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전도서 3장 16절-22절, 하나님이 주신 몫 - 매일성경큐티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큐티의 본문인 전도서 3장 16절부터 22절까지는, 전도자 솔로몬이 만사에 때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 특히 심판의 때와 죽음의 때를 모든 존재들이 맞이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몫인 오늘을 즐겁고도 열심히 살라고 권면합니다.


전도서 3장 16절-22절, 하나님이 주신 몫


전도서 3장 16절-22절, 하나님이 주신 몫



16절, 주석과 해설


내가 … 또 보건대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의 역사를 다룬 앞 내용들(1-15절)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 죄악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본다는 말이다.


재판하는 곳에 … 악이 있도다

여기서 ‘악’(레솨)이란 ‘라솨’(죄를 범하다, 사악하게 행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범죄’, ‘사악함’ 등의 뜻을 갖는다. 사회적 기강의 근원이 되며 신뢰 사회의 밑거름이 되는 재판상의 정의가 무너져버린 사실을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혹은 뇌물에 의해 재판정에서 불공정한 판결이 나게 되면 사회 불안이 야기된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재판장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더 큰 책임이 있었다. 한편 혹자는 ‘재판하는 곳’이란 ‘정의를 실행하는 재판정’을 ‘공의(체데크)를 행하는 곳’이란 신앙적인 의식이 행해지는 ‘경건한 장소’를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Barton).



17절, 주석과 해설


의인과 악인을 … 심판하시리니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심판 때에 의인에게는 상급으로 악인에게는 징벌로 공의에 따라 보응하심을 나타낸다. 혹자는 이와 관련하여 본 절의 ‘심판하시리니’가 (1) 의인에 대해서는 변호하시는 것을 (시 7:8, 26:1), (2) 악안에 대해서는 심판한시는 것을 암시한다고 한다(Delitzsch). 요컨대, 본 절은 죄악된 인생이 불의하고 허무하며 무상하나 여전히 살아계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온 만물들을 섭리, 통치하시는 바(2-8, 14,15절) 그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시리라는 전도자의 믿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18절, 주석과 해설


하나님이 저희를 …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본 절은 내용상 16,17절과 연관된다(G.A. Barton). 즉 ‘재판하는 곳’과 ‘공의를 행하는 곳’에서 악이 행해지는 바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어 멸망받게 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죽음에 처해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험하시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원형 ‘바라르’은 ‘밝게(깨끗이)하다’(단 11:35), ‘조사하다’, ‘시험하다’, ‘입증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인생의 면면들을 드러내어 밝히시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혹자는 이를 키질하는 것과 연결시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분하여 드러낸다는 뜻을 내포한다고 보기도 한다(Delitzsch).



19절, 주석과 해설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이는 상반절에 언급된 대로 사람이나 짐승이 한결같이 죽음에 이르는 존재라는 점에 기인되어한 말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말에는 또한 16, 17절에 암시되어진 바 인간의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20절, 주석과 해설


다 흙으로 … 한곳으로 가거니와

18-21절에서 기자는 인생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음을 반복하여 언급한다. 특히 본 절은 인체(人體)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이 짐승의 몸과 동일하게 흙의 성분임을 지적함으로써 그 허무함을 밝힌다. 한편, 이는 타락한 아담에게 하신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을 연상시킨다(창 3:19). 그리고 여기서 ‘한 곳’이란 사람이나 짐승이 죽어 묻히는 땅을 가리킨다(21절, 6:6, 12:7, Lange, Delitzsch, Glenn). 그런데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 땅에서 죽은 사람은 모두 음부 즉 어두운 땅 밑 지하세계에 가는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시 86, 13 참조) 전도자 자신도 여기에서 이 음부를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9:10, Eaton).



21절, 주석과 해설


기자는 사람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점에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여기서는 사후(死後)의 차이점을 언급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짐승과는 달리 사람의 영혼은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짐승의 혼이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끊어져 없어진다는 의미이고 사람의 혼이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사후의 인생의 영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소관 하에 들어가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Eaton). 그리고 혼(루아흐)이라는 말이 본 절에서 사람이나 짐승에게 도일하게 적용되었지만, 우리는 이를 사람에게는 ‘영혼’으로, 그리고 짐승에게는 ‘호흡’(혹은 의식 기능) 정도로 적용시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22절, 주석과 해설


내 소견에는

문자적으로는 ‘내가 보기에는’(I saw, NIV, RSV, I have seen, NASB)의 뜻이다. 이는 전도자가 이전에 체험했던 수많은 인생 경험에 근거하여 말하는 것을 나타낸다(2:1-11 참조). 그리고 이는 12절, 2:24, 5:18, 8:15, 9:7-9의 내용과 일맥 상통한다.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

13절, 2:22등을 연관시켜 볼 때 일하는 가운데, 그 일 속에서 좋은 결과를 얻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그 신후사를 … 누구이랴

여기에서 ‘신후사’(베메 쉐이헤에 아하라)란 직역하면 ‘그의 뒤에 있는 것’(what will happen after him, NIV, what will occur after him, NASB)의 뜻이다. 이는 문맥상 사람이 죽은 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Lange, Delitzsch, Eaton). 그리고 본 절의 전반적인 의미는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무관해지므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 결과를 얻고 그것을 누리는(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인 듯하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