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큐티 본문인 다니엘 1장 8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은, 다니엘이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정결을 지키고자 결단합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선택을 기뻐하시고 도움을 베풀어 주십니다. 본문의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1장 8절-21절, 뜻을 정하여
8절, 뜻을 정하여
마음을 정하였다, 또는 마음에 결심을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하였다” 또는 “결심하다”의 히브리어는 ‘숨’인데 이 낱말이 7절에도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숨)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숨)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숨)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숨)”(단 1:7) 환관장은 이름을 정해주었지만, 다니엘은 마음을 정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이 온통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리에게 표준을 정해주고 우리를 강요하고 억압하는 환경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다니엘처럼 마음을 정하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9절, 하나님이 …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여기서 “은혜”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이다. 이 말은 “인자”, “인애”, “사랑” 등과 같이 번역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품성의 중요한 한 부분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창 39:21).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감동시키셔서 은혜를 베풀게 하신다.
바벨론에서의 다니엘의 태도는 지속적으로 적극적이며 신중하였다. 그는 애굽에서의 요셉(창 39:4, 21)과 페르시아에서의 에스라(스 7:28)와 느헤미야(느 2:8)와 마찬가지로 그의 상관들의 호의와 신뢰를 얻었다. 그는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화와 종교에 동화되지도 않았다. 그는 생애에 있어서 탁월한 방향 감각과 균형감을 드러내었고 신중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의 신중한 행동만이 감독자의 호의를 얻게 한 것이 아니다. 그로 하여금 감독자의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우리의 모든 노력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빛을 발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제(排除)한 우리의 모든 탁월함과 노력은 결국 허사(虛事)가 된다. 하나님과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
10절, 주석과 해설
환관장의 호의
환관장은 다니엘에 대한 호의을 보이면서 그의 청을 즉시로 거절하지 않고, 단지 그일의 시행으로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개인적인 위험성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이미 환관장의 마음이 다니엘의 청을 수락하는 쪽으로 기울어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다(Delitzsch).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초췌하여’(조아핌)는 원어상 ‘초조한’, ‘슬픈’, ‘분노한’이란 뜻인 바(창 40:6, 대하 26:19), 여기서는 심성에서 비롯되는 나쁜 안색을 영양 결핍의 결과에 대한 표현으로 차용하였다(Delitzsch). 70인역(LXX)은 이를 영양의 결핍에서 파생되는 ‘정신적인 혼란 상태’나 ‘신체적인 유약함’이란 이중의 의미로 번역했다.
11절, 감독하게 한 자
다니엘은 환관장에게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환관장이 자신을 감독하게 한 사람에게도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은 필요한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늘은 우리와 협력하기를 원하신다. 어떤 학자는 이 감독자가 그 사건의 과정 가운데 개인적 이익을 챙겼을 것이라고 제시한다. “환관장의 묵인 아래 그는 왕의 진미와 자신의 식사를 바꾸었고, 그러한 바꿈으로 이익을 보았고 이 점은 비밀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Joyce G. Baldwin, Daniel: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84)
12절, 주석과 해설
열흘 동안
‘열흘’ 혹은 ‘10’은 시간적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이고, 숫자로 볼 때는 작은 수이지만 나름대로 충분하기도 한 특정한 기간이나 수에 대한 고대의 통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열흘’은 바벨론에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시험했던 것처럼, 서머나 교회의 충성과 인내를 시험하는 기간을 대표하고 있다(계 2:10). 열흘에 대한 다음의 언급들을 참고해 보라. 창 24:55, 31:7, 민 14:22-23, 삼상 25:38, 욥 19:3, 느 4:12, 슥 8:23, 행 25:6.
열흘은 겉모습이나 신체적인 활력에 어떤 감지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짧은 기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이미 엄격한 절제 습관에 따라 생활하였고, 올바른 식사의 유익으로 튼튼한 체질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절제 습관을 형성하지 못한 다른 포로들의 모습보다 분명히 나았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니엘과 친구들이 아무리 뛰어난 지능이나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채식”은 히브리어로 ‘제로임’인데, 곡류나 채소처럼 “식물에서 난 음식”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장과류(漿果類, 포도 토마토 바나나 따위의 과일)와 대추야자도 이 종류에 포함되었다. 대추야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주식의 일부였다.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계속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 것은 확실하지만, 완전히 채식만을 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단 10장에서 고기를 입에 대지 아니하였다고 한 기간은 특별한 기간이었기 때문이다(단 10:1-3). 그러나 단 1:8의 주석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니엘은 채식 위주의 식사를 선호(選好)하고 소망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 이렇게 식사를 중요시하고 강조한 것은 그것이 몸의 건강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건강에도 동일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몸과 영과 혼은 하나이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17절, 주석과 해설
학문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받은 교육은 그들에게는 또한 믿음의 시험이었다. 갈대아의 지혜는 우상숭배와 이교 풍습과도 연결되어 있었으며, 마술과 과학, 학문과 미신을 서로 혼합하였다. 그 히브리 연수생들은 자신들과 그것들을 격리시켰다. 그들이 어떻게 그것들과의 충돌을 피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타락시키는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후의 충성에 대한 시험이 명백하게 보여 주듯이 선조들의 믿음을 굳게 지켰다. 이 네 청년은 이교의 요소들을 선조들의 신앙과 혼합하지 않은 채 갈대아 학문을 배웠다.
