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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7장 1절-11절, 지휘관들의 헌물 - 매일성경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 본문인 민수기 7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은, 인구 조사를 하기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록으로, 성막을 성별하던 날에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봉헌한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본문을 묵상하고 새벽설교 준비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민수기 7장 1절-11절, 지휘관들의 헌물 - 매일성경 주석과 해설 정리


민수기 7장 1절-11절, 지휘관들의 헌물



1절, 주석과 해설


장막 세우기를 끝내고 … 구별한 날에

장막은 출애굽 제2년 1월 1일에 완성되었다(출 40:17). 그러므로 카일(Keil)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석가들에 의하면 바로 그 날 이후 기름을 발라 구별하는 성막 봉헌식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 장은 그러한 기사가 언급된 레 8:10 부분에 바로 연결되어야 하나, 시내 산 율법 내용이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간적으로는 모순이 되는 인구 조사(출애굽 제2년 2월 1일, 민 1:1)를 기록한 부분 뒤에 본 성막에 기름을 바른 사건과 족장들의 예물 봉헌식 사건을 취급하였다고 한다(Keil & Delitzsch). 그러나 출 40장의 성막 완공과 레 8:10 사건을 비교하여 보면 성막을 세운 바로 그날부터 성막에 기름을 발라 구별한 것이 아니라, 성막 완공 후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어느 날 그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Lange). 이런 점에서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성막 봉헌식 날을 성막이 완공되고 백성의 진영이 모두 갖추어진 날, 곧 출애굽 제2년 2월 8일 경으로 추측한다. 이 견해는 민 10:11의 시내 산 출발 날짜(출애굽 제2년 2월 20일)에서 족장들이 예물 드린 기일(12일)을 역산(逆算)한 시간이다. 사실 성막에 기름을 발라 구별하는 일은 성막봉현의 의미로서 성막 인준의 최종 단계일 뿐이지 반드시 성막이 완공된 그날 실행되어야 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내 산 출발 직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공식적인 제사 행위가 본 장에서 처럼 장엄하게 실시된 흔적이 없다. 그리고 본 장에 언급된 족장들의 명단이 출애굽 제2년 2월 1일 실시된 인구 조사와, 그리고 그 때 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그 족장 명단(민 1:1-15)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아울러 족장들이 바친 예물들이 광야 행군시에 긴요하게 사용되었다는 점(3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본 장에 언급된 족장들의 예물 봉헌식은 시내 산 출발 직전에 있었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이 견해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은, 성경 기록은 그 특성상 연대기적 사건 순서를 초월하여 그 내용에 따라 구성되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총체적으로 보아, 성막 건립이 필요한 때(출애굽 제2년 1월 1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떠난 때(출애굽 제2년 2월 20일) 사이의 약 50일 동안 제사장 위임 사건, 나답과 아비후 사건, 유월절 준수 사건 등이 일어났다고 보면 틀림없다. 물론 이 사이에 레 1:1로부터 민 10:10에 나타난 각종 규례들이 모세에게 주어졌으리라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사람이나 사물들에게 기름(관유)을 바르는 것은 종교 의식상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그 대상을 세속적인 것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는다는 것과 (2) 그 대상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출 40:34-35). 그러므로 한번 기름 발라진 대상은 영원히 세장적인 일에 사용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했다. 그러므로 본성적으로 악한 자연인과 아무런 종교적 가치가 없는 사물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련시켜 그분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기름 바름’이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사와 관련된 각종 사물들, 즉 제단(10절, 출 29:36)과 제단에 딸린 도구들(출 40:10), 성막(레 8:10)과 성막에 딸린 기구들 및 증거궤(출 30:26)에는 반드시 기름을 발라야 했다. 한편 이러한 목적에 사용되는 이 기름, 곧 관유(灌油, 출 30:22-33)는 그 의미하는 바에 따라 성령과 성령의 사역을 비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렘 31:14). 이는 구약 시대 각종 모형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아 공식적으로 성별되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헌신하신 사실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마 3:16, 행 10:38). 실로 성경에 제시된 각종 성물(聖物)들이 그 자체로서 신적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기름 바름’이라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준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오날날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사역과 예배와 헌신 역시 오직 성령의 감동, 감화를 통해서만 그 참된 의미를 가질 수 있다(행 1:8, 고전 2:4-13, 요일 2:27).



2절, 주석과 해설


이스라엘 지휘관들

이스라엘 각 지파의 실질적인 지도자들로서, 인구 조사 때에 감독의 직임을 받은 자들이다(1:4-15).


