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본문인 민수기 7장 12절부터 89절까지의 말씀은, 성막을 봉헌할 때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하나님께 매일 헌물을 드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지파들이 함께 동일한 헌물을 드렸고 빠짐없이 드렸습니다. 본문의 큐티와 설교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합니다.
민수기 7장 12절-89절, 모두 함께, 빠짐없이
12절, 주석과 해설
첫째 날에
하나님께서 제단의 봉헌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첫 날을 가리킨다. 한편 제사의 순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쪽에 배진한 유다 지파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곧 행군 대형으로 실시되었다(2:3-31). 이것을 보더라도 이 봉헌 예식은 인구 조사 이후에 이뤄진 것임을 알 수 있다(1절).
유다 지파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으나 야곱의 첫째 아들 르우벤의 잘못(창 35:22, 49:3-4)으로 인해 르우벤 대신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장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도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 서서 장자 지파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1:20-46). 한편 여기서 제사드리는 순서와 행군 순서가 동일한 것은(2:1-34),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의 면모를 잘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혈통적인 면보다 영적인 면이 강조된 것임을 보여 준다. 특히 유다 지파의 부각은 이 지파를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의 지위와 사역이 어떠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인도자시며, 왕이실 뿐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로서(고전 15:23), 우리의 유일한 대표자가 되신다.
13절, 주석과 해설
그의 헌물
즉 ‘제단의 봉헌’을 위해 드린 예물(10절)을 가리킨다.
성소의 세겔
여기서 ‘세겔’은 당시 무게로 측정되던 화폐 단위였다. 이것은 크게 성소용 ‘성소의 세겔’(출 30:13, 레 27:3)과 궁중용 왕의 세겔 및 일반 거래의 일반 세겔이 있었는데 보통 왕의 세겔은 일반 세겔의 두 배가 된다. 그리고 1세겔은 대략 11.4g의 무게에 해당된다. 자세한 내용은 3:47 주석을 참조하라.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반
여기서 ‘은반’(히, 카아레트 케세프)이란 은으로 만든 사발, 또는 큰 접시를 가리킨다. 이것은 진설병을 담는 ‘대접’(히, 케아라)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출 37:16). 그리고 그 은반의 무게는 130세겔인데, 1세겔(shekel)을 11.4g으로 볼 때 약 1.5kg 정도의 무게를 지닌 것이다.
은 바리
여기서 ‘바리’(히, 미즈라크)는 일종의 대야 또는 종지(basin)로서 재나 포도주를 담는 성소의 기물 증 하나였던 것 같다(출 27:3).
소제물
이 헌물은 잘 빻은 곡식 가루를 기름, 유향과 함께 드리는 헌물로서 곧 봉사와 충성을 상징하는 헌물이다(레 2:1-16).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이 예물이 지니는 상징성은 성령에 의한 봉사, 곧 성령 안에서 그분의 인도를 통한 봉사를 상징한다(레 2:1). 성경적 의미상 기름(oil)은 대체적으로 성령을 상징한다.
14절, 주석과 해설
금 그릇 … 향을 채웠고
여기서 ‘그릇’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프’는 원래 오목한 ‘손’이란 뜻으로서 숟가락 외에 ‘손잡이 달린 오목한 그릇’을 뜻하기도 한다. 본 절에서는 이 안에 ‘향’을 채웠다는 점에서 ‘오목한 그릇’으로 봄이 옳다(출 25:29). 한편 ‘향’이란 분향단에 쓰이는 거룩한 향으로서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에 유향을 섞어서 제조하였으며(출 30:34), 후대에 와서는 더욱 복잡한 제조 방법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즉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약 13종의 재료를 배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지성소 휘장 앞의 분향단에서 태워져 그 냄새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곧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레 2:1). 따라서 이스라엘 12지파 족장들이 소제물에 향을 놓아드린 것은 그들의 봉사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더불어 드려졌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15절, 주석과 해설
번제물
번제(燔祭)는 제물을 단에서 전부 태워 그 향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제사를 가리킨다(레 1:3 주석 참조). 드려지는 예물은 드리는 자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수송아지, 숫양, 숫염소,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중 선택하여 드렸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수송아지, 숫양, 1년 된 어린 숫양’이 각각 한 마리씩 제물로 바쳐졌다. 이는 단순히 드리는 자의 경제력이 넉넉했다는 사실보다는 드리는 자가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자였기에, 그가 각 지파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여러 종류의 번제물을 드린 것이다. 그리고 이 제사는 하나님께 대한 자발적인 헌신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먼저 자신을 백성의 대속 제물로 아낌없이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을 예표하며(히 10:5-7), 아울러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자신을 드리기를 힘써야 하는 성도들의 헌신적인 자세를 예표한다(롬 12:1-2).
