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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2장 31절-49절, 하나님이 세우실 영원한 나라 -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큐티 본문인 다니엘 2장 23절부터 49절까지의 말씀은 , 느부갓네살이 꾼 꿈은 하나님이 바벨론을 비롯한 제국들의 흥망을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장차 그 나라들을 부수고 장차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2장 31절-49절, 하나님이 세우실 영원한 나라



다니엘 2장 31절-49절, 하나님이 세우실 영원한 나라



31절, 주석과 해설


신상

아람어로 ‘첼렘’이다. 이 말은 구약에서 일반적으로 우상 또는 신상에 사용된 말이다. 단 3장에서 왕이 두라 평지에 세운 것도 이 첼렘이다. 이 신상의 개념은 느부갓네살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보통 신상은 한 종류의 금속으로 만들어졌거나 도금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신상은 여러 금속으로 된 신상이었다. 단 3장에서 왕은 자신의 뜻대로 한 금속으로 신상을 만들어 세운다. 이것은 그가 꿈 속에서 보았던 신상을 부정(否定)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신상의 광채가 놀랍도록 찬란하였고, 모양이 매우 두려웠기 때문에 그 신상의 꿈이 왕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꿈과 해석을 알고자 했을 것이다.



32절, 순금 … 은


창세기 2장에는 에덴에서 흘러나온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둘렀는데 그 땅의 금은 순금이라고 한다(창 2:10-12). 고대 세계에서 금(金)과 은(銀)은 귀하고 중요한 것을 상징하는 물질이었다. 그래서 이방신의 우상을 금과 은으로 만들었다(사 31:7, 40:19). 왕하 25:13-15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성전에서 취해간 기구들은 금, 은, 놋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메대 바사인들에게 은(銀)은 기준이 되는 화폐가치였다.

놋 … 쇠. 놋은 “청동” 혹는 “구리”를 의미한다. 놋과 쇠는 강하고 단단한 것의 상징이었다. 에스겔 27:13에는 놋그릇과 헬라인(그리스인)들을 연결시킨다.

  • 에스겔 27:13, 야완과 두발과 메섹은 네 상인이 되었음이여 사람과 놋그릇을 가지고 네 상품을 바꾸어 갔도다

야완은 헬라인들의 조상을 가리키고, 두발과 메섹은 헬라인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놋이 헬라인들에게 가치가 있듯이 쇠는 로마인들에게 가치가 있었다.



33절, 진흙


진흙은 연약함과 일시적인 것의 상징이다(욥 4:18-19, 13:12). 진흙은 신상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보이며, 창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사람들은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탑을 쌓으려고 하지만 그 결과는 흩어지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신상의 가장 아랫부분인 발이 철과 진흙으로 되어 있는 것은, 세상의 모든 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흩어지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신상의 재료가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점점 가치가 적은 것으로 구성되었다. 금속의 원자량(原子量)은 금(197), 은(107), 구리(63), 쇠(55)로 감소된다. 비중(比重)은 금(19.3), 은(10.4), 구리(8.9), 쇠(7.8)이다. 머리에서 발가락까지 내려오면서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이 점점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퇴화하고 쇠퇴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점점 쇠퇴하는 자연계, 인간 도덕, 사회와 문화 등 모든 것이 하락(下落)하고 있다. 실제로 예수님 재림 직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타락한 시대가 될 것이다.



34절, 돌


아람어로 ‘에벤’인데 히브리어도 동일하다. 이 말은 “돌”이나 “바위”를 가리킨다. 성경에서 바위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바위처럼 견고하고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다(신 32:18, 삼하 22:2, 시 18:2, 사 26:4, 고전 10:4). 그러므로 손대지 않은 돌은 하나님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로 상징된 돌이 온 세상을 쳐서 부서뜨릴 것이다. 그 때 살아남을 자들은 먼저 그 돌 그리스도 위에 떨어져 깨어진 사람들이다.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께서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마 21:44, 갈 2:20).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전의 세상은 쇠와 진흙이 서로 합할 수 없는 것 갈이 합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그 발을 치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35절, 주석과 해설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기에서 부서지는 순서는 발에서부터 위로 올라간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멸망하는 세상의 멸망은, 현재에서부터 과거에 이르는 모든 나라들의 연쇄적인 멸망과 같은 것이다. 과거의 모든 세상 역사도 결국에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 영원히 남을 가치가 있는 역사가 어디에 있는가?


