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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묵상] 요한복음 5장 31절-47절, 지도를 보며 길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썰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새 찬송가 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서론: 검색은 하지만 접속하지 않는 신앙 여러분, 오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 어떤 마음이셨나요? 우리는 참 바쁜 세상을 삽니다. 어디를 가든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검색'부터 하죠. 맛집을 찾고, 리뷰를 보고, 가장 빠른 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화면 속 지도를 너무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정작 바로 앞에 있는 목적지 간판을 못 보고 지나쳐 버리는 일 말입니다. 정보는 가득한데 실체와는 멀어지는 역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 디지털 일상 '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참 닮았습니다.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예배'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며 삽니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말씀이 가리키는 종착지인 ' 예수 그리스도 '와 인격적으로 마주 앉아 본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경 박사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에게 뼈아픈 말씀을 하십니다.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39-40절) ." 본론 오늘 이 새벽, 우리는 '종교적 열심'이라는 지도를 잠시 내려놓고, 그 지도가 가리키는 '살아계신 예수님'께 직접 접속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결핍과 종교적 매너리즘을 뚫고 들어오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1. 충분한 증거, 그러나 닫힌 마음 예수님은 지금 마치 법정에 서 계신 듯합니다. 당시 유대 법은 한 사람의 주장이 참되려면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위해 네 가지 증인을 세우십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 성부 하나님의 음성,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누구의 증언도 필요 없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2월 14일 묵상] 요한복음 5장 16절-30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권세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새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서론: 타지 않는 떨기나무, 쉬지 않는 하나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 새벽, 우리는 저마다의 무거운 짐을 안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저는 구약 성경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름 없는 목자로 살아가던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한때 애굽의 왕자였으나, 이제는 80세 노인이 되어 '인생이 이대로 끝나는구나'라는 정체기와 상실감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평범한 일상을 깨고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바로 '타지 않는 떨기나무'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았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으며, 그 근심을 알고 이제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건져내려 하노라." 모세는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한 그 40년의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셨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라는 말씀은 바로 이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리와 같습니다. 본론 우리는 흔히 삶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오해합니다. 특히 '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 경쟁 '과 '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 '이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하나님, 대체 어디 계십니까?"라고 묻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눈물로 베개를 적시던 그 밤에도, 자녀의 장래 문제로 밤잠을 설치던 그 새벽에도, 우리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졸거나 주무시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생명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멈춰버린 소망에 다시 불을 지피는 떨기나무 불꽃이 되기를 소망합니...

[2월 13일 묵상] 요한복음 5장 1절-15절,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서론: '로데발'에서 '베데스다'까지 찾아오시는 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데스다' 연못가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묘사하는 베데스다의 풍경은 이름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곳은 자비가 흐르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를 짓밟고 먼저 들어가야만 살 수 있는 ' 무한 경쟁의 현장 '이었습니다. 이 본문을 대할 때면 우리는 구약의 한 인물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사울 왕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이었던 ' 므비보셋 '입니다. 그는 두 발을 다 절며 '로데발'(로드발), 즉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숨어 지내던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는 왕의 식탁에 나갈 자격도, 힘도 없던 그에게 다윗 왕이 먼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찾아냅니다. 므비보셋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왕이 베푸는 '언약적 자비(חסד)'를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38년 된 병자 역시 '베데스다'라는 이름의 '로데발'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므비보셋처럼 스스로 움직일 힘이 없었고, 그를 도와줄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라는 그의 탄식은 오늘날 치열한 세상 속에서 "도와줄 이 하나 없다"고 느끼며 고립된 우리의 고백과 너무나도 비슷합니다. 이 새벽, 므비보셋을 찾았던 다윗처럼, 절망의 자리에 누워 있는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 없음'을 먼저 아십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가슴 뭉클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

