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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2-18절,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 품에서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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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2-18절,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 품에서 야고보서 1장 12-18절, 고단할 때 빛이신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새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서론 로뎀나무 그늘 아래 힘없이 주저앉아 "여호와여,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탄식하던 선지자 엘리야의 깊은 탈진을 기억합니다.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며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던 영적 거인도, 끝없이 옥죄어 오는 위협과 누적된 고단함 앞에서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현대인의 심리와 탈진을 연구한 학자들은 번아웃 증후군을 가리켜 " 감정의 연료가 완전히 바닥나 영혼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상태 "라고 진단합니다.  오늘 이른 새벽, 무거운 눈꺼풀과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이끌고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오신 성도 여러분의 어깨에도 어쩌면 그 차가운 탈진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혀 있을지 모릅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생계를 잇기 위해, 쉼 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거친 파도를 견뎌내느라 영과 육이 새카맣게 타버린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 제 삶은 왜 이토록 곤단하기만 합니까?"라고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탄식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바로 그런 성도들을 향해 오늘 말씀을 건넵니다. 박해와 가난으로 흩어져 숨죽여 흐느끼던 성도들의 거친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그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영혼 깊은 곳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간절함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론 1. 흔들리는 인생의 밤, 변함없는 빛들의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고난이 깊어지면 사람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립니다. 몸이 아프고, 물질에 쪼달리게 되고,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질 때, 우리 안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시나? 왜 나를 이런 구렁텅이에 밀어 넣으실까?" 하는 서운함과 의심이 생깁니다. ...

[10월 15일 묵상] 야고보서 1장 1-11절, 여러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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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11절, 여러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야고보서 1장 1-11절, 시련을 넘어 온전함으로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새 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 서론 이른 새벽, 쌀쌀한 공기를 가르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 우리는 저마다 가슴속에 크고 작은 짐을 안고 이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펼쳐보면,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목전에 둔 그 캄캄한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엎드려 울부짖으셨던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가장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인생의 모진 시험과 마주할 때는 마음이 흔들리고 눈물이 쏟아지기 마련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가 편지를 보낸 초대 교회 성도들의 형편도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곧 나그네들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거친 차별과 가난 속에서 하루하루 믿음을 지키는 일 자체가 버거운 영적 전투였습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오늘 새벽 야고보서 1장의 말씀을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위로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본론 1. 온전한 인내를 이루는 기쁨을 가지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편지를 시작하자마자 아주 낯설고 충격적인 권면을 건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상식적으로 시험을 만나면 슬퍼하고 낙심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억지로 웃는 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시험’으로 번역한 헬라어 πειρασμός(페이라스모스)는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유혹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온갖 종류의 외적 시련과 환난을 두루 품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10월 11일 묵상] 사사기 20장 8-28절, 결론을 내리고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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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8-28절, 결론을 내리고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사기 20장 8-28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8-28절, 나의 힘을 포기하는 엎드림의 시간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서론: 응답을 구하지만 묻지 않는 우리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내용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저도 새벽에 하나님께 간구하기 위한 기도의 제목들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에 나오면서, 하나님께 묻기보다는 이미 내 생각이 꽉 차 있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의 자리에 앉자마자 막힘없이 내가 정한 청구서부터 하나님께 내밀지는 않습니까. 자녀의 혼사나 취직, 은퇴 후의 거처, 마음에 차지 않는 교우와의 갈등에서 내가 취할 행동까지 이미 결론을 다 내놓은 채 앉아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중에 답을 미리 정해놓고 묻는다는 '답정너'라는 속어가 있지요. 낯부끄럽지만, 매일 새벽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나와서 보이는 모습이 '답정너'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구한다면서도 내 마음에 드는 응답만 하나님께 조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삶의 운전대는 넘겨주지 않는 고집,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사십만 군대가 꼭 그랬습니다. 형제인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땅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스라엘 총회는 거룩함을 지키겠다는 의분으로 미스바에 모여, 제비뽑기로 전투병을 추리고 보급 부대까지 조직했습니다. 군사와 보급 계획을 제 머리로 다 짜놓고서야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미 결정해 놓은 전쟁에 대한 요식 행위였습니다. 본론: 깨어지는 자기 의와 십자가의 온전한 굴복 1. 계산된 열심과 패배한 40만 대군 그들이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드린 질문의 핵심을 보...

