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하 19장 16절부터 39절까지의 말씀은,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되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장면 중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 거짓말을 했던 시바와 므비보셋, 그리고 은혜를 베푼 바르실래가 등하는 본문의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사무엘 하 19장 16절-39절, 주석과 해설 정리
16절, 주석과 해설
바후림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16:5).
게라의 아들 시므이
시므이는는 베냐민 사람이며, 자기 지파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자이다. 또한 그는 지난번 다윗 왕이 압살롬 난을 피하여 도망갈 때 왕에게 돌을 던지며 혹독하게 저주했던 사람이다. 16:5-8 부분의 주석 참조.
17절, 주석과 해설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길갈’은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는 지역이었다(수 4:19). 그리고 예루살렘 성(城) 또한 이 지파의 경계에 위치했다. (1) 따라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유다 지파와 더불어 왕을 영접하기 위해 성의를 보인 것이다(Hertzbrg). (2) 그러나 다윗 왕을 마중나온 천 명의 사람들은 시므이가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데리고 온 자들이었다(Schmid, Payne). 즉, 지난번의 큰 과오(16:5-8)를 용서해 달라는 표시로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왕의 환궁(還宮)을 환영함으로써 왕에게 아첨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베냐민 지파 내에서의 시므이의 실권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시므이는 천 명의 사람들을 능히 동원할 수 있는 지파 내의 실력자였던 것이다(Smith).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시바는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의 종으로서, 사울의 유산을 관리하던 자였다. 그는 지난번 다윗 왕이 난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자기의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므비보셋의 재산을 착복한 자였다(16:3, 4). 그런데 이제 다윗 왕이 복권하여 다시 돌아오자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다윗 왕의 환심을 사려는 목적으로 마중나온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시바가 자기의 여러 식솔들을 데리고 온 것은 다윗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첨의 행동이었다.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여기서 ‘밟고 건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찰레아흐’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듯 ‘급히 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삼상 10:6, 삿 14:19, 15:14). 따라서 이 말은 시므이와 시바가 요단 강을 급히 건너 요단 동편에 있는 왕 앞에 당도한 것을 묘사한다(Lange). 이처럼 그들이 다윗 왕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자 애쓴 까닭은 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임으로써, 지난 날의 과오에 대한 형벌을 면해보고자 함이었다(Hertzberg). 여기서 우리는 시대의 조류에 재빠르게 편승하는 기회주의적인 두 인물을 본다. 즉 이들은 이제 정국이 다시 다윗의 시대로 복귀되자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다윗을 맞으러 발벗고 나섰던 것이다.
18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여기서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아브로 바야르덴’을 직역하면 ‘그가 요단을 건넜을 때에’(as he crossed the Jordan)이란 뜻으로, 사실상 주어가 구체적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 구절의 주어를 다윗 왕으로 본다(Keil, Bunsen). 그리하여 ‘다윗 왕이 건넜을 때에’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시므이와 시바 일행이 황급히 요단 강을 건넜다고 한 17절의 기록과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의 주어는 시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Lang, Pulpit Commentary, Hertzberg). 왜냐하면 본 구절에서는 황급히 다윗 왕에게 사과하는 시므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시므이가 요단을 건너자마자 곧 왕의 앞에 엎드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다윗 왕이 아직 요단 동편에 있을 때에 시므이가 황급히 요단 강을 건넜고, 또한 요단 강을 건넘과 동시에 왕 앞에 무릎 꿇는 시므이의 즉각적(卽刻的)인 행동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므이가 왕 앞에서 즉각적인 굴복과 사죄의 행동을 취한 것은 지난날 그가 다윗 왕에게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던 큰 과오(16:5-8) 때문이었다.
19절,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이는 시므이가 구차하게 자기의 지난 날의 과오를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다. 아울러 용서를 구하는 시기도 매우 시의(時宜) 적절했다. 그러나 시므이는 자기의 죄를 참으로 회개한 것은 아니었으며, 다만 자신이 무사하기만을 위해 빌었던 것이다(Keil, Fay).
