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er

6/recent/ticker-posts

전도서 11장 1절-10절, 불확실한 세상과 삶 - 매일성경큐티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큐티 본문인 전도서 11장의 말씀에서, 전도자 솔로몬은 인생에 젊은과 내일이 있지만 항상 밝지많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본문의 묵상과 새벽설교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전도서 11장 1절-10절, 불확실한 세상과 삶


전도서 11장 1절-10절, 불확실한 세상과 삶



1절, 주석과 해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 찾으리라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1) 상업적인 말로서 배가 먼 항해를 마치고 그 이윤을 얻어 돌아 올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상품(물품)들을 계속 (바다에) 띄우라는 뜻이다(Hitzig, Delitzsch, Mendelssohn, Wildeboer). (2) 농업에 관한 말로서 곡식의 씨앗을 촉촉한 땅에 뿌려 추수 때에 풍요로운 결실을 얻는 것을 뜻한다(Palm, Baur, Leale). (3) ‘식물’을 인간 생명의 ‘씨앗’으로 볼때 성적으로 방종한 자에 대해 경계하는 뜻으로 볼 수 있다(Graetz). (4)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굳세게 지님으로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을 얻으라는 뜻이다(M.A.Eaton). (5) 자선 또는 구제 생활을 권면하는 말로서 남을 위해 선을 베풀고 쌓으면 이내 그것을 좋은 결과로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Leupold, Lange, Ginsburg, Wright). 위 견헤 중에서 (5)가장 나을 듯하다. 즉 전도자는 앞에서 자연, 지혜, 인생 등의 허무를 언급한 후여기서는 사람의 사는 인생 동안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티브(motif)면에서는 (1)의 뜻을 빌린 것일 수도 있다. 한편 구약에서는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제를 촉구하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오며(신 15:10, 잠 11:24,25, 28:27), 바울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선행을 행할 때 때가 되면 그 결실을 얻으므로 결코 낙심하지 말 것을 언급한 바 있다(갈 6:7-10).



2절, 주석과 해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 못함이니라

이에 대한 해석도 1절과 연관되는 것으로서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된다. 그러나 1절의 경우에 비춰볼 때 구제 혹은 남에게 선을 베풀 것을 권고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언제 어떤 재앙이 임할는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 넉넉할 때 다른 사람에게 덕을 베풂으로 재앙시 같은 도움을 입을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부자의 청지기 비유와 유사하다(눅 16:1-13). 한편 ‘일곱에게나 여덟’이란 단순히 숫자상의 7이나 8을 의미하지 않고 많은 수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특히 ‘일곱’ 다음에 ‘여덟’을 언급한 것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숫자를 말함으로써 복수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한 표현으로 보인다(욥 33:29, 잠 30:15,18, 사 17:6, 암 1:3, 미 5:5).



3절, 주석과 해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이는 문맥상 재앙이 부지불식간에 임한다는 2절 하반부와 연관되는 비유이다. 특히 이는 구름에 비가 가득할 경우 반드시 쏟아져 내린다는 자연의 불변의 법칙을 나타낸 것으로서 때로는 이 세상사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불특정한 재앙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력히 상기시킨다. 3,4절에서 전도자가 비와 바람, 바람과 비를 서로 교차하여 언급하는 교차대구법(交叉對句法)을 통해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Gordis).


나무가 … 그냥 있으리라

전반절이 불예측성 또는 불가피성을 암시한 반면 본 구절은 재앙이 임할 경우 사람은 어찌할 수 없이 그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결국 이는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연약성 또는 재앙의 엄중성을 나타냄으로 1,2절에서 암시하는 바 평안하고 넉넉할 때 베풀며 살라는 뜻을 강조한다.