16절, 주석과 해설
속죄제물
속죄제는인간이 여호와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죄를 사함 받고자 드리는 제사이다. 따라서 속죄제물은 범죄한 인간이 죄를 속함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 제물이다. 그러나 고의성이 다분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범죄를 지은 자에게는 이 제사 제물이 전혀 소용없었다(15:30-31, 히 10:26-27). 그런데 속죄제사는 공식적인 회집이 있는 날이면 직접적인 죄악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의무적으로 드려졌는데, 이것은 인간이 생래적(生來的)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던 중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저질러진 죄악을 제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 의식’을 지니는 것만큼 진솔하고 아름다운 자세는 없을 것이다(요일 1:8-9). 한편 본 절에 제시된 ‘숫염소’는 속죄제에 요구되던 제물 중 특별히 족장이 범죄했을 때 드리는 제물(레 4:22-26)이다. 끝으로 이러한 속죄제물은 구속사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후 5:21, 갈 3:13, 히 13:11-13).
17절, 주석과 해설
화목제물
화목제는 각종 제사 중 가장 자유롭고 화목한 분위기에서 드려지는 것으로(레 3:1, 6), 하나님과 드리는 자의 친교와 화목을 주목적으로 하는 제사이다. 그리고 화목제물에는 감사 제물과 낙헌 제물, 서원 제물 등 세 종류가 있는데 여기서는 감사를 위해 바쳐졌다. 특별히 본 절에 언급된 화목제물의 양은 규정된 화목제의 제물 양보다 월등히 많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및 그들을 대표한 각 족장들과 얼마나 긴밀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고 계신지 잘 보여 주고 있다.
18절, 주석과 해설
18-83절
이곳에 언급된 내용은 각 족장의 지파 및 신분을 소개하는 것과 그 족장들이 드린 날짜, 그리고 19절에 ‘그 예물’(히, 카르바누)이란 말 대신에 ‘그 드린 예물(히, 하케리브 에트 카르바누)이란 말을 제외하고는 12-17절에 언급된 내용과 모두 동일한 순서에 따라 동일하게 중복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각 족장들이 제물을 드릴 때마다 똑같은 내용이 계속 복사판처럼 언급된 것은 (1) 바쳐진 각각의 예물이 소중한 것이며 (2) 그 예물을 바친 인격 모두가 고결하고 (3) 그 각각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의미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바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언약 공동체로 보시되 또한 그 개개인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히 여기신다는 사실이다.
48절, 주석과 해설
일곱째 날
12명의 족장 중 일곱 번째로 드려야하는 족장이 그 예물을 드린 날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는 이 날을 반드시 안식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12족장들이 예물을 드렸던 12일 동안 한 번 또는 두 번의 안식일이 끼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식일에 예물 드리는 일을 멈추었다는 기사(記事)는 언급되지 않았다. 즉 예물 드리는 일은 안식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즉 예물 드리는 일은 안식일에 구애받지 않고 12일 동안 계속 진행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진리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스러운 일은 결코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후일 이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5:9-10). 그분은 의문화(儀文化)된 형식과 전통의 굴레(롬 2:29, 7:6, 고후 3:6)에서 벗어나 과연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시고 가르치셨으며 또한 행동하셨다(마 12:1-8). (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일종의 신성한 의무 조항이다. 이 일은 인간의 환경과 의지를 초월하여 어떤 경우에라도 실행되어야 할 인간의 기본 도리이다(고전 10:31).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가운데 진행되어야 한다(고전 14:40). (4)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은 상호 모순되는 것이 없다. 비록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충되는 듯한 부분이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대전제 앞에 모든 율법은 완벽한 조화와 상호 보완 기능을 갖는다.
84절, 주석과 해설
84-88절
이스라엘 12족장들이 정성껏 드렸던 예물의 총합계가 기록되었다.
- 예물: 은반 12개(1,560세겔), 은바리 12개(840세겔), 금숟가락 12개(120세겔).
- 번제물: 수송아지 12마리, 숫양 12마리, 1년 된 어린 숫양 12마리, 각종 소제물.
- 속죄제물: 숫염소 12마리.
- 화목제물: 수소 24마리, 숫양 60마리, 숫염소 60마리, 1년 된 어린 숫양 60마리.