[10월 10일 묵상] 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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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20장 1-7절, 칼을 뽑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는가 사사기 20장 1-7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20장 1-7절, 분노가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서론: 분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부의 사회학자들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분노 시대"로 정의를 내립니다. 도로 위에서 운전자들은 분노 속에서 운전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정치 속에도 분노가 가득 차 있고, 가정에도 분노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나와 생각이 다르면 거부하고 분노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분노하고 다투는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고, 나 자신도 분노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의 해명에는 관심이 없고 듣지도 않으며, 내 생각과 내 감정만을 중시하면서 분노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이스라엘 총회도 자신들의 감정에만 충실하였습니다. 사건의 전후를 따지지도 않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레위인의 첩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온 이스라엘 지파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일어났습니다. 미스바에 집결한 군사만 무려 사십만 명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여호와 앞에” 모였다고 증언합니다. 겉모습만 보면 불의를 참지 못해 달려 나온 거룩한 영적 각성을 한 것 같습니다. 기브아의 패륜을 심판하겠다며 피를 흘릴 기세로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총회 뒤에 숨은 실상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십만 명이 모여 피 끓는 의분을 쏟아내면서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는 사람이 사십 만명 중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엎드려 묻는 간절한 기도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본론: 내 소견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1. 자기 의(義)에 취해 칼을 빼어 들다. 총회 한복판으로 걸...

[10월 8일 묵상] 사사기 19장 11-21절,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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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21절,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다 사사기 19장 11-2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11-21절, 신앙의 문은 열려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새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서론 여러분, 길 한복판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도 못 본 척 지나친 적이 있습니까? 눈은 분명히 마주쳤는데 마음속에서 얼른 계산부터 합니다. 괜히 나섰다가 일이 커지면 어쩌지. 누군가 돕겠지. 저도 이런 본문 앞에서는 쉽게 남을 꾸짖지 못하겠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미루고, 형편이 뻔히 보이는데도 모른 척한 얼굴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말씀을 펴 놓고도 마음 한쪽이 부끄러워집니다. 기브아 사람들의 얼굴이 낯설지 않습니다. 내 얼굴도 그들 사이에 보입니다. 레위인 일행은 여부스를 지나 기브아로 갑니다. 여부스는 이방인의 성읍이고, 기브아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이 낫겠지. 그런 기대였을 겁니다. 그런데 해가 지도록 아무도 문을 열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여행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짚도 있고 양식도 있고 포도주도 있었습니다. 잠자리 하나면 됐습니다. 그 작은 자리마저 내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브아의 죄는 요란한 함성보다 먼저, 조용한 외면에서 시작됐습니다. 본론 1. 왕이 사라진 마음은 이웃을 외면합니다 사사기는 이 시대를 한 문장으로 진단합니다. 제가 사사기 21장 25절을 읽겠습니다. 사사기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다는 말은 왕궁이 비었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말씀보다 내 형편이 앞섰고, 이웃의 고통보다 내 평안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그러자 사람을 보면서도 짐으로만 여기게 됐습니다. 기브아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을 겁니다. 하루 종...

[10월 7일 묵상] 사사기 19장 1-10절, 그 저녁, 서둘러 길을 떠나지 못한 우리에게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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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9장 1-10절, 그 저녁, 서둘러 길을 떠나지 못한 우리에게 사사기 19장 1-1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9장 1-10절, 떠나야 할 순간에 머물고 있습니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새벽에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남편의 무심한 눈길에 속에서부터 무언가 치밀어 오르지 않습니까? 소파에 누워 TV만 보는 남편을 보며 혀를 차고, 남편은 밥그릇 내려놓는 소리에도 날을 세우는 아내를 보며 입을 닫지 않습니까? 수십 년을 함께 살았으니 다 안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굳게 닫힌 철문 같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자식의 섭섭한 말 한마디에 며칠씩 가슴을 닫고, 자존심에 상처 하나 나면 몇 달을 꽁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강단에서는 사랑하라 외치지만, 집에 돌아가 사소한 일로 부딪히면 옹졸한 자존심을 꺾지 못해 며칠을 입을 닫습니다. 겉은 그럴듯한데, 속은 무너져 있을 뿐입니다. 본론 오늘 사사기 19장의 레위인의 모습이 이같은 우리의 영적 민낯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룩해야 할 레위인이 첩을 두었고, 그 첩이 도망치자 넉 달이나 방치하다 뒤늦게 찾아가 ‘다정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얼핏 로맨스 같지만, 체면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비겁한 미봉책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겉만 그럴듯하고 속은 무너져 있는 우리의 비겁한 관계를 정면으로 비춥니다. 1. 허물어지는 인간의 열심 레위인이 장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보십시오. 장인은 사위를 반기며 사흘 동안 먹고 마십니다. 넷째 날에도, 다섯째 날에도 장인은 먹고 마시며 머물라고 사위를 붙잡습니다. 5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사사기 19:5, 넷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