4절, 주석과 해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 거두지 아니하리라

(1) 혹자는 이를 3절과 연관시켜 폭우가 임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서는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파종이나 추수에 적당한 때를 기다리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2) 혹자는 어떤 것을 행할 때 적당한 때나 좋은 시기만을 차일 피일 기다리면서 우유부단하게 행하지 말고 신념과 용기를 갖고 수행하라는 라스, 즉 환경과 조건에 대한 지나친 계산에 의해 행하지 말고 열성과 근면성으로 행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본다(Lange, Delitzsch). 그러나 (1)도 궁극적으로는 (2)의 결론처럼 사람이 일을 수행할때 자포자기하지 말고 근면과 성실한 마음으로 꾸준히 행할 것을 암시적으로 권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후 문맥 특히 5,6절을 참고해볼 때 사람이 선을 행할 때 주위 환경이나 여건에 좌우되어 주저하거나, 보다 좋은 기회를 보기 위해서 미루지 말고 즉시 용기를 내어 행할 것을 촉구한 말씀이기도 하다. 한편 혹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추수기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이 구절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쓰여진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제안하나(Siegfried) 이는 그 극너가 정확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추수기에 비가 오는 일이 드물다 할지라도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추수가 시작되는 4월까지 비가 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G.A.Barton). 또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비가 오고 안 오고가 결정되는데, 보통 서풍이나 북서풍 또는 남서풍이 불때 비가 온다(왕상 18:44,45, 욥 37:9 참조).



5절, 주석과 해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 알지 못함 같이

이는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난다. (1) 영역본 NASB는 ‘네가 바람의 길과 아이 벤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지 못함 같이’(Just as you do not know the path of the wind and how bones are formed if the womb of the pregnant woman)로, (2) RSV는 이를 ‘네가 영이 모태의 뼈들에게로 어떻게 이르는지 알지 못함 같이’(As you do not know how the spirit comes to the bones in the womb)로, (3) KJV는 이를 ‘네가 영의 길이 무엇이며 뼈들이 어린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모태에서 어떻게 자라는지를 알지 못함 같이’(As thou khowest not what is the way of the spirit nor how the bones do grow in the womb of her that is with chile)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 구절의 ‘루아흐’를 한글 개역 성경처럼 ‘바람’으로 보며 4절에 암시된 바라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Zöckler, Delitzsch, G.A.Barton). 그렇다면 전도자는 여기서 자연 및 인간의 신비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인간의 지혜의 한계성 및 연약성을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사람이 바람의 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와 관련한 예수님에 의해서도 언급된 적이 있으며(요3:8), 인간의 조성의 신비는 다윗에 의해 시편에 암시되어지기도 했다(시 139:13-16).


만사를 성취하시는 … 알지 못하느니라

혹자는 ‘만사를 성취하시는’을 ‘두 가지를 만드시는’(who makes both) 즉 상번절의 바람의 길과 태속의 뼈들을 만드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하나(G.A.Barton) 이보다는 본서 전체에서 암시되듯이 앞의 두 가지 일을 포함하여 인간사와 자연계의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뜻으로 보는게 더 타당하다(3:1-11, 7:14). 그리고 전후 문맥을 고려할 때 본 구절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사람이 다 알 수 없는 바 모든 일 특히 남에게 선을 베풀고 덕을 쌓는 일에 있어서 주저하거나 미루지 말라는 권면의 뜻을 암시한다. 한편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는 지혜의 한계성 또는 연약성은 본서 전체의 지향하는 내용 중 하나이다(3:11, 7:14, 8:17).



6절, 주석과 해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 거두지 말라

이의 해석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하다. (1) 사람이 젊을 때에나 혹 늙을 때에라도 자녀를 낳는 것을 언급하는 내용이다(Graetz). (2)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가운데 선을 행하고 덕을 베푸는 것을 뜻한다(Plumtre). (3)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권면의 말씀이다(Lange, Leale, Delitzsch, G.A.Barton). 전후 문맥의 관계에서 볼때 (2)나 (3)의 두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저녁에도’의 히브리어 ‘웰라에레브’은 ‘그리고 저녁이 되어도’의 뜻으로 ‘아침에’라는 말과 함께 하루 온종일 성실하게 일하라는 뜻을 암시한다. 그러나 혹자는 ‘아침에’나 ‘저녁에도’를 인생의 ‘젊을 때 ‘와 ‘늙을 때’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보기도 한다(Power).


알지 못함이니라

아침에 씨 뿌린 것이 잘 될지 저녁에 뿌린 것이 잘 될지는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5절)의 주권에 달려 있으므로 사람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일할 것을 강구하는 암시이다.



