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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장 16절-34절, 귀만 높았던 아덴 사람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6월 7일 금요일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은 사도행전 17:16-34로,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생긴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덴, 즉 아테네는 철학의 중심지였기에 자부심이 높았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자신들의 철학으로 복음을 해석합니다. 결국 인간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하려 하니 실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6절-34절, 귀만 높았던 아덴 사람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사도행전 17장 16절-34절, 귀만 높았던 아덴 사람들



함께 할 찬송


  1. 새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2. 새 찬송가 523장, 어둔 죄의 길에서 목자 없는 양같이





서론 : 불완전하니 겸손하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과 경험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우리는 항상 엎드리고 겸손해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본론 : 귀만 높았던 아덴 사람들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다양한 사상과 철학에 익숙한 아덴 사람들은 그의 복음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의 귀는 높아졌지만, 마음은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지적 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졌더라도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 말씀에서 진정한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덴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아덴 사람들의 교만함

바울이 아덴에 도착했을 때, 그는 도시 전체가 우상으로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상합니다. 그는 회당과 시장에서 유대인, 경건한 사람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과 토론합니다. 특히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이 그와 논쟁하며, 어떤 이들은 그를 "잡다한 말쟁이"라 부르고, 다른 이들은 그가 이방 신들을 전한다고 여깁니다.

아덴은 새로운 사상을 탐구하는 것을 즐기는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아레오바고로 초대되어 그의 가르침을 설명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는 아덴 사람들이 매우 종교적임을 인정하며,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 제단까지 있다고 언급합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며, 모든 민족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는 각 나라의 시대와 경계를 정하셨고, 인간이 하나님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며 움직이고 존재하므로, 그분은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또, 시인들의 말을 인용하여,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생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금이나 은, 돌 등의 조각품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무지를 간과하셨지만, 이제 모든 사람에게 회개를 명하십니다. 그분은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날을 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셔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듣자, 어떤 이들은 조롱하고 다른 이들은 나중에 다시 듣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바울을 따르며 믿게 됩니다.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 그리고 다른 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복음이 다른 문화와 만날 때의 발생하는 충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덴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듣기 좋아했지만, 자신들의 철학적 기준으로 복음을 판단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들의 세계관과 충돌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였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말씀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덴 사람들은 철학적 지식이 풍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귀만 높아진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도시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을 듣기 좋아했지만, 자신들의 지적 기준으로 메시지를 평가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들의 철학과 충돌해, 많은 이들이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세상의 지적 교만이 신앙의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성을 과신하여 성경 말씀을 허황된 이야기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고전 1:25)는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놀랍게도 이런 태도는 성도들 사이에서도 나타납니다. 신앙 경력이 오래된 이들 중에는 새로운 설교나 설교자가 아니면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성경 공부를 많이 한 이들 중에서는 자신의 해석과 다른 견해를 배척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스스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교만해지면 안 되며, 오히려 더 낮은 자세로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결론 :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라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지적 기준으로 그가 전하는 복음을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 겸손히 듣고 순종해야 할 대상입니다. 아덴 사람들의 실수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지식이나 경험에 의지하여 말씀을 재단하지 말고, 항상 마음과 귀를 낮추어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주의 깊게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말씀의 진정한 능력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함께 하는 기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의 마음 속에도 아덴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하려는 교만이 없는지 돌아볼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말씀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리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겸손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1. 하나님이 세상과 인생을 통제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임을 믿게 하소서.
  2.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 겸손의 자세를 가지게 하소서.
  3.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연구할 마음을 주소서.
  4. 날마다 주께 더 가까이 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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