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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묵상] 창세기 40장 1절-23절, 하나님은 당신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서론: 잊힌 시간, 그러나 잊히지 않은 당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인생을 살아가며 철저히 혼자라고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평생을 일터에 헌신했지만, 정년퇴직하는 날 텅 빈 책상을 정리하며 밀려오는 그 서늘한 기분을 느껴보셨나요?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 키워냈는데, 이제는 전화 한 통 기다리는 것조차 힘겨워진 무관심 앞에 서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혹은 중병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 나 없이도 너무나 잘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아, 나는 이제 잊힌 존재구나'라는 공포를 느껴보지는 않으셨습니까? 1704년, 스코틀랜드의 항해사 알렉산더 셀커크는 선장과 다툰 끝에 남태평양의 어느 무인도에 홀로 버려졌습니다. 그는 무려 4년 4개월 동안 그곳에서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잊힌 존재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그 고독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그 절망의 기록은 훗날 우리가 잘 아는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위대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 ‘왕의 감옥’이라는 거대한 무인도에 갇혀 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것도 서러운 일인데, 정성껏 도와주었던 술 맡은 관원장조차 복직된 후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에 찾아온 이 기나긴 침묵과 망각의 시간. 요셉은 과연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오늘 이 새벽, "하나님, 혹시 저를 잊으셨습니까?"라고 묻고 싶은 우리 인생의 감옥 앞에서,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함께 듣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고난의 감옥에서도 타인의 아픔을 살피는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감옥이라는 곳은 사실 자아의 성벽이 가장 두꺼워지는 장소입니다. 내 고통이 너무 크고 내 상처가 깊으면, 남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 법이지요. "나 죽겠는데 남 사정 봐줄 게 어디 있나"라는 말이 절...

[5월 10일 묵상] 창세기 39장 1절-23절, 고난 속에서도 예비된 하나님의 은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서론: 우리 인생의 '구덩이'를 마주할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잘 오셨습니다. 오늘도 변함없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이 고요한 새벽을 깨우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하루, 여러분의 삶은 어떠셨습니까? 계획하신 대로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려 감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셨나요?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나 사람 때문에 마치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답답하고 무거운 심정으로 나오셨습니까? 우리 인생은 참으로 묘합니다. 맑게 갠 하늘처럼 평온하다가도, 어느 순간 도무지 피할 길 없는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곤 합니다. 성경에서 이토록 급격한 추락과 고통을 겪은 이를 꼽으라면, 우리는 단연 요셉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채색옷을 입고 미래를 꿈꾸던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인격이 지워진 '노예'가 되어 낯선 이국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 기나긴 여정 속에서 요셉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왜 하필 나인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수렁에 빠져야 하는가?" 원망 섞인 질문이 터져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남의 집 종살이와 차가운 감옥이라는 처참한 현실 한복판에서, 성경은 '진짜 형통'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실패한 인생 같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을 '형통'이라고 부르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가슴속에 맺힌 '억울함'과 '막막함'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동행'이라는 확신으로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이 새벽, 위대한 전환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

[5월 9일 묵상] 창세기 38장 1절-30절, 인생의 막힌 담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새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서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성도 여러분, 혹시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 아, 내 인생은 이제 여기서 끝이구나. " 차마 남들에게는 말도 못 할 자식 문제로 속을 끓이고, 가슴 깊이 숨겨둔 비밀 때문에 밤잠 설쳐가며 절망의 끝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유다의 삶이 딱 그랬습니다. 그는 신앙의 울타리인 형제들을 떠나 세상 문화 속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두 아들을 연달아 앞세우는 비극까지 겪었습니다. 집안은 회복 불능으로 보였고,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핵심 단어인 ' 에라본(עֵרָבוֹן) '에 주목해야 합니다. 본래 이 말은 물건을 거래할 때 확실한 약속의 증표로 건네는 '담보물' 혹은 '보증금'을 뜻합니다. 유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도장과 지팡이를 다말에게 ‘에라본’으로 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와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세상에 저당 잡히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신분조차 잃어버린 우리 인생의 뼈아픈 실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소망을 잃어버린 그 막다른 골목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 인생의 실패를 뚫고 도도하게 흐르는 그 끈질긴 은혜를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본론 1. 세상에 동화되어 무너진 유다 본문 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창세기 38: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여기서 '내려갔다'(יָרַד, 야라드)는 말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땅, 신앙의 자리를 벗어나 세상 가치관 속으로 침전하기 시작했다는 영적인 경고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여인...

