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본문인 민수기 4장 1절부터 33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의 각 가문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명령하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각 집안이 해야 할 직무를 설명하셨습니다. 묵상과 설교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민수기 4장 1절-33절, 레위 자손의 직무 연령과 내용
1절, 주석과 해설
1-49절
회막 봉사를 좀더 효율적이고 질서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레위의 세 자손, 곧 게르손 자손과 고핫 자손과 므라리 자손에게 각자의 업무 분담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2절, 주석과 해설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하나님께서 레위의 장자인 게르손의 자손을 먼저 선택하지 않으시고, 차자(次子)인 고핫 자손을 먼저 택하여 성막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을 운반하게 하셨다. 이는 당신의 특별하신 목적을 따라 각각을 적재 적소에 위임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주인이 ‘각각 그 재능대로’ 종들에게 사역을 맡겼던 예수 그리스도의 달란트 비유(마 25:14-30)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이것은 모세와 아론이 고핫 계열이었고, 따라서 제사장은 고핫 계열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들이 가장 먼저 부름 받고, 가장 중요한 성물들이 이들에게 맡겨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본 절에는 몇 단계의 혈연 집단의 단위가 열거되었다(1:2). (1) ‘레위 자손’이라 언급된 ‘자손’(히, 벤)은 ‘부족’, 곧 ‘지파’(tribe)를 의미한다. (2) ‘고핫 자손’의 ‘자손’ 역시 원어로는 (1)과 동일하나, 의미상 ‘지파’보다는 소규모의 ‘씨족’(clan) 단위를 가리킨다. (3) ‘종족’(히, 미쉬파하)은 최소 단위인 ‘가정’(family)을 (4) ‘조상의 가문’(히, 베트 아보트)은 가족보다는 크고 씨족보다는 작은 단위(subclan)를 가리킨다(1:2). 따라서 의미상 큰 순서대로 나열하면 지파 → 씨족 → 조상의 가문 → 종족 순(順)이 된다.
3절, 주석과 해설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레위인들이 성막 봉사에 필요한 최저 나이(30세)는 일반 백성들의 군 입대 가능 나이(20세)보다 10세나 높다. 이는 성막 봉사가 단순히 젊은 힘이나 패기에 의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인 성숙함과 신중함이 요구되는 일임을 보여 준다. 이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건국자인 다윗이 30세에 왕위에 나아간 것(삼하 5:4)과 인류의 대속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30세에 비로소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0세부터’라는 레위인의 규례를 따라 당신 스스로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보여 주셨다(히 5:10). 한편 본문의 30세라는 기준이 8:24에는 25세로, 대상 23:24에는 20세로 하향 조정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정은 본 절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30세에 공식적으로 성막 업무를 시작하기 전 5년 내지 10년 동안 수습(修習)기간을 두어 성막 봉사를 보다 완벽하고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스 3:8).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의 일꾼들을 사용하시기 전에 특별한 기간 동안 그들을 훈련시키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모세(출 2:15, 3:1)와 사도 바울(갈 1:17)이다. 그리고 또한 봉사 연한을 50세까지로 제한한 것은 50세 이상 된 자들은 기력이 쇠하여 봉사를 원만히 수행하지 못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의 한계성을 나타낸 것으로, 아무리 거룩한 일에 동참하는 자라 하더라도 인생의 유한함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시고 영원토록 하나님 앞에서 성전 봉사를 행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그분은 영원히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의 구속과 성화(聖化)를 위해 힘쓰고 계신다(히 7:11, 28).
역사
‘군대’, ‘ 병역’ 등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1:3). 레위인들은 육신적인 전투에서는 면제되었다(1:47-53). 그러나 그들이 수행해야할 일은 전쟁 참여 못지 않게 어려운 것이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보존해야 했으며, 상당히 무거운 성막 기물들을 운반하고 또한 그 기물들이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도록 온 정성을 기울여야 했다. 우리는 직접 전선에 나가서 전투를 치르는 사람만이 군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병(工兵)이나 위생병도 군인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비록 레위인들이 다른 지파처럼 직접 전투에 가담하지는 않았어도, 하나님의 군대가 신령한 질서를 갖고 싸울 수 있도록 종교적 업무에 종사하는 이상 그들 역시 하나님의 군대의 일원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KJV는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군대에 들어갈 만한 모든 자’(all that enter into the host)라고 번역했고, 공동번역도 같은 의미에서 ‘전장에 나갈 만한 사람 모두’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의 군대에서 제외된 자들은 한 명도 없었음을 뜻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죄악과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제외된 자는 한명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일종의 영적 전투이며(딤전 1:18) 그것에 참여하는 자는 십자가의 군병이라 할 수 있다(딤후 2:3).
