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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1장 20절-35절, 비루한 자가 왕이 되어 - 매일성경큐티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큐티 본문인 다니엘 11장 20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에는, 악명 높은 북방 왕이 역사 가운데 나타나서 예루살렘과 성전에 악행을 저지를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고 새벽설교를 준비하기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11장 20절-35절, 비루한 자가 왕이 되어



다니엘 11장 20절-35절, 비루한 자가 왕이 되어



20절, 주석과 해설


그 왕위를 이을 자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사람은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였다. 이 사람은 제정(帝政) 로마를 시작한 사람으로 불려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불려지지만 그 자신이 황제란 지위를 만들거나 취임을 하거나, 국법을 개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황제라고 불러야 할 만큼 권력을 장악했을 뿐이었다. 이 사람이 눅 2:1에 나오는 가이사 아구스도이다.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Augustus)는 “존엄자”라는 뜻이다. 그는 전 로마 속주에 호적령을 내렸다. 이것은 국세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압제자”는 원어로 ‘나가스’인데, “세금 거두는 자”를 뜻하기도 한다. 아구스도의 호적령에 따라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출산하게 된다. 이것은 미 5:2을 성취시켰다.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아구스도는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는 싸움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사태를 잘 수습하고 로마의 평화(Pax Romana) 중에 40여 년을 통치하고 76세에 평안히 죽었다.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죽은 것이다. 그가 세금을 위한 호적령을 내린 후 오래지 않아 기원 14년 8월 19일에 죽었다. 이 땅의 영화는 모두 몇 날이 못 되어 망하는 것이다.



21절, 주석과 해설


그의 왕위를 이를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아구스도의 위를 이은 사람은 티베리우스(Tiberius, 재위 A.D. 14-37)이다. 사실 그는 황제의 위를 이을 자격이 없었으나, 당시 왕가의 사정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즉 아구스도가 아들이 없었으므로 부득이 그의 처가 데리고 온 아들인 티베리우스를 양자로 삼고 재위를 물려주었다. 이러한 사실에 의하여 본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은 21절의 예언을 티베리우스에게 적용시켜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22, 23절 이하의 해석을 어렵게 하고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그러므로 최근에는 이 사람을 티베리우스에게 적용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학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본 주석에서는 최근의 새로운 제안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비천한 존재로서 나라의 영광을 얻되 속임수로 나라를 얻은 존재가 누구인가? 티베리우스는 비천한 출신이었지만 속임수로 나라를 얻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그 존재는 누구인가?

이것은 역사상 로마 제국의 제위의 영광을 차지할 수 없는 자가 교활한 방법으로 제위를 차지한 것을 예언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한갓 그리스도교의 한 교구장의 입장에서 로마 제위의 영광을 차지한 교황권의 발흥을 예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 교회의 5대 교구 중에 한 교구인 로마 교구의 감독이, 제국 로마가 멸망하자 슬그머니 “나라의 영광”을 차지하고 중세에 군림하게 된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평안한 때는 전쟁이 없는 때라기보다는 나라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뜻한다. 교황권은 평안한 때에 나라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라는 말은 공동번역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다음 후계자는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 남한테 왕으로 인정받을 만한 위인이 못되지만, 모략으로 슬며시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단 11:21, 공동번역)

역사적으로 교황권은 모략으로 슬며시 나라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22절, 주석과 해설


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 패할 것이요

이것은 작은 뿔에 의해 먼저 있던 세 뿔이 뿌리채 뽑힌 사실에 대하여 묘사한 말씀이다. 동고트, 헤룰리, 반달의 군대는 넘치는 물 같은 군대였으나 교황권과 관련된 세력으로 말미암아 망하였다.


동맹한 왕

“동맹한 왕”은 “언약의 왕, 언약의 통치자”라는 뜻이다.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교황권이 성경의 진리에 대항하여 때와 법을 변개하며 매일드리는 제사를 폐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무력화시켰다.



23절, 주석과 해설


그와 약조한 후에

교황권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은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 곧 하나님의 말씀에 성실하지 않고 거짓을 행하여 세력을 확장시켰다.


소수의 백성을 가지고 세력을 얻을 것이며

교황권의 시작은 미미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커지고 강하게 되었다.



