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큐티의 본문인 전도서 4장 7절부터 16절을 통하여, 전도자는 홀로 수고하며 살아가는 것보다도 서로 연합하고 힘을 합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선언합니다. 본문의 이해를 돕고 큐티와 새벽설교 준비를 돕기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전도서 4장 7절-16절, '함께'라는 행복
7절, 주석과 해설
어떤 사람은 … 하는고 하나니
이는 그 주위에 아들이나 형제가 없는 고독한 자가 느끼는 인생의 허무함을 언급한 것이다. 특히 본 절에서 고독한 자가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일하며 부를 만족하지 않는 것은 그가 느끼게 되는 인생의 허무함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해 준다. 한편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란 ‘눈’이 인간 내면의 욕망을 나타내는 외적인 한 기관으로서 표현되어지는 바(2:10) 고독자가 자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에 집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본 절에서 고독자가 부를 축적하면서도 그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참 기쁨을 누리는 길은 자신의 노력이나 외적인 상황 여건에 의해서가 아니고 창조주 되시며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 가능함을 엿보게 한다(2:24, 26).
9절, 주석과 해설
두 사람이 … 얻을 것임이라
이는 앞절(8절)의 고독자의 허무함에 비해 뜻이 맞아 협력하는 자들의 유익성을 상대적으로 언급한 말로 보인다. 성경에서 두 사람의 협력의 유익성에 대해서는 여러번 언급되어지는데 그 최초의 암시는 창 2:18-24의 결혼의 유익성에서 보여진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도의 목적으로 그의 제자들을 둘씩 파송한 것도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눅 10:1). 그리고 주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말씀하셨다. 한편 혹자는 여기에서 ‘상’이란 이어지는 세 절에 나타나는 세 가지 실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Lange). 그러나 그보다는 두 사람의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갖가지 유익들을 지칭한 말로 보는 것이 낫다.
10절, 주석과 해설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 있으리라
원문에 의하면 본 절 서두에 ‘키’라는 원인을 나타내는 연결사가 있다. 이는 본 절이 앞절(9절)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본 절의 묘사는 흔히 팔레스타인과 같은 거칠은 사막과 광야 지역에서 여행할 때 일어나는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갖가지 유혹과 실패로 인해 낙망하고 무의미와 회의감에 젖어 있을 때 옆에서 위로하고 붙들어 일으켜 줄 신앙의 동반자가 필요 요청되기 때문이다. 한편 본 절의 ‘화’란 9절의 ‘상’이란 말과 대조를 이룬다.
11절, 주석과 해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 따뜻하랴
원문에 의하면 본 절 서두에는 ‘또한’, ‘역시’의 뜻인 ‘감’이라는 낱말이 있다. 이것은 본 절이 앞절(10절)과 같이 9절에 대한 이유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본 절의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를 말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낮에는 기온이 높으나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하여 매우 춥기 때문에 야영할 때 두 사람이 바싹 붙어서 자면 한결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렘 36:22, 30 참조).
12절, 주석과 해설
한 사람이면 … 당(當)하나니
문맥상 본 절은 계속해서 여행자가 당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즉 한 사람이 여행할 때 강도가 덮칠 경우 꼼짝없이 강탈당하고 말지만 두 사람이 여행할 경우에는 능히 당해낼 수 있는 협동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다(M.A. Eaton, G, A. Barton).
삽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여기에서 ‘삽겹 줄’이란 말은 앞절의 ‘두 사람’에서 하나를 더한 수를 뜻하며, 이와 같이 어떤 수에서 하나를 더하는 식의 표현은 구약 시대에 흔히 사용된 것이다(11:2, 암 1:11). 여기서는 둘 이상의 더 큰 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라는 표현은 꼭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동할 수 있는 두 사람 이상의 많은 수를 암시한다(M.A. Eaton). 한편 유대인에게 있어서 ‘3’이란 완전 수를 상징하는 바, ‘삼겹 줄’이란 그 단결된 힘의 온전함을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단결된 힘은 신약 시대에 성도의 교회 생활 특히 기도 생활에서도 필수적이다(마 18:19, 20, 요 17:21-23, 행 1:14, 엡 4:12, 빌 2:2, 4:2).
