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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묵상] 고린도전서 11장 17절-34절, 하늘 식구(食口)가 되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29장, 아무 흠도 없고 새 찬송가 230장, 우리의 참되신 구주시니 서론: 따뜻한 밥상, 그리고 아픈 밥상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이 새벽의 제단을 쌓는 성도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여러분, 최근에 온 가족이 다 함께 모여 따뜻한 밥 한 끼 나누신 기억이 있으신가요?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정겨운 단어 중 하나가 바로 ‘ 식구(食口) ’입니다. 한집에 살며 한 솥의 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입들이라는 뜻이지요. 예로부터 마주 앉아 밥을 나누는 시간만큼 서로의 가려진 장벽을 허물고 마음을 가깝게 엮어주는 시간도 드눕니다. 밥상을 같이 한다는 것은 서로를 향해 무장해제하는 평화의 선언이자, 서로를 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깊은 사랑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고단하고 지쳐 있는 누군가에게 “언제 밥 한 끼 같이 먹자”라는 말로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곤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 그 정겨워야 할 밥상이 오히려 어떤 이에게는 깊은 소외감과 마음의 상처를 주는 차가운 자리가 된다면 얼마나 아플까요? 오늘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편지의 이야기가 바로 그 아픈 밥상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초대 교회는 오늘날처럼 예배만 드리고 바쁘게 헤어지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예배 전후로 성도들이 각자 형편에 맞게 정성껏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는 ‘사랑의 애찬’, 즉 '아가페'를 함께 가졌고, 그 애찬의 마지막 순서로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육신의 배를 채우는 식탁이 곧 영적인 은혜를 채우는 성찬으로 이어지는, 예배와 삶이 하나로 어우러진 은혜의 축제였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은혜가 넘쳐흘러야 할 이 아름다운 밥상이, 오히려 지체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주는 분열의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체 고린도 교회의 밥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요? 오늘 주님께서 이 새벽에 들려주시는 음성에 ...

[6월 17일 묵상] 고린도전서 11장 2절-16절, 주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교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새 찬송가 454장,, 주와 같이 되기를 서론: 새벽을 깨우는 성도들을 향한 축복과 차선 비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이른 아침, 단잠을 깨우고 새벽 공기를 뚫고 주님 앞으로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가, 사랑하는 여러분의 모든 삶의 자리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차를 몰고 길을 나설 때 도로 위에 선명하게 그려진 하얀 차선들을 혹시 눈여겨보셨습니까? 만약 이 도로에 차선이 단 하나도 없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야, 이제 내 마음대로 넓게 달릴 수 있겠구나!' 하고 자유를 만끽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내 사방에서 차들이 뒤엉키고,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고 말겠지요. 그렇습니다. 선이 없는 자유는 참된 자유가 아니라 무서운 재앙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이와 참 비슷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에 갇혀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를 향한 깊은 '배려'와 거룩한 '질서'를 잃어버릴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실제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예배의 태도, 그리고 공동체의 아름다운 질서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질서는 우리를 얽매는 사슬이 아니라 세워주는 사랑입니다. 먼저 본문 3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구체적인 갈등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여성들이 예배 중에 머리에 쓰는 수건, 즉 베일을 벗어 던진 일이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전서 11: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그 당시 고린도 사회에서 정숙한 여성...

[6월 16일 묵상] 고린도전서 10장 14절-11장 1절, 권리를 넘어 사랑의 자리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서론 성도 여러분, 바쁜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가 먼저 피곤한 몸으로 자리에 앉았다가,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순간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실 그 자리는 내가 정당한 요금을 지불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기 위해 먼저 잡은 자리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앉아 있을 권리는 당연히 나에게 있습니다. "내 돈 내고 내가 앉아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생각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순간부터 우리 삶에는 이 세상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 고린도 성도들이 겪었던 실제적인 갈등을 다룹니다. 당시 시장에 팔리던 고기는 대부분 이방 신전에 제물로 바쳐졌던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지식이 깊었던 성도들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 자유롭게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라며 권리를 마음껏 누렸지만,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그 모습을 보며 신앙의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든 선택은 오직 나 자신의 권리와 만족만을 위한 것입니까? 혹시 나의 당당한 권리 주장이 내 곁에 있는 소중한 누군가를 넘어지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아침, 주님은 내 권리를 주장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이웃을 살리는 사랑의 자리로 함께 나아가자고 우리를 부드럽게 초청하십니다. 이 초청에 기쁨으로 반응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주님의 식탁에 참여한 자, 세상의 잔을 멀리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우상 숭배를 피하라고 경고합니다. 본문 14절과 16절 말씀을 차례대로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린도전서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

