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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하 21장 15절-22절, 주석과 해설 정리

오늘 본문인 사무엘 하 21장 15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고 블레셋의 거인들을 죽임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안정시키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매일성경큐티와 10분새벽설교 준비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21장 15절-22절



사무엘 하 21장 15절-22절, 주석과 해설 정리



15절, 주석과 해설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본 구절로부터 본 장 마지막 절(22절)까지는 다윗 왕을 도와 큰 전공을 쌓은 영웅들의 위업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드’는 시기적으로 앞의 사건과 연관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윗과 블레셋과의 전투는 오직 다윗 왕의 즉위 초기에만 있었기 때문이다(5:17-25, 8:1). 또한 ‘오드’는 ‘다시’라는 뜻 이외에도 ‘그 외에’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신 4:35, 34:10, 왕상 22:7). 따라서 본 구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블레셋과의 전투는 다윗 왕의 즉위 초기에 있었던 전투들(5:17-25)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여기(15-22절)에 나타난 영웅들의 이야기들은 ‘여호와의 전쟁기’에서 본서 저자가 인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Hertzberg, Smith, 민 21:14).


내려가서

이는 유다 산지에서 블레셋 평지로 내려갔음을 의미한다.



16절, 주석과 해설


거인족의 아들

여기서 ‘거인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파’인데, 이 말은 거인족(巨人族)이었던 르바임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Keil,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신 2:11, 3:11, 13, 창 14:5). 그리고 이들의 명칭 때문에 그들이 살던 근처 계곡을 ‘르바임 골짜기’라 부른 듯하다.


삼백 세겔 되는 놋 창

1세겔이 11. 4g이므로, 삼백 세겔은 약 3.4 kg에 해당한다.


새 칼을 찬

여기서 ‘새 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솨’는 형용사형으로 ‘새 것’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비브놉이 허리에 찬 무기가 칼(Vulgate, A. V.)인지 철퇴(LXX)인지 단정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이 말은 ‘새 무기를 찬’으로 해석해야 한다(Böttcher, Philippson).


이스비브놉

‘이스비브놉’은 ‘고지대의 거주자’란 의미를 갖는다(Keil, Gesenius). 따라서 ‘이스비브놉’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라 후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에게 이러한 별명이 붙여진 까닭은, 아마도 그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고지대의 성(城) 또는 바위 틈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Keil, Lange).



17절, 주석과 해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아비새’는 다윗 왕의 조카이자 요압의 동생이다(2:18, 10:10, 18:2, 20:6).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여기서 ‘등불’은 타오르는 ‘생명’과 ‘번영’ 및 ‘영광’을 상징한다. 따라서 다윗의 신하들의 이 말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안정 및 영광의 핵(核)이신 다윗 왕이 위험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에 참전하는 것을 막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욥 18:5, 6에서는 ‘등불의 꺼짐’이 곧 ‘죽음’과 ‘파멸’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다윗 왕이 이스라엘의 등불이 된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등불이 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즉, 다윗은 본서 22:29과 시 18:28에서 여호와께서 나의 등불이시며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라고 고백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비천한 곳에서 존귀와 영광의 자리로 높여주셨음을 고백한 것이다.



18절, 주석과 해설


‘곱’에 대하여는 성경 전체에서 본 구절과 19절에만 언급되어 있을 뿐, 그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1) 혹자는 곱을 ‘게셀’이라고 주장하며(Thenius), (2) 어떤 번역본은 ‘가드’라고 번역하였다(LXX). (3) 그러나 ‘곱’이 18절과 19절에 연이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다른 지명으로 볼 수 없으며, 아마도 게셀 근처의 작은 소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Keil, Lange).


후사 사람 십브개

‘십브개’는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사람이다(대상 20:4). 그는 23:27절에 등장하는 후사 사람 ‘므분내’와 동일 인물이다(Smith). 따라서 ‘므분내’는 ‘십브개’의 오기(誤記)임이 분명하다(Fay). 즉, 필사자의 착오로 십브개를 므분내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철자상 ‘십브개’와 ‘므분내’는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십브개’는 대상 27:11에 따르면, 이만 사천 명을 지휘하는 제8부대의 지휘관이었다. 또한, ‘후사 사람’이란 말은 유다의 족속인 후사의 자손이란 의미이다(대상 4:4).