[10월 6일 묵상] 사사기 18장 21-31절, 조용히 해, 안 그러면 다친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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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8장 21-31절, 조용히 해, 안 그러면 다친다 사사기 18장 21-3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8장 21-31절, 불안해서 쥐어짠 힘이 인생을 무너뜨릴 때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살면서 언제 가장 화가 치솟습니까? 내 뜻대로 일이 안 풀릴 때입니다. 뒷바라지한 자식이 내 뜻과 다른 길을 가거나, 수십 년 함께 산 배우자가 내 마음을 몰라줄 때 불쑥 목소리가 커집니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감히 나를 무시해? 서운함과 분노가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나이 들수록 사회적 힘이 줄어들면 통제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더 독해집니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뭘 꺼내 듭니까? 매서운 눈빛, 차가운 침묵, 상대를 죄인 만드는 독설입니다. 완력으로 꽉 쥐어짜는 강압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 신앙 연조와 직분을 앞세워 사람들을 쥐고 흔들려 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 포장하지만, 실상은 내 손에 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통제욕입니다. 뜻대로 안 되면 폭력적인 강압을 휘두르는 것, 이것이 감출 수 없는 우리의 민낯입니다. 본론 1. 힘으로 세운 인간의 탑은 반드시 허물어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단 지파는 하나님께 약속받은 땅이 있었지만, 아모리 족속이 두려워 싸워보지도 못하고 산지로 쫓겨났습니다. 사명 앞에서 도망쳤던 그들이 어디로 눈을 돌립니까? 북쪽 변방에서 평화롭게 살던 힘없는 라이스 족속이었습니다. 무장한 육백 명이 미가의 집을 들이쳐 신상과 에봇을 쓸어 담고 제사장까지 가로챕니다. 힘으로 남의 것을 약탈한 것입니다. 신상을 빼앗긴 미가가 이웃들과 쫓아와 울부짖습니다. 24절에서 미가는, “너희가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내게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호소합니다. 은을 녹여 만든 신상이 인생을 지켜줄 줄 알았는데, 힘센 자들이 빼앗...

[10월 5일 묵상] 사사기 18장 1-20절, 신앙에는 편한 지름길이 없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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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8장 1-20절, 신앙에는 편한 지름길이 없습니다 사사기 18장 1-20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8장 1-20절, 거룩한 말 뒤에 숨겨둔 내 욕망을 버리라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새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서론 10월 첫 월요일 새벽, 제법 쌀쌀해진 가을 공기입니다. 이렇게 쌀쌀해지고 곧 추워질텐데, 날씨가 차가워질수록 우리의 마음에는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새벽에 좀 쉴까? 새벽 예배가 우리 신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새벽을 깨우고 몸을 움직이고 수고하여야 우리의 신앙이 유지되고 성장하는 것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저도 아침에 쌀쌀하다고 해서 "좀더 자자, 좀더 눕자"라고 하다보면, 그 날 하루를 놓치게 되는 경우들이 요즈음에는 생겨나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몸을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적당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걸어 주어야 우리 몸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골치 아픈 갈등을 피하고 싶고, 땀 흘리지 않고 단숨에 닿는 지름길을 바라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자녀를 키울 때도, 직장이나 일터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파도를 넘을 때도 ‘어디 속 편하고 수월한 길 하나 없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쳐 지나가지요. 하지만, 인생의 경험이 쌓일수록, 지름길처럼 보였던 선택이 도리어 우리 영혼을 더 깊은 수렁 속에 빠뜨렸던 기억을 한두 번쯤은 품고 계실 겁니다. 본론 오늘 본문 속의 단 지파가 바로 그 지름길의 덫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들은 원래 블레셋과 아모리 족속이 거주하는 거친 땅을 분배받았지만, 믿음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거룩한 수고가 두려워 도망치듯 물러섰습니다. 그러고는 저 북쪽 구석에 자리한 작고 평화로운 성읍 라이스를 찾아내어 ‘여기가 살기 딱 좋다’며 환호성을 질렀지요. 겉으로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땅을 찾았다며 제사장의 축복까지 빌었지만, 그...

