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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묵상] 고린도전서 3장 1절-15절,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터가 되신 예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08장, 내 주의 나라와 새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서론: 매일 아침, 우리는 어떤 기초 위에 하루를 시작합니까? 이 고요하고 맑은 새벽에 단잠을 깨우고 주님 앞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 어젯밤 평안히 주무셨습니까?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마시는 따뜻한 물 한 잔이 우리 몸의 깨어남을 돕듯, 지금 이 시간 주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목을 축이고자 모인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 위로가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매일 바쁜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부지런히 짓고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실적을 쌓고, 가정에서 관계를 돌보며,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땀 흘려 가며 삶의 집을 지어 올립니다. 하지만 가끔 마음 한구석에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목사로서 사역하고 있지만, 때로는 이 길이 맞는가, 혹은 이 방향이 옳은 것인가 하는 고민과 혼란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아픈 현실을 우리에게 거울 비춰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예배도 열심히 드렸고, 각양 은사도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늘 불안과 결핍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의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나는 아볼로의 명쾌한 설교가 좋아", "나는 교회의 개척자인 바울의 영성이 마음에 들어"라며 서로 편을 가르고 시기하며 다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바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고린도전서의 전체 내용과 어조를 보면, 바울의 마음은 미어터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안타까운 음성으로 부릅니다. 고린도전서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영적 젖먹이처럼 서로 비교하고 시기하며 다투는 그들의 모습은, 결국 인생의 진짜 기초...

[6월 4일 묵상] 고린도전서 2장 1절-16절, 오직 십자가와 성령으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새 찬송가 197장,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서론: 내 힘을 내려놓을 때 시작되는 은혜 오늘도 어김없이 울리는 새벽 알람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셨겠지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오늘 하루를 채울 수많은 계획과 고민들이 스쳐 지나갔을 겁니다. '오늘 그 사람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얽히고설킨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하지?' 우리는 매일 아침 본능적으로 내 지혜와 능력을 동원해 완벽한 하루 계획을 설계하려 애를 씁니다. 내 힘으로 인생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은 마음, 내가 가진 지식과 말재주로 모든 상황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헤쳐 나가려는 고집스러운 생각들이 우리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저도 오늘 새벽에 하루의 삶의 일정 목록을 기록하고, 그 목록 앞에 우선 순위를 표시하였습니다. 제 나름대로 하루의 순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운 것이지요. 이처럼 내 생각과 실력을 하나님보다 먼저 앞세우려는 태도가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직면하는 뿌리 깊은 자아의 연약함이 아닐까요? 본론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서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며 두려워 떨었던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위대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지성의 도시 아테네에서 자신의 해박한 철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세련된 말로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깊은 좌절감과 두려움을 안고 이웃 도시인 고린도에 들어왔습니다. 똑똑하고 화려한 웅변가들이 가득했던 그 고린도교회 성도들 앞에 섰을 때, 바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는 자신의 초라함을 감추려고 화려한 지식의 포장지를 덧씌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두 가지의 사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나의 연약함을 덮는 십자가의 능력 첫째로, 우리는 내 연약함을 정직하게 인정하며 오직 십자가 예수님만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

[6월 3일 묵상] 고린도전서 1장 18절-31절, 약한 나로 강하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새 찬송가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서론: 매일 아침 우리를 찾아오는 소리 없는 전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을 깨우고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새벽 공기를 뚫고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 여러분의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우리는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까지, 참 피곤하고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는 어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기 전에, 또 새로운 하루를 맞이해야만 합니다. 하루의 삶을 조용히 돌아볼 시간이 없고, 허둥지둥 대다가 잠자리에 들 때도 있습니다. 저도 하루의 삶을 마무리하며 다이어리에 정리하고 잠에 들어야지 하고 결심하지만, 어느샌가 밤이 되고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다이어리 정리를 못하고 잠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그 날 해야할 일들을 마무리도 못하고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해야 할 일이 쌓이고, 나는 그것들을 감당할 능력이 점점 부족해지는 것 같아서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합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교회에서 나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 같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누구보다도 잘 처리한다는 모습도 보여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집니다. 본론 사도 바울이 편지를 보낸 고린도 교회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당대 최고의 지성과 철학, 수사학이 넘치던 화려한 대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더 말을 잘하는지, 누가 더 높은 신분을 가졌는지 비교하며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슬프게도 그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안까지 고스란히 들어왔습니다. 성도들은 서로 더 훌륭한 지도자를 따르고 있다고 자랑했고, 자기가 가진 은사와 지식을 뽐내며 교회를 파벌로 찢어놓고 있었습니다. 힘을 숭상하고 똑똑함을 자랑하는 세상의 계산법에 교회가 완전히 오염되었던 것이지요. 바로 그 분열과 불안의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바울은 오늘 세상의 계산법을 완...