‘삽’은 ‘이스비브놉’과 마찬가지로 거인족인 르바임 족속의 용사로, 대상 20:4에는 ‘십배’라고 소개되어 있다.



19절,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 … 죽였는데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20:5에는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라고 되어 있다. 즉 본 구절의 ‘야레오르김’은 역대기에서는 ‘야일’로, 그리고 대상 20:5과는 달리 본 구절의 원문에는 ‘ … 의 아우 라흐미’란 말이 빠져 있다(한글 개역개정 성경에 있는 이 말은 첨가된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두 구절의 상이한 기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1)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역대기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그리고 본서(삼하)의 기록을 오기(誤記)로 본다(Piscator, Clericus, Michaelis, Movers, Thenius). (2) 반면, 다른 소수의 학자들은 본서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그리고 역대기의 기록을 오기라고 주장한다(Ewald, Bertheau, Böttcher). 즉 이들은 골리앗이란 이름의 사람이 실제로 둘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억측이다. (3) 혹자는 다윗과 엘하난을 동일 인물로 본다(Jerome, Targum). 즉 ‘다윗’이란 이름은 본래 이름이 아니라 왕명(throne name)이었으며, 그의 본래 이름은 ‘엘하난’이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엘하난’이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란 뜻을 지닌다는 사실은 이같은 주장을 입증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본 구절의 배경이 되는 장소, 곧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하는 장소는 ‘곱’이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장소는 엘라 골짜기이기 때문이다(삼상 17:19). 이상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본 구절이 잘못된 오기(誤記)이며, 역대기의 기록이 원문에 일치하는 올바른 기록임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역대기의 기록에 맞추어 ‘ … 의 아우 라흐미’를 첨가하여 읽어야 한다(Keil). 결론적으로 다윗은 ‘골리앗’을 죽였고, 엘하난은 ‘골리앗의 아우’를 죽인 것이다. 한편, 본 구절의 ‘엘하난’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의 한 사람인 도도의 아들 ‘엘하난’(23:24)과는 다른 인물이다.



20절, 주석과 해설


키가 큰 자

굉장한 ‘거구’(巨軀)로서, 싸움을 잘하는 ‘용사’를 가리킨다(Maurer, Bertheau, Böttcher).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

이러한 육 손과 육 발은 일종의 유전적 성격을 띠는 기형인데, 플리니(Pliny)의 ‘자연의 역사’(Natural History)에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아주 드문 기형(奇型)은 아닌 듯하다.



21, 삼마의 아들 요나단


‘요나단’은 암논의 교활한 모사(謀士) ‘요나답’의 형제이다(13:3). 한편 ‘삼마’는 다른 곳에서 ‘시므아’라고 기록되기도 하였다(13:3, 대상 2:13).



22절,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 다 넘어졌더라


본 구절은 앞의 기록(15-21절)을 한 마디로 요약해 주는 후기(後記)에 해당한다. 여기서 ‘거인족의 소생’이란 가나안의 거인족(巨人族) 원주민 ‘라파’의 후손들을 가리킨다(21:16). 따라서 이 네 사람은 라파 족속의 남은 생존자들로서, ‘가드’(수 11:22, 13:3)에서 태어나 블레셋의 용병(傭兵)으로 활약해 왔던 자들이었다. 한편, ‘다윗의 손 … 에 … ‘란 말은 (1) 다윗이 이스비브놉과 맞서 싸웠던 사실을 내포하고 있으며(Keil), (2) 또한 다윗의 신하들의 승리가 곧 다윗의 승리임을 나타내 준다(Smith). 그리고 더 나아가 다윗의 이러한 승리의 개가는 다윗의 치적과 영광을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다윗 왕국의 승리와 번영을 주도하셨던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22장에 나타나고 있는 구원을 감사하는 다윗의 노래가 바로 이같은 사실을 증명해 준다. 따라서 여기 나타난 함축된 승리의 전쟁 기사(15-22절)는 22장의 감사와 찬미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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