24절, 주석과 해설


개요

24절부터 30절까지는 교황권이 일으킨 전쟁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교황권이 일으킨 전쟁은 십자군 전쟁이다. 이것은 1096년에 시작하여 1291년에 끝난 8회에 걸쳐 일으킨 전쟁이다. 이 예언은 십자군 전쟁의 상황을 상세하고 묘사하고 있지만 않지만 그 전쟁의 전체적인 상황을 예언적으로 기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평안한 때에

십자군을 일으켰을 때는 고난과 환란의 때가 아니라 평안한 때였다. “그 지방의 가장 기름진 곳”은 유대 땅,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가장 기름진 곳”이라는 표현은, 십자군을 일으킨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재위 1088-1099)가 십자군의 필요를 역설할 때 그대로 표현되었다.


그의 조상들과 조상들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교회이다. 그런데 그 교회의 이름으로 동원된 십자군의 잔학상은 극에 달하였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약탈, 폭행, 살인 등을 함부로 자행하였다.

제1차 십자군이 1095년에 출병하여 1099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을 때, 십자군의 병사들은 마치 피에 굶주린 야수처럼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모조리 학살하였다. 이때의 광경을 예루살렘 공략에 참여했던 남프랑스의 한 성직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곳에는 감탄할 만한 광경이 전개되었다. 예루살렘의 큰 가로나 광장에는 사람의 머리와 팔다리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병사와 기사들은 시체를 헤치면서 전진했다. 신전이나 회랑은 말을 탄 기사의 무릎 또는 말고삐까지 붉게 물든 피바다였다. … 그처럼 오랫동안 모독을 자행하던 무리가 더럽힌 이 장소를, 그들의 피로써 물들이기를 원하시는 신의 심판은 공정하고도 또한 찬양할 만하다.” (삼성출판사, 대 세계의 역사 5권, 158).


그는 노략하고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흩어 주며 계략을 세워

“계략을 세워” 친다는 말이 24, 25절에 거듭 나오는데, 그 계략이 어떤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십자군을 동원한 방법에서 이런 계략의 면을 볼 수 있다. 선동자들은 이슬람 국가인 셀주크 투르크인이 예루살렘 순례자들을 박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조금도 없었다는 것은 오늘날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다만 당시 유럽인들이 전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은 선동자들의 계략에 미혹된 결과였다(삼성출판사, 대 세계의 역사 5권, 159 참고).



25절, 주석과 해설


그가 그의 힘을 떨치며

교황권에 의하여 동원된 십자군은 큰 군대였고 힘을 떨치며 용기를 다하여 예루살렘 탈환 전쟁을 일으켰다.


남방 왕을 칠 것이요

14, 16절에서 북방 왕은 로마를 가리키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21절부터는 북방 왕 곧 로마의 위를 이를 자가, 일개 교구의 감독으로서 로마의 정치적 권세를 이어 받은 교황 로마를 가리키는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의 남방 왕은 역사적 국가인 애굽이 아니라 북방 세력과 대치하는 다른 정치적 종교적 세력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슬람 세력이다. 이 세력은 애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십자군 전쟁과 관련된 남방 왕의 세력은 이슬람 세력일 수밖에 없다(기독교문사, 기독교 대백과 사전, 10권, 719 참고).

그러므로 25절의 내용은 제1회 십자군 전쟁을 예언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와 그의 동조자들의 선동에 의하여 벌떼 같이 일어난 군대들은 곧장 3,000 km가 넘는 원정의 길에 올랐다. 그래서 마침내 1099년 7월 15일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



26절, 주석과 해설


그의 음식을 먹는 자들이 그를 멸하리니

이것은 제5회 십자군 때의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십자군은 소년 십자군들이었는데, 이들을 운송한 선박 상인들이 소년 십자군들을 노예로 팔므로 십자군이 멸망하게 되었고 군대는 흩어지고 또한 많은 사람이 파선으로 죽었다. 이 선박 상인들은 교황권의 음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27절, 주석과 해설


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하고자 하여

문맥 상으로 이 두 왕은 북방 왕 곧 로마 교황권과 남방 왕 곧 모슬렘 측인 것 같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점령한 모슬렘의 술탄 살라딘과 체결한 엄숙한 평화 협정을 열심히 파괴했던 샤틸롱의 레지날드(Reginald of Chatillon)와 기 드 뤼지농(Guy de Lusignon) 같은 기독교 측의 지도자들이거나 혹은 기회만 있으면 상호 협약을 파괴한 양측 지도자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무렵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면 동상이몽의 두 왕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십자군을 일으키는데 함께 한 왕들이다. 십자군 원정을 공식적으로 제창한 최초의 인물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이다. 그 배후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탈환을 제안한 사람은 동로마(비잔틴) 황제 알렉시우스 1세(1081-1118)였다. 당시 이슬람 세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셀주크 투르크의 세력이 동로마를 위협하므로 동로마 황제 알렉시우스는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동로마 황제는 자신이 로마 제국의 정통 후계자라고 주장하면서 교황을 멸시해 왔는데 도움을 요청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동서 교회를 통일하고 권력의 정상에 서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이 둘은 한 밥상에 앉은 것 같은 입장이었고 그들의 속셈은 달라서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말이 응하였다.