4절, 주석과 해설
지성물
문자적으로는 ‘거룩 중의 거룩’이다. 이 말은 원래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 지성소(至聖所)를 가리켰다(출 26:33, 34). 그러나 여기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성소 안의 기물 즉 언약궤, 떡상, 등잔대, 분향단, 번제단 및 그에 따르는 여러 부속물(출 30:26-29)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오직 제사장들만이 만질 수 있는 것으로서 타인이 만지면 죽음이 따랐다. 그래서 이 동시 이것들은 오직 이스라엘의 제사장된 아론과 그 아들들에 의해서만 정리될 수 있었다(5절).
5절, 주석과 해설
칸 막는 휘장
여기서 휘장(히, 파로케트)은 ‘쪼개다’, ‘무자비할 정도로 엄격하다’는 의미의 기본 동사 ‘페레크’에서 유래한 말로서, 여기서는 ‘구별지우는 것’, ‘분리시키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칸 막는 휘장’이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가리킨다(출 26:31, 레 4:6). 그리고 이 휘장에는 그룹(천사)들이 수놓아 졌는데(출 26:31, 33) 이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그분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아론과 그 아들들은 바로 이 휘장을 걷어서 그것으로 거룩한 증거궤(법궤)를 덮어야 했다. 그런데 레위기 규례에 의하면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시키는 이 휘장 안에는 오직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분향단의 연기 속에서 들어갈 수 있었다(레 16:2, 12). 그러므로 레위기의 규례는 후일 성막이 고정적으로 위치된 경우에 해당되는 규례임을 알수 있다. 사실 광야 행진시에는 수시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필요시 언제든지 이 지성소 휘장을 걷을 수 있었다. 한편, 이 경우에 대하여 혹자는 광야 행진시 이동을 위해 지성소 휘장을 걷을 때, 이미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기둥은 법궤 위 속죄소를 떠나 이스라엘 진영을 앞서 나갔기 때문에 제사장들에게 아무런 해(害)가 없었다고 한다(Patrick).
증거궤를 덮고
즉 지성소와 성소를 가리는 휘장으로 언약궤를 덮으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존하기 위한 외적 행위이다. 그리고 여기서 ‘덮다’(히, 카사)란 말은 몸이나 비밀을 ‘가리다’, ‘닫다’, ‘숨기다’는 의미로써, 내부의 물건이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도록 철저히 가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한편 증거궤는 이 휘장으로 뿐 아니라 ‘해달 가죽’ 및 ‘순청색 보자기’로 삼중으로 덮어야 했으며 기타 각종 지성물 역시 보자기로 덮어야 했다. 이처럼 거룩한 기물(器物)들을 덮은 이유는, (1) 하나님께 성별된 사람 이외에 지성물을 만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지성물은 모두 기름 부음 받은 것으로 거룩하기에(출 40:9),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 외에는 만질 수 없었다(4절). (2) 지성물을 자연의 재해(비, 모래 바람, 태양열 등)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3) 기물을 덮는 각종 보자기의 색상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종교적 열의와 경건을 북돋우기 위함이었다. (4) 그리고 무엇보다 기물들을 외부로부터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죄인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목격하는 날이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모든 기물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모두 가리워져야 했다. 따라서 이것은 구약 계시의 은폐성을 대변한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르러 계시의 정점(頂點)이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구약 시대에는 감추어졌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히 10:1), 마침내 그분의 재림을 통해 그 모든 은폐된 것들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고전 13:12).
