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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장 1절-12절,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 매일성경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 큐티의 본문인 마태복음 2장 1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은, 동방 박사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이스라엘 땅까지 온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헤롯에게 참된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는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설교로 준비하는데 필요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장 1절-12절,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마태복음 2장 1절-12절,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1절, 주석과 해설


헤롯왕 때에

마태는 예수의 탄생 시기가 헤롯왕이 통치하고 있던 기간이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의 탄생 일자를 기산(起算)하기 위함이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의 왕통이 단절되고 이방인의 통치가 본격적으로 실현됨으로써 ‘홀(笏)이 유다를 떠나고, 치리자(治理者)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남으로, 지금은 실로가 오실 때이며, 백성이 그에게 복종할 때’(창 49:10)라는 야곱 예언의 성취를 묵시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본 절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도있다.

신약에는 헤롯이란 말이 45번이나 나오는데 대부분 구분하지 않고 “헤롯”이라고 언급되는 경우가 많지만 모두 같은 사람은 아니다. 신약 성경 시대의 헤롯 왕들은 다음과 같다.

1. 헤롯 대왕(B.C. 37-B.C. 4): 예수님 탄생시의 왕. 본 절의 헤롯왕이다.

2. 헤롯 아켈라오(B.C. 4-A.D. 6): 헤롯 대왕의 아내 말다게의 아들. 유대의 영주로 임명되었으나 실정으로 추방되고 총독이 파견됨. 마 2:22의 주석을 참고하라.

3. 헤롯 안디바(B.C. 4-A.D. 39): 헤롯 대왕의 아내 말다게의 아들.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침례 요한을 죽였고 십자가 전에 예수님을 심문함. 마 14:1의 주석을 참고하라.

4. 헤롯 빌립(B.C. 4-A.D. 34): 헤롯 대왕의 아내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갈릴리 동북쪽 골란 지방의 분봉왕으로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함. 눅 3:1의 주석을 참고하라.

5. 헤롯 아그립바 1세(A.D. 37-34): 헤롯 대왕의 아내 마리암네 사이에 난 아리스토불로스의 아들. 할머니와 아버지가 할아버지 헤롯 대왕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은 왕자이며 왕이 된 후에 야고보를 죽임. 행 12:1의 주석을 참고하라.

6. 헤롯 아그립바 2세(A.D. 50-70): 헤롯 대왕의 증손자로 아그립바 1세의 아들.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이 만난 왕으로서 나이가 어려서 실권을 갖지 못함. 행 25:13의 주석을 참고하라.

위의 헤롯 왕들 중 본 절의 헤롯은 1번의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B.C. 37-B.C. 4)이다. 그의 역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예수께서 태어나신 당시의 헤롯은 헤롯 대왕이라고 부른다. 마 2:1-19과 눅 1:5에 나오는 헤롯 왕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는 안티파테르(Antipater)의 아들로 B.C. 73년경에 태어났고, 33년 동안 유대인들을 다스리다가 마지막으로 베들레헴의 어린이들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예수께서 태어나던 그 해에 죽었다. 이름의 뜻은 ‘영웅의 아들’이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는 에서의 후손인 이두매 사람이다. 유대인들이 가증하게 여기는 이방인이 어떻게 유대인의 왕이 되었는가? 순전히 그의 아버지와 로마 세력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이두매의 실력자인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테르는 유대 마지막 왕조인 하스몬 왕조의 혼란기를 틈타 로마의 권력을 힘입어 유대의 행정 장관이 된다. 아버지의 권세 때문에 25살의 젊은 나이에 갈릴리의 총독이 된 헤롯(B.C. 47)은 틈을 엿보다가 마침내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공략하여 전(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B.C. 37).

(2) 그는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하여 계속되는 로마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고, 각종 건축사역(극장. 원형 경기장, 기념비, 우상 제단, 성채 등)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고된 부역을 강요했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미워하는 것을 잘 알고 그들의 환심을 가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제3성전) 사역을 B.C. 20년에 시작하여 그가 죽은 뒤인 A.D. 68년에 완성시킴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대 하스몬 왕조의 공주인 마리암네(Mariamne)와 결혼하여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음모에 휘말려 사랑했던 마리암네와 두 아들을 죽이고 만다. 언제 로마의 지지가 끊어질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던 헤롯은 천혜의 요새인 거대한 마사다(Masada)를 건축하여 유사시에 피신하려고 했으나 사용해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렇게 병적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동방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축격을 받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 모든 아이들을 죽이라고 한 것은 그의 처지에서였다.

