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큐티의 본문인 전도서 4장 1절부터 6절까지의 말씀에서, 전도자는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생활의 터전 속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비참한 현실 그리고 학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고 새벽설교를 준비하기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했습니다.
전도서 4장 1절-6절, 경쟁이 아닌 배려와 협력
1절, 주석과 해설
모든 학대(虐待)를 보았도다
‘학대’에 해당하는 ‘아슈크’은 ‘누르다’, ‘사취하다’의 뜻인 ‘아솨크’의 수동태 분사로서 ‘압제’, ‘억압’등을 의미한다(oppressions, KJV, RSV). 본 절에서는 세도가들의 수탈과 압제를 가리키는 듯하나 압제와 피압제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한계를 밝히고 있지는 않다. 구약성경에는 피압제자에 대한 긍휼에 드러내는 구절이 많다. 예컨대, 왕이 백성들을 압제하는 경우(잠 28:16), 주인이 종을 학대하는 경우(신 24:14), 부자가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경우(잠 22:16, 암 4:1) 등에 대한 분개가 그것이다. 특히 나그네나 고아, 과부 등은 각별한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렘 7:6, 겔 22:7, 슥 7:10).
위로자가 없도다
이 말은 본 절에서 두 번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도움받을 길 없는 딱한 처지를 한층 더 강조해 줌과 동시에 이들을 구원할 자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암시해 준다.
2절, 주석과 해설
그러므로 나는 … 복되다 하였으며
이는 3:22과 대조되며 욥 3:20, 21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으로서, 학대받는 자들의 비참한 모습으로 인하여 인생의 허무함을 극도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내용은 3:22, 9:4-10 등을 근거해 볼 때 전도자의 뿌리 깊은 염세주의적 성향을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그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렇게 언급한 것이다(G.A.Barton). 특히 본 절에서 전도자가 학대받는 자들의 편에서 이와 같이 말한 것은 그가 비록 이스라엘의 왕이라는(1:1, 12) 높은 권세의 자리에 않아 있으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로서 약한 자들을 동정하는 상태에 있음을 엿보게 한다. 한편 본 절의 ‘복되다’에 해당하는 ‘민’은 ‘ … 보다 위’, ‘ … 보다 더’(more than, KJV, NASB)라는 비교급의 뜻을 갖는다.
3절, 주석과 해설
이 둘보다도 … 낫다 하였노라
이는 욥이 극도의 고난으로 인하여 그의 출생일을 한탄한 말(3:1-16)을 연상케 한다. 본 절 역시 2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인생의 허무함을 더욱 강도높게 묘사한 것이다.
4절, 주석과 해설
내가 또 본즉 … 시기를 받으니
본 절에서는 인간이 받는 시기, 질투로 인한 인생의 허무함을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의 성취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수고와 재능에 대해 시기하기 쉽다. 그리고 정정당당한 선의의 경쟁을 하기보다는 지나친 경쟁 의식, 비교 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상대방을 비난하고 모함하기 쉽다. ‘교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쉐론’은 ‘성공’, ‘성취’, ‘기술’ 등을 의미한다. 영역본들 중 RSV, NASB 등은 이를 ‘기술’(skill)로 번역하나 NIV는 이를 ‘성취’(achievement)로 번역하고 있다. 주석가들 가운데서도 이를 ‘성공’을 뜻한다고 보는 자가 있는가 하면 ‘기술’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자도 있다(Lange, G.A.Barton). 반면 2:21에서는 이를 ‘재주’(skill, RSV, NIV, NASB)로 번역하고 있다. 요컨대, 이 말은 사람이 훌륭한 기술로 인하여 성공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M.A.Eaton, Lange).
5절, 주석과 해설
우매자는 … 살을 먹느니라
이는 앞절(4절)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함이 무방할 듯하다. 즉 다른 사람이 행하는 ‘수고’와 성공을 이루는 ‘교묘한 일’을 시기, 질투할 뿐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우매자에 대한 언급이라는 말이다. 특히 ‘손을 거두고’란 일하기 싫어서 손놀리기를 멈추고 빈둥거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잠 6:10, 19:24, 24:33 등과 유사하다(Lange, G.A.Barton, M.A.Eaton). 그리고 ‘살을 먹느니라’란 우매자가 게으름으로 인하여 자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을 뜻한다(시 27:2, 사 49:26, 미 3:3). 아마도 본 절은 전도자가 당시 유행했던 잠언을 인용하여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6절, 주석과 해설
한 손에만 가득하고 … 나으니라
이것도 5절처럼 당시 유행되던 잠언구를 인용한 것인 듯하다. 원문을 직역하면 ‘평온함이 가득한 한손이 수고로 가득한 두 손보다 낫다’(Better is a handfull of quietness than two hands full of toil, RSV)의 뜻이다. 여기서 앞의 ‘손’은 그 기본어가 ‘카프’으로서 약간 오목하되 거의 평평하게 펼친 손(바닥)을 뜻하며, 뒤의 ‘손’은 그 기본어가 ‘호펜’으로서 가능한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하여 오므린 손, 주먹을 뜻한다(G.A.Barton). 이러한 원어상의 뜻은 상호 대조적인 의미를 잘 반영해 준다. 즉 전자의 의미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을 나타내는 반면 후자의 의미는 물질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내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본 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1) 이는 앞절(5절)과 연관되는 말로서 게으른 우매자가 스스로에 대하여 위로하는 말 또는 ‘수고’와 ‘교묘한 일’을 통해 성공한 부지런한 이웃(4절)에 대해 질투하는 말로 이해한다(Lange). (2) 지나친 과욕이나(하반절) 지나친 게으름(5절)을 배격하는 절제된 중용의 삶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살면서 너무 지나치게 많이 취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적당량을 취한 상태에서 인생의 묘미를 누리는 것이 최선의 상태임을 가리치는 말이다(M.A.Eaton). (3) 이는 앞 뒤 문맥의 사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서 전도자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2)의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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