헌물을 드렸으니

각 족장들은 자신과 자신의 지파를 대표해서 하나님께 봉헌예물을 드렸다. 하나님은 당신께 나아오는 자가 ‘빈 손’으로 오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 이유는 결코 하나님께서 재물을 탐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구약 시대의 특성상 예물 속에 그 마음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속사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장차 영원한 예물이 되실 그리스도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가 그 경제적 형편에 따라 자원하는 심정으로 당신께 예물을 정성껏 바칠 때 하나님은 그의 그러한 심령을 기쁘게 받으신다(신 16:16-17). 한편 본 장에 나타난 족장들의 솔선 수범하는 헌신을 통해 우리는 지도자의 모범이 가져다 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교회 지도자는 섬김 받고 주어진 지위를 누리기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위와 능력을 많은 성도들의 유익과, 특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선택된 것이다(요 13:12-17).



3절, 주석과 해설


덮개 있는 수레 여섯 대와 소 열두 마리

여기서 ‘덮개 있는 수레’(히, 에겔로트차브)는 70인역(LXX)에서는 ‘훌륭한 마차’(헬, 하막사스 람페니카스)로, 불가타(Vulgate)역에서는 ‘지붕이 있는 마차’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기독교 사가(史家) 유세비우스(Eusebius, A.D. 260-340)는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수레’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원문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은 ‘둥근 덮개’(히, 차브)가 있는 ‘소가 끄는 수레’(히, 에겔로트)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그 당시에 사용하던 ‘들 것’과 같은 바퀴 없는 수레인지 아니면 바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광야라는 특수 지형과 운반해야 할 기구가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바퀴가 달린 수레’로 추측할 수 있다. 한편 이 수레는 소 두 마리가 끄는 것이었다(예물 중 수레와 소의 비율이 2:1인 점에 유의하라).


지휘관 두 사람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지휘관들은 각 지파와 자신의 형편에 따라 많이 또는 적게 헌납할 수도 있었겠으나, 여기서는 모두 동일한 양의 예물을 바쳤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수 있다. (1) 봉헌 예물이 헌납되기 전 하나님께서는 미리 각자의 마음을 감동 감화시키사 상호 아름답게 협력하도록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든 인간 헌신의 근본적인 출발은 하나님께로부터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무리하게 강요하거나 수탈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성된 예물을 받으시는 분이시며, 그를 통해 봉헌자의 영육을 더욱 풍성케 하시는 분이심을 시사한다(잠 11:25, 빌 4:17). (2) 하나님은 각 지휘관들에게 동일한 관심을 보이시며 동일한 헌신을 요구하셨다. 이는 마치 오늘날, 모든 주의 일을 맡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공평하게 미치는 동시에 또한 각각에게 최선의 충성이 요구되는 것과 같다. (3) 합심하여 드린 예물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위해 크게 사용된다(고후 8:1-6).


장막 앞에 드린지라

여호와의 상징적 임재 처소인 ‘장막’ 앞, 곧 번제단 있는 곳에 예물을 가져왔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표현은 지휘관들이 그 헌물을 ‘여호와께 드린지라’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5절, 주석과 해설


레위인에게 주어

하나님께 드린 예물은 주로 제사장들의 생계용으로 할당되었다(레 2:3, 7:6, 8, 14, 15, 28-34).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제사장의 직무를 도와 성막 일을 담당하는 레위인들에게 배당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하나님의 자의(自意)에 의해서 사용되며,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제공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진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고전 9:11-14).


각기 직임대로

즉 ‘레위인들 곧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은 직무대로’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맡은 각각의 직무의 경중(輕重)을 깊이 이해하시고 그들에게 합당한 선물을 제공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일을 맡기실 뿐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다(왕상 3:6-13). 그러므로 하나님은 결코 비이성적이거나 무모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인간이 처한 환경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시며(히 4:15), 모든 일에 질서와 평화를 존중히 여기시는 분으로서 초합리적일지언정 결코 비합리적이시지 않다.


회막 봉사에 쓰게

이처럼 하나님은 회막이 완공되자 그 회막의 이동을 위한 대책까지 마련하신 지혜로우신 분이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만남의 처소를 개설하셨고 그곳의 운용까지도 주도하셨다. 이는 결국 신앙 생활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시사한다. 아울러 하나님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신앙 원칙을 가르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의 소유를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으로써 큰 죄악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건강, 시간, 재산, 능력 등)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로서(롬 11:36),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며, 항상 청지기 의식(stewardship)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벧전 4:10-11).