여름 타작 마당

성경 시대는 농경 사회였다. 그래서 성경의 많은 곳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위하여 농사와 관련된 상징을 사용하여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시 1:4, 사 41:15-16, 렘 8:20, 마 13:37-39, 눅 10:2). 이러한 비유들은 현 시대에도 진리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다음의 말씀은 이 어구와 비슷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 시편 103:15-17,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 잠언 10:25,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우리 인생과 똑 같이 세상 나라들의 존재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영원할 것이며, 그분이 세운 나라도 영원할 것이다.


태산

큰 산(山)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산은 보통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장소이며, 하나님께서 계신 장소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리아 산에서 나타나셨고, 시내 산에서 나타나셨고, 갈멜 산에서 불로 응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자주 산을 찾으셨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교통하셨다(창 22:2, 22:11-12, 출 19:3, 왕상 18:20, 38). 또한 산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상기시킨다(시 121:1). 모세도 산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였고, 성령의 감동으로 창세기를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의 마지막에 세우실 나라를 큰 산(태산)으로 묘사한 것은 성경의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36절, 내가 … 아뢰리이다


“내가 아뢰리이다”는 아람어로 ‘네마르’인데, 이 말은 1인칭 복수 형태이다. 그러므로 “내가 아뢰리이다”가 아니라 “우리가 아뢰리이다”가 올바른 번역이다. 다른 번역본들은 그렇게 번역하였다.

  • 다니엘 2:36, 이것이 그 꿈인데, 우리가 그것을 풀이하여 임금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새번역)
  • 다니엘 2장 36절, This was the dream, and now we will interpret it to the king(NIV)

그렇다면 다니엘 혼자 말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함께 말했다는 뜻인가? 여기서 복수로 쓰인 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 위엄의 복수, (2) 겸양의 복수, (3)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4) 다니엘과 그의 하나님.

위에서 (3)번이 선호되는데 그 이유는 단 2:47에서 왕이 “너희”라는 복수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 다니엘 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다니엘은 “우리”라는 복수를 사용함으로, 꿈과 해석을 알게 된 것이 자신과 친구들의 기도 덕분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37절, 여러 왕들 중의 왕


“모든 왕 중에 가장 위대한 왕”을 의미한다. 실제로 느부갓네살은 특별히 권세 있고 능력 있는 왕이었고 대제국 바벨론을 세운 왕이었다. 다니엘과 동시대의 선지자였던 에스겔도 “왕들 중의 왕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겔 26:7)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그 모든 것,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다니엘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38절, 주석과 해설


다스리게 하셨으니

짐승과 새들, 물고기 같은 피조물의 관리는 에덴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긴 사명이다(창 1:28).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피조물들을 잘 관리하고 자연 환경을 잘 보존해야 한다. 바벨론 왕에게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셨다는 말씀은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이다(렘 27:6).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존속 기간인 66년 중에서 43년을 통치하였다. 그는 그 후의 모든 왕들의 통치 기간보다 더 길게 바벨론을 통치하였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을 바벨론 제국 전(全) 기간을 나타내는 왕이라고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39절, 주석과 해설


왕보다 못한 다른 나라

신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은 그 가치는 감소하나 그 견고함은 증가했다. 은이 금보다 못하듯이 메대 바사 제국은 호화로움과 권세, 문화에 있어서 바벨론 제국보다 못하였다. 메대 바사의 정복자들은 그들 자신의 문화가 훨씬 덜 발달되었기 때문에 바벨론의 복합 문화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메대 바사 제국은 바벨론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놋은 청동이나 구리를 가리킨다. 헬라 군인들은 청동 갑옷과 투구로 유명했다. 그들의 투구, 방패 그리고 전투용 도끼는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헤로도투스는 애굽의 프삼티코스 I세(Psamtik I)가 침범하는 헬라 해적들 가운데서 “청동의 사람들이 바다에서 오도다”라고 예언한 신의 계시가 성취됨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말해 준다(Herodotus i. 152, 154).


