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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장 5절에 나타난 "선지자"(נָבִיא, 나비)의 원어적 의미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1장을 통하여 예레미야를 부르셨고, 예레미야 1장 5절에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히브리어는 "נָבִיא"(나비)이며, 원어적인 의미는 "대언자"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무아지경에서 말씀을 대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נָבִיא"(나비)의 원어적 의미를 정리하였습니다.


"선지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원어인 "נָבִיא"(나비)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여 선포하는 사람을 기본적으로 뜻합니다.


예레미야 1장 5절에 나타난 "선지자"(נָבִיא, 나비)의 원어적 의미


나비(נָבִיא)는 '대변인, 말하는 자, 선지자(예언자)'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의 선지자들의 기능에 대하여 학자들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받은 계시들을 말하는 것(무아경 상태에서),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조점은 나비를 통한 하나님과의 의사 소통의 받아들임이다.



נָבִיא는 "부르다", "선포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아카드어 "나부"에서 파생되었다.

선지자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 나비는 일반적으로 '부르다 call', '선포하다 proclaim'라는 뜻의 아카드 동사 나부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과거에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어원을 헬라어와 유사한 것으로 추정하였고, 이 단어를 능동태형, 즉 부르는 자, 예언하는 자, 설교자로 이해하였다(참조: H. J. Kraus, Worship in Isrel, 1966, 102). 이에 상응하는 아카드어 발전 형태를 보면, 나비는 능동형이 아니라 수동형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즉 '부름받은 자, 임명된 자'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가라킨다(W. F. Albright, From the stone Age to Christianity, [1940] 1957, 303). 수동형의 뒤에는 집행자, 곧 여기에서 부르시는 자로서의 하나님이 서 계시다. 후대에 와서 나비는 전문 용어가 되었고, 문자대로의 의미는 잊혀졌다.


2. 명사 "나비"의 의미

명사 나비는 구약에서 309회 나오며, 그 중에서 예레미야에서만 92회 사용되었다. 복수형은 역사서들에서 선지자 무리를 의미한다. 단수형은 초기 본문들에서는 광범위하게 여러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가리켰으며, 후대의 본문에서만 오직 여호와(야훼)를 대신하여 말하는 자를 가리켰다. 초기 본문들에서 선지자는 또한 이쉬하엘로힘(하나님의 사람), 혹은 로에나 호제(선견자)라는 직함을 지니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은 훌륭한 지도자들에게도 주어지던 귀한 존칭인 것처럼 보인다. 모세 Moses(신 33:1), 다윗 David(느 12:24, 느 12:36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엘리사(29회)와 왕상 13:1-31에서는 유다의 익명의 한 선지자(15회)를 가리킨다. 이 직함은 하나님과 관계하는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선견자는 숨겨진 비밀과 미래의 사건들을 드러내 보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삼상 9:6-20). 선견자에게 있어서는 환상에 강조를 하는데 반해 선지자는, 그의 말에 강조점을 둔다(사 30:10).


3. 선지자의 직함

이스라엘 역사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에게 나비의 직함이 주어졌다. 그 중에는 아브라함(창 20:7), 모세(신 34:10), 아론(출 7:1)도 포함된다. 미리암은 여선지자라는 직함을 받았다(출 15:20). 이는 틀림없이 예배 의식의 찬미가로 사용되던 홍해에서의 모세의 노래와 연관된 것이다(아래의 2(c)를 보라).



선지자들의 초기 형태들


소위 기록하는 선지자들(writing prophets)의 완숙한 예언이 형성되기 이전의 어떤 초기 형태들이 구약에서 발견된다.


