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 1장 1-10절을 묵상하고 정리한 강해 새벽예배설교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극심한 환난 속에서도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던 초대교회의 신앙에 대해 묵상하고 나눕니다. 본 설교는 살아있는 믿음이란 무엇이며, 희생적인 사랑의 실천과 재림의 소망이 어떻게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는지를 구체적인 원어 해석과 예화를 통해 깊이 있게 다룹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참된 소망과 삶의 실천 방안을 제시하여, 오늘날 교회가 세상 속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한 고민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10절,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교회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 새 찬송가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서론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소소하게는, 운전을 하다가 내가 경적을 울리지 않았는데 앞에 있는 차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황당하고 화가 났었지만, 운전 중이라 억울함을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위대한 사역자들이었던 바울과 실라, 디모데 등은 복음을 전하다가 마게도냐의 관문인 빌립보에서 억울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과 고통 속에서도 그들의 입에서는 분노나 원망이 아닌 찬송과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할 때 나타나는 놀라운 역사를 보여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역시 극심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그들의 믿음의 소문은 온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퍼져나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본론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에 들러 복음을 전했습니다. 비록 3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사역은 놀라운 결실을 맺었고 데살로니가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시기와 방해로 인해 바울은 급히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큰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굳건히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감사와 칭찬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의 믿음이 어떻게 역동적으로 나타났으며,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어떻게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는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
먼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인내를 칭찬합니다. 3절입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여기서 ‘역사’로 번역된 헬라어 ‘에르곤’(ἔργον)은 단순히 ‘일’이나 ‘행위’를 넘어, ‘에너지’, ‘결과물’이라는 역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은 머릿속에만 머무는 정적인 관념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체적인 행동과 변화를 일으키는 살아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이같은 믿음은 마치 아브라함이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창 12:1)는 말씀을 듣고 즉각 순종하여 길을 떠났던 것과 같습니다. 그의 믿음은 행동으로 증명되었고, 마침내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최근의 수해로 인하여 힘든 이웃을 위해 평생을 모은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며 살아온 무명의 독지가들이나 작은 것이지만 함께 나누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선행은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느니라” (약 2:22)는 말씀처럼, 내면의 신앙이 어떻게 구체적인 삶의 열매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들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였습니다.
2. 사랑의 수고를 감당하는 교회
이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의 수고”를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포스’(κόπος)는 ‘지치도록 일하다’, ‘뼈를 깎는 고통’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의 수고는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을 넘어, 자기희생적인 헌신과 섬김을 뜻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극심한 환난 속에서도 서로를 돌보고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실제로 신약 시대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행 4:32) 필요에 따라 나누었던 모습과 같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사랑은 말이 아닌 희생적인 섬김으로 나타남을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가난하고 소외된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 곳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의료 봉사와 구호 활동을 펼치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안전하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위험을 무릅쓴 채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는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헌신이야말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준 ‘사랑의 수고’가 오늘날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예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사랑은 반드시 수고와 희생을 동반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영원한 소망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속에서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감당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그 힘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고난이 끝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장차 우상에게서 떠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다가,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 (살전 1:10)께서 다시 오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이 재림의 소망이 그들로 하여금 모든 역경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친히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붙드는 자는 세상의 어떤 환난과 고통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 닥치는 어려움 앞에서 낙심하고 좌절하기보다,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인내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 다시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며 “마라나타!”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합시다. 이 작은 실천이 우리의 삶을 소망으로 채우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서게 할 것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과 핍박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단순한 이론이나 감정이 아니었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역동적으로 나타나는 살아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고, 그들의 믿음의 소문은 각처에 퍼져나갔습니다. 오늘 우리도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세상 속에서 믿음의 본을 보이는 교회, 사랑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환난 속에서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던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억합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역동적인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신실한 주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우리의 믿음이 삶의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하소서.
-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수고를 통해 이웃을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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