6절, 주석과 해설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여기서 ‘해달’(히, 타하쉬)에 상응하는 아랍어 ‘투하스’는 ‘돌고래’를 가리킨다. 따라서 ‘해달’(sea otter)보다는 홍해 및 그 인근 바다에서 서식하는 ‘바다 소’(NIV, sea cow)나 ‘듀공’(dugong), 또는 ‘돌고래’(공동번역)로 보아야 한다(출 25:5). 그러나 ‘염소’(RSV, Living Bible, goat)나 ‘오소리’(KJV, badger)는 거리가 먼 해석이다. 한편 두텁고 질기며 강한 ‘해달’의 가죽은 광야의 열사(熱砂)와 이슬, 비 등으로부터 언약궤를 보호하기 위해 덮개로 사용되었다.
순청색 보자기
직역하면, 다른색이나 수놓은 것이 없는 ‘전적으로 푸른 천’이다. 혹자는 ‘푸른 색’은 하늘 빛을 가리키는 색깔로써 하늘의 영광과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든지 ‘순청색 보자기’를 멀리서나마 바라볼 때 그 푸른 색상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인식하며, 또한 그 보자기 안에 있는 지성물이 하늘에 속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그것을 운반하는 고핫 자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보자기에 싸인 지성물을 운반했을 것이다. 여하튼 그 보자기의 색상이 의미하는 바가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지성물을 성별하시려고 ‘순청색 보자기’의 사용을 명하신 것이다(Keil).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형식주의 품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당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외적인 질서와 순종과 조화까지도 요구하셨음을 나타낸다. 사실 참된 예의와 형식은 참된 인격 안에서 자연스럽게 넘쳐난다.
그 채를 꿰고
이를 직역하면 ‘각각의 손잡이를 내고’이다. 즉 언약궤 사면에 달린 고리에 ‘채’(pole)를 꿴다는 뜻이다(출 25:12-15). 이것은 언약궤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였다(4절).
7절, 주석과 해설
주석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성소 내의 북쪽에 배치된 진설병 상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그 위에 진설병 상에 딸린 여러 부속기구(대접, 숟가락, 주발, 붓는 잔)와 항상 진설하는 떡을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홍색 보자기를 펴 덮고, 이어 진설병 상을 포함한 모든 지성물을 한번 더 해달 가죽 덮개로 덮은 후 진설병 상의 고리에 채를 꿰어 운반하게 했다(출 37:10-16).
진설병의 상
성소(the Holy Place) 내 북쪽에 위치하며,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떡을 진열해 놓는 곳이다(출 25:23-30).
8절, 주석과 해설
홍색 보자기
곧 붉은 피 색깔을 띠는 보자기로서 이는 백성의 죄를 위해 대신 죽은 희생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는 성소의 모든 지성물들이 속죄의 희생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며, 특히 속죄의 희생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능력 또는 그 피의 효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출 26:1, 마 27:28). 한편 홍색 보자기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요 6:35, 48, 51)를 상징하는 진설병이 놓인 상을 덮은 것은 의미 심장하다. 즉 이는 십자가에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살과 그 상흔(傷痕)에서 쏟아진 보혈을 연상케 한다.
9절, 주석과 해설
등잔대
이것은 휘장으로 바깥과 완전히 차단된 성소 내에서 제사장이 제사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불빛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10절, 주석과 해설
메는 틀
물건 운반에 사용되는 ‘들 것’(RSV, TEV, carrying frame)을 의미한다(13:23).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성물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손에 접촉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물을 메는 틀로 운반하라는 이 명령은 당신의 절대 성결과 거룩한 영광의 보존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내포 되어 있다(삼하 6:6,7).
11절, 주석과 해설
금제단
곧 향을 태우는 ‘분향단’을 가리킨다. 이것은 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금제단’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출 30:1-10 주석을 참조하라.
12절, 주석과 해설
봉사
이 말은 비천한 사역에 자주 사용되는 ‘아바드’와는 달리 고상한 위치의 인물이 ‘사역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동사 ‘솨라트’에서 파생되었다. 가령 이 말은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 봉사한 요셉(창 39:4)이나 아하시야 왕을 섬긴 그의 조카들의 사역(대하 22:8)을 언급할 때 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말은 종교적 업무와 관련되어 자주 사용되었다. 즉 성소 안에서 행한 아론과그의 아들들의 사역(출 28:35, 43), 레위인들의 찬양 사역(대상 16:4, 37)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매우 존귀한 것으로 선민 이스라엘 중에서도 특정인에게만 제한되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 사역은 특정 이스라엘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고귀한 위치에 설 수 있다(사 56:6-8). 한편 아마도 ‘솨라트’에 상응하는 헬라어는 ‘라트류오’일 것이다(히 9:9, 13:10, 계 7:15). 사도 바울과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을 사용하여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고(롬 1:9),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것을 권유하였다(히 12:28).