1. 전국을 떠돌아 다니던 무리들

이들 중의 하나는, 전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악기를 사용하여 황홀경의 상태로 자신들이 빠져들며,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메시지를 떠듬거리며 지껄이는 황홀가 무리의 등장이다(참조: 고전 14장에서 신약성경 시기에 나타난 현상들). 이러한 → 황홀(경) Ecstasy은 전염성이 있는 것이라서, 사울도 또한 '선지자들 축에' 들게 되었다(삼상 10:5 이하, 참조: 삼상 19:18 이하). 바알의 선지자들 역시 황홀가들이었다(왕상 18:19-40).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삼상 10;6)으로 변할 수 있었던 황홀가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특정한 관심을 끌게 하였다(삼상 10:5). 그러나 또 다른 경우에는 이 '미친 어리석은 자들'(호 9:7)은 그들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민 11:10-30에서는 70명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황홀경에 빠졌는데 여호수아는 비판적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 11:29)라고 답변하였다. 몇몇 학자들은, 엘로힘 기자(Elohist)가 모세의 전승 속에 이 이야기를 포함시킴으로써, 낯설고, 불쾌한 비이스라엘적 현상인 무아경의 예언을 여호와의 예배 속에 도입시키고자 시도한 것이라고, 이를 해석하였다. 따라서 폰라드(G. von Rad)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단다. '이 이야기가 의도한 목표는, 따라서 정통파를 매우 당황하게 만들 수 있었던 이러한 새로운 종교 현상을 정당화하는데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황홀경의 활동을 여호와이즘(Yahwism)의 관례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로서, 혹은 적어도 그것을 정당화하는 예언적 운동의 한 원인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Old Testament Theology, Ⅱ, 1965, 19).


2. 금욕적 공동체 안의 무리들

또 하나의 초기 형태는 금욕적인 공동체들 안에서의 선지자 무리이다. 이 무리들은 탁월한 인물 주변으로 모여든 자들이다(예: 엘리사, 왕하 2:3 이하, 왕하 4:38, 왕하 6:1). 이들은 그 인물을 '선생 master' 혹은 '아버지 father'라 불렀으며, 그의 발 근처에 앉아 배웠으며, 그와 함께 공동의 숙소에서 살았다. → 엘리야와 엘리사는 각각의 선지자 무리들의 우두머리들이었다(왕하 2:1 이하). 이와 같은 무리들은 언제나 성소와 관련하여 나타난다(왕상 13:11, 베델; 왕하 2:1, 왕하 2:4, 왕하 2:5, 길갈, 여리고). 여기에서는 황홀경의 역할이 눈에 띄게 감소되어 있다(왕하 3:15에서 그 흔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대신에 성령의 은사가 → 이적(Miracles)의 역사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명백해진 것처럼 보인다(왕하 2:19-22, 왕하 2:23-25, 왕하 4:1-7, 왕하 4:18-37). 그러나 이적적인 행위를 강조하고 있는 이러한 유명한 기사들 조차도 엘리사가 또한 영적(왕하 4:1-7, 왕하 4:8-37, 왕하 5:1-14), 정치적 조언(왕하 13:14 이하,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참조: 왕하 6:12, 왕하 8:7-15)을 주던 말씀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고용된 예배 의식의 선지자들

보다 초기 형태라 할 또 하나의 무리를 언급해야 겠다. 이들은 국가의 성소에 관리로서 고용된 예배 의식의 선지자들이다. 그들은 분명히 기록하는 선지자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반대 의견 S. Mowinckel, The Psalms in Lsrael's Worship Ⅰ-Ⅱ, 1961). 왜냐하면 후자는 강력하게 예배 의식을 비판하였기 때문이다(예: 성전, 호 8:14 Rvmg., 막 3:9-12, 렘 7:1-15; 희생제, 암 3:14, 호 5:6, 사 1:10-17; 제사장들, 호 4:4, 막 3:11, 렘 2:8). 게다가 그들은 어느 정도 예배 의식과는 이질적인 말과 행동을 하였다(G.von Rod,op.cit.,Ⅱ,54 이하). 예배의 선지자는 예배 의식에서의 제사장과 같이 자기의 자리가 있었다. 그의 임무는 사람들의 애도에 대해, 그리고 특히 왕께 응답하여 신탁을 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그는 궁전에서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왕상 1:8).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매우 엄격하게(삼하 12:1 이하) 말하였다(왕상 22:24 이하). 예배를 맡은 선지자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력한 →말이 Word이 성공을 가져오기도 하고 재난을 가져오게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삼상 16:4, 왕상 17:18). 구원에 대한 그들의 말은 금언 형식으로 나타났다. 사 33:1-24에는 예언적 기도문이 보존되어 있다(H. Gunkel, "Jesaia 33, eine prophetische Liturgie," ZAW 42, 1924, 177-208). 이 구절을 우리에게 이러한 선지자들의 언어에 관한 통찰력을 준다. 예배를 맡는 선지자들로서, 우리는 시므이(왕상 1:8), 시드기야(왕상 22:24) 그리고 나단(삼하 12:1 이하, 왕상 1:11 이하)도 꼽을 수 있다. 나단은 왕궁과 깊이 관련을 맺으며 활동하였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독립을 누렸다. 이러한 선지자들과 적어도 약간의 유사성을 지닌 나훔과 하박국을 제외하면, 이들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진 책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스가랴와, 이보다는 학개에 제의적 선지자들에 관한 뚜렷한 흔적이 있다.



