란스럽습니다. 또, 자녀들의 삶이 고달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의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학교 생활을 어려워 하고, 직장 속의 갈등 소식을 듣습니다. 때로는 부모를 향한 자녀들의 무언의 원망도 마음으로 듣게 됩니다. 그럴 때면, 우리 마음이 물기 하나 없는 사막이 됩니다. 본론 하지만 오늘, 하나님은 이 절망의 사막 한가운데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메말라 쓰러지고 흔들리는 우리에게 참된 위로의 생수를 건네 주십니다. 1. 사막에 물이 터지고 굳은 무릎이 일어서다. 얼마 전까지, 영남 지방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논밭이 갈라졌었습니다. 그 갈라진 땅을 생각해 보십시오. 곡식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심한 곳은 작물들이 말라 죽어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 서시자, 모래를 뚫고 생수가 터져 나온다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헐벗은 골짜기에 백향목이 빽빽하게 솟아올라서 채웁니다. 메마른 흙 위로 백합화가 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

[7월 30일 묵상] 이사야 11장 1절-16절 심층 연구 리포트: 베인 그루터기에서 피어나는 우주적 샬롬

Step 1. S: Scripture (성경 본문 확정 및 대조) 본문 대조 및 리듬 분석 (사 11:1-16) 이사야 10장 마지막 부분(33-34절)의 '레바논의 빽빽한 숲이 도끼에 찍히는' 심판의 잔혹한 이미지 직후, 11장 1절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시작됩니다. 원어 리듬: 1-5절은 메시아의 자격과 통치 방식(공의)에 대한 7중의 성령 강림을 점층적으로 묘사하며, 6-9절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에덴의 회복(샬롬)을 시적 병행법으로 노래합니다. 10-16절은 '그 날에(בַּיּוֹם הַהוּא)'라는 종말론적 공식을 반복하며 이스라엘과 이방의 우주적 회복을 선포합니다. 주요 번역 대조: 1절: [חֹטֶר (choter, 줄기/가지)]를 개역개정은 "싹", ESV는 "shoot"으로 번역. [נֵצֶר (netzer, 가지/순)]은 "가지", "branch"로 번역. 생명이 끝난 것 같은 '그루터기(stump)'에서 기적적으로 돋아나는 생명력을 강조. Step 2. m: Personal Meditation Invocatio (기원): 주님, 내 눈을 열어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베어지고 짓밟힌 제 삶의 그루터기 위에서도 생명을 틔우시는 성령의 빛을 비추소서. First Encounter (첫 만남): 6절,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이 구절에서 숨이 멎는다. 약육강식의 세상, 강자가 약자를 포식하는 것이 당연한 이 현실 한가운데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절대 평화의 선언이 내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Temporal (시간성): Before: 앗수르의 폭력과 유다의 불순종으로 다윗 왕조라는 거대한 나무가 처참하게 잘려 나간 절망의 시간. During: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메시아가 나시고, 성령의 7중적 충만함으로 왜곡된 재판(공의)이 교정되는 시간. After: 자연계의 맹성과 독성이 ...

[7월 29일 묵상] 이사야 10장 20절-34절, 오직 여호와만 진실하게 의지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ㄷ록 새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서론 성도 여러분, 살아가면서 내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대상 때문에 깊은 수렁에 빠져본 적이 있으신가요? 직장의 안정적인 수입, 건강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혹은 평생 나를 지켜줄 것 같던 사람이 순식간에 배신을 하고 나를 뒤흔들기도 합니다. 영혼을 갈아 넣으며 매달렸던 세상의 수단들이 오히려 내 목을 죄어오는 가혹한 멍에가 될 때, 우리는 아득한 절망을 경험합니다. 오늘 본문 속 유다 백성들의 형편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위협을 벗어나고자 강대국 앗수르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유다가 기대었던 앗수르는 구원자가 아닌, 자신들을 잔인하게 짓밟는 거대한 몽둥이로 변했습니다. 살기 위해 잡았던 손이 나를 죽이려 드는 비극,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의지하는 인생의 아픔입니다. 오늘 선지자 이사야는 이 절망 한복판에 서 있는 백성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세상의 힘은 무너져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거룩한 백성, 곧 '남은 자'를 보존하시고 그 어깨에서 중한 짐을 벗겨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참된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본론 1. 세상의 헛된 지팡이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진실하게 의지하십시오. 본문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 10: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이스라엘은 앗수르라는 세상 권력을 의지하면 안전할 줄 알았으나 도리어 짓밟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고통을 통해 소중한 영적 깨달음을 주십니다. 나를 무너뜨리는 세상 우상을 버리고, 이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여호와만을 진실하게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 의지하다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שָׁעַן (샤안)입...

[7월 28일 묵상] 이사야 10장 5절-19절, 내 손 안의 도끼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서론: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어김 없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이 자리까지 나오신 성도 여러분! 혹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인생의 돌덩이를 안고 나오시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본문의 남유다 백성 역시 숨 막히는 공포 속에 있었습니다. 당대 절대 강국 앗수르가 주변국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 성벽 바로 앞까지 바짝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제국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서 조그마한 나라에 불과한 유다는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닮아 있습니다. '직장 상사의 혹독한 압박', '갑작스러운 재정 문제', '통제할 수 없는 일상의 시련들' 앞에 서면 우리는 금세 무력해집니다. 세상의 힘은 태산처럼 커 보이고 나는 작아 보여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왜 저 거친 세상 권력과 고난을 내버려 두십니까? 반대로 일이 잘 진행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마치 내가 이룬 것처럼 우쭐해지며 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두려워하는 우리와 교만한 우리 모두에게 역사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본론 1. 세상의 거대한 힘도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5절에서 뜻밖의 선언으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사야 10:5,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승리를 거두던 앗수르 제국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단지 '내 손에 들린 작은 막대기(שֵׁבֶט, 쉐베트)'라 부르십니다. 그들이 잘나서 세상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만드시려 잠시 징계의 몽둥이로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하지만 앗수르는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7~8절을 보면 그들은 부와 권력이 자기 능력인 줄 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