(3) 헤롯은 열 명의 여자와 결혼하였다. 그의 첫 아내는 이두매 여인인 도리스(Doris)였다. 그러는 그는 도리스를 버리고 히르카누스(Hyrcanus) Ⅱ세의 손녀인 마리암네(Mariamne) 공주와 결혼하였다. 유대 왕실과의 결혼은 그의 왕권의 정통성을 좀 더 확고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헤롯은 마리암네를 사랑했으나 마리암네는 그를 싫어하였다. 마리암네에게서 아르스토불루스(Aristobulus)와 알렉산더(Alexander)라는 두 아들을 낳았지만 헤롯은 후에 마리암네와 두 아들을 죽이고 만다.

마리암네가 죽은 후 헤롯은 예루살렘의 제사장 시몬의 딸인 또 다른 마리암네와 결혼하여 헤롯 빌립을 얻었다. 이 빌립이 헤로디아의 첫 남편이 되지만 후에 헤롯 안디바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만다(마 14:3, 막6:17) 그다음 헤롯은 사마리아 여자 말다게(Malthace)와 결혼하여 아켈라오(Archelaus)와 안디바(Antipas)를 낳았는데 이 두 아들이 헤롯 사후에 유대의 실권을 쥐게 된다. 헤롯의 또 다른 아내는 예루살렘 여인 클레오파트라(Cleopatra)이다. 이 여자는 빌립을 낳았는데 헤롯은 빌립에게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다스리도록 했다(눅 3:1). 다른 다섯 명의 아내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4) 헤롯은 사마리아를 건축하여 세바스테(Sebaste)라고 일컬었다. 동방박사들이 찾아왔을 때 그는 거의 70세였으며 죽을 병에 걸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병적인 의심과 욕심은 베들레헴의 죄 없는 어린아이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의 치세는 폭력과 살육으로 얼룩졌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를 싫어했고 진정한 의미에서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B.C. 4년경에 매우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70세를 일기로 최후를 맞이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연대를 제시하는 것이 바로 본문 이외에는 성경 어느 부분에서도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 일자를 산출하는데 많은 애로점이 있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해롯이 B.C. 4년에 죽었기 때문에(Schurer) 적어도 예수는 그전에 태어났음이 틀림없다고 믿어왔다. 한편 헤롯의 사망 일자에 대해서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가 죽기 전에 월식(月食)이 있었다고 언급함으로써 B.C. 4년 3월 12-13일로 측정케 했다. 그에 반해 유대인들의 전승은 헤롯이 죽은 후 유월절이 시작되었다고 증언함으로써 이때를 B.C. 4년 4월 11일 경으로 추정케 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적(政況的) 증거로 보아 예수의 탄생 연대는 B.C. 5년 후반기나 B.C. 4년 초반기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유대 베들레헴

이 베들레헴은 ‘유대’(in Judea)라는 단어와 함께 쓰임으로 갈릴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스불론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과 분명히 구별된다.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인 것은 2절의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에 대한 암시인 듯하다. 한편 구약때 이 지명은 주로 ‘에브랏’, 또는 ‘에브라다’로 불리어졌었다(창 48:7, 룻 1:2, 삼상 17:12, 미 5:2). 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 남방 8 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서 메시아가 탄생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자(미 5:2) 유대의 실질적인 건국(foundation lf a nation)을 이룬 다윗 왕의 고향이기도 하다(삼상 16:1-18). 여기서 히브리어 지명 베들레헴(베트레헴)은 ‘떡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마 그 지역이 곡식과 과실이 풍성한 비옥한 곡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로 이 지명과 걸맞게 온 인류에게 풍족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이곳에서 출생하신 것이다(눅 2:4).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본 문장의 초두에,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보라’(헬, 이두)라는 감탄사가 원문에 언급되어 있다. 이는 저자 마태가 본문이 지니는 중요성과 그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술하였을 것이다.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마태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2:2) 그리스도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생략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사들의 수가 몇인지는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예물의 종류가 세 가지인 것으로 보아 일반적으로 세 명 이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방 : “동방으로부터”의 헬라어 ‘아포 아나톨론’은 ‘떠오르는’ 이란 뜻의 ‘아나톨레’에서 유래한 말로써 문자적으로 “해가 떠오르는 곳으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동방’을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특정한 땅, 곧 페르시아(Vincent), 바벨론, 메데(Carr), 아라비아, 또는 동쪽에 위치한 모든 곳(Bruce)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적 해석 이외에 문화가 발달한 지역일 것이라는 관점에서 소아시아, 애굽, 인도, 그리스 등지로 보는 학자도 있다.