[2월 12일 묵상] 요한복음 4장 43절-54절, 표적을 구하는 신앙에서 믿는 신앙으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새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서론: "보이지 않는 신호를 신뢰하는 능력" 최근 한 경제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 비대면 신뢰 기술(Trust Tech) '이 꼽혔습니다. 특히 '원격 수술'이나 '자율 주행' 기술의 핵심은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있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데이터와 신호가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기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이제 눈앞의 실체보다 전송되는 신호를 더 믿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신앙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기술은 보이지 않는 신호를 믿으며 발전하는데, 정작 우리의 영성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표적'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구약성경 열왕기하 5장에 등장하는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사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나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왔을 때, 엘리사가 밖으로 나와 화려한 손동작을 하며 안수 기도를 해줄 것이라는 '보이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얼굴도 비추지 않은 채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씀'만 던집니다. 나아만은 분노합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손을 흔들어 고칠까 하였도다." 그는 표적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한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왕의 신하 또한 나아만과 같은 한계에 부딪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직접 가버나움까지 '내려오셔서' 아들을 만져주셔야만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와 동행하는 대신, 오직 단 한 마디의 신호, 즉 말씀을 던지십니다....

[2월 11일 묵상] 요한복음 4장 27절-42절, 물동이를 버려두고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새 찬송가 505장, 온 세상 위하여 서론: 우리를 누르는 '물동이'를 내려놓는 새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마음의 짐을 안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수많은 '인생의  물동이 '를 마주합니다. "오늘 직장에서 그 까다로운 상사를 어떻게 대하지?", "이번 달 카드 값과 대출 이자는 어떻게 감당하나?", "아이의 성적과 진로는 어쩌나?" 하는 일상 생활 속의 고민들이 우리 영혼의 어깨를 짓누릅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이 타오르는 뙤약볕 아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생존을 위한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로 향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본론 그녀에게 물동이는 생존을 위해 물을 길어야만 하는 도구였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뜻하는 생활 도구였고,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수치스러운 과거였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고단한 생존의 무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놀라운 반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바로 ' 물동이를 버려두는 것 '이었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를 옥죄던 염려의 물동이를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으로 채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가라 본문 28절을 보면,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갔다"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함께 28절을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여기서 '버려두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켄'(ἀφῆκεν)은 단순히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기에 의...

[2월 10일 묵상] 요한복음 4장 15절-26절, 목마름의 끝에서 만난 참된 생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새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서론: 새벽을 깨우는 갈증 오늘 새벽을 깨우고 주님 앞에 나온 우리 모두에게, 주께서 하늘의 위로와 평강을 부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성도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이 새벽,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우리가 새벽마다 잠을 깨며 물 한 잔을 마시듯, 우리의 영혼도 매일 아침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낍니다. "오늘 하루도 버텨낼 힘이 있을까?", "이 근심은 언제쯤 끝이 날까?" 현대인들의 삶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정오의 뜨거운 태양 아래,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에 우물을 찾은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생존의 물'을 길으러 왔지만, 그곳에서 '생명의 주인'을 만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 문제, 자녀 걱정, 관계의 아픔이라는 ' 생활 키워드 '를 들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단순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을 넘어 우리 존재의 근원을 만져주십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를 먼저 찾아와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1. 숨기고 싶은 과거를 대면하시는 주님 여인은 예수님께 "그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15절). 여전히 육체적인 편리함에 머물러 있는 여인에게 주님은 갑자기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요한복음 4: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이 말씀은 여인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송곳 같았습니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사는 이도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왜 굳이 이 수치스러운 사실을 들춰내실까요? 그것은 진정한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문제를 직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거룩한 가면을 씁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

[2월 9일 묵상] 요한복음 4장 1절-14절, 목마른 인생, 생수의 근원을 만나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새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서론: 인생의 타는 목마름을 안고 나온 당신에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 어떤 마음의 갈증을 안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목말라하며 살아갑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 조금 더 안정된 경제력, 자녀의 성공, 혹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 우리는 마치 타는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 우물을 찾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 오늘 하루만 잘 넘기면, 이번 문제만 해결되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버티지만, 정작 그 문제가 해결되어도 곧 또 다른 목마름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그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갈증'의 시작점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한 여인의 회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생의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친히 먼 길을 걸어오신 하나님의 열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의 묵은 갈증이 해갈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1. 반드시 만나야 할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은 아주 독특한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4: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부정하게 여겨서 먼 길을 돌아갔습니다. 지리적으로는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이 빠르지만, 종교적·민족적 이유로 '결코 통과해서는 안 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반드시 그곳을 가셔야 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하여야 하겠는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데이(ἔδει, 반드시 ~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거부할 수 없는 계획과 의지를 나타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