[6월 2일 묵상] 고린도전서 1장 10절-17절, 내 이름은 지우고 예수만 남기는 삶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새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서론: 찢어진 마음을 깁는 새벽의 은혜 이 고요한 새벽, 갈급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어젯 밤에는 편안하게 잠을 잘 주무셨습니까? 혹시라도 마음이 상하여 밤새도록 뒤척이지는 않으셨습니까? 집에서나 일터에서 나눈 사소한 말 한마디 때문에, 소중한 사람과 서먹해진 채 이 자리에 나오지는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관계를 맺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라는 것이, 한순간의 오해나 작은 말다툼으로 너무나 쉽게 금이 가고 찢어지곤 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성격이 부딪힐 때 찾아오는 피로감이나 섭섭한 감정은, 우리의 일상을 참 무겁게 만듭니다. ' 관계의 갈등 '이라는 이 무거운 짐은, 늘 우리 마음을 짓누르는 단골손님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린도 교회도 그랬습니다. 이 교회는 참 은혜를 많이 받은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은사도 풍성했고, 훌륭한 지도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심각한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이 생기고, 편이 갈라져 서로 갈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해 바울에게 전해진 소식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교회가 네 개의 조각으로 찢어져 버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배웠으니 바울 편이다." "아니다, 나는 학식 높은 아볼로가 최고다." "무슨 소리냐, 나는 수제자 베드로, 즉 게바의 파다." "너희는 다 틀렸다, 나는 오직 그리스도 파다." 성도 여러분, 이 모습 속에서 혹시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이지 않으십니까? 내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싶고,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은 은근히 밀어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연약한 본성 말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이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

[6월 1일 묵상] 고린도전서 1장 1절-9절,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는 은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서론: 낙심한 자를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 어스름한 새벽녘, 고단한 일상을 뒤로하고 기도의 무릎을 꿇기 위해 주님의 성전으로 나아오신 성도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새벽을 깨우는 여러분의 발걸음이 참으로 복되고 아름답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허탈하게 그물을 던지던 낙심한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그를 찾아가 다그치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따뜻하게 생선을 구워주시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부드럽게 물으셨을 뿐입니다. 그의 허물과 실패보다, 그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부르심이 훨씬 더 크고 깊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린도교회 역시 파당과 음행, 은사 자랑으로 가득한 참 골치 아픈 교회였습니다. 바울의 마음도 참 아팠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편지 서두부터 화를 내거나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 "라고 부르며, 아낌없는 감사와 찬송을 먼저 올려드립니다. 우리 역시 삶의 허물과 연약함을 볼 때 낙심하곤 합니다. "내가 자꾸 넘어지는데,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에 머물러 있을 때 찾아옵니다. 오늘 바울은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고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라고 선언합니다. 이 새벽,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주님의 은혜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론: 신실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정체성 1.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우리는 거룩해졌습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 ...

[5월 31일 묵상] 창세기 50장 15절-26절,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기도 새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서론: 불안의 시대, 우리 마음의 자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다 보면 ‘끝난 줄 알았던 상처’가 다시 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 해결된 줄 알았던 오해와 아픔인데, 어느 날 문득 그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쿡 하고 내려앉곤 합니다. 특히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면 형제들 사이에 해묵은 불안이 고개를 들기 쉽습니다. 영적 기둥이 사라졌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깊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15절) 죄책감은 영혼을 움츠러들게 하고, 두려움은 관계를 비틉니다. 형들은 불안한 나머지 ‘아버지의 유언’까지 지어내며 용서를 구하고, 이 말을 전해 들은 요셉은 소리 내어 울고 맙니다. 형들을 향한 서운함과 애타는 연민,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과 떨림이 섞인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도 용서가 머리로는 되지만 가슴으로는 안 되어 늘 불안과 죄책감, 복수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가진 연약함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새벽에 엎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 마음의 왕좌에 내가 앉아 있는지, 아니면 주님이 앉아 계시는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본론: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는 삶 1. 심판의 자리를 하나님께 온전히 돌려드리십시오. 두려워하는 형들을 향해 요셉은 선포합니다. 19절 말씀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여기서 ‘대신하여’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타하트(תַּחַת)’입니다. 따라서, 요셉의 이 고백은 “ 내 아픔이 크다고 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자리를 가로채지 않겠다 ”라는 고백입니다. 요셉은 죄를 가볍게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 심판의 권리를 주님께 온전히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이어서 요셉은 그...

[5월 30일 묵상] 창세기 49장 29절-50장 14절,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새 찬송가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서론: 무엇이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 줍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 성전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가족 걱정, 약해진 건강, 노후나 자녀의 앞날로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나오진 않으셨습니까? 인생의 가을날을 지나며 우리는 문득 질문하게 됩니다. “내가 평생 힘써 붙들고 살아온 것들이, 과연 내 인생 마지막 날에도 나를 붙들어 줄 수 있을까?” 피땀 흘려 마련한 집, 든든한 통장, 소중한 자녀와 직장, 사람들의 인정... 모두 소중하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를 영원한 곳까지 데려가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야곱이 등장합니다. 야곱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형을 피해 도망쳐야 했고, 라반에게 속아 고된 노동을 했으며, 아내 라헬과 아들 요셉을 잃고 피눈물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종착역에 선 그의 마지막은 신세 한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녀들을 모아놓고 담담히 유언합니다. “나는 이제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화려한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의 초라한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간곡히 당부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안정에는 쉽게 흔들리면서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은 자주 희미하게 여깁니다. 오늘 하루 버티는 것이 버거워 하나님의 언약을 놓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은 힘겨운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선포합니다. 성도가 마지막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눈앞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의 참된 소망은 세상의 풍요가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두 가지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믿음으로 걸어가는 두 가지 길 1. 하나님 약속을 붙잡는 길 첫째로, 참된 믿음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