실제로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고 보니 그들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1차 십자군이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자 황제 알렉시우스는 그들에게 신하로서의 복종을 요구하고, 십자군이 탈환한 동로마 영토는 모두 알렉시우스에게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반감이 싹튼 십자군은 4차 십자군에 이르러 예루살렘 회복은 안중에도 없고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라틴 제국을 건설하는 촌극을 벌이고 말았다(대 세계의 역사 5권 161-162 참고).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사람들의 계략과 술수는 하나님께서 허락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지 아니하였다(단 4:35).



28절, 주석과 해설


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이 내용은 24절의 탈취한 재물을 무리에게 나누어 준다는 말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십자군으로 유럽과 아시아 간의 무역이 활발해지고 동양의 상품들을 유럽인이 즐기게 되었다.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며

23절에서 이 세력이 “약조한 후에 그는 거짓을 행하여 올라올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은 내용의 말씀이다. 8장에서 교황권이 성소를 헐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자신이 차지하는 것을 보았다.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고”라는 말은 이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십자군에 종군하면 속죄와 구원이 보장된다는 약속은 거룩한 언약을 거스르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29절, 주석과 해설


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십자군 전쟁에서 계속적으로 군사를 일으킬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그러나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 중에서 1차와 6차 외에는 결코 성공적이 못하였고, 십자군측이 예루살렘을 확보한 기간은 1099년 - 1187년(88 년) 및 1229년 - 1244년(15 년)뿐이었다.



30절, 주석과 해설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모슬렘은 십자군 전쟁 동안 헬라의 군함을 빌려서 사용하였다. “깃딤”은 “서방의”라는 뜻인데, 서방 헬라의 군함이 동원되어 십자군을 공격한 일은 십자군들로 물러가게 하는 한 이유가 되었다.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면서 맺은 거룩한 언약에 분노하였고

본 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이는 깃딤의 배들이 그를 치려하므로 그가 두려워서 돌아갈 것이며, 거룩한 언약에 대해 분노하여 행하다가 돌아가서는 거룩한 언약을 저버린 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단 11:30, 바른성경)

교황권에 의하여 일어난 십자군은 성공적인 성취를 못하고 돌아갔다. 그들은 돌아가서 자기들이 속은 거룩한 언약(십자군 전쟁의 동기)에 대하여 분노하여 행하다가, 거룩한 언약을 저버린 자들, 곧 교황권에 다시 관심을 갖고 그에게 충성하였다.



31절, 주석과 해설


개요

이 말씀은 8:11-12절의 내용을 반복하는 말씀이다.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12)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백성이 매일 드리는 제사가 넘긴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단 8:11-12)

십자군은 교황권 편에 굳게 서서 그가 하늘 성소를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고 때와 법을 변개하여 거룩한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세운 것과 그것을 그들의 권위의 표로 주장하는 일을 하는 세력이 되었다.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1차적으로 제국 로마, 2차적으로 교황 로마를 가리킨다. 8:9, 13의 주석을 참고하라.



32절, 주석과 해설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교황권은 성경의 언약의 말씀을 철저히 따르지 않는 자들을 꾀어 교황권의 가르침과 명령에 따르도록 하여 타락시켰다.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라고 번역하여 한 사람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데, 원문은 복수이다. 바른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는 자들을 달콤한 말로 타락시키겠으나, 오직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확고하게 서서 행동할 것이다.”(단 11:32, 바른성경)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교황권의 꾐에 넘어가 언약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그 시기에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사람들은 용감하게 교황권을 대적하였다.

그 무리들 중에는 프랑스 리용(Lyons)의 상업하는 사람으로 진리를 깨닫고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선택한 왈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무리 곧 왈도파들과 영국의 개혁자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와 그의 추종자 롤라드(Lollards), 후스의 무리 등등 매우 많다.