20절,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여기서 ‘요셉의 온 족속’은 다윗이 속해 있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를 가리킨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요셉 족속의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를 의미한다(삿 1:22, 35, 시 78:67). 즉 에브라임 지파는 넓은 땅과 많은 인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 지파에 대한 지배권(支配權)을 갖고 있던 가장 강력한 지파였기 때문에, 흔히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온 지파를 통칭하는 말이 되었다. 결국 여기서도 요셉의 온 족속이란 말은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총칭한다(왕상 11:28, 대상 5:1,2, 암 5:6). 이렇게 볼 때 베냐민 지파 소속인(4절) 시므이의 이와 같은 말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 자기가 제일 먼저 요단 강을 건너 왕을 영접한다는 아부의 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서 이스라엘 온 지파의 ‘첫 사람’(The first Israelite)이라고 자처하면서 왕 앞에 절함으로써, 이제 온 이스라엘이 왕의 지배권 하에 있게 됐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시므이는 이스라엘이 다시 다윗 왕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된 최초의 순간에 사죄함으로써 왕의 무서운 형벌을 피할수 있으리라 생각했다(Hertzberg). 이와 같은 시므이의 처신은 비록 교활하고 가증스럽기는 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매우 대담하면서도 지혜로운 처신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므이의 이러한 처신 속에는 진실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왕상 2:46).
21절, 아비새가 …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일찍이 아비새는 시므이가 피난 중의 다윗 왕을 저주할 당시에도 의분을 터뜨리고 그를 죽이려 했었다(16:9). 지금 아비새는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다시 시므이를 죽일 것을 주장한다. 사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저주한 자는 마땅히 처형시켜야 한다는 아비새의 말은 옳다(출 22:28). 그리고 다윗도 아비새의 말에 감정적으로는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피난의 긴 여정을 마감하고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했다. 따라서 다윗은 아비새의 진언을 거절하고 시므이의 사면을 허락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므이의 범죄를 용서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도전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기름 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은 자라는 인식에 근거, 삼상 26:9-11)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비록 현실적인 문제(민심 수습)로 그를 당장에 처단하지는 않았지만 끝내는 처형하기로 작정했다(왕상 2:8, 9). 인간이 범하는 실수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과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있다.
22절,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여기서 ‘원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탄’은 본래 ‘사탄’ 또는 ‘대적’을 의미한다(대상 21:1, 욥 1:6-9, 2:1, 시 109:6). 그러나 여기서는 ‘중간에서 길을 막는 방해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민 22:22). 즉 다윗 왕은 지금 왕위(王位)를 회복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으며, 온 나라는 새로운 태평시대를 앞두고 있었다. 이러한 마당에 선왕(先王) 사울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실권자 시므이를 죽이는 처사는 아직 사울 왕가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베냐민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일로서, 곧 나라의 평화를 깨뜨리는 치명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다윗 왕은 시므이를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비새를 나라의 평화를 방해하는 방해자로 규정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을 초월하여 나라의 안정을 내다보는 다윗 왕의 폭넓은 지도력을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다윗 왕이 아비새를 가리켜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복수(plural)로 칭한 것에 대해 반드시 아비새의 형 요압이 아비새의 주장에 협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Smith), 다만 아비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리 경고를 주기 위하여 스루야의 아들들로 통칭 표현하며 책망한 듯하다. 한편, 본 절에서 시므이의 사면을 허락하는 다윗의 말 속에 ‘오늘’이라는 말이 세 번씩이나 반복 언급되는 것은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에 ‘모든 지파의 화합’이라는 당시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깃들어 있음을 은연 중 시사한다(F. R. Fay).
