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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17절, 미혹의 시대, 진리로 굳게 서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9월 8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17절 말씀은,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경고와 권면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거짓된 세상 소문으로 인하여 혼란스럽고 두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해결책을 살펴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17절, 미혹의 시대, 진리로 굳게 서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17절, 미혹의 시대, 진리로 굳게 서라



함께 할 찬송


새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새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서론: 거짓 평안과 참된 기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냐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귀에 달콤한 말을 속삭였습니다. "두 해가 가기 전에 바벨론의 멍에가 꺾이고 모든 포로가 돌아올 것입니다." 모두가 듣고 싶어 했던 희망의 메시지, 쉬운 평화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눈물로 하나님의 진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더 오랜 시간 고난을 통해 연단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의 말을 믿고 싶었을까요? 당연히 듣기 좋은 말을 전한 하나냐였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의 진리가 예레미야의 입에 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으로 들어갑니다. 소셜 미디어와 뉴스는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흔들고,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소식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특별히 우리의 불안을 파고들거나,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거나, 복잡한 문제에 대한 너무나도 간단한 해답을 제시하는 이야기는 더 쉽게 우리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거짓 가르침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두려워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매력적인 거짓에 취약합니다. 그렇다면 이 미혹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참된 진리 위에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본론: 재림의 오해로 흔들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열정적인 사역으로 세워진 젊고 뜨거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외부로부터 오는 극심한 박해라는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이런 고난의 상황 속에서, 교회 안에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바울의 권면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가 사도들의 권위를 사칭하여 거짓 가르침을 퍼뜨린 것입니다. 

그 내용은 '주의 날이 이미 임했다'(ἐνεστηκεν)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미래의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부활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이미 최종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듯한 현재적 공포와 혼란을 야기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거짓 가르침은 성도들의 영혼을 뿌리째 흔들었고, 신앙 공동체 안에 큰 불안과 무질서를 낳았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쓴 목적은 종말의 시간표를 상세히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적은 목자의 심정으로, 사랑하는 영적 자녀들을 위로하고(παρακαλεω) 거짓 가르침의 폭풍우 속에서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세우기(στηριζω)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의도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건강한 신학, 올바른 교리는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성도의 삶을 현실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영적 방패와 같다는 것입니다.


1. 불법의 사람을 분별하는 진리의 빛

바울은 이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바울은 주의 날이 임하기 전에 두 가지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배교하는 일'(ἀποστασια, 아포스타시아)입니다. 이는 단순히 믿음이 약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전면적이고 의도적인 거부, 진리를 알면서도 등 돌리는 거대한 영적 반역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배도의 흐름 속에서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불법의 사람'(ὁ ἄνθρωπος τῆς ἀνομιας, 호 안드로포스 테스 아노미아스)입니다. 그는 단순히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법과 권위에 정면으로 맞서는 불법 그 자체의 화신입니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교만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이라 주장하며 모든 숭배를 자신에게 돌리려 합니다.

이러한 자기 신격화의 욕망은 성경 전체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죄의 원형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고 속삭였던 뱀의 유혹에서 시작하여, 다니엘서 7장에 등장하여 '지극히 높으신 이를 대적하며' 말하던 교만한 '작은 뿔'의 모습,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에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로 택하신 자들을 미혹할 것이라 경고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불법의 사람이란 단지 미래에 나타날 한 인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되어 온 '적그리스도'의 영의 최종적인 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와 같은 모습을 봅니다. 특정 이념이나 인물이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고, 스스로 진리의 기준이 되어 반대자를 억압하며, 국가나 지도자 자신을 신적인 권위의 자리에 올려놓는 모든 시도가 바로 4절 말씀의 원리가 작동하는 모습입니다.


2. 미혹을 이기는 하나님의 택하심

이처럼 무서운 불법의 사람에 대한 경고를 들으면 우리는 두려움에 빠지기 쉽습니다. '과연 내가 저런 거대한 미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러나 바울은 곧바로 우리의 시선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말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 데살로니가후서 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구원의 근거를 그들의 행위나 분별력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εἵλατο)에 둡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들을 사랑하사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안전이 보장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이 구원은 두 가지 방편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이며, 다른 하나는 그 진리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우리의 순종입니다. 종말론적인 두려움에 대한 바울의 처방은 더 상세한 미래의 시간표가 아니라, 더 깊은 구원론의 확신이었습니다. 우리가 15절 말씀처럼 굳건하게 설 수 있는 이유는, 13절에서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안전은 모든 거짓을 간파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거친 폭풍우가 몰아치는 캄캄한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 한 척을 상상해 보십시오. 집채만 한 파도는 배를 금방이라도 삼킬 듯이 덮쳐오고, 사방이 어두워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이 파도는 세상의 거짓 가르침과 우리를 흔드는 불안과 같습니다. 이 혼돈 속에서 선원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저 멀리 육지에서 깜빡이는 등대의 불빛입니다. 등대는 폭풍우 밖에 있는 절대적인 기준점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하나님의 택하심이라는 진리가 바로 이 등대와 같습니다. 세상의 풍파가 아무리 거세도, 우리는 진리라는 불변의 빛을 바라봄으로써 방향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습니다.


3. 우리를 굳게 세우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믿고 붙들어야 할 진리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에 대한 복음입니다. 불법의 사람을 최종적으로 심판하고 멸망시키는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십니다. 8절은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라고 선포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싸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셨고 장차 완전한 승리로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핵심적인 진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환난과 미혹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인 평안과 담대함은 그 모든 것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진리를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떻게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 인터넷 뉴스나 소셜 미디어를 접할 때, 그 정보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잠시 멈춰서 생각하는 '진리 필터'를 적용해 보십시오. 그 소식이 사랑과 공의, 겸손과 평화를 증진시킵니까, 아니면 미움과 교만, 분열을 조장합니까? 이 작은 실천이 우리를 미혹의 시대 속에서 진리 위에 굳게 서도록 훈련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17절, 미혹의 시대, 진리로 굳게 서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 안에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경고와 교훈을 따뜻한 축복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굳건함의 근원은 결국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위로'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선한 소망'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이 위로와 소망 안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모든 선한 말과 행실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이 새벽, 미혹의 안개를 걷어내고 진리이신 주님만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위로와 소망 안에서 오늘 하루도 굳건히 서서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혼란하고 거짓된 소식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하여 주님의 자녀 삼아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우리에게 분별의 영을 더하여 주셔서 세상의 달콤한 거짓과 미혹의 소리로부터 우리 마음을 지키게 하옵소서.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삶의 기준을 두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진리 필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붙들고 모든 선한 말과 행실에 굳건히 서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굳게 세우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말씀 위에 설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 불안한 마음을 지켜 주셔서 주님만 소망하게 하소서.
  • 우리 교회가 이 시대 속의 진리의 등대가 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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