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됐다'는 영적 안일함이 내 신앙을 잠식하고 있습니까? 다윗이 전쟁터를 떠나 왕궁 옥상에 머물다 죄에 빠진 것처럼, 편안함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습니다. 6월 19일 매일성경 큐티 본문 인 역대상 19:1-20:8에 대한 새벽예배설교를 통해, 미지근한 신앙의 위험성을 깨닫고 성령의 불로 다시 타올라 사명의 최전선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역대상 19장 1절-20장 8절, 왕궁의 옥상에서 사명의 최전선으로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 새 찬송가 352장, 십자가 군병들아
서론: 가장 위험한 편안함
이 시간에 잠시 동안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헌금도 하고, 큰 죄를 짓지 않으니 나는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는 모두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 편안함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을 식게 하고, 우리를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뜨리는 독이 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본론
오늘날 교회 안에 만연한 가장 위험한 우상은 바로 ‘안락함’이라는 우상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역대기 말씀은 이 위험한 안일함의 대가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 주소를 정직하게 점검하고, 안락함이라는 달콤한 독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사명의 자리로 다시 달려 나가는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승리 뒤에 찾아온 안일함의 덫
오늘 본문은 승리한 다윗 왕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다윗의 군대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눈부신 승리를 거둡니다. 요압 장군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대상 19:13)고 고백했고, 하나님은 그 믿음에 응답하셨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 해에 시작됩니다. 모든 왕들이 전쟁터로 나아가야 할 그때, 성경은 다윗의 행적을 이렇게 단 한 줄로 요약합니다. 1절입니다.
- 역대상 20:1, 해가 바뀌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요압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암몬 자손의 땅을 격파하고 들어가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매
바로 이 구절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יָשַׁב, 야샤브).” 왜 그는 마땅히 있어야 할 왕의 자리, 전쟁의 최전선을 떠나 안락한 왕궁에 머물렀을까요? 계속되는 승리에 대한 교만, 이제는 자신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일함, 육체적 편안함을 향한 탐닉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의 거룩한 책임을 방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일함의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했습니다. 왕궁 옥상을 거닐던 그는 밧세바를 보고 음욕에 사로잡혔고, 결국 간음과 살인이라는 끔찍한 죄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안일함은 죄가 틈탈 완벽한 활주로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2. 힘과 지혜를 잃어버린 자들의 공통점
다윗의 이러한 실패는 다윗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안락함에 취해 사명을 잊어버린 인물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삼손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되어 하나님께 엄청난 힘을 받았습니다. 그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의 사명을 잊고 들릴라라는 여인의 무릎을 베고 안락함에 취해 잠들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잊었고, 결국 이렇게 비참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사기 16:20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사사기 16: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에게 빠져서 하나님이 떠나신 줄도 모를 만큼 영적으로 무감각해지고 말았습니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던 솔로몬은 어떻습니까? 그는 전무후무한 평화와 번영 속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수많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 안락함과 정치적 타협은 결국 그의 마음을 돌려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었고, 왕국 분열이라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풍성한 수확에 만족하며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 밤에 그의 영혼을 찾아가셨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눈앞의 안락함을 선택했다는 것, 영적 전쟁터가 아닌 자신의 왕궁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말씀들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당신이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영적 전쟁터는 어디입니까? 복음을 들어야 할 가족과 이웃입니까? 아니면 불의가 가득한 직장과 사회입니까? 그런데 나는 지금 다윗처럼, 삼손처럼 당신만의 안락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미지근한 신앙에 만족하며, 성령의 뜨거움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오늘 우리를 향한 경고입니다.
- 요한계시록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 무서운 경고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우리의 힘과 계획이라는 자만과 욕심을 버리고,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 오늘 저의 안일함을 깨고 주님의 군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아”라는 자기만족의 속삭임이 들려올 때마다, “주님, 더 원합니다. 주님의 임재를, 주님의 능력을 더 깊이 경험하기를 원합니다”라는 기도로 맞서 싸워야 합니다.
결론: 왕궁의 옥상에서 최전선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가 선택하고 결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안락한 왕궁 옥상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명의 최전선으로 나아가겠습니까? 편안함은 달콤하지만 그 끝은 영적 침체와 죄의 유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길은 고되고 힘들지라도, 그 끝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와 영광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왕궁의 옥상이 아닌, 사명의 최전선”을 선택하십시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순종에 대한 명령에 ‘예’라고 답하십시오. 나의 편안과 안락의 경계선에서 한 걸음 밖으로 나오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행하실 놀라운 역사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미지근한 신앙에 안주하지 말고, 성령의 불로 뜨겁게 타올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군사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왕궁 옥상의 편안함에 안주하며 사명의 자리를 떠났던 나의 영적 나태함을 회개합니다. 오늘 이 새벽, 나의 미지근한 신앙을 성령의 불로 태워주시고, 세상의 안락함이 아닌 거룩한 불편함을 선택할 용기를 주옵소서. '이만하면 됐다'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신실한 군사로서 사명의 최전선에 서기로 결단하오니, 내 삶을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영적 안일함을 회개하고, 사명의 자리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 미지근한 신앙을 버리고, 첫사랑의 열정을 회복시켜 주소서.
- 안주하려는 마음이 아닌, 사명의 최전선에 설 용기를 주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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