왈도파란 12세기(서기 약1160년경) 프랑스 리용(Lyons)에서 상업 자본가였으며, 부유한 상인 이었던 피터 왈도(Peter Waldow)를 중심으로, 그를 따랐던 많은 리용의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작은 신앙 단체 혹은 그룹을 일컫는 용어에서 시작되어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왈도는 자기가 베푼 잔치에 참석하였던 한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것을 보며 죽음의 의미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마태복음 19:21과 마가복음 10:21에 나오는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말씀에 감동되어 이 말씀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이 후 많은 무리들이 왈도를 따라 모이게 되고, 이들의 이름은 왈도가 지도하였기에 왈도파(Waldenses or Waldensians)로 불렸다. 그들은 또한 리용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러한 호칭을 얻게 된 것은 과거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시킨 것과 같은 전도 생활을 했음에 기인한다(눅10:3-4).



33절, 주석과 해설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이 말씀은 32절의 뒷부분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교황권의 전성 시대 동안에,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이 용기를 내어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가르쳤다.

왈덴스인들은 장사꾼으로 다니면서 집집을 방문하여 성경을 가르쳤다. 그들은 로마교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교회는 결코 잘못할 수 없다는 이론에 반대하였다. 또한 연옥설, 화체설을 부인하고,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오직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들 중에서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무리들도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영국의 위클리프의 제자들인 롤라드는 둘씩 짝을 지어 각 지방을 순방하면서, 위클리프가 최초로 번역한 영어 성경(1382년 번역)을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쳤다. 이들은 교회의 무류설과 고해성사를 반대하고 연옥을 부인했다. 또한 순례와 성자와 성 유물 숭배를 반대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은 보헤미아 프라하 대학교 총장인 얀 후쓰(John Huss, 1360-1415)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의 동료 제롬(Jerome, 1365-1416) 교수와 함께 이 가르침을 보헤미아에서 가르쳤다.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진리를 고수하던 개혁자들은 마침내 콘스탄스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고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진리를 따라 산 사람들과 개혁자들은 고통과 고난을 겪었으며 세상에서 몰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들의 영혼까지 멸망시키지 못하였다(마 10:28, 골 3:3).



34절, 주석과 해설


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무한하신 지혜와 섭리 가운데서 항상 그분의 성도들을 죽음에서 구해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지는 않으셨으나, 박해의 쓰라린 날들 동안 심한 괴로움을 당하는 당신의 백성에게 성경의 원칙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며 어둠 속에서 외치는 지도자들을 통해 거듭하여 “도움을 조금” 보내셨다. 그런 지도자들 가운데는 12세기 이후의 왈도파인 봉사자들, 14세기에는 영국의 존 위클리프, 15세기에는 프라하의 얀 후스와 제롬 등이 있었다. 16세기에 있었던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및 종교적 생활의 엄청난 변화는 영적인 국면에서 개신교의 종교개혁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전 세대에 들리던 소리에 더 많은 신실한 자들의 음성이 가세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

이 말은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데, 다른 번역 성경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박해를 받고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을 것이지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단 11:34, 현대인의 성경)(단 11:34, 공동번역)“그들이 이렇게 거꾸러져도 도우려는 사람은 별로 없고 걸어 넘어뜨리려는 자들만이 득시글거릴 것이다.”(단 11:34, 공동번역)



35절, 주석과 해설


개요

이 절도 다른 번역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한 때가 되어 마지막이 올 때까지 지도자들이 이런 고난을 겪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단련을 받아 깨끗해지고 빛날 것이다.”(단 11:35, 공동번역)

“그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일부는 죽임을 당하겠지만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연단을 받아 정결하고 깨끗하게 될 것이며 이런 일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단 11:35, 현대인의 성경)

진리의 사람들 중 몇 사람 곧 지도자들이 고난을 당하여 투옥되고 죽는 일로 진리의 백성들이 각성하고 연단되어 나오는 경험을 말하고 있다. 선구적 개혁자들이 죽음을 당하였으나 마침내 그것은 마르틴 루터에게 개혁의 횃불을 전하였고, 루터를 통하여 개혁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으나, 개혁자들 자체 내의 분열과 교리 논쟁으로 빛을 잃었고, 그런 틈을 타서 로마교회는 반 종교개혁을 일으켜 개혁사업이 몰락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개혁의 정신을 계승한 후예들이 마지막 때가 되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 12:17)로 나타나게 되었다.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마지막 때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사건들 가운데서 지정한 기한이었다. 결국 개혁의 진정한 성취는 마지막 때가 되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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