기구
‘그릇’, ‘도구’ 등을 뜻한다. 즉 진설병 상, 등잔대, 분향단 이외의 성소 기구와 그릇들을 가리킨다(대하 4장).
13절, 주석과 해설
제단의 재를 버리고
즉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진 각종 희생제물의 찌꺼기는 진영 바깥의 재 버리는 곳에 버려야 했다(레 4:12).
자색 보자기
자색(紫色)은 성막의 그룹을 수 놓기 위해 사용된 색상 중 하나이며(출 26:1), 성막 문(출 26:26)과 에봇 위의 띠(출 28:8), 판결 흉패(출 28:15), 그리고 왕이 사용하는 기구(아 3:10) 등에 주로 사용되는 색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왕의 영광과 권위(삿 8:26), 부요함(눅 16:19) 등을 상징한다. 나아가 이 색상은 인류의 참된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위를 상징하기도 한다(요 19:2, 3).
14절, 주석과 해설
제단의 모든 기구
번제단에 부속되는 기구는 재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 및 불 옮기는 그릇 등이다(출 27:3). 여기서 ‘재 담는 통’은 희생제물의 타고 남은 재를 담아놓는 단지(pot, NIV)를 가리킨다. 그리고 ‘부삽’은 다 탄 희생제물의 재를 통에 퍼 담는 일종의 삽(shovel)을 가리키고, ‘대야’는 단 위 희생제물로부터 흘러 내리는 피를 받는 그릇(basin)을 가리킨다. ‘고기 갈고기’는 절단된 희생제물의 고기를 번제단 위에 골고루 펴 놓는데 사용되는 일종의 포크(fork, RSV)를 의미하며, ‘불 옮기는 그릇’(firepan)은 일명 ‘향로’로 불리는데 제사장이 분향단의 향을 사를 때 번제단의 불을 바로 이 그릇에 담아 옮겨 사용했다. 한편, 그런데 이 모든 기구들이 각각 복수형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볼 때 이 기구들은 한 개씩이 아니라, 각각 여러 개씩 있었던 것 같다.
15절, 주석과 해설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본 장에서 보자기에 덮이지 않은 유일한 성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놋으로 만든 물두멍(출 30:18)이다. 카일(Keil)은 이에 대해 ‘물두멍은 아무런 덮개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운반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70인역(LXX)과 사마리아 사본(Samaria Papyri)의 본문은 물두멍을 해달 가죽의 덮개로 덮고 그것을 운반용 들것에 두는 형식으로 기록하여 14절 내용과 일치하게 묘사 하였다(Keil & Delitzsch). 본 절의 표현과 본 장 전체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물두멍도 천 등으로 된 덮개를 씌웠던 것 같다.
멜 것이니라
여기서 ‘메다’(히, 나사)란 ‘들어올리다’, ‘운반하다’, ‘떠받치다’는 뜻으로서, 곧 어깨를 지지대로 해서 물건을 메어 운반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성소와 성막 안의 기구들(언약궤, 진설병상, 등잔대, 금단, 번제단 등)을 운반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한편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은 것들은 오직 사람의 어깨로 옮겨야만 했다. 이것은 지성물에 대한 백성의 경의와 존경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물론 지성물은 그 자체로는 어떤 권위도 가지지 못한다. 성소의 지성물들은 그것에 대한 신적(神的) 인준과 하나님의 임재 및 그 거룩한 성품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비로소 신령한 권위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단지 성물(聖物)에만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또 하나의 변형된 우상 숭배일 뿐이다(출 20:4, 사 1:10-17).
