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다니엘 5장 17절-31절, 하나님의 저울 위에서 - 매일성경큐티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큐티 본문인 다니엘 5장 17절부터 31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의 손가락이 벽에 쓴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의 뜻을 다니엘이 해석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져 바벨론이 멸망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묵상과 설교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다니엘 5장 17절-31절, 하나님의 저울 위에서



다니엘 5장 17절-31절, 하나님의 저울 위에서



17절, 주석과 해설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다니엘은 여기서 왕이 주겠다고 하는 예물과 상급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조금 있으면 멸망할 나라의 왕이 약속한 것에 아무런 의미도 없고 실행될 수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설사 그런 상급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이 세상에서의 부귀와 영달(榮達)에 관심이 없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후에 전리품을 가지라는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다(창 14:21-23).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이 가져온 많은 선물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왕하 5:15-16).

이렇게 세상의 부귀와 영달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더 큰 상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히 11:16, 40). 그렇다고 이들이 하늘의 상급(賞給) 때문에 이 땅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진짜 이유는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과의 영원한 동행이다(창 5:21-24, 합 3:17-19). 합 3:19의 “높은 곳”은 승리의 장소, 구원의 장소를 가리키며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가리킨다(신 33:27-29, 사 58:13-14, 암 4:13).

그렇다고 다니엘이 왕이 주는 정부의 고위 관직을 수락하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다니엘은 박사들의 어른으로 임명된 전력이 있었고, 5:29에서도 벨사살이 그에게 자주 옷을 입히고 셋째 치리자로 삼았는데 거절하지 않았다(단 5:29). 또한 사건이 있은지 얼마 후에 그가 다시 한 번 고위 직분을 맡았다(단 6:1-2). 물론 다니엘이 공직을 받아들인 것은 사적인 부귀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틀림없이 자기가 왕에게 건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자기 백성을 유수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님 수중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18절, 주석과 해설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재차 강조하지만 느부갓네살이 가졌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렘 27:5-6).



19절, 주석과 해설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이 표현은 교차대구법을 사용하였다.

  • 임의로 죽이며(A)
  • . . . 임의로 살리며(B)
  • . . . 임의로 높이며(B’)
  • 임의로 낮추었더니(A’)

이 말은 근동 지역 나라들의 지도자들의 변덕스런 성질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현명한 지도자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러 와서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왕상 10:8)라고 말한다.

죽이며 살리며 높이며 낮추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권력이다(신 32:39).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낫게 해달라는 아람 왕의 서신을 읽고 이스라엘의 왕은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라고 말한다(왕하 5:7). 하나님께서만 가지고 있는 이런 권력을 사람이 소유한 것처럼 보일 때, 그 사람은 더욱 자신을 돌아보고 낮추어야 한다.



22절, 주석과 해설


아들

이 구절은 다니엘서에서 벨사살을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고 언급한 유일한 곳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필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출 20:12). 부모를 공경하고 교훈을 얻는 것은 그의 삶을 평안하게 하며 장수하게 한다. 그러나 벨사살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그의 삶은 단축되었다.

이것을 다 알고도. 느부갓네살의 일대기를 회고한 다니엘은 그와 견주어 변명할 여지가 없는 논리로 벨사살의 잘못을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큰 벨사살의 죄는 “이것을 다 알고도” 마음을 낮추지 않은 죄였다.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행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만 있었지 실행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의 큰 죄는 알고도 실행하지 않은 죄이다(눅 12:47-48, 행 17:30, 롬 1:20-23, 벧후 3:3-5).