23절,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다윗 왕이 시므이를 사면(赦免)해준 것은 주로 정치적인 의도에서였다. 즉 다윗은 반대파인 시므이를 사면해 줌으로써. 이스라엘 지파 특히 베냐민 지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아니하고 온 지파의 화합을 도모하려 했다. 즉 이러한 차원에서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한 다윗의 맹세는 온 나라의 화합을 추진하는 왕의 의도를 백성들에게 자연히 보여주는 일종의 제스쳐였다. 그러나 후일 다윗 왕은 그의 임종시에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벌하도록 명하였다(왕상 2:8, 9). 그리고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따라 결국 시므이를 처형하였다(왕상 2:46). 그런데 여기에 대하여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1) 다윗은 결국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Keil). 즉 다윗은 자신의 인간적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복수를 하고 만 것이다.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해야 한다’(시 15:4)고 읊은 사람은 누구였는가? (2)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시므이롤 처벌하라고 부탁한 것은 자신의 맹세와 모순되지 아니한다(Lange). 즉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 맹세는 자신의 집권 당대에만 유효한 것일 뿐, 이후의 왕에 대해서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다윗은 솔로몬 치세 때의 번영과 안정을 위하여 암적 존재요 상습적 모반자인 시므이를 경계하고 처벌토록 부탁했던 것으로, 오히려 현명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24절, 주석과 해설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여기서 ‘내려와’란 말은 므비보셋이 높은 고지에 있던 예루살렘에서 낮은 지대인 요단 강가의 계곡으로 내려왔다는 의미이다(Keil, Fay).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이러한 므비보셋의 행동은 마치 부모의 상(喪)을 당한 자식처럼, 왕위를 찬탈당한 다윗 왕의 고통에 적극 동참한다는 의도에서 보여준 깊은 애도의 표현이었다(겔 24:17). 그러므로 이와 같은 므비보셋의 자세는 다윗 왕에 대한 그의 변치 않는 충성심(忠誠心)을 보여준 것이었다. 더욱이 새로운 집권자인 압살롬의 주변에서 다윗 왕을 위해 애도의 표시를 나타낸 것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라도 오직 다윗 왕만을 섬기겠다고 하는 그의 굳은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Pulpit Commentary). 따라서 이러한 므비보셋의 모습은 말 많고 변덕스런 악인들(16절)의 자기 변호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화려한 언변보다 투박하고 진실된 삶이 더욱 가치있게 드러난다(잠 11:20, 마 25:40). 그런 점에서, 비록 여기서 다윗이 그를 올바로 판단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보고 계셨을 것이다(빌 4:7).
25절, 주석과 해설
예루살렘에서 와서
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Dathe, Thenius)란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석할 경우 24절의 ‘내려와’(히, 야라드)란 말과 중복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예루살렘에 왔을 때’(LXX, Luther, Michaelis, Maurer)란 뜻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므비보셋이 이미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16:3의 내용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예루살렘이 왔을 때’(히, 키 바 예루솰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거민의 대표자들, 또는 그 주민들을 의미하는 말이다(Keil, Lange). 즉 므비보셋은 다윗 왕을 맞이하도록 파견된 예루살렘 주민 대표단 가운데 끼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다윗 왕과 므비보셋의 만남은 요단 강변에서 있었다 (Keil and Delizsch).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이는 다윗 왕의 책망조의 질문이다. 이처럼 다윗이 모처럼 만난 므비보셋에게 책망조로 말한것은 다윗 왕이 기왕에 므비보셋을 모함한 시바의 말(16:3)을 염두에 둔 까닭이었다.
26절, 주석과 해설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실제로 절뚝발이는 나귀에 안장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본 구절의 실제의 뜻은 므비보셋이 그의 종 시바에게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고 명령한 것을 의미한다(Keil, Smith, Fay). 이처럼 자기가 직집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자신이 한 것처럼 기록하는 것은 성경 기록의 문학적 특징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창 22:3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여기서 ‘속이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마’는 우연한 거짓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빼앗기 위해 고의적으로 속이는 악한 행동’을 묘사하는 말이다(창 29:25, 수 9:22, 삼상 19:17, 28:12, 잠 26:19, 애 1:19). 따라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사실로 보아 므비보셋은 여기서 시바를 정죄하고 있다. 이처럼 므비보셋이 다윗 왕 앞에서 시바를 거리낌 없이 정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1) 시바는 주인을 태우고 가야할 나귀에, 대신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예물을 가지고 혼자 갔다(16:4). 즉 시바는 주인을 버리고 혼자서 다윗 왕을 만났다(Fay). (2) 그리고 시바는 주인 집으로 돌아온 직후 곧 바로 다윗 왕의 명령대로(16:4) 므비보셋의 재산을 자기 것이 되게 하였다(Keil).
27절, 주석과 해설
모함하였나이다
이 말의 기본동사 ‘라갈’은 ‘험담하다, 물어뜯다, 비방하다’ 란 뜻으로, 곧 자신의 유익 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상대방을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중상하고 모략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사탄의 대표적인 속성이요, 악인의 가장 큰 특징이다(계 12:10).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일을 수종드는 천사를 가리킨다(14:17). 그러므로 여기서 므비보셋이 다윗 왕의 공정한 심판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을 신뢰하고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즉 다윗 왕은 신적 권위를 가진 공의로우신 분으로서, 그가 내리는 판단은 반드시 공정할 것이라고 므비보셋은 믿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 왕의 인격을 절대 신뢰하는 므비보셋의 충성심을 볼 수 있다. 이는 일찍이 부친 요나단이 다윗에 대해 가졌던 신뢰와 사랑과 충정을 연상시킨다(삼상 18:1, 3, 19:1, 20:42).