환상과 꿈
히브리어로 “환상” 또는 “이상”(개역한글판)은 ‘하존’, “꿈”은 ‘할롬’이다. 환상(하존)은 다니엘서에 30 회 이상 나온다. 때때로 수면 중에 있는 상태인 꿈과 달리, 환상은 받는 자가 온전히 깨어 있기 때문에 꿈(할롬)이라는 말과 구별된다. 그러나 때때로 이 두 말은 교환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고대 세계에서 꿈은 신의 세상이 인간의 세상과 교통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믿어졌다. 특별히 지혜가 높은 가치를 갖는 바벨론에서 꿈과 그 해석은 지식의 주요 근원으로 생각되었고 높이 평가되었다. 다니엘이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안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으며 바벨론에서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해 주었다.
20절, 주석과 해설
지혜와 총명
지혜는 히브리어로 ‘호크마’이다. 총명은 ‘비나’인데 이해력, 분별력을 뜻한다. 두 명사는 자주 서로 연결되어 사용된다. 이곳에서 이 표현은 “총명한(이해력 또는 분별력 있는) 지혜”로 번역될 수 있다. 성경에서 지혜는 타고난 것이거나 사람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영적이며 도덕적인 미덕이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충만하신 분이시다. 시 136:5, 147:5.
그러므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이다(출 36:2, 잠 4:7). 영원히 살 사람들은 지혜 있는 사람이다(단 12:3). 잠언에서는 지혜를 의인화(擬人化)하여 그리스도께 적용하는 것 같이 언급하기도 한다(잠 8:1, 12-13, 22-23). 결론적으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욥 28:28, 시 111:10).
박수와 술객
“박수”는 히브리어로 ‘하르툼밈’이다. 이 말은 “마술의 두목” 혹은 “두목 마술사”를 가리키는 애굽어 ‘헤리-뎀’에서 차용한 것이다. “술객”은 히브리어로 ‘앗샤핌’이다. “[주문을 외워 악령을] 쫓아내는 자”를 뜻하는 악갓어 ‘아쉬푸’에서 차용한 단어이다. 점, 마술, 귀신 물리기, 점성술 등은 고대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으나, 바벨론과 같은 어떤 나라들에서는 그것들을 학자들이 행했다. 이들은 미래의 사건들을 점쳤고, 꿈을 해석하고 악령이나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는 주문을 만들어내고 죽은 자의 영혼으로 생각되는 존재에게서 조언을 얻는 일을 했다.
바벨론의 박사들이 점쟁이와 마술사들에 불과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그런 기술에 익숙해 있었으나 진정한 의미로는 학자들이었다. 중세기에 연금술이 진정한 학자들에 의해 행해지고 점성학이 다른 분야에서는 과학적으로 일하는 천문학자들에 의해 행해졌던 것처럼, 고대의 무당이나 점쟁이들도 엄밀한 과학적 학문에 종사하였다. 그들의 천문학적 지식은 놀랄 만큼 고도로 발달하였다. 천문학자들은 계산을 통해 월식과 일식을 예보할 수 있었다. 그들의 수학적인 기술은 고도로 발달하였다. 그들은 공식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을 발견한 공로는 일반적으로 헬라의 수학자들에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 더욱이 그들은 훌륭한 설계가요 건축가요 경험적인 방법을 통해 많은 질병 치료법을 발견했던 인정할 만한 의사들이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이런 분야의 지식과 기술에서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과 학자들을 능가했던 것이다.
십 배
십(10)이라는 수의 의미는 1:12의 주석을 참고하라. 이 수는 “확실하게 더 낫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지적 능력이나 여러 다른 면에서 탁월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그들 중에는 요셉, 모세, 다니엘, 사도 바울 등이 있다. 이들은 타고날 때부터 특별한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확실하다. 그들의 능력의 많은 부분은 후천적으로 노력을 통하여 습득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하나님의 축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우월성도 미련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고전 1:19-21).
21절, 주석과 해설
고레스왕 원년
이 해는 바벨론이 메대 바사의 수중에 들어간 해인 B.C. 539/538년을 의미한다. 바벨론의 멸망 후에 다니엘은 그의 거처를 바사 도시인 수사(Susa)로 옮겼고, 고레스 제3년(B.C. 536/535) 이후에 거기서 죽은 것으로 보인다(단 10:1).
메대 바사
B.C. 539-331. 신 바벨론을 이은 메대 바사 제국은 전성기에 애굽에서 인도까지 뻗은 당시 가장 큰 제국이었다. 제국의 창건자 고레스 대왕(Cyrus the Great)은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메대 바사의 통치자였다. 그는 정복한 각 나라의 신들을 인정하는 관대한 정책과 더불어 그 나라의 법을 존중해 줌으로 고대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왕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메대 바사의 왕들
- 고레스 대왕(Cyrus, B.C. 550-530)
- 캄비세스(Cambyses, B.C. 530-522)
- 다리오 I세(Darius I, B.C. 522-486)
- 크세르크세스 I세(Xerxes I, B.C. 486-465).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
- 아닥사스다 I세(Artaxerxes I, B.C. 465-424).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을 내린 왕(단 9:25).
- 크세르크세스 II세(B.C. 423)
- 다리오 II세(B.C. 423-404)
- 아닥사스다 II세(B.C. 404-358)
- 아닥사스다 III세(B.C. 358-338)
- 아르세스(Arses, B.C. 338-336)
- 다리오 III세(B.C. 336-331)
다니엘은 신 바벨론 시대 초기부터 메대 바사 시대 초기까지 선지자의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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