23절, 주석과 해설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다니엘이 이곳에서 한 연설은 다윗 왕 앞에 선 나단(삼하 12장)과 아합 왕 앞의 엘리야(왕상 21장), 시드기야 왕 앞의 예레미야(렘 38장)와 비교할 수 있다. 삼하 12:7-10, 왕상 21:20-24, 렘 38:17-18. 하나님의 종들은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곧은 기별을 전하는 사람이다.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하나님께서 성전 기물들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셨다(단 1:2). 느부갓네살은 감히 하나님의 성전의 그릇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벨사살은 그 그릇들을 사용하여 술을 마셨다. 느부갓네살의 위엄과 위대함에 비하여 벨사살의 처신은 자신을 굴욕가운데 처하게 하였다.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 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우상들은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한다. 그것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시 135:15-17, 사 40:25-26).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사람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이런 우상들을 찬양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벨사살과 부왕 나보니두스는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을 고의적으로 선택하였다. 그들은 바벨론의 주신(主神) 마르둑(Marduk)뿐만 아니라 월신(月神) 신(Sin)을 숭배하였다. 나보니두스는 특별히 월신에 헌신한 자였다. 그는 바벨론과 수리아 등지에 있는 월신의 신전들을 재건하고 보강하였다. 그는 아라비아에서 신(Sin)에게 바칠 신전을 건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벨론 성이 함락되던 밤은 보름달이 밝게 뜬 음력 15일(티쉬리 월 15일)이었다. 바벨론은 월신이 가장 완전하고 힘이 있을 때 몰락한 것이다.



25절, 주석과 해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메네’는 ‘무게 또는 측정’(a weight or measurement)을 뜻한다. 이 말은 무게 단위로써 보통 50 세겔에 해당하지만, 때로 60 세겔을 가리키기도 한다. (1세겔은 11.5 g이다.) 또한 ‘메네’는 ‘수를 세다’(to number, to count)의 뜻을 가지고 있다. ‘데겔[테켈]’은 ‘무게를 달다’(to weigh, to be weighed) 또는 ‘무게 단위 또는 세겔’(a unit of weight, shekel)을 뜻한다. ‘우바르신[우파르신]’에서 ‘우’는 접속사로써 ‘그리고, 그러므로, 또한, 그 때, 아직’(and, and therefore, also, then, yet) 등의 뜻이 있다. ‘파르신’은 ‘페레스’의 복수인데, ‘조각들’(pieces)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나뉘어져 조각이 된 것을 뜻한다.

바벨론의 박사들도 이 글자들의 문자적인 뜻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정한 의미는 알 수 없었다.



27절, 주석과 해설


부족함이 보였다

바벨론이 멸망한 날은 유대력으로 7월(티쉬리 월) 15일이었다. 이날은 유대인의 속죄일이 있은지 5일이 지난 날이었다. 속죄일은 심판의 날이었다. 속죄일 며칠 후에 바벨론의 왕이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고 그 결과 멸망의 밤을 맞이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의 판단은 공정하시다. 하나님께서만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정확히 달아보실 수 있으시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사람도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전혀 없으시다(삼상 2:3, 욥 31:6).

방탕한 바벨론 왕에게 내린 이 두려운 심판의 선고는 벨사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소홀히 하는 모든 자를 정죄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조사심판에서 사람들은 성소의 저울에 달려 그들의 도덕적 품성과 영적 상태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은혜와 축복에 일치하는지 여부를 드러내 보인다. 지금 이 시기는 엄숙한 시기임을 감안해 볼 때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운명을 영원히 확정짓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들의 준비되지 못함과 ‘부족함’이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할 것이다(전 12:14, 고후 5:10, 계 22:11-12).



29절, 주석과 해설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

다니엘은 원하지 않았지만 벨사살은 그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주고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는다. 셋째 통치자의 의미는 5:7의 주석을 참고하라. 그날 밤에 바벨론은 메대 바사 군대에 의해서 멸망당하는데, 다니엘에게 준 상급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다니엘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좀 오래 지속된다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영화(榮華)는 결국 풀과 꽃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시 103:15-16).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영원한 것을 먼저 추구한다(마 6:28-33). 솔로몬이 가졌던 모든 영화보다 작은 꽃 하나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더 뛰어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작은 것이 이 세상이 인정하는 최고의 것보다 나음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정은 영원하기 때문이다(시 103:17-18).