처분대로 하옵소서
처음 다윗은 므비보셋을 의심했다(25절). 이에 므비보셋은 자신의 불편한 몸과 시바의 죄악에 관해 언급하고, 오직 다윗의 공의로운 판단에 맡길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므비보셋은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로 다윗의 인격을 인정하고 그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고자 했다.
28절,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여기서 므비보셋은 자기가 사울 가(家)의 사람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당시의 관례 대로라면 사울의 직계 혈통인 므비보셋은 새로운 왕 다윗에게 죽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다윗 왕으로부터 어떠한 처분을 받더라도, 그저 지금까지 받은 은혜에 감사할 뿐 그외 다른 어떤 소원도 전혀 없음을 겸손히 말하고 있다.
29절, 주석과 해설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사울 왕가의 므비보셋에게 자신이 베푼 은혜를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다윗의 말이다.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다윗 왕은 므비보셋의 재산 중 절반만을 그에게 다시 환수시킨다. 이처럼 다윗이 절반만을 므비보셋에게 환수시킨 것은 분명히 므비보셋에 대해 불공평한 처사였다. 즉 다윗은 마땅히 므비보셋에게 모든 재산을 되돌려주는 것이 공평한 일이었다(9:7-11). 그러나 다윗이 시바의 참소와 므비보셋의 결백을 듣고서도 이같이 행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1) 다윗은 아마도 전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되돌려 줄 경우 16:4에서 내린 그의 결정이 경솔한 것으로 판명되므로, 자기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을 것이다(Lange). (2) 같은 맥락에서, 또한 다윗은 어쨌든 피난 시절에 시바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에 따라 시바와 일단 약속한 내용(16:1-4)을 완전히 저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Payne). (3)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다윗이 이러한 판정을 내릴 수 밖에 없도록 작용한 것은 당시 다윗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통치원리(統治原理)이다. 즉, 이스라엘 왕위에 복권하는 마당에 있어서 다윗은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보복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다(Payne). 곧 원만한 탕평(蕩平) 정책을 실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더욱이 므비보셋이나 시바는 모두 사울가와 관련된 인물로서, 이들 중 어느 누구에게 일방적로 불이익이 돌아갈 경우 사울가와 관련된 무리들 가운데 불만의 원인이 싹트는 것을 다윗은 원하지 아니하였다.
30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혹자는 이러한 므비보셋의 말이 왕의 처분에 어떠한 불만을 은연 중 표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다윗의 인격을 진심으로 존경한 므비보셋의 언행(24, 27, 28절)을 볼 때, 그가 이러한 처분에 대하여 다윗 왕에게 불만을 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절을 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므비보셋의 이와 같은 말은 재산 때문에 다윗 왕과의 관계가 소원(疏遠)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말이었다(Lange, The Interpreter’s Bible). 즉 이번 일은 재산 때문에 벌어진 일로서, 이것으로 인해 므비보셋은 다윗 왕에게 오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기는 오직 다윗 왕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 곧 왕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며, 그러므로 재산은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므비보셋은 재물보다 다윗과의 관계 정상화를 더 중하게 생각했다. 사실 다윗과의 관계 정상화는(그의 식탁에서 먹음, 9:6-13) 므비보셋의 필요를 모두 채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마치 우리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부요하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한 삶을 살게 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롬 10:12, 고후 6:10, 계 2:9).
31절, 주석과 해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길르앗’은 요단 강 동북쪽이며, ‘바르실래’는 이곳의 대부호(大富濠)였다(17:27). 그는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쫓겨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소비와 마길과 더불어 다윗 왕을 후원한 사람이었다(17:27-29).
함께 요단에 이르니
여기서 ‘이르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르’는 ‘건너다, 통과하다’란 뜻이다(18:9, 창 15:17, 32:10, 민 32:21, 신 29:16, 욥 17:11, 잠 24:30, 렘 48:32). 따라서 본 구절은 바르실래가 다윗 왕을 전송하는 과정에서,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넜음을 미리 보여준다(36절).
