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큐티 본문인 전도서 2장 18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은, 전도자가 아무리 행복을 찾아도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동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전도서 2장 18절-26절, 삶은 선물입니다
18절, 주석과 해설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끼치게 됨이라’의 히브리어 기본형은 ‘야니흐’으로서 ‘주다’, ‘부여하다’의 뜻이며 본구절에서는 솔로몬의 후예에게 넘겨줌을 가리킨다(leave, KJV, RSV). 이 말 속에는 후대의 인물이 솔로몬 자신의 업적을 물려받아 잘 관리하지도 못하고 결국 물거품처럼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물론 본 절은 솔로몬이 추구하고 또 얻었던 것들을 후예에게 물려주어야만 한다는 그 사실 자체보다는 그토록 피땀흘려 얻은 것들을 정작 자신은 오래도록 누릴 수 없다고 하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1절, 주석과 해설
어떤 사람은 … 해로다
본 절 역시 솔로몬 자신이 수고하고 애쓴 결과를 그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그 후예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한탄을 나타낸 18,19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 ‘업’의 히브리어 ‘헬르코’은 10절의 ‘분복’이란 말과 같다.
22절, 주석과 해설
사람이 해 아래서 … 무엇이랴
이는 17-21절을 지나오면서 결론적으로 얻은 내용을 유도해 내기 위한 역설적 질문이다.
23절, 주석과 해설
일평생에 근심하며 … 슬픔 뿐이라
이는 흔히 ‘일평생이 근심이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이라’는 뜻으로 본다(Clark, Deane). 영역본 KJV, RSV 등도 각각 이런 식으로 번역한다(all his days are sorrows, and his travail grief, KJV, all his days are full of pain, and his work is a vexation, RSV). 이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위해 혹은 세상적인 명예와 부귀를 위해 온 열성을 다하는 삶의 허망한 결과를 암시한다.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는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몰두하는 것 혹은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들이 그 물질에 대한 애착과 염려로 인하여 밤에도 평안히 안식하지 못함을 나타낸다(5:12,13).
24절, 주석과 해설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인생의 참다운 삶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는 신본주의적 신앙을 암시한다. 이러한 신앙에 확고한 기반을 둘 때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이 보람과 기쁨이 된다(상반절)는 것이 저자의 결론적 깨달음이다. 이는 전도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육신적 쾌락의 삶을 추구하려 했던 것과는 (4-10절)대조를 이룬다.
25절, 주석과 해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 승하랴
본 절의 ‘나보다’를 ‘밈멘니’으로 보느냐 ‘밈멘누’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르나, 영역본 KJV는 전자를 위하여 한글 개역 성경처럼 ‘나보다 더’(more than I)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NIV, RSV, NASB등은 후자를 취하여 ‘그를(하나님을)떠나서는’(without him, NIV, NASB, apart from him, RSV)으로 번역하여 본 절 전체를 ‘누가 그를 떠나서 먹을 수 있으며 기쁨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번역하였다. 그리고 70인역(LXX)도 본 절을 ‘파레크스 아우토’(그를 떠나서)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주석가들 중 많은 사람들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Delitzsch, M.A. Eaton, Lange). 만약 후자가 옳다면 본 절은 24절 후반부와 연결되는 것으로서 참된 축복과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께로만 말미암음을 나타낸다.
26절, 주석과 해설
하나님이 … 주게 하시나니
본 절에서 ‘그 기뻐하시는 자’(아담 쉐토브 레파나)란 직역하면 ‘그(하나님) 앞에 선한 사람’(a man that is good in his sight, KJV)의 뜻이다. 여기에서 ‘선한’(토브)이란 1절의 ‘낙’이란 말과 같은 말로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는’, ‘좋은’, ‘아름다운’ 등의 뜻을 내포한다. 이런 점에서 본 절은 곧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를 암시한다. 결국 이는 인생의 행복한 최선(最善)의 삶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경건한 자세에서 비롯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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