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시편 119:113-128로,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비결에 대한 말씀입니다. 시인은 두 마음을 품지 않고(סעפים)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며(סתר) 하나님을 올바로 경외하며(פחד) 살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 불안정한 시대의 안전함을 확보, 상대주의 문화 속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찾는 방법에 대해 새벽예배설교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시편 119편 113절-128절, 하나님 말씀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삶
함께 하는 찬송
- 새 찬송가 267장, 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 새 찬송가 133장,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론
팬데믹을 지난 후, 전세계의 경제는 어려워졌습니다. 계속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확전되어 후티 반군과 이란과도 다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트럼프로부터 시작된 관세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가 혼란한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번화가의 상가들이 문을 닫고 중소 상인들의 폐업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너무나도 불안정하며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어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시편 119편의 시인은 "주는 나의 은신처와 방패"(114절)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사회적인 불안이 증가하는 이 혼란한 시기에, 사람들은 진정한 안전과 보호를 소망하며, 이러한 안전과 보호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려는 본문의 말씀은, 히브리어 알파벳 '사멕(ס)'과 '아인(ע)'으로 시작하는 구절들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배우게 될 것입니다.
1.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결단
먼저 시인은 오직 하나님의 법과 말씀만을 바라보겠다고 고백합니다. 1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시편 119:113,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두 마음 품는 자'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세아핌'(סעפים)에서 왔습니다. '세아핌'이라는 단어는 원래 '나뭇가지들'이라는 뜻입니다. 나무를 가만히 보면, 나뭇가지들이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나뭇가지처럼 마음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집중하지 못한 채 분산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온전하게 사랑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와 방패"로 삼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장 8절을 통하여 "두 마음을 품은 자"는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 무엇인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항상 불안정하고 변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기 쉽습니다. 오늘 우리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마음을 굳게 다잡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랑하겠다는 확고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2. 말씀 안에서 발견하는 안전함
이어서 시인은, 어렵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안전함을 누리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1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시편 119: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은신처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시인이 고백하는 '은신처'(סֵתֶר, 세테르)는 히브리어 '사타르'(סתר)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숨다', '보호하다'라는 뜻을 가진 '사타르'는, 원수들의 압제와 박해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 찬 우리 마음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입니다. 시인은 박해와 압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안전함을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시인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방패이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흔들리는 그를 붙들어 주는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며 지키시겠다고 주신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설 때 우리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갈릴리의 풍랑을 "잠잠하라"라고 선언하시며 잠재우신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 때, 우리는 세상의 풍랑에서도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3. 심판에 대한 올바른 두려움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나에게 문제가 생길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선 자로서 느끼는 본질적인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120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 시편 119:120,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
시인은 자신의 피난처요 방패가 되시고 은신처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심히 '두려워 하며(פחד, 파ㅋ하드) 떨고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온 몸이 떨며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이 두려운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붙잡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호흡이 있는 존재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본질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물이 두려워 하는 하나님이 시인의 피난처가 되시기에 시인은 두렵지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져도, 죄가 아무리 우리를 유혹해도, 우리는 세상이나 죄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보다 강력하신 하나님, 죄의 권세를 이기시는 하나님께서 내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두려운 분이시기에 떨며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하며 그 말씀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마음이 주눅 들게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에게 더 큰 자신감과 믿음을 가져다 줍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복잡하고 흔들리며 불확실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분명한 선택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 마음을 품는 불안정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실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우리의 피난처요 방패가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올바른 두려움을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붙들고 안전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이 새벽 시간에 "그들이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126절)라는 시편 기자의 외침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는 이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금보다 더 사랑하며 모든 교훈을 바르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하는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혼란한 세상 속에서 두 마음을 품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말씀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방패가 되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말씀을 금보다 귀하게 여기며, 주를 경외함으로 바른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법도를 따라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충성된 주의 제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두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소서.
- 혼란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게 하소서.
- 주의 말씀을 금보다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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