13절, 주석과 해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 나으니
본 절에 대하여 혹자는 앞절들과 같이 고독의 어리석음(8절) 및 단결된 협력의 중요성(9-12절)의 주제와 연결되는 내용이라 말하며(M.A. Eaton), 혹자는 인간 사회에서 누리는 행운의 허무함을 다루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Lange). 그러나 이보다는 인간사에서 누리는 명성 또는 인기의 허무함을 다루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Delitasch, D.R. Glenn). 한편 본 절에서 ‘소년’(옐레드)은 일반적으로 아동기를 벗어난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자들을 늙은 노인에 빗대어 사용하는 말로 보인다(창 37:10, 삼상 3:1, 왕상 12:8, 14:21). 그리고 ‘둔하여’에 해당하는 ‘케실’의 원래 의미는 ‘살진’이나 여기서는 ‘미련한’의 의미로 유추된다(foolish, KJV, NIV, RSV, NASB). 또한 ‘간함을’이란 그 원형이 ‘자하르’으로서 ‘훈계’(instruction, NASB), ‘경고’(warning, NIV)의 의미이다. 특히 본 절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운 자로 간주되고 존경받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레 19:32, 욥 32:6, 시 119:100), 본 절은 왕의 어리석음을 더욱 극력하게 나타내준다 하겠다. 한편 본 절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말인가 아니면 전도자 자신이 교훈을 위한 한 예증으로서 언급한 말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반적으로 전자를 주장하는 견해들 중 탈굼역(Targum)은 아브라함과 니므롯과의 관계를, 미드라쉬(Midrash)는 요셉과 바로 또는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언급한 구절이라고 본다. 그외에도 요아스(Joash)와 아마샤(Amaziah), 고레스(Cyrus)와 아스타지(Astyages) 등의 관계가 언급된 것이라고 주장되어지기도 한다. 반면 그레츠(Graetz)는 이를 헤롯 대왕과 그의 아들 알렉산더와의 관계를 말한다고 하며 히찌히(Hitzig)는 톨레미 필리파테(Ptolemy Epiphanes)와의 관계를 뜻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 본서의 저작 연대를 솔로몬 시대가 아닌 휠씬 후기 연대로 잡아야 하는 바 납득하기 힘들다. 따라서 본 절의 내용을 가설적인 예화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겠다(Eaton, Wysliffe).
14절, 주석과 해설
저는 그 나라에서 … 되었음이니라
이는 13절의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이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의 왕국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후에는 그 지혜로 그 나라의 왕이 되었음을 뜻한다(Eaton). 그러나 본 절의 내용이 실제 역사적 사건을 말하는지 아니면 하나의 가상적인 예화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나뉘이며, 만약 실제 역사적 상황을 말한다면 어느 시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13절에 언급된 것처럼 복잡하다.
15절, 주석과 해설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
직역하면 ‘그(왕)를 대신하여 뒤이어 일어난 두 번째(제이)의 소년’이란 뜻이다(the second child that shall stand up in his stead, KJV). 여기서 ‘두 번째’(second)에 대해 혹자는 왕의 다음으로 권세 자리에 앉아 차후 그 왕위를 찬탈하는 제2인 선왕(先王)을 이어 왕으로 취임하는 후임자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Delitzsch, Wright, Knobel).
16절, 주석과 해설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 아니하리니
이는 지혜로운 소년이 후에 왕이 되어 백성들을 치리한다 할지라도 후 세대의 백성들이 그의 치정(治定)을 기억하거나 그의 공적등을 인정해 주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즉 소년이 치리하는 세대는 그 세대대로 역사 속에서 가고 그 후 세대는 그 후 세대대로 역사 속에서 진행되어 간다는 의미로서, 이는 1:11, 2:16의 말씀을 연상케 하며 덧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 명성의 헛됨, 무상함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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