놋 같은 나라

메대 바사를 이은 나라는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후계자들의 “헬라(그리스)” 왕국이었다. 헬라는 “마게도냐(마케도니아)”로도 불리어졌고, 헬레니즘시대에 속한 나라였다.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알렉산드로스의 통치는 애굽을 포함하고 동쪽으로 인도까지 확장되며 마게도냐 헬라 그리고 바사 왕국까지 확장되었다. 그것은 그 당시까지의 고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제국이었다. “온 세계”라는 말은, 그 나라가 온 세상이나 그 당시에 알려진 세상을 모두 점령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지상의 어떤 세력도 그와 비교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다. “세계적인 세력”은 반드시 알려진 모든 세상을 실제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들 위에 뛰어나며 천하무적인 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고대의 통치자들은 자주 최상급을 사용하여 말했다. 고레스는 자신을 “세계의 왕, … 네 가장자리[세계의 네 방위]의 왕”으로 칭하였다. 크세르크세스(Xerxes)는 자신을 “위대한 왕, 열왕의 왕, … 이 크고 멀리 [미치는] 대지의 왕”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청동으로 번뜩이며 파도치듯 헬레니즘의 홍수로 세계를 제패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구리 빛 야망도, 정작 세계를 정복했으면서 자신은 정복하지 못하여 잇단 폭음(暴飮) 후에 습지열(濕地熱)에 걸려 33세에 요절함으로써 물거품처럼 꺼져 버리고 말았다.



40절, 주석과 해설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니

넷째 나라는 그 후에 알렉산드로스 왕국이 분열되었던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게도냐 세계를 정복한 그 다음 왕국을 말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다른 곳에서 이 헬라 왕들 즉 알렉산드로스 왕국의 분열을 별개의 동물이 아닌 염소의 네 뿔로 묘사했다(단 8:22).


부서뜨리고

로마의 역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이 묘사가 확증해준다. 로마는 무력이나 무장한 병력에 대한 공포심을 통하여 그 영토를 획득했다. 처음에 그 나라는 경쟁국이었던 카르타고에 맞서 나라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투쟁을 하면서 국제 문제에 개입하게 되었으며 계속 전쟁에 말려들었다. 그 후에 적국들을 하나하나 부서뜨리면서 마침내 지중해와 서유럽의 공격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정복자가 되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곧 “로마의 평화”는 로마 군단의 철 병력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로마는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가장 크고 강한 제국이었다.

신상의 꿈에 대한 해석에서 다니엘은 첫째 나라와 넷째 나라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넷째 나라는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갈이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넷째 나라 시대에 그리스도가 탄생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의미심장하다.

500 년 이상 무적의 대제국으로 군림한 로마도 성경의 예언대로 영원할 수 없었다. 로마는 4세기 후반부터 밀려 내려오기 시작한 북방의 게르만 민족의 대 이동과 함께 무너지기 시작하여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열국(列國)시대로 접어들었다.



41절, 주석과 해설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그러나 쇠와 같이 강한 나라도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나누인다. 쇠와 진흙은 서로 좋은 관계가 아니다. 쇠막대로 질그릇을 부술 수 있는 것처럼 긴장 관계이다(시 2:9). 그리스도를 죽이고 영원히 군림할 것 같은 나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이 세상 나라는 신상의 발과 발가락이 쇠와 진흙으로 섞인 것처럼 사분오열(四分五裂) 되어 결코 다시 연합하지 못한다.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이것은 “인종의 섞임”을 말하고 있다. 나누어진 나라들은 연합을 위하여 혼인을 이용하였다. 다음의 진술은 1914년 세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당시의 유럽 여러 나라들의 혈연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44절,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 왕국들이 합하지 못하고 분열된 상태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세워질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저술가들은 이때 도래하는 돌 왕국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초림 시에 성취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더 많은 해석자들은 그것을 예수님의 재림에 적용시킨다. 실제로 다니엘을 포함하여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사건들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예수께서도 감람산 설교에서 A.D. 70년에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시의 세상의 멸망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고 말씀하셨다.

  • 마태복음 24:14-16,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 누가복음 21:20-21,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위의 말씀에서 보듯이, 동일한 예수님의 말씀을 마태와 누가는 약간 다르게 기록하였다. 마태는 세상의 마지막에도 적용되는 것처럼 기록하였고, 누가는 예루살렘의 멸망에만 국한하는 것처럼 기록하였다. 이것은 마태와 누가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멸망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도 자신이 본 이상이나 들은 말씀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다. 다니엘이나 사도 요한도 자신이 본 이상의 일부만을 이해했을 뿐이고 그것도 하늘의 사자가 해석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보다 많은 이해와 해석은 마지막 시대의 남은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그것도 엘렌 G. 화잇이 받은 예언의 은사를 통해서였다.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은 신약의 기별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살전 4:16, 히 9:28, 약 5:7, 계 1:7.