선지자와 예언


구약성경의 예언서 문학과 독특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예언은, 이스라엘 내에서 군주 정치와 함께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명확한 구분선을 그어놓을 수는 없다. 황홀경, 점(占), 이적 행사는 배후로 사라져갔고 점차적으로 →말 Word이 전면에 부상하였다. 예배 의식이나, 관례, 군주 정치와 맺어져 있던 끈이 점차적으로 느슨해졌다. 아모스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말이 선포의 주요 수단이었다. 선지자들의 유일한 행위란 상징적인 행위였다. 이것들은 엄격히 말해 예증이 아니라, 말의 내용을 행위로써 표현한 것이었다(호 1:4, 호 1:6, 호 1:9, 사 7:3, 사 8:3 이하, 사 20:2, 렘 16:2, 렘 16:5, 렘 16:8). 고대의 선지자들은 세 시기 동안에 활동을 하였다. 북왕국의 붕괴 시대(기원전 721년경), 남왕국의 붕괴 시대(기원전 597-587년경), 바벨론 포로 시대(바벨론 패권의 마지막 시기인 기원전 539년경). 역사와 관련하여 그들의 메시지는 수평적 차원(이스라엘 국가와 열방)과 수직적 차원(과거, 현재, 미래)을 지녔다. 미래의 차원은 경고의 성격을 띠었는데, 미래는 듣는 자의 현 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점치는 일에서 처럼, 관심을 현재로부터 미래의 어느 한 지점으로 옮겨,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미리 얘기하는 예언이 아니었다. 그 주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1. 심판에 대한 예언

특히 바벨론 포로 이전에는, 백성과 그들의 대표자들 혹은 백성의 무리에게 다가오는 심판 Judgment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이 선지자들의 임무였다. 심판은 여러가지 형태, 가령 가뭄, 지진, 전쟁과 같은 모습을 취하기도 하였다. 한편 선지자들도 백성들에게 권고하고 조언해야할 책임이 있고, 회개시킬 목적으로 설교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위협에는 심판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수반되었다. 예를 들면 심판은 나라, 국왕, 혹은 나라 안에 있는 어떤 무리의 죄 Sin 때문에 일어난다. 선지자들에게 있어서 죄란 하나님의 행위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 인간 행위를 말한다. 자세히 보자면, 이것도 이사야서에서는 백성들이 여호와(야훼) 만을 신뢰하고 있지 않는 점을 뜻하여, 아모스서와 미가서에서는 백성들이 여호와(야훼)의 법과 계명을 무시하는 것을 뜻한다. 호세아, 예레미야, 에스겔서에서는 오히려 헛점이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들의 불성실함에 있다.


2. 구원에 대한 예언

구원에 대한 예언들은 하나님의 심판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뜻에 근거한 것이다(이와 대조적으로 심판에 대한 예언은 인간들의 그릇된 행위에 의하여 초래되었다). 이는 게다가 구원의 말씀이나, 약속이 취할 수 있는 여러가지 형태로 말미암아 지적된다. 서약은 분명히 그 이전의 불평에 대한 응답이며, 그러므로 은혜로운 예언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사 43:2 이하). 공포(announcement)는 하나님의 미래의 도우심을 약속한다(사 41:17 이하, 렘 28:2 이하). 목사는 하나님의 장차 일으키실 구원에 대한 미래의 실재를 그린다(사 11:1 이하, 슥 8:4 이하). 구원 Salvation에 대한 예언은 포로 시대와 그 이후에 우세하였다. 구원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간의 관계 갱신에서, 종말론적인 왕(메시야) 안에서, 예배 의식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그리고 국가의 상태와 정치적 자유의 갱신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구원에 관한 웅대한 묘사에는 종종 구원의 근거에 대한 설명이 뒤따라 나온다. 즉 하나님과 계약에 대하여 열심인 백성들의 성실성과 거룩함이 아니라, 하나님만의 신실하심과 거룩하심, 열심,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그 근거이다.



선지자(נָבִיא, 나비)의 결론


요약해 보면, 구약성경의 선지자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묶여 있는, 그러므로 독특한 자유를 즐기면서, 하나님에 의하여 경고와 권고, 위로, 가르침과 조언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말씀의 선포자이다(C.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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