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18절, 성실한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9월 9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18절을 묵상하고 정리한 새벽예배설교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 중에는 잘못된 종말 사상으로 기도와 일상의 노동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무질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바른 삶의 자세를 본문이 제시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18절, 성실한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18절, 성실한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라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 새 찬송가 180장, 하나님의 나팔 소리



서론: 기도로 일어서고, 손으로 세우는 믿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성경에 나오는 느헤미야라는 인물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관료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국 유다에서 온 형제로부터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탄 채로 방치되어 백성들이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의 첫 번째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전략 회의를 소집하거나 즉각적인 행동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먼저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리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눈물과 기도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간 그는 곧바로 왕에게 나아갈 용기를 얻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위대한 사역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성벽을 쌓는 도구가, 그의 마음에는 기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무너진 성벽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직장의 어려움, 자녀의 방황, 건강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기도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거나, 반대로 기도 없이 내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양극단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우리에게 제3의 길, 참된 믿음의 길을 보여줍니다. 기도가 행동의 동력이 되고, 그 행동이 기도로 지탱되는 삶. 오늘 본문은 바로 이처럼,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믿음이 결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기도하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능동적인 삶이어야 함을 힘주어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론: 종말을 오해한 교회, 일상을 잃어버린 성도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종말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의 날이 이미 임했다는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어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주님이 곧 오시는데, 당장 내일 오실지도 모르는데, 일상적인 노동이나 경제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직업을 포기하고 일터에서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이 잘못된 신학은 세 가지 심각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첫째, 그들은 일하는 다른 성도들에게 경제적인 짐이 되었습니다. 둘째, 아무 일도 하지 않으니 시간이 남아돌아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남의 일에 참견하고 쓸데없는 말을 퍼뜨리며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헬라어 원문은 이들의 행태를 매우 흥미롭게 묘사하는데, ‘일하는 자’(ἐργάζομαι, 에르가조마이)가 아니라 ‘일을 만드는 자’(περιεργάζομαι, 페리에르가조마이)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해야 할 자기 일은 하지 않고, 안 해도 될 남의 일에 간섭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참견쟁이’가 된 것입니다. 셋째, 이러한 무질서하고 게으른 삶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영광을 가리는 심각한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문제는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님의 재림을 너무나 뜨겁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믿음이 사도들이 전해준 균형 잡힌 가르침과 건전한 삶의 지혜에서 벗어났을 때,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하는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경고를 줍니다. 진실한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성실한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째, 신실하신 주님을 의지하여 굳건히 서라

이러한 혼란 속에서 바울이 가장 먼저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흔들리는 성도들의 시선을 ‘언제 오시는가’라는 미래의 시간표에서 ‘어떤 분이신가’라는 주님의 성품으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3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3: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여기서 ‘미쁘사’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토스’(πιστός)는 ‘신실하다, 믿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음이 없을지라도(2절), 우리 주님은 언제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또한 ‘지키시리라’는 헬라어 ‘필락세이’(φυλάξει)는 ‘파수꾼처럼 지키고 보호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안전과 평안은 미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신실하신 주님의 인격과 그분의 변함없는 보호하심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어린아이가 두려움에 떨다가도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는 순간 평안을 되찾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의 평안은 폭풍우가 그쳤기 때문이 아니라, 신뢰하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평안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다스리시는 신실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을 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시편 121편 7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주님은 환난이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환난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굳건히 붙드시고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고 우리의 삶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습니다.


둘째, 일하지 않고, 일을 만드는 자들을 떠나라

주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는 성도에게 요구되는 삶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10절과 11절입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3:10-11,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여기서 ‘게으르게 행한다’고 번역된 헬라어 ‘아탁토스’(ἀτάκτως)는 본래 군사 용어입니다. 병사가 대열을 이탈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무질서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즉,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나태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와 교회 공동체의 대열을 이탈하는 영적인 탈영 행위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14-30)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주인이 맡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받고 쫓겨났습니다. 반면, 착하고 충성된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믿었기에, 맡겨진 달란트를 가지고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이윤을 남겼습니다. 주인의 재림을 기다리는 올바른 자세는 무위도식이 아니라 성실한 청지기의 삶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셋째, 일상의 성실함,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복음

그렇다면 왜 성도의 성실한 노동이 이토록 중요합니까? 그것은 바로 ‘일’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요한복음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일은 인간의 타락 이후에 주어진 저주가 아닙니다. 에덴동산에도 일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분이시며, 지금도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일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 또한 이 땅에서 목수의 아들로 성실히 일하셨고, 십자가에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까지 쉼 없이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우리 또한 일하는 존재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일터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그리고 구속의 사역에 동참하는 거룩한 현장입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일해서 구원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만 주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실한 삶은 우리가 믿는 복음을 더욱 빛나게 하고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남에게 폐만 끼치는 그리스도인을 통해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정직한 땀방울과 책임감 있는 삶의 태도가 바로 세상에 전하는 가장 강력한 복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구체적인 실천 사항은 이것입니다. 오늘 하루, 나의 일터에서 맡겨진 가장 작은 일 하나를 불평 없이, 주님께 하듯 최선을 다해 감당하십시오. 청소를 하든, 서류를 정리하든, 고객을 응대하든, 그 작은 일에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할 때,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거룩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절-18절, 성실한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않는 삶


말씀을 맺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종말의 때를 잘못 이해하여 일상의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참된 안전은 미래를 아는 데 있지 않고, 신실하신 주님을 아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을 신뢰하기에 우리는 혼란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고, 게으름과 무질서가 아닌 성실함과 질서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매일의 노동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며, 세상을 향한 복음의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은 하늘만 쳐다보며 허송세월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맡겨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격려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이 말씀 붙들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의 경주를 성실하게 완주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혼란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변함없이 우리를 굳건하게 하시고 지키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잘못된 열심에 빠져 삶의 자리를 떠났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 주신 오늘 하루를 성실과 정직으로 살아내는 참된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땀방울이 복음의 향기가 되게 하시고,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않는 인내와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기도와 성실한 삶의 균형을 이루며 살게 하소서.
  • 나의 일터를 거룩한 사명의 자리로 여기게 하소서.
  •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