죽으리라
직역하면 ‘죽지 않도록’(KJV, RSV, lest they die)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성물에 ‘몸이 닿았다가는 죽을 것이다’(공동번역)로 해석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인 까닭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롬 3:23).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채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간다면 그는 죽임을 면치 못한다(출 19:21). 비록 레위인들이 선택된 일꾼들이라 할지라도 구약 시대의 특성상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성물들을 결코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 그것을 목도할 수 있도록 부름을 받았다(살전 2:12, 벧전 5:10).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고후 3:18), 그 영광을 찬양할 수 있도록 소명받은 우리가(엡 1:12-14) 영광의 직분을 갖고 있다고 말하였다(고후 3:7-9).
16절, 주석과 해설
엘르아살이 맡을 것
여기서 ‘맡을 것’(히, 페쿠다트)이란 말은 3:32에는 ‘통할(統轄)’로 번역되었다. 한편 본 절에 언급된 대로, 대제사장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은 두 형 나답과 아비후 사망(레 10:1-2) 이후 실질적인 아론의 장자가 되어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게 되었다. 즉 엘르아살은 등잔대용 등유(출 27:20-21), 분향단용 향품(출 30:34-38), 상번제 소제물(출 29:40-42, 민 28:3-6) 및 관유(출 30:23-25) 등을 통할하였으며, 장막 전체 곧 게르손 자손들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은 것도 관할하였고, 특별히 성소 안의 기구들을 맡은 고핫 자손들을 직접 감독하였다. 결국 그는 레위인들의 실질적인 어른이었다(3:32).
등유
성소 안에 빛(히, 오르)을 비추는 등대에 사용되는 순결한 감람 열매의 기름이다(출 27:20). 성소의 등잔대에 이 기름을 태움으로 말미암아 외부와 차단된 어두운 성소는 밝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빛은 상징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히 4:15)께서 이 세상의 빛이 되신다는 사실(요 8:12)과 복음의 제사장인 우리가(롬 15:16) 세상의 빛으로 존재해야 함을 이중적으로 보여 준다.
태우는 향
직역하면 ‘냄새가 좋은 향’(RSV, NIV, the fragrant incense)이란 뜻이다. 이 향(香)은 특별히 분향단에 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곧 하나님의 명하신 바를 따라 오직 ‘향 만드는 법대로’ 제조되어야 했다(출 30:35). 한편 성경적 의미로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계 8:3-4), 그러므로 제사장 엘르아살이 이 향품을 관리한 것은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중보 사역(롬 8:34, 히 7:25)을 예표한다. 나아가 이것은 이 세상을 위해 제사장으로 선택된 우리(출 19:6, 벧전 2:9, 계 1:6)가 뭇사람을 위한 중보자가 되어 중보해야 함을 보여 준다(딤전 2:1-3).
항상 드리는 소제물
누룩 없이 고운 가루와 기름으로 만든 무교병으로서(레 6:14-17), 상번제에 바쳐지는 소제 예물을 가리킨다(28:1-8). 여기에 쓰인 고운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과 온전한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며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소제물이 날마다 봉헌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영원한 것임을 반영한다(히 7:24, 27). 또한 상번제(常燔祭, a regular burnt offering)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의 삶이 날마다 하나님께 바쳐져야 함을 예표하기도 한다(롬 12:1-2). 즉 매일 예배드리는 삶(행 2:46),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행 5:42),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살전 5:16-18), 바로 이러한 삶이 성도 각자가 자신을 주께 바치는(고후 8:5) ‘상번제의 삶’이다.
관유
직역하면 ‘바르는 기름’(the anointing oil)이란 뜻이다. 이것은 제사장들과 성막의 모든 기구들에 발라 그것들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려고 특별히 제작된 향기름(출 30:22-33, 40:9-15)이다. 상징적으로 이 관유 역시 성도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시는 성령을 상징한다. 즉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으심으로써(고후 1:21), 신령한 지식을 갖게 하시고 주 안에 거하게 하사 의를 행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신다(요일 2:20, 27-29).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욜 2:28-29, 행 2:17-18)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어(딛 3:5) 거룩한 생활을 추구해야 한다(고전 3:16-17).
