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인 사도행전 13:32-52의 말씀은, 핍박 중에도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 전파 사역을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며, 인간의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 넘는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삶의 기쁨을 누리고 복음 증거의 삶을 살아갑시다.
사도행전 13장 32절-52절,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10년 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국민의 종교 분포 조사에 따르면, 불교 인구가 1,072만 6천 명, 기독교 인구가 861만 6천 명, 천주교 인구가 514만 6천 명으로 나타났습니다. 불교와 천주교는 각각 3.9%, 74.4%로 증가했지만, 기독교는 1.6% 감소했습니다. 이러한 감소의 원인으로는 교회의 분열과 분쟁, 교회학교에 대한 투자 부족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들어온 것은 1885년으로, 유교와 불교사상의 박해와 조정의 박해 등으로 인해 교회를 세우고 전도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1907년 1월 16일,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부흥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길선주 목사는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을 받아야 핍박을 이기고, 교회를 세울 수 있다."라고 말하며, 성령 받기를 사모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모인 사람들은 성령을 받기 위해 회개하며 간절히 기도했고, 그 결과 성령의 역사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 모든 사람이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며 병고침을 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 교회의 부흥이 시작되어, 평양에서는 한 해 동안 4만 명이 예수를 믿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부흥의 불길은 우리나라 전체로 번졌습니다. 2023년은 평양에서 일어난 성령의 부흥 사건이 100주년이 되는 해로, 한국 교회는 '어게인 1907년'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평양 대부흥의 역사를 맞이하여 침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워 갑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 때문에 핍박과 환난을 당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은 대조적으로 사용되는데, 술에 취한 사람은 평소에 없던 용기가 생겨 담대하게 행동합니다. 반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해지며,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3장 50-51절에서는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여러 동네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동네도 있었지만, 욕을 먹고 쫓겨나거나 심한 핍박을 받는 동네도 있었습니다. 이때 유대인 중 귀부인과 유력자들이 선동하여 방해했지만, 이들은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담대하게 행동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오늘 우리 역시 우리의 삶이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부흥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삶
본문 52절에 보면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받을수록 더욱 기뻐하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52절을 우리 함께 읽어 봅시다.
사도행전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설교하실 때 이미 이런 상황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그들을 영접하지 않으면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눅9:5) 이 말씀은 성도들이 인간적인 정에 끌리면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발에 티끌을 떨어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외로움이 되고,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된다고 해도 우리가 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떠날 곳은 떠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핍박을 받고 동네에서 쫓겨나면서도 조금도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타협하거나 영적인 침체의 늪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매우 당당하게, 담대하게 사명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때때로 좋은 일과 평탄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적지 않은 핍박과 환난과 고난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의 위험과 위기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할 일을 멈추거나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은 “성령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동력이 끊어진 방앗간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방앗간에 동력이 있으면 수십 가마도 금방 빻아줍니다. 그러나 동력이 없으면 사람이 직접 해야 합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니 쉬운데, 성령을 받지 못하면 혼자서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다가 지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마치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오토바이를 탄 사람과 같이 지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능력이 있고, 권능이 있고, 세상 사람보다 앞장서서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새롭게 새롭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던 중, 한 선교사의 조언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술과 담배를 끊고, 도박과 건달 생활을 그만두는 등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며 성경을 읽고, 숭실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오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3·1운동을 주도하는 등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은 변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으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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