[5월 8일 묵상] 창세기 37장 18절-36절, 내 꿈보다 크신 하나님의 섭리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새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서론: 예기치 못한 삶의 암전(暗轉)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요한 새벽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 위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한 단어, 바로 ‘꿈’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히브리어로 꿈을 뜻하는 ‘할롬(חֲלוֹם)’은 개인이 품은 꿈과 야망을 넘어선 위대한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담긴 거룩한 계시를 뜻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과 이 거룩한 ‘할롬’을 가슴에 품고 형들에게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따뜻한 격려가 아니라 차가운 살기였습니다. 형들은 비웃으며 말합니다. “ 자,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를 죽여서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 ” 여러분, 우리도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을 마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 믿고 시작했는데, 소중한 기도의 제목들이 세상의 조롱이나 냉혹한 현실이라는 깊은 구덩이에 던져질 때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맞을까? 왜 현실은 정반대로만 흘러갈까?” 하며 좌절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죠. 본론 내 삶의 꿈이 산산조각 난 것 같은 그 어두운 순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질 수는 있었어도, 하나님이 그에게 심어주신 꿈까지 매장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절망의 구덩이는 하나님의 꿈이 현실이 되는 신비로운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새벽, 내 꿈보다 더 크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꿈이 우리 인생의 가장 낮은 곳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 위대한 구속의 신비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1. 시기의 구덩이에서 소망의 뿌리를 찾으십시오 형들은 요셉을 죽여 깊은 구덩이에 던지려 했습니다. 이 때, 형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37: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5월 7일 묵상] 창세기 37장 1절-17절, 깨어진 가정 속에 비치는 하나님의 은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서론: 우리 삶의 자취를 닮은 요셉의 가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른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은 마치 우리네 인생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사실 우리 삶에서 가장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가족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가장 깊고 아린 상처를 남기는 곳도 바로 그 울타리 안일 때가 많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명절 증후군'이나 부모의 '편애'라는 단어는 수천 년 전 야곱의 가정이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참 씁쓸한 현실이지요. 특히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 샬롬(שלום) '입니다. 히브리어로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모든 관계가 온전하고 조화로운 ' 평강 '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속 야곱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이 '샬롬'이 완전히 깨어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한 아들만 유독 아끼며 채색옷을 입혔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형제들의 마음엔 질투라는 독버섯이 자라났습니다. 결국 4절 말씀처럼, 형들은 요셉에게 '샬롬'의 인사, 즉 평안한 말 한마디조차 건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본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사랑해야 할 형제들 사이에서 평화가 조각난 이 현실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깨어진 세상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왜 하필 이런 엉망진창인 가족사 한복판에서 당신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시작하시는 걸까요?" 우리가 '인생의 세겜'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길을 걸을 때, 소중한 사람들에게 거절당해 마음의 평강...

[5월 6일 묵상] 창세기 36장 9절-43절, 하나님의 속도, 나의 방향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새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서론: 세상의 속도에 조급해 하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혹시 요즘 주변 사람들의 성공 소식이나 잘나가는 모습들을 보며 문득 마음이 조급해지지는 않으셨나요? 우리는 참으로 숨 가쁜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소식에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세계 곳곳의 분쟁과 요동치는 경제 상황은 우리의 일상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습니다.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앞다투어 패권을 다투고 속도전을 벌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만 이렇게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실존적인 불안함이 우리를 엄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바로 그런 '세상의 속도'를 상징하는 가문이 등장합니다. 바로 에서의 가문입니다. 야곱이 아직 약속의 땅 주변을 겉돌며 나그네처럼 지내고 있을 때, 형 에서는 벌써 세일 산에 견고한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도 전에, 에돔은 이미 여덟 명의 왕을 배출하며 국가의 기틀을 완벽하게 갖추었습니다. 세상은 이처럼 우리보다 훨씬 빠르고 화려하게 앞서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꼭 붙들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공의 스케줄'보다 보이지 않는 ' 하나님의 언약 시간표 '가 훨씬 더 정확하고 신실하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먼저 성을 쌓고 왕관을 쓴다고 해서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화려한 족보 너머에서, 약속을 붙든 당신의 백성을 위해 지금도 가장 완벽한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 에서의 번영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며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영원한 약속 위에 단단히 고정하는 복된 시간...

[5월 5일 묵상] 창세기 35장 23절-36장 8절, 약속의 자리에 머무는 은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새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서론: 인생의 '정리'와 '새로운 시작' 성도 여러분, 참 반갑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별'과 '정리'를 경험합니다. 정들었던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사하기도 하고, 평생 몸담았던 일터에서 물러나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부모님을 영원한 안식처로 떠나보내며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일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물결 앞에서 우리 마음속에는 본능적으로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자리에 머물고 있는가?" "혹시 당장의 안락함 때문에 내가 있어야 할 언약의 자리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본문은 믿음의 거인 이삭의 죽음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나무가 쓰러진 것 같은 상실감이 느껴지는 대목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빈자리를 야곱의 열두 아들이라는 소망의 별들로 채우시며, 생명의 역사를 다시 이어가십니다. 오늘 이 새벽, " 당장의 풍요를 따라 세일 산으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 고달프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가나안에 끝까지 머물 것인가 "라는 질문을 가슴에 새겨봅시다.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본론 1. 죽음 너머로 이어지는 언약의 계보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 명단이 장엄하게 나열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창세기 35: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우리는 이들을 '이스라엘의 기초'라고 부르며 대단한 영웅들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참 부끄러운 모습이 많습니다. 장자 르우벤은 도덕적으로 크게 실패했고, 시므온과 레위는 잔인한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