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역대상 15:1-29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 오려는 두 번째의 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다윗은 3개월 간 다시 준비하여, 하나님의 방식대로 언약궤를 옮겨 옵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하여 기뻐하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갈은 방관자로서 비난만을 일삼습니다. 진정한 예배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역대상 15장 1절-29절, 춤과 냉소 사이에서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 새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서론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치던 야곱은 광야에서 잠을 자다 하늘과 이어진 사닥다리 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잠에서 깬 그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고백하며 심히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베고 잤던 돌을 가져다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어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이라 부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즉시 경배와 경외심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야곱의 모습은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옷이 벗겨질 정도로 춤을 추었던 것과 같습니다. 다윗은 왕의 체면을 버리고 힘을 다하여 춤을 추고 온 백성과 함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야곱 또한 자신의 소유(기름)를 드리고 그 장소를 거룩하게 구별하며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가 보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바로 경외와 헌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다윗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고, 무패의 장군이었으며,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 중심에는 단 하나의,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살아계신 영광의 상징인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수도인 다윗 성으로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실패의 잿더미 속에서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거룩한 길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열정적인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 생활을 다시 돌아볼 수 있길 바랍니다.
1. 내 방식의 예배, 그 비극적인 결말
사실, 첫 번째 시도는 완벽한 실패였습니다. 역대상 13장을 보면, 다윗은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온 백성을 모으고, 최고의 악기를 동원하고, 심지어 운반을 위해 당시 최신 기술이었을 '새 수레'까지 동원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축제요, 부흥 성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소들이 뛰자 궤가 떨어지려 했고, 그것을 붙잡은 웃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축제는 비명으로, 찬양은 침묵으로 바뀌었습니다.
- 역대상 13:13,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까요? 의도가 선하고 열정이 넘쳤는데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가장 무서운 함정을 보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내 방식'과 '내 열심'으로 통제하려는 교만입니다. 다윗은 편리하고 효율적인 '새 수레'를 택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새 수레'와 '다른 불'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 더 편안하고 세련된 예배를 만들기 위해 복음의 본질을 희석하고, 죄에 대한 경고를 생략하고, 성령의 능력을 인간의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성령님의 은혜의 바다를 두려워하여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인공 파도 풀'을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신앙생활이라 부르며 안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웃사의 죽음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가볍게, 내 방식대로 다루려는 시도는 영적인 죽음을 초래할 뿐입니다.
2.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더
웃사의 죽음 이후, 다윗은 3개월간 침묵합니다. 다윗은 두려워했고,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절망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가장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규례'(대상 15:13)로 돌아간 것입니다. 한 번의 실패 후에 다윗은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편리한 수레가 아니라, 구별된 자들의 '어깨'에 메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언약궤를 어깨에 메는 것은 무겁고, 더디고, 비효율적인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도에서 다윗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명령합니다. 12절입니다.
- 역대상 15: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성결하게 하는 것"(קָדַשׁ, 카다쉬)은 단순히 몸을 씻는 의식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죄를 멀리하고, 마음의 중심을 점검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자신을 구별하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일 예배를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합니까? 토요일 밤의 즐거움과 세상의 염려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차가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삶을 '성결'하게 구별하는 일주일 간의 몸부림 없이, 주일 한 시간의 예배로 모든 의무를 다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한 제자도는 교회 건물을 나서는 순간 시작됩니다. 월요일 아침, 내가 나의 어깨에 하나님의 영광을 메고 세상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의 예배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3. 다윗의 춤, 미갈의 냉소
마침내, 규례대로 준비된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옵니다. 이 순간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놀라운 장면을 기록합니다. 다윗 왕이 베 에봇 하나만 입은 채, 어린아이처럼 온 힘을 다해 뛰놀며 춤을 춥니다. 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역대상 15: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지금 다윗은 왕의 위엄과 체면은 모두 던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그토록 갈망하던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온 기쁨에 다윗은 모든 것을 내버리고 오직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의 모습은 연출된 기쁨이 아니라, 실패의 아픔을 딛고 거룩한 준비 끝에 맞이한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서 터져 나온 참 기쁨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 기쁨에 동참한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아내 미갈은 창문으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미갈의 눈에는 하나님 앞에서 춤추는 경배자가 아니라, 체통을 잃은 한심한 남편만 보였던 것입니다. 미갈은 안전한 창문 뒤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예배를 판단하는 냉소적인 관객에 불과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본문은 우리 앞에 두 개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다윗입니까, 아니면 미갈입니까?
나는 세상의 시선과 나의 체면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춤출 수 있는 '다윗'입니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며, 내 삶 전체를 성결한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영광을 어깨에 메고 나아가는 예배자입니까? 아니면 나는 안전한 거리에서 팔짱을 낀 채 예배를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열정을 '판단'하며, 한 번도 마음껏 하나님을 경배해 본 적 없는 차가운 '미갈'입니까? 나의 신앙은 뜨거운 참여가 아니라 차가운 관찰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미지근한 신앙을 버리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더 이상 우리가 만든 '새 수레' 위에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놓고 편리하게 끌고 다니려는 시도를 멈추라고 말씀 하십니다. 창문 뒤에 숨어 구경하는 관객의 자리를 박차고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
대신, 실패의 아픔을 통해 배우고, 다시 말씀의 '규례' 앞에 엎드리라고 부르십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성결하게 구별하여, 우리의 어깨 위에 하나님의 영광을 메고 세상 속으로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우리의 모든 체면과 계산을 내려놓고, 다윗처럼 온 마음으로 춤추는 진짜 예배자가 되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갈증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제 선택하십시오. 나는 왕의 춤을 추시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관객으로 남으시겠습니까?
함께 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편의와 생각으로 드렸던 미지근한 예배를 회개합니다. 창가에 선 미갈처럼 냉소적인 관객으로 머물렀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다윗의 마음을 부어주사,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내 삶을 성결하게 하옵소서. 체면을 버리고 기쁨으로 춤추는 진정한 예배자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형식적인 신앙을 회개하고 참된 예배자로 거듭나게 하소서.
-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위해 내 삶을 거룩하게 구별하게 하소서.
- 체면을 버리고 다윗처럼 기쁨으로 춤추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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