7절, 주석과 해설


게르손 자손들

이들은 성막의 휘장들과 덮개 등 주로 덮고 치는 휘장 부분을 맡았다(4:25-26). 따라서 그들은 주로 성막의 뼈대가 되는 기둥과 널판 및 받침 등의 무거운 부분을 맡았던 므라리 자손들에 비해 수레와 소들이 덜 필요했다(4:21-33). 따라서 그들은 여섯 대의 수레 중 2대, 열두 마리의 소 중 4마리를 할당받았다. 이것은 므라리 자손의 절반 수준이었다.



8절, 주석과 해설


므라리 자손

이들은 성막 부품 중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널판, 기둥, 띠, 받침, 말뚝 등을 운반하는 직임을 맡았다(4:31-32). 이것들은 매우 무거운 부품들이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운반 도구가 필요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족장들이 바친 예물(수레 6대, 소 12마리) 중 2/3에 해당되는 수레 4대와 소 8마리가 할당되었다.



9절, 주석과 해설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고핫 자손들은 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기물, 곧 지성물을 맡았다(4:5-15). 그래서 그들은 성막 이동시 그 성물(聖物)을 ‘어깨로 메어’ 운반해야 했다(4:18-20). 한편, 팔레스타인 주변국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던 이스라엘 왕정 초기에 다윗은 위의 지성물 운반법을 무시한 채 법궤를 옮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적이 있다(삼하 6:1-11). 여하튼 지성물을 책임졌던 고핫 자손에게는 ‘어깨’ 외에 다른 수송 수단이 필요치 않았으므로 족장들이 바친 예물은 제공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가장 명예롭고 거룩한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바로 그 직임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독특하고도 풍족한 은혜를 골고루 채워주신다(고후 12:9).



10절, 주석과 해설


제단의 봉헌

제단을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여 바칠 때에 공식적으로 드리는 최초의 제전(祭典)을 가리킨다. 이 제전은 거룩한 기름, 곧 관유(출 30:22-33)와 희생의 피를 바름으로써 절정에 이른다(레 8:10, 15). 그와 더불어 백성들의 각종 자발적인 예물들이 단 앞에 바쳐짐으로써, 그 제전은 온 백성이 경하(慶賀)하는 기쁨의 의식(儀式)이 된다. 한편 여기서 ‘봉헌’(히, 하누카)이란 말 속에는 새 건축물을 ‘헌납하다’는 의미 외에 ‘신적(神的) 권위를 부여하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원어 ‘하누카’는 후일 수전절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편 애굽과 같은 이방 종교 문화에서는 이러한 의식이 사악한 세력을 축출하는 제식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의 봉헌은 이러한 축사적(逐邪的)인 의미는 전혀 없으며 오직 ‘거룩한 헌납’, 곧 하나님께 그 소유권을 공식 이전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한편 가나안 정착 이후 성전 완공 때(왕상 8:63, 대하 7:5)와 단의 축성(대하 7:9),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 완성시(느 12:27)에 이 ‘봉헌’예식이 치뤄졌으며, 그 때마다 전 국가적인 축하 행사와 성대한 예식이 치뤄졌다. 여기서 발견하듯이 ‘봉헌’이란 단순히 종교적인 건축물의 헌납과 구별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까지 이르는 포괄적인 의식이었다. 그러므로 이는 자신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실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며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참 봉헌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롬 11:36).


헌물을 가져다가 … 제단 앞에 드리니라

각 지파를 대표하는 12족장들은 단을 구별하는 날 일제히 자신들의 예물을 번제단 앞으로 가져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각각의 예물을 실제적으로 드린 날은 11절 이후로부터 83절까지 나타나는 것처럼 12일 동안 각자에게 할당된 날이었다(11절).



11절, 주석과 해설


여호와께서 … 이르시기를 … 하루 한 사람씩

12일 동안의 예물 헌납에 관한 내용을 지시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즉 하나님은 한꺼번에 혼잡스럽게 드려지는 예물을 원치 않으셨으며, 질서 속에서 경건하고도 엄숙하게 진행되는 예식을 원하셨다. 여기서 (1) 하나님은 질서를 사랑하시는 분임과(고전 14:33) (2) 각각의 헌신을 동일하게 인정하시는 공평한 분이심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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