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수요일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인 디모데후서 1:9-18을 통하여 바울은 복음의 가치는 영원하며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이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복음의 증인으로서 믿음과 사랑으로 살며, 고난받는 지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18절, 부끄럽지 않은 복음의 증인이 되라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 새 찬송가 358장,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도입 및 서론
여러분, 최근 한 젊은이가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점점 기독교인임을 밝히기가 두렵습니다. 직장에서도, SNS에서도 신앙을 고백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차갑습니다." 이런 고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고민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오늘 우리가 살펴볼 디모데후서 1장 9절-18절의 말씀은, 2000년 전 로마의 감옥에서 쓰여졌지만, 마치 지금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놀랍도록 시기 적절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론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두고서 부끄러워 하거나 두려워 하여 바울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일을 부끄러워 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고,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는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1, 복음의 절대적 가치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의 가치에 대해 디모데에게 강조합니다.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 구절에는 세 가지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구원은 영원 전부터 계획된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탄생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준비하듯,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리의 구원을 준비하셨습니다. 둘째, 이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무관합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업적과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이런 세상의 가치체계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얻기 때문입니다. 셋째, 구원의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선물이자 은혜입니다. 은혜를 뜻하는 헬라어 'χάρις'(카리스)는 '값없이 주어진 선물'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부끄럽지 않은 증인의 자세
복음의 절대적 가치를 설명한 바울은, 이어서 이 귀한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만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디모데후서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로마의 감옥은 단순한 구금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지하 깊숙한 곳, 햇빛도 들지 않는 차가운 감방에서 바울은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죄수들은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서서히 영혼이 죽어가도록 지하 감옥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지하 감옥 속에서도 사도 바울의 영혼은 자유로웠습니다. 왜일까요? 바울이 12절에서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안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바울의 확신은 구원자이신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나왔습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마치 오랜 친구를 믿는 것과 같은 예수님을 향한 깊은 신뢰였습니다.
3. 복음을 지키는 방법
마지막으로, 바울은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그것을 생명을 다해 증거하고 있는 모든 증인들이 복음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13절입니다.
디모데후서 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여기서 바울이 권면한 '지키라'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φύλαξον'(풀락손)이라 합니다. 이 단어는 완전한 군사적 용어입니다. 보물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복음을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이 지킴은 교리적 보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사랑으로써"라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복음은 믿음과 사랑이 충만한 삶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워하다
특히 오늘 본문의 핵심 단어인 16절의 "부끄러워하다"(ἐπαισχύνομαι, 에파이스퀴노마이)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세기 로마-헬라 문화에서 수치심은 사회적 지위와 밀접하게 연관된 감정이었습니다. '에파이스퀴노마이'는 '에피'(위에)와 '아이스쿠노마이'(수치)의 합성어로, 공개적인 수치심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세상 속에 더욱 전파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디모데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결론
지난주, 한 고등학생이 교회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기독교인임을 밝혔다가 따돌림을 당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바울의 이 고백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의지하는 예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이란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때로 신앙으로 인한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복음이며,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복음에 합당하지 않은 삶입니다.
이번 주, 우리 모두 이런 도전을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첫째, 매일 아침 "오늘도 당신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기. 둘째,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한 사람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셋째, 고난 받는 지체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 가지 실천하기.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이 시대에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를 우리 마음속에 채워주셔서, 복음을 위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은혜와 긍휼을 기억하며 이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시고,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주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 복음 전파의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 혼란스러운 우리 나라와 민족을 회복시켜 주소서.
- 날마다 주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 교회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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