30절, 주석과 해설


그 날 밤에

고대의 자료들은 바벨론이 밤중에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아 점령되었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있으며, 이날은 오늘날 우리의 달력으로 말하면 B.C. 539년 10월 12일로 밝혀졌다.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바벨론 도성의 함락을 묘사하는 설형문자 자료에는, 바벨론의 “불경한 왕”을 고레스의 군장 고브리아스(Gobryas)가 왕궁에 들어가 살해했다고 크세노폰은 진술한다(Cyropaedia vii. 5. 30). 설형문자 자료에 의하면 나보니두스는 바벨론이 점령될 때 그곳에 없었다. 나보니두스는 항복하였고 고레스는 그를 멀리 카르마니아(Carmania)로 보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점령될 때 죽임을 당한 왕은 벨사살인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메대 바사 군대가 이중벽으로 보호되는 난공불락의 도시처럼 보이는 바벨론을 점령했는가 하는 질문이 자주 거론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헤로도토스와 크세노폰의 기사에 기초하여 유프라테스 강물이 돌려져 도시를 공략하는 군인들은 마른 강바닥을 통하여 도시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유프라테스 강물이 마를 것이라고 하는 성경 구절들에 의하여 지지를 받는다(사 44:27-28, 계 16:12).

이 예언들의 성취는 후에 유명한 헬라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해 기록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고레스의 원통(Cyrus Cylinder)에 의해 확인되었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바사 사람 고레스는 그 도시를 관통하여 흘렀던 유프라테스 강을 말림으로써 바벨론을 정복하였다. 그가 바벨론에 접근하였을 때, 그는 성벽과 방어가 너무나 견고한 것과 도성 안에 수년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비축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레스는 유프라테스 강물의 수위가 낮아졌을 때, 군인들을 시켜 그 강으로 유입하는 물길을 돌려 호수로 흘러 들어가게 하였다. 바벨론이 술잔치를 하고 있던 그 밤에 메대 바사 군인들은 도성의 성벽 아래에 있는 마른 하상(河床)을 따라 기습공격으로 그 도시로 진입하여 바벨론 성을 정복하였다.

(2) 고레스에게 동정적인 군인들이 성의 문을 열어줌으로 메대 바사 군대가 진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바벨론이 멸망했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사 45:1의 성경 말씀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강물이 마르겠다는 성경의 표현은 실제가 아니라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홍해가 마르고, 요단 강이 마른 것을 비유적으로 인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잇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의 멸망은 이미 2장에서 예언된 것이었으며, 거의 1세기 전에 선지자에 의해서 예견된 것이었다(렘 50:23, 렘 50:46, 51:41, 56). 바벨론의 멸망은 이 세상의 멸망에 대한 예시이다. 거대한 이 세상 바벨론도 그와 같이 멸망할 것이다(계 16:12). 계 16:12의 말씀은 마지막 대쟁투의 절정을 바벨론의 멸망 시에 있었던 유프라테스 강과 동방에서 온 왕 고레스와 연결시킨다. 그 날이 멀지 않았음을 믿고 있는가?



31절, 주석과 해설


메대 사람 다리오

여기의 다리오가 누구인지는 논란이 되어 왔다. 이 통치자는 세상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메대 바사의 역대 왕 중에서 “다리오”라는 이름의 왕은 바벨론이 멸망한 후 17년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참고로 여기에 언급된 다리오 이름의 철자와, 라 4:24나 다른 곳의 “바사 왕 다리오 [I세]” 이름의 철자 사이에는 영어와 마찬가지로 아람어와 히브리어에도 차이가 없다.

1. 고레스 대왕(Cyrus, B.C. 550-530)

2. 캄비세스(Cambyses, B.C. 530-522)

3. 다리오 I세(Darius I, B.C. 522-486)

7. 다리오 II세(B.C. 423-404)

11. 다리오 III세(B.C. 336-331)

그렇다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나라를 얻은 왕은 누구인가? 이에 대하여 지금까지 누구나 만족할만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제안이 있다.