이 같은 견해들 중 ‘동방’이 바벨론이었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바벨론에는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사들이 그들을 통하여 메시아에 관한 구약 예언을 사전(事前)에 깊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사들은 유대인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자들이라는 주장이다(Wycliffe, D.A. Carson).

그리고 유대인들은 수리아(민 23:7), 북부 아라비아, 페르시아(사 41:2) 혹은 메소포타미아(창 29:1, 4) 지방 등을 동방으로 불렀지만 확실히 어느 지방인지 알기 어렵다.

아기 예수는 최소한 40일 동안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남자아이를 낳으면 8일 만에 할례를 베풀고 33일(여자는 66일) 후에 결례 의식을 행했기 때문이다(레 12:4). 따라서 여행을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최소한 40일이 지나야 한다. 결례 후에는 더 이상 불편한 베들레헴에 머물 필요가 없으므로 떠날 예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박사들은 예수께서 탄생하신 후 40일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너무 멀리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방박사 : 동방박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박사는 헬라어로 ‘마고이’(magoi)이다. 이 말에서 영어의 “요술사” 혹은 “마술사”(magi)라는 말이 나왔지만 동방박사는 그런 마술사나 점성술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메데, 바사, 또는 바벨론의 제사장을 언급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단 2:2, 48, 4:6, 7). 특별히 이 용어는 이때로부터 600년 전에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의 어른으로 높임 받았던(단 5:7, 11) 다니엘에게 적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그리스에서는 이 용어를 마술사와 박수 등의 의미로 사용하였다(행 8:9, 13:8). 한편 터툴리안(Tertullian, A.D. 255년경 사망) 당시의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마고이’가 왕들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왕들이 와서 메시아를 경배할 것이라는 구약예언들(시 68:29, 31, 72:10, 11, 사 49:7, 60:1-6)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듯하다. 여하튼 박사들이 (1) 별을 보고 베들레헴을 향해 온 점, (2) 다니엘의 예언 및 메시아에 관한 구약의 각종 예언에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점 등을 볼 때 바벨론 출신의 천문학과 철학, 점성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고, 학식이 높고 고상한 인품을 소유한 존귀한 자들로 볼 수 있다.

6세기 말 경에 이르러서는 이 세 박사들의 이름이 가스파르(Gaspar), 멜키오르(Melchior), 발다사르(Balthasar)로 밝혀졌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한 아기를 찾기위해 유대인들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방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2절, 주석과 해설


유대인의 왕

‘다윗의 자손’(1:1, 9:27, 12:23, 15:22 등)이란 말이 유대인들이 인식하고 있던 메시아의 별칭이었듯이, 이 명칭은 이방인들이 이해하고 있던 메시아의 별칭이었다. 실로 ‘메시아 대망’은 모든 유대인의 공통된 현실이었거니와 바벨론 유수 사건으로 인해 세계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에 의하여 유대에서 나시는 메시아가 유대를 구하고 온 세상이 그로 인해 축복받는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었었다(Josephus).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고, 이 이름으로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으심으로써(27:37) 당신의 메시아성을 직.간접으로 드러내셨다.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동방 박사들의 이러한 질문은 그들이 ‘유대인의 왕’의 탄생 사실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들은 왕이 이미나셨고, 그 사실을 모든 유대인들이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정작 메시아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었던 유대인들 사회에서는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ironical)한 일이다. 이로 보건대 예수는 단순히 혈통적 ‘유대인의 왕’으로서가 아니라 영적 ‘유대인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것이 분명하다.