89절, 주석과 해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인간과의 만남을 위해 ‘회막’(1:1)을 개설하셨고, 그곳에서 그들과 만날 것을 약속하셨다(출 25:21). 그러므로 ‘회막’(히, 오헬 모에드) 곧 만남의 장막(tent of meeting)은 상호 친밀한 교제와 전인격적인 대화를 전제로 한 것으로서, 영광의 하나님께서 죄인된 초라한 인간을 맞이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속성이 가장 잘 나타난 가견적인 상징물이다. 이것은 인간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 ‘여호와께 말씀’하려 했다는 사실에서도 이 만남의 장막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여호와께
직역하면 ‘그에게’이다. 그러므로 혹자는 본 절에 3인칭 대명사가 갑자기 사용된 점이 어색하다고 보면서 본 절이 원본에는 포함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바로 얼마전 12족장들에게 봉헌 예물을 명하신 여호와(11절)를 ‘그’라고 호칭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
여기서 ‘속죄소’란 증거궤를 덮고 있는 2.5 X 1.5 규빗(1규빗=45.6cm)의 뚜껑(정금판)을 의미한다(출 25:17 주석). 이 뚜껑 좌우에는 금으로 만든 그룹 둘이 날개를 펴고 마주 대하여 속죄소를 덮고 있다(출 25:17-22). 바로 이 증거궤의 뚜껑에 해당하는 견고한 정금 판(板)을 히브리어로는 ‘카포레트’라고 하는데, 영어 번역본에는 보통 ‘시은좌’(propitiatory) 또는 ‘자비의 처소’(the mercy seat)로 번역되었다. 후일 히브리서 기자도 이를 가리켜 ‘은혜의 보좌’라고 명명하였다(히 4:16). 그런데 문자적으로 ‘카포레트’라는 말은 ‘뚜껑’(lid)을 의미하나, 이 말의 어근 ‘카파르’가 ‘덮다’, ‘속죄하다’, ‘달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카포레트’라는 말이 단순한 뚜껑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카포레트’는 레위 제사 의식에서 비롯된 말로서 죄를 ‘덮다’, ‘속죄하다’, ‘화해시키다’(to propitiate)란 의미를 가진 ‘은혜의 처소’라고 할 수 있다. 즉 이곳은 하나님께서 죄악된 인간을 당신의 사랑으로 속죄하시는 은혜로운 자비의 처소이다. 이처럼 속죄소가 단순히 언약궤 뚜껑이나 또는 그룹들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두 그룹들 사이의 공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출 25:17-22), 이곳은 하나님의 지상 임재 처소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시기를 기뻐하시는 바로 그 장소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룹’이 하나님의 임재 처소마다 나타나 그분의 영광과 거룩을 선포한다는 측면에서 이곳은 또한 지극히 영광스럽고 거룩한 곳임을 알수 있다(출 25:18). 그러므로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회중을 위하여 피 뿌리는 의식을 속죄소 위에 거행할 때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구름이 그곳 위에 내려 덮혔던 것이다(레 16:2). 한편 구약 시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속죄 사역을 가장 명쾌하게 대변해 주는(레 16:14-15) 이곳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장소를 예표해 준다. 즉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상징하는 증거궤(법궤) 위에 희생제물의 피가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은, 역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 곧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보혈의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인들이 구속함 받았다는 사실을 선명히 연상시켜 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친히 당하심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죽음과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하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은혜로운 길을 마련해 주셨다(히 7:25).
말씀하시는 목소리
한편 모세는 ‘회막’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목소리’(히, 쿨 미다베르)를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란 이상(vision) 중에서 감지되는 환청(幻聽)이나 내면의 소리(inwardly voice)가 아니라 모세의 귀에 분명 들려질 뿐 아니라 그가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직접적이고도 생생한 실제 음성을 가리킨다(12:8, 출 3:4, 겔 2:2).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의 말을 들으셨을 뿐 아니라, 그에게 친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모세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만나며 또한 당신의 뜻을 온 이스라엘에 전파하는 중보자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2) 또한 이스라엘에 대해 당신이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음을 암시한다. (3) 그리고 이것은 12 족장들이 드린 봉헌 예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시사한다(Keil). (4)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직접적인 계시를 통하여 당신이 이스라엘의 실질적이고 참된 통치자로서 그들 가운데 함께 동행하심을 인식시키셨다. 이처럼 ‘말씀을 통한 임마누엘 사상’은 후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사건을 예표한다(Patrick). 이와 같이 당시의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시며 그들의 소원과 간구를 들으실 뿐 아니라, 그들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시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역시 함께 거하시며 친히 말씀하시고 교제하시기를 기뻐하신다(요 14:13-14).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