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의 매일성경 묵상은 무화과나무와 성전의 장사꾼들에게 분노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마가복음 11:12-26의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은 성도들인 우리들에게 열매를 원하시며 세상 욕심을 버리는 온전한 믿음 생활을 원하심을 깨닫습니다. 묵상한 내용을 토대로 새벽예배설교문을 작성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1:12-26, 주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삶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새 찬송가 424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
본문의 개요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입성하시자 마자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 보시고 베다니로 가셔서 쉬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예루살렘 성으로 내려 오시는데 도중에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고자 하셨지만, 열매가 없음으로 인하여 저주하셨습니다. 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그곳에서 장사하는 장사꾼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러자, 장사꾼들을 허용하며 뒷돈을 받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흉계를 꾸밉니다. 그리고 다음날, 베다니에서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가시던 도중에 전날 주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론 : 주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삶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과 성전의 장사꾼들을 쫓아 내신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화가 나셔서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에 따른 분명한 의도가 있으셨고, 동시에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으셔서 하신 행동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첫째,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에 따른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나무는 열매로 구별할 수 있듯이, 참된 제자와 거짓 제자는 그들의 삶의 열매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선한 목자와 삯꾼도 위기 속에서 보이는 그들의 행동의 열매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열매는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는 어떠했습니까?
마가복음 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님이 열매를 찾으신 무화과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예수님은 저주하셨고, 다음날 뿌리부터 말라 버렸습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열매 없음을 꾸짖으시고 저주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적으로 종교 행위를 하는 종교인에 불과하였습니다. 게다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들만이 의로운 백성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그들의 외적 모습은 그럴듯 해 보였지만, 그들의 내면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각종 더러운 것들이 가득해 있었을 뿐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 때문에, 예수님이 외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고자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말씀의 열매가 없는 백성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동시에,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분노와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매일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 말씀 속에서 깨달음과 영적 성장을 이루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께서 언제 우리에게 열매를 요구하시더라도, 기쁘게 우리의 믿음의 열매를 주님께 드릴 수 있을 것이며 주께 칭찬 받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욕심을 버리는 삶을 살라.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하지만, 성전은 그 원래의 모습인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장소를 잃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이방인들의 뜰에는 각종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짐승 소리와 동전 소리로 분주했습니다. 예배는 사라지고 세속적인 욕심과 물질만이 가득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전의 이러한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성전이 어떻게 되었다고 꾸짖으셨습니까?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성전은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강도들이 모여 있는 소굴이 되었다고 예수님은 한탄하시며 꾸짖고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사꾼들을 쫓아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표면적으로 장사꾼을 쫓아 내셨지만,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그들과 경제적인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까지 꾸짖으시고 책망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장소마저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고 물질을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에 편승하여 장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책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와 우리 마음 중심은 어떠합니까? 교회가 세상적인 부자들을 우대하고 권력 있는 자들을 존중하지 않습니까? 내 마음도 예배를 드리는 도중에도 세상적인 욕심과 나의 만족만을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피고 계십니다. 내 안에 참된 평화와 기쁨이 있길 원한다면, 세상의 욕심이 아니라 영적인 부요함을 추구하여야 합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가난한 심령이 될 때, 천국의 소망과 기쁨이 우리 마음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 열매 맺는 정결한 삶이 되게 하소서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으시면서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하고 계십니다.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닌, 진실한 믿음 생활을 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요구하십니다. 또,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거룩하고 정결한 영적 부요함을 사모하며 살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찬송을 쉬지 말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해 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가난한 심령 속에 부어 주시는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함께 하는 기도
열매를 구하시는 예수님!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열매를 찾으실 때, 나는 무슨 열매를 드릴 수 있는지 돌아봅니다. 내 마음 중심을 보실 때, 내 마음에는 무엇이 가득 차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열매 없음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용서해 주옵소서. 세속적 욕심만이 가득한 내 마음을 정결하게 씻어 주옵소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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