45절, 주석과 해설


손대지 아니한

그동안 인류가 이룩한 문화와 역사는 모두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인간의 작품이었다. 그 인위적인 모든 것은 무너졌고 깨어졌다. 이제 사람이 손대지 아니한 돌의 나라가 도래한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작품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을 지금까지 보면서 살아왔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 밤마다 변치 않고 밤하늘을 아름답게 밝히는 달과 별들. 그리고 비록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맘껏 뽐내는 천연계의 모든 동식물과 자연 현상은 하나님의 능력을 반사하고 있다. 이제 훼손되지 않은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일 것이다(고전 2:9).


태산

“태산”은 35절 주석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이곳에서 보충 설명한다. 바벨론의 폐허를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은 “솨두 라부(Shadu Rabu)”라는 이름이 적힌 여러 개의 점토판을 발견했다. 그 의미는 “큰 산” 즉 “태산”(a great mountain)인데, 이는 바벨론의 주신인 벨(Bel, 主) 마르둑(Marduk)을 가리키는 명칭임이 밝혀졌다. 즉 고대 바벨론 종교의 중심지였던 니푸르(Nippur)의 주신은 엔릴(Enlil)이었는데 그는 “온 땅의 신”으로, 그리고 “솨두 라부”(태산)로 불렸다. 후에 느부갓네살 군대가 니푸르를 정복하고 난 후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이 엔릴 신보다 더 위대함을 입증하기 위해 그 이름을 빼앗아 마르둑을 “솨두 라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온 세상 온 땅을 차지하는 태산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배경을 잘 알고 있는 느부갓네살 대왕과 바벨론의 지도자들 앞에서 다니엘은 분명하게 온 세상에 가득한 태산은 바벨론의 주신 마르둑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46절, 주석과 해설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원문은 경배와 굴복의 자발적인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즉 왕은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다니엘에게 절한 것이 아니라, 꿈과 해석에 감동하고 압도되어 자발적으로 절한 것이다. “절하고”는 아람어로 ‘세기드’인데 경배(worship)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즉 왕은 다니엘을 신에게 경배하는 것처럼 경배하고자 한 것이다.


예물과 향품

“예물”은 아람어로 ‘민하’인데 이것은 “희생제물”을 가리킨다. 또한 “향품”도 신에게 바치는 제물과 관계가 있다. 즉 왕은 다니엘을 신격화하여 다니엘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제사를 드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니엘서에는 다니엘이 그런 행위를 만류했는지 허락했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고 한다(신 6:13, 왕하 17:36, 마 4:10).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사람 또는 천사에게 하는 경배를 거절한 실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영접할 때(행 10:25-26).
  •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어나 걷게 하였을 때(행 14:11-15).
  • 요한이 천사에게 엎드려 경배하려 하였을 때(계 19:9-10).

이와 같은 성경의 실례들을 통하여 볼 때,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경배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다니엘이 단 2:28-30에서 하나님을 높인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하다. 유대인 전통은 다니엘이 이러한 영예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였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47절에서 왕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보면 유대인 전통의 언급이 맞다고 볼 수 있다.



47절, 주석과 해설


모든 신들의 신

여기서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이 바벨론의 모든 신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모든 왕의 주재

“주재”는 아람어로 ‘마레’이다. 이 말은 “주(主, lord)” 또는 “왕(king)”을 의미한다. 이 말은 바벨론의 창조 이야기에서 마르둑에게 적용된 명칭이었다. 왕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매년 새해 축제 때마다 마르둑에게 왕권을 새로 받았다. 이제 느부갓네살은 왕은 자신의 주인 또는 왕이 마르둑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48절, 어른


아람어로 ‘라브’인데, “우두머리(captain, chief)”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장관들의 우두머리”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49절, 주석과 해설


다니엘의 요구

성공 중에서라도 다니엘은 위험의 때에 함께 기도했던 친구들을 잊지 않았다. 다니엘의 요청대로 왕은 그 친구들 역시 승진시켰다. 이것은 공정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측근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등용시켰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보여질 수 있으나, 당시의 문화나 정치적 배경에서 볼 때 전혀 부정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왕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군주정체(君主政體)에서는 그런 일이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일이었다.


왕궁

아람어로 ‘비트라 말르카’이다. 이 말은 “왕의 문”이라는 뜻이다. 왕의 문은 동방의 왕들이 재판관으로 좌정하던 장소이며 주요 회의들이 소집되던 곳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내각의 최고 수장(首長)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48절의 “장관들의 우두머리”와 상통(相通)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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