(1) 고레스가 정복한 메대의 왕이요 외조부인 아스티아게스(Astyages).

(2) 아스티아게스의 아들이요 고레스의 숙부이며 장인이기도 한 시악사레스 2세(Cyaxares II).

(3) 고레스의 장군으로 고레스보다 먼저 바벨론에 입성한 구바루(Gubaru, 혹은 Ugbaru. 헬라어 표기로 Gobryas로도 불림).

(4) 고레스의 아들인 캄비세스 2세(Cambysess II).

(5) 고레스 자신. 다리오라는 이름이 고레스의 메대 칭호이거나 “왕족”을 의미하는 그의 왕위를 가리키는 이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한 이름 이상을 가진 왕들의 실례를 언급하고 있다.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 III세는 또한 “불”(Pul)이라고 불렸으며(왕하 15:19, 29), 아사랴는 또한 웃시야로도 불렸고(왕하 15:1, 대하 26:1), 솔로몬은 여디디야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고(삼하 12:25), 여호야긴 왕은 “고니야”와 “여고냐”로 불려졌다(렘 22:24, 24:1).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다리오는 고레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바사 왕 고레스와 메대 왕 다리오는 그(나보니두스)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 다리오는 그의 친척인 고레스와 함께 바벨론을 함락시켜 바벨론의 통치를 끝냈을 때 그의 나이는 62세였다. 그는 아스티아게스의 아들이었으며 헬라 사람들 가운데서 그는 다름 이름을 가졌다.” (Josephus, Antiquities, X. xi. 2, 4)

희랍의 역사가 크세노폰의 기록에 의하면 메대에서는 아스티아게스가 죽은 후 시악사레스 2세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고레스의 어머니 만다네와 남매 관계이기 때문에 고레스의 외숙부(외삼촌)가 된다. 고레스는 어린 시절 외조부인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의 궁전에서 자랐기 때문에 외숙부인 시악사레스 2세와는 친숙하였다. 후에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한 뒤 그는 외숙부인 시악사레스 2세의 딸 카산다네(Kasandane)와 결혼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종합해보면 고레스는 자신이 메대를 장악하였을지라도 메대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명목상 외숙부인 시악사레스 2세를 메대 왕으로 세웠고, 바벨론을 함락시킨 후에 그를 장인으로 삼아 당시 나이가 40세 안팎인 자기에 비해 이미 노년에 접어든 장인을 메대의 명예 왕으로 세웠다고 볼 수 있다. 단 6:28의 말씀도 엘렌 지 화잇의 언급을 지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단 6:28)


육십이 세였더라

다리오는 위에 언급한 요세푸스의 기록대로라면 이때 62세였다.



다니엘 5장의 교훈 요약


1. 바벨론 멸망의 원인

  • 교만이 멸망의 첫째 원인이었다(사 47:7-8, 렘 50:31-32, 잠 16:18, 벧전 5:5).
  •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그릇들을 술을 마시는데 사용한 신성 모독은 바벨론의 멸망을 자초한 심각한 죄였다(단 5:2-3).
  • 우상 숭배는 바벨론을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시킨 중요한 요인이었다(단 5:4, 사 45:16, 렘 51:17-18).
  • 사치와 방탕 등 쾌락과 부도덕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다(사 47:8-9, 눅 17:26-30).
  •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신 것은 바벨론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도 되었으나 바벨론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거절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였다(렘 51:9).


2. 바벨론 멸망의 구속사적 의미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고, 그 기간이 차면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낼 계획을 갖고 계셨다. 70년이 끝나는 해는 B.C. 536년이었다. 그러나 그 해가 가까웠으나 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석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70년의 포로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B.C. 539년에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할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셨다(사 41:2-4).
  • 바벨론의 멸망은 예수님 재림 직전에 멸망할 영적 바벨론을 상징한다(계 18:2-4).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