[6월 15일 묵상] 고린도전서 9장 24절-10장 13절,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기 위하여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새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서론: 지친 일상, 믿음의 달리기를 멈추고 싶을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이 고요한 새벽,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무거운 눈을 비비며 시작하는 아침,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하는 피로감이 우리 어깨를 짓누르곤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과 영적 방전 속에서 “과연 내가 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이 마음 한구석에서 흘러나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치열한 삶을 버텨내고 있는 우리를 향해, 결승점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리는 ‘ 경주자 ’의 비유를 던집니다. 우리 역시 믿음의 트랙 위를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완주하여 승리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 정도면 꽤 괜찮지” 하는 영적 자만심에 빠지거나, 바쁘다는 핑계 뒤에 숨어 유혹 앞에 허무하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오늘 이 새벽, 내 힘으로 달리다 지쳐버린 우리 모두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야, 이제는 네 힘이 아닌 나의 신실함을 바라보아라. 잠시 멈추어 서서, 겸손의 브레이크를 밟아라. 이 음성에 귀 기울이는 복된 새벽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론: 믿음의 경주를 완수하기 위한 세 가지 영적 법칙 우리가 이 거친 믿음의 마라톤을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 가슴에 새겨야 할 영적인 법칙은 무엇일까요? 본문을 통해 바울이 전하는 세 가지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영원한 면류관을 바라보며 ‘거룩한 절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9장에서 바울은 승리의 상을 얻기 위해 달리는 경주자의 합당한 태도를 제시합니다. 방향 없이 방황하며 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썩어질 면류관이 아닌 ‘썩지 않을 영원한 면류관’을 바라보며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25, ...

[6월 14일 묵상] 고린도전서 9장 1절-23절, 복음을 위해 내려놓는 자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97장, 주 예수 넓은 사랑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갑지요. 눈은 떴는데 마음은 아직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어제 못 푼 문제, 쌓인 피로, 관계의 서운함, 생활비 걱정, 자녀 문제, 건강 염려... 이런 삶의 문제들이 아침부터 마음을 꽉 채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불만들이 있습니다. “내가 왜 이것까지 해야 하지?” “내 권리도 좀 지키고 싶다.” “나도 힘든데 왜 내가 먼저 내려놔야 하지?” 오늘 바울도 바로 그와 같은 상황 속에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통하여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권리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본문의 핵심은, 복음 앞에서 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말씀입니다. 바울에게도 권리가 있었습니다. 먹고 마실 권리, 지원받을 권리, 사도로 인정받을 권리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권리를 붙들지 않고, 복음을 위해 모든 권리를 내려놓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장면이 많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 손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종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오늘 바울은 바로 그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우리의 연약한 인간적 본성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사랑하지만, 그 자유를 사랑으로 쓰기보다 자기중심으로 쓰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를 정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편지가 아니라, 우리를 다시 복음 앞으로, 다시 예수님의 마음 앞으로 나아오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쓰여진 편지입니다. 본론 1. 복음은 내 권리를 부정하지 않고, 그 권리를 붙드는 방식을 바꿉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는 권리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권리가 있는데도 쓰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12절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12,...

[6월 13일 묵상] 고린도전서 8장 1절-13절, 내 자유보다 귀한 형제의 영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새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서론: 지식의 옳음보다 더 높은 사랑의 자리 오늘 새벽, 하나님의 따뜻한 품을 찾아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매일 아침 우리가 눈을 뜨며 마주하는 일상은 참 분주하고 정신이 없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챙길 때나, 직장 동료들과 사소한 의견 차이로 부딪힐 때, 우리는 늘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내 지식이 맞고 내 판단이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성경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나옵니다. 두 사람의 가축이 너무 많아져서 그 땅이 좁아졌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분명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어른으로서, 삼촌으로서 가장 좋은 땅을 먼저 차지할 권리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아브라함이 먼저 결정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조카 롯에게 "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라며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아낌없이 양보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혈육끼리 다투는 아픔을 피하고, 사랑으로 관계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바로 이 아브라함의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되는가"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지식'을 자랑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옛 우상 숭배의 습관 때문에 그 고기를 먹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아파했습니다.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삶의 키워드를 던져줍니다. 우리의 신앙은 내가 가진 '지식의 옳...

[6월 12일 묵상] 고린도전서 7장 25절-40절, 지나가는 세상 속에서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새 찬송가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에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이가 한 해 두 해 들어가면서, 우리가 자주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내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우리 자녀들은 언제쯤 좋은 짝을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까?", 또 "내 노후는 평안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새벽을 깨우는 우리의 마음을 찾아오곤 합니다. 성경의 인물인 한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녀는 자식이 없다는 현실의 아픔과 염려 때문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 역시 한나처럼 매일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염려들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32절에서 바울은 "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왜 이토록 염려에 대해 강조하고 있을까요? 바로 우리의 마음을 훔쳐 가는 가장 큰 도둑이 ' 염려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면 진정한 평안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자녀가 취업하고, 결혼하고, 건강 문제가 해결되면 온전히 주님을 섬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나 우리의 마음을 나눕니다. 오늘 바울은 지금껏 주만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이 종말론적인 시간 속에서 어떻게 참된 평안과 헌신의 삶을 살 수 있는지 따뜻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권면합니다. 본론 1. 세상의 외형은 지나가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본문 29절에서 바울은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31절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1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여기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