18절, 주석과 해설
지파
본래는 ‘막대기’, ‘지팡이’를 뜻한다. 여기서는 지파(tribe)라는 뜻보다는 ‘가계’, ‘혈통’, ‘족속’이란 뜻으로 쓰였다. 한편, 하나님은 고핫 자손이 하나님을 섬기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것(호 4:6)을 원치 않으셨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 및 제사장들은 그들을 잘 가르치고, 감독하여 결코 그들이 무지로 인해 멸망당하지 않도륵 늘 삼가 지도하기를 게을리 말아야 했다. 한편 고핫 자손을 바로 가르치고 이끌 지도자들이 그 책임을 게을리할 때 고핫 자손이 부지 중에 재난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교회 내에도 몇몇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적지 않은 성도들이 상처를 입고 실족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음을 보여 준다(마 15:14, 18:6-7, 23:13, 15).
끊어지게 하지 말지니
곧 ‘멸망받게 하지 말라’(RSV, let not … be destroyed) 또는 ‘결단코 소멸당하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고핫 자손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 기구들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그만큼 더 주의하여 그것들을 하나님의 명하신 지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 어느 족속, 어느 지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고는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고핫 자손은 늘 하나님의 지성물을 취급해야 하는 족속인만큼 더욱 삼가 조심해야 했다. 아울러 그들을 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모세와 아론 및 제사장들은 그들이 행여 하나님의 명령을 잘못 시행하지 않는지 지도, 훈계, 견책하는 일에 잠시도 게을리 말아야 했다.
19절, 주석과 해설
지휘하게 할지니라
기본 동사 ‘숨’은 ‘임명하다’, ‘돌보다’, ‘배치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권위를 위임받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레위인들의 직무를 구분하여 무리없이 성막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막 내에서 아론을 중심한 조직적이고도 질서있는 봉사를 지시하셨다.
20절, 주석과 해설
잠시라도
‘(성물들이) 덮여있을 때’(KJV), 혹은 ‘일순간도’(Keil)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삼키다’(히, 발라)에서 왔으므로, 욥 7:19을 참조해 볼 때 ‘침 삼킬 동안’, 즉 ‘잠깐 동안이라도’(RSV, even for a moment)라고 번역할 수 있다. 70인역(LXX)도 ‘갑자기’(suddenly)라는 뜻의 ‘엑사피나’로 번역함으로써 이 의미를 취했다. 그러므로 고핫 자손들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 지성물을 챙기는 동안 혹시라도 호기심이나 실수 등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물을 보거나 만져서는 안 되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지성물을 운반하는 고핫 자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물인 지성물을 보는 것이 잠시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도성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영원토록 받으면서 살게 된다(계 21:10, 11, 23).
죽으리라
구약 시대 당시 죄인된 인간이 기름(관유) 부음 받지 않고 하나님의 현존과 영광을 목도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사 6:5) 그리고 역사상 실제로 엘리 사후 시대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함부로 여호와의 법궤를 들여다 보다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삼상 6:19).
21절, 주석과 해설
여호와께서 … 모세에게 … 이르시되
하나님께서는 고핫 자손의 직무에 대해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으나(1절),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의 직무에 대해서는 단지 모세에게만 말씀하셨다. 이는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의 직무가, 아론과 그 아들들의 도움 없이는 죽임 당하는 고핫 자손의 직무와는 달리, 그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인 듯 하다(1:51). 왜냐하면 이들은 성소 기구들이 아닌 나머지 성막 부품들을 운반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론에게는 계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모세에게만 말씀하신 듯하다.
24절, 주석과 해설
게르손 종족
직역하면 ‘게르손 후손들의 가족들’(KJV, RSV, the families of the Gershonites)이다. 즉 여기에는 30세 이상 50세 이하의 각 가문별 게르손 자손들을 말한다. 이것은 게르손 자손들이 당시 그들에게 맡겨진 직무를 다시 각 가문별로 분담하여 일을 수행했음을 암시한다.
멜 것
여기서 ‘메다’(히, 마사)란 말은 고핫 자손처럼(15절) 어깨 위에 메는(carrying on the shoulder)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옮기는 행위(carrying 또는 bearing)를 가리킨다.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 이동시 소가 끄는 수레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것들을 옮겼다(7:7-8).