32절,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여기서 ‘공궤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쿨’은 ‘떠받치다, 유지하다, 제공하다’ 등의 뜻으로, 특별히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해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이는 길르앗의 거부 바르실래가 다윗 왕이 마하나임에 피신해 있는 동안 왕과 그의 일행들을 공궤하였다는 말이다.
33절,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그동안 자기를 공궤해준 바르실래에게 보답하겠다는 다윗 왕의 말이다.
34절,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 올라가리이까
이는 노령(老齡)을 이유로 다윗의 보은(報恩)을 겸손히 사양하는 바르실래의 대답이다.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겸손하며, 결코 모남이 없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는 나이에 구애됨 없이 그 삶이 향기롭다. 특히 여기 등장한 바르실래는 부자들이 흔히 범하는 교만(삼상 25:9-38)과 무관한 자로서, 곤경에 처해 있던 다윗을 위문한 일이 있다(17:27-29). 더욱이 그 때의 선행은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단지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운 순수한 행위였다(전 11:1). 한편 바르실래의 거절을 통해 우리는 늙음과 죽음이 가져다 주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배우게 된다. 인간의 생명에는 그 연한이 있으며(시 90:10), 기력은 반드시 쇠할 수 밖에 없다(전 12: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며 온전한 인격을 지닌 자의 늙음과 죽음은 결코 추하지 않다(욥 12:12, 시 92:14, 15, 잠 16:31, 20:29)
35절, 주석과 해설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이는 선악(善惡) 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다(왕상 3:9, 겔 44:23, 사 59:2, 욘 4:11). 즉, 여기서 바르실래는 자기는 이미 노령으로 판단력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다윗 왕의 유능한 모사(謨士)가 될 수 없는 처지임을 말한 것이다(Lange).
음식의 맛을 …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여기서 바르실래는 화려한 궁중 생활이 육체적 감각이 둔한 늙은이인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36절,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바르실래는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는 목적에 대하여 분명히 밝힌다. 즉, 그 목적은 왕의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을 배웅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바르실래나 이러한 그의 목적을 ‘작은 일’(히, 메아트)이라고 표현하였다(한글 개역 성경에는 그 뜻이 명확하게 번역되지 아니하였다). 한편 혹자들은 바르실래가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지 않고 요단 동쪽에서 왕과 헤어졌다고 주장하나(Hertzberg, Pulpit Commentary), 이러한 주장은 본 구절의 내용과 상반되므로 지지할 수 없다(Lange).
37절, 주석과 해설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즉 고향에서 여생을 살다가, 가족의 장지(葬地)에 묻히고 싶다는 노거부(老巨富)의 바램이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특히 조상의 묘를 중시했다(창 49:29-31, 50:25). 즉 히브리인들은 조상의 묘 곁에 함께 묻힘으로써, 사후에도 조상들과 연관 되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바르실래도 자신의 최후 안식처가 부모의 묘 곁이기를 원했다.
김함
본 구절에서는 ‘김함’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왕상 2:7로 추추컨대 아마도 그는 다윗 왕을 전송하기 위해 부친 바르실래와 함께 내려온 바르실래의 아들인 듯하다(Josephus, 70인역). 그렇다면 여기서 바르실래는 아들 ‘김함’을 대신 다윗 왕에게 부탁함으로써, 다윗의 따뜻한 배려를 받아들인 것이다.
38절,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다윗 왕은 다른 왕자들에게 하듯이, 바르실래의 호의(17:27-20)를 생각하여 김함에게도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토지를 주었던 것 같다(Smith). 한편 렘 41:17을 보면, 베들레헴 근처에 ‘게롯김함’, 곧 ‘김함의 숙소’가 있었는데, 이곳은 애굽으로 가는 여행객이나 또는 대상(隊商)들이 잠시 묵고 가는 여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일 바로 이러한 여관에 요셉과 마리아가 일시 지냈다고 한다(눅 2:7, Stanley, Jewish church, II, 201). 이외에도 다윗 왕은 임종시에 김함의 안전을 특별히 솔로몬에게 부탁함으로써, 바르실래의 호의에 대한 보답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왕상 2:7).
39절, 입을 맞추고
이는 다윗 왕과 바르실래가 아쉬운 석별(惜別)의 정을 나누었음을 보여 준다(룻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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