7절, 주석과 해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빛’이란 한면으로는 태양의 빛을 뜻하나 또 한면으로는 그 배후에 담겨있는 근본적인 의미는 생명, 즉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욥 3:20, 18:5,6, 시 36:9, 요 8:12, 9:5).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라’의 히브리어 ‘마토크’은 문자적으로 ‘달콤한’, ‘단’(sweet, KJV, NIV, RSV)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앞절과 연관시켜 볼 때 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일하며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살 때 자족하는 가운데서 낙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도자가 인생의 낙에 대해 언급한 것은 본서 여러 곳에 나타난다(2:24, 3:12,13, 5:18).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그 의미면에서 앞 구절과 유사한 내용으로 즉 ‘해를 보는 것’은 단순히 태양을 바라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태양 빛이 생명을 상징하고 ‘보는 것’이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 경험적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것을 뜻하는 바, 삶의 낙을 누리는 것을 암시한다(1:3, 2:1 참조)



8절, 주석과 해설


그러나 캄캄한 날이 … 생각할지로다

‘캄캄한 날’(예메 하호쉐크)이란 원어상으로 복수(the days of darkness)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생명을 상징하는 ‘카’의 날들과 반대되는 의미로서 죽음의 날돌로 여겨진다(Lange, Leale, Barton). 그러나 혹자는 이를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부딪히게 될 재앙 또는 시련의 날들로 보기도 한다(Wardlaw). 아무튼 본구절은 전반절과 연관되어 최선을 다하는 삶을 통해 복된 낙을 누리되 역경과 죽음의 날들 또한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의 본분을 잊지 말라는 뜻을 암시한다 하겠다. 특히 ‘생각할지로다’의 히브리어는 ‘이제코르’으로서 9:5의 ‘이름’(기념, 기억)의 어근이며 ‘기억하다’, ‘회상하다’의 뜻을 갖는다.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여기에서 ‘장래 일’(쉐바)이란 이 세상에서 맞게 될 미래의 일뿐만 아니라 사후(死後)의 세상을 암시하기도 한다(Lange, Deane, Barton, M.A.Eaton). 이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마 6:34)라는 말씀처럼 추어진 현실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권고로 이해된다.



9절, 주석과 해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 기뻐하여

이는 8절 전반부의 말씀과 같이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신 터전 위에서 해복을 추구하며 살라는 권면이다. 이러한 권면은 본서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2:24, 3:12,13, 5:18). 그러나 전도자는 인생을 즐기되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하반절) 기억하고 지나친 방종, 향락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제한을 가하고 있다. 특히 본 구절에서 삶을 즐기는 대상으로서 ‘청년’을 언급한 것은 청년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황금기로서 소망과 힘에 부푼 시기이기 때문이다. 본서의 저자 솔로몬은 지난 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도 불구하고 향약과 죄악 가운데 빠졌다가 인생의 후반기에 하나님께 돌아와 지난 날을 회고해 볼 때 청년의 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1:1). 한편 시편 기자는 청년의 때와 관련하여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라고 말하였다.


마음에 원하는 길

마음에 기뻐하는 대로 낙을 누리는 삶을 살 것을 언급한 말이다(2:10). 물론 이는 타락한 육신적인 생각대로 그 마음을 좇아 쾌락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라 본서 여러 곳에서 암시되어진 대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허락된 대로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즐기라는 절제된 표현이다. 인간은 근본 아담 안에서 정죄되어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롬 5:16-21, 7:14,18), 그 마음은 만물보다 심히 부패되어 있으며(렘 17:9) 인간이 육신적인 욕심과 생각을 따라 살 때에는 커다란 죄악에 빠지기 마련이다(엡 2:3).



10절, 주석과 해설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근심’의 히브리어 ‘카아스’은 문자적으로 ‘분노’, ‘슬픔’ 등을 의미하며 1:18에서는 ‘번뇌’로, 2:23에서는 ‘슬픔’으로 7:9에서는 ‘노’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본 구절의 문맥상 ‘분노’보다 ‘슬픔’이란 뜻이 더 타당하겠다(Leale, Lange). 결국 본 구절은 인생의 낙을 누리는 데에 방해되는 슬픔의 요소를 마음에서 제하라는 의미로 보여진다.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악’의 히브리어 ‘라아’은 ‘악’, ‘해’등의 뜻으로서 본서에서는 특히 인생 가운데서 헛됨을 느끼게 하는 나쁜 것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5:13). 특히 지나친 방종과 향락에 빠져 몸을 약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이는 8,9절에 암시되어진 바와 같이 인생의 낙을 누리되 지나친 방종과 타락에 처해지지 않도록 자제를 권고하는 내용이다.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이는 꿈과 소망이 부푸는 인생의 황금기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고 쉽게 사라져 지나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의미는 이후 12:1-8에서 유사하게 이어진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