26절, 주석과 해설
모든 것을 이렇게 맡아
이것은 게르손 자손들이 그에게 맡겨진 성막의 부속물들을 운반하기 위하여 성막을 걷는(taking down) 일(1:51)과 그것의 순조로운 운반을 위해 여러 가지 직무를 맡은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처리할 것이니라
이를 직역하면, ‘봉사할지라’(KJV, they shall serve)이다. 즉 앞에 언급한 직무를 온전히 맡아 봉사하라는 명령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성실과 충성이다(고전 15:58, 계 2:10).
27절, 주석과 해설
맡길 것이니라
‘지정해야 한다’, ‘짐을 지워야 한다’란 뜻이다. 이것은 강제 노역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성막 봉사를 위해 각자에게 일을 분담하라는 지시이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오늘날 성직자들이 다른 이에게만 짐을 지우고 자신의 몸은 사린다면 그것은 잘못이다(마 23:5). 그러나 성도 각각의 은사에 맞게 교회의 막중한 일들을 적절히 분담해 주는 것은 합리적이고 또한 필요한 작업이다. 이것은 성직자가 일반 성도들을 신뢰할 때, 그리고 일반 성도들이 짐을 기꺼이 질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복음 사역을 위해 서로 협력하라고 당부했다(빌 1:27, 2:1-4).
28절, 주석과 해설
이다말이 감독할지니라
여기서 ‘감독할지니라’(히, 베야드)란 말은 ‘손 아래에(있다)’(KJV, under the hand), 즉 ‘감독하에 있다’(RSV, be under the oversight)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 절은 엘르아살과 더불어 레위 가문을 이끌어갈 이다말의 위치를 말해 주고 있다. 일찍이 그는 성막 건축 때 건축 비용을 계산한 적도 있었으므로(출 38:21) 성막 내부를 상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그에게 성막 일의 감독을 맡긴 것은 자연스럽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경험과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목적을 성취해 가신다.
29절, 주석과 해설
29-33절
하나님께서는 성막 내부에서부터 외부에 이르는 직무를 이미 고핫 자손과 게르손 자손에게 지시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기물이 정리된 후 남게 되는 성막 본체의 널판들과 기초 부분들을 므라리 자손에게 맡기심으로 질서 정연한 성막 봉사를 주도하셨다. 이는 당신이 스스로 질서의 신(神)이심을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고전 14:33, 40). 한편 므라리 자손의 임무가 성소 내의 기물을 다루는 다른 자손들의 직무보다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임무에 관해서도 같은 지시를 되풀이 하시면서 빠짐 없이 구체적으로 상세히 설명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 모두가 중요하며 의미 있는 것임을 보여 준다(마 25:40). 한편, 본문에 나타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앞의 고핫 자손의 경우(1-20절)와 게르손 자손의 경우(21-28절)를 참조하라.
32절, 주석과 해설
품목을 지정하라
이것을 직역하면 ‘이름을 따라 하나도 빠짐없이 잘 세어서 운반할 것을 (지명하여) 맡기라’이다. 한편 므라리 자손이 해야 할 임무는 성막 본체의 널판들(출 26:15), 그 띠들(출 26:26), 그 기둥과 받침 기둥들과 그 받침들(출 35:18, 39:40)을 걷어(1:51) 운반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와 같은 성막의 부속물들을 므라리 자손에게 각각의 이름에 따라 정확하게 지정하고 그 임무를 지시해 주어야 했다. 이는 고핫 자손이 해야 할 직무에 있어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포장하고(5절) 직접 명하여 지시하는 일과는 달리 므라리 자손들은 모세가 지시한 각 성막 재료들의 이름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LXX).
33절, 주석과 해설
직무대로
‘봉사할 모든 일을 따라서’라는 뜻이다. 여기서 ‘봉사하다’(히, 아바드)는 비천하게 수고한다는 뜻을 지닌다(12절). 그러나 이것은 마치 노예와 같이 고생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 매우 겸손한 자세로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 건설 사역 현장에 부름받은 우리도 이들처럼 비천하게, 즉 겸손하게 사역해야 한다(고전 4:10, 고후 11:7). 그리할 때 마침내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위로하시고(고후 7:6) 높이신다(약 4:10, 벧전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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