[10월 4일 묵상] 사사기 17장 1-13절, 내 주머니 속에 갇힌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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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7장 1-13절, 내 주머니 속에 갇힌 하나님 사사기 17장 1-13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7장 1-13절, 내 편의대로 차린 신당, 이제는 멈출 때입니다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새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서론 찬 바람이 옷깃을 제법 파고드는 시월 첫 주일 새벽입니다. 지난 추석 명절 전, 교회 사무실에서 책을 읽다가 설교를 위한 아이디어를 적어 두었던 포스트잇이 감쪽같이 사라져 한참을 뒤진 적이 있습니다. 책상 위는 물론이고 거실 소파 밑, 심지어 부엌 찬장 앞까지 샅샅이 뒤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보던 책의 책갈피로 붙여 두었더군요. 황당한 마음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가만 보면 이와 참 닮았습니다. 참된 평안과 안식은 이미 주님의 은혜 안에 있는데, 우리는 엉뚱한 곳을 헤매며 내 힘으로 평안과 안식을 얻으려고 온종일 종종걸음을 치곤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본론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속의 미가라는 인물이 바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은을 슬쩍 훔쳤다가 저주가 무서워 돌려주고는, 그 돈으로 그럴듯한 신상을 깎아 집안에 모셔두었지요. 길 가던 레위 청년 하나를 삯을 주고 데려와 개인 제사장으로 삼고 나서는, 이제 하나님이 내게 복을 주실 것이라며 흐뭇해합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우리 주머니 속에 집어넣어 그분을 조종하려는 데 있습니다.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편리한 신을 바라는 욕심, 그것이 미가의 신당이었으며 어쩌면 오늘 우리 가슴속에 숨겨둔 부끄러운 신당일지도 모릅니다. 1. 주께 맡길 때 평안이 시작됩니다. 우리 먼저 5절을 읽어 봅시다. 사사기 17: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이 구절에서 '세워'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

[10월 3일 묵상] 사사기 16장 15-31절, 힘이 빠져야 비로소 보입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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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6장 15-31절, 힘이 빠져야 비로소 보입니다 사사기 16장 15-31절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설교를 위한 성경 본문 연구 보고서 사사기 16장 15-31절, 내어드릴 때 시작되는 십자가의 은혜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새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서론 시월로 접어드니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합니다. 이른 시간에 몸을 일으켜 교회로 오실 때 무릎이나 허리가 뻐근해서 "아이고~"라는 가벼운 신음이 절로 나오기도 하지요. 젊을 때는 밤을 꼬박 새워 일해도 거뜬했고, 내 힘과 의지만 있으면 세상에 넘지 못할 산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쉰을 넘기고 예순, 일흔의 고개를 넘어가면서 우리는 몸으로 배웁니다. 손아귀 쥐는 힘도 예전 같지 않고, 자식 일이나 집안 살림도 내 고집대로 풀리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집니다. 내가 쥔 기운과 지혜가 다 닳았다는 사실을 문득 마주할 때, 우리 마음에 불쑥 쓸쓸함이 찾아오곤 합니다. 사사 삼손도 꼭 그랬습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을 쓰러뜨리던 괴력을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엄청난 힘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부어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어느덧 자기 원래 실력인 양 으스대며 살았습니다. 들릴라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잠들었다가 머리털이 다 밀려나갔는데도,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장담했습니다. 주님께서 이미 곁을 떠나셨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내 힘으로 얼마든지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교만한 착각이 결국 그를 쇠사슬에 묶인 죄수로 전락시켰습니다. 두 눈이 뽑힌 채 블레셋 가사의 감옥에서 짐승처럼 맷돌을 돌릴 때, 삼손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평생 자랑거리였던 완력도, 영웅이라는 명성도 흙먼지 속에 짓밟혔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 비참한 밑바닥에서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조용히 증언합니다. 스스로 버티던 견고한 벽이 와르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