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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5장 11절, 깨어 기다리는 살아있는 소망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9월 5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5장 11절로, 성도들의 죽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슬픔과 불안한 마음을 부활의 소망으로 바꾸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소망을 설교문으로 전합니다.


9월 5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5장 11절로, 성도들의 죽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슬픔과 불안한 마음을 부활의 소망으로 바꾸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소망을 설교문으로 전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5장 11절, 깨어 기다리는 살아있는 소망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밤 내 꿈에
  • 새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서론: 영원한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캄캄한 새벽의 어둠을 뚫고 주님의 전으로 나아왔습니다. 이 새벽의 풍경은 우리에게 한 여인이 생각나게 합니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그녀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녀의 마음은 무덤보다 더 깊은 어둠,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잃은 슬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 같은 텅 빈 마음으로 그녀는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텅 빈 무덤 앞에서 절망의 눈물을 흘리던 그녀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 그녀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리아야!” 그 한마디에 마리아의 세상은 절망의 밤에서 영원한 생명의 아침으로 뒤바뀌었습니다. 그녀의 슬픔은 찬란한 기쁨과 산 소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마리아의 기다림과 만남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혹시 공항 도착 게이트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기다려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전광판을 수시로 확인하고, 게이트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애타게 살피며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은 지루하거나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곧 만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에, 그 기다림은 설렘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리아가 경험했던 절망이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산 소망이 되었듯, 우리 역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공항에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확실하고 기쁨에 찬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살아있는 소망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론: 위로와 소망의 편지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데살로니가전서는 사도 바울이 아주 짧은 기간 복음을 전해 세워진, 젊고 열정적인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교회는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굳건히 지켰지만, 한 가지 심각한 신학적 질문과 목회적 아픔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곧 임할 것이라는 뜨거운 기대를 품고 살았는데, 그들 가운데 주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성도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은 성도들은 ‘저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영광스러운 날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편지를 통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단순히 종말에 관한 교리적 설명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파하는 성도들을 향한 목회자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정확한 신학적 진리를 가르침으로써 참된 위로를 주고자 했습니다. 올바른 교리가 어떻게 성도의 삶에 참된 평안과 소망을 주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깊이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소망의 근거, 예수의 부활

먼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과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4:13-14,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바울은 죽은 성도들을 가리켜 “자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는 ‘코이모메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잠자다’라는 뜻입니다. 당시에도 죽음을 잠에 비유하는 표현은 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단어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잠시 잠을 자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잠든 사람이 아침에 반드시 깨어나는 것처럼, 주님 안에서 잠든 성도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장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14절입니다. 이 구절은 명확한 논리 구조를 가집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는다면, 그러면 우리는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감정이나 추측에 기반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 위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선포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농부가 첫 수확한 곡식 단을 하나님께 바칠 때, 그 첫 열매는 앞으로 있을 풍성한 전체 수확을 보증하는 증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을 믿는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보증하는 ‘첫 열매’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 없는 자들처럼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2. 빛의 아들들의 삶

그렇다면 이 확실한 소망을 가진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에서 8절은 그 답을 줍니다. 그 중에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5:4,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바울은 주님의 날이 “밤의 도둑 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주님의 재림은 갑작스럽고 두려운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즉시 말합니다.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않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아들들”입니다. 빛의 자녀에게 주님의 재림은 어둠 속 도둑의 침입이 아니라, 캄캄한 밤이 지나고 마침내 동이 터오는 영광스러운 아침을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그날이 언제인가’ 날짜를 계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빛의 자녀답게 살고 있는가’ 우리의 정체성을 따라 사는 데 있어야 합니다.

바울의 이 말씀은 마치 태풍이 온다는 도시 전체의 재난 경보 시스템과 같습니다. 경보를 듣고 미리 창문을 잠그고 필요한 물품을 준비한 사람들은 담대하게 태풍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보를 무시하고 잠들어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재난에 혼란과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재난 경보 시스템입니다. 늘 깨어 준비하라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3. 그리스도, 우리의 영원한 소망

이 모든 부활과 재림의 소망은 결국 어디로 연결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대가인 죽음을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항상 주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갈보리 언덕에서 시작된 위대한 구원 사역의 영광스러운 완성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던 그 선포의 최종적인 성취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소망을 인격적인 약속으로 남겨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3절입니다.

  •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의 재림은 우주적인 사건이기에 앞서,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그의 신부인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가장 개인적이고 관계적인 사랑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망을 가진 우리는 오늘 무엇을 실천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하루, ‘나는 빛의 자녀인가?’ 스스로에게 물으며 살아가십시오. 이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비난의 말 대신 격려의 말을 건네고, 불평 대신 감사를 표현하며, 염려가 찾아올 때 조용히 기도의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는 가장 실제적인 삶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5장 11절, 깨어 기다리는 살아있는 소망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붙잡아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 소망의 확실성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부활 위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소망이 주는 책임감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깨어 근신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소망은 결코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5장 11절에서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우리의 살아있는 소망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게 하는 공동체의 능력입니다. 이 소망으로 서로를 세워주는 복된 새벽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썩지 않는 영원한 소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소망 없는 이들처럼 슬퍼하지 않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기다리게 하옵소서. 빛의 자녀로서 오늘 하루도 깨어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살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이 소망으로 지친 이웃을 위로하고 세우는 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기다리게 하소서.
  • 영적으로 잠들지 않고 늘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 낙심한 이웃을 말씀으로 위로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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