그의 별

별을 통해 인간의 중대사(重大事)를 결정짓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관례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한 자연 현상으로서 별을 이용하셨다. 그런데 이 별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대두되었다. 즉 (1) 자연계의 일반적인 현상과는 무관한 이적적 현상이다(Chrysostom을 위시한 대부분의 초대교회 교부들 및 초기 기독교 문서들), (2) 실재하지 않은 심리적 현상이다(Spinosa 등), (3) 혜성 또는 폭발로 인해 엄청난 양의 빛을 몇 주 정도 발하는 초신성(超新星)이다(Kepler, Martin, Schubert 등) 등이 있다.

한편 본서의 저자 마태는 이 부분을 기술하면서 적어도 민 24:17의 발람의 신탁(神託), 곧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 ’라는 묵시적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염두(念頭)에 두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태는 초대 기독교 문서들에서 가끔 발견되는 ‘별’에 대한 무분별한 알레고리칼(Allegorical)한 해석법으로는 본문을 접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본문과 민수기는 둘 다 ‘별’을 이스라엘의 왕, 곧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이외에도 신약 성경에는 별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상관 관계를 적절히 묘하해 주고 있다(밸후 1:19, 계 22:16).


경배하러 왔노라

‘경배하다’는 뜻의 헬라어 ‘프로스퀴네오’은 신약 성경에서 그 대상으로 대부분 하나님과 예수를 두었다(8, 11절). 그러나이 말은 일반 헬라어에서 넓은 의미로 ‘복종하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 단어를 근거로 지나치게 그리스도론 정립에 적용시켜서는 안된다(Broadus). 따라서 여기서는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을 알아보고 ‘경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한편 여기서 ‘경배’는 페르샤인들의 전통적 인사법을 연상케 하는 말로서 무릎을 꿇고 상대방에게 경의(敬意)를 표하는 예(禮)를 가리킨다.



3절, 주석과 해설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이 말 초반부에 부드러운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접속사 ‘데’이 들어 있다. 따라서 본 절이 시작하기 전에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께 경배코자 한 것과 대조적으로’라는 말이 의미상 첨가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유대인의 왕’의 탄생 소문은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던 70세의 늙은 헤롯왕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와 더불어 메시아를 갈망하던 예루살렘 백성들까지 헤롯의 병적인 정도의 잔인한 학정(oppressive government)과 또는 왕권 교체에 따르는 정변(political change) 등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사실 헤롯은 전에 그의 과대망상증 때문에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5명의 마카비 용사들을 살해하기까지 했었다(1절 참조). 한편 백성들의 이와 같은 우유부단한 태도는 예수의 생애 속에서 끊임없는 배척으로도 이어졌고 마침내 ‘자기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는 비극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소동한지라

‘소동하다’는 뜻의 혤라어 ‘타랏소’ 는 ‘뒤흔들리다’, ‘당황하게 하다’, ‘무섭게 하다’는 뜻을 지닌 말로서 그 당시 예루살렘 성내(城內)의 극심한 불안과 공포의 현장을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실로 헤롯은 자기 왕권의 위기 의식 때문에, 메시아의 오심을 마음으로부터 준비하지 못했던 백성들은 사회, 정치적 혼돈과 생존에의 위협 때문에 심각한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곧 평화의 왕이시자 모든 역사의 처음과 끝이 되신(계 1:8) 예수의 도래가 악인들에게 미칠 궁극적인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4절, 주석과 해설


왕이 … 서기관들을 모아

이 모임을 산헤드린 공회(Sanhedrin)로 보는 학자(De Wette)도 있으나 그보다는 주로 종교적 문제들에 대해 헤롯의 자문 역할을 하던 개인적인 성격의 단체(Bruce, Vincent)로 보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결국 이 자문 위원들은 기나긴 역사의 면면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듯이 진리를 외면하면서까지 권력의 유지를 위해 애썼던 권력의 하수인들이라 볼 수 있다.


대제사장

헬라어 원문에는 ‘대제사장들’(투스 아르키에레이스)이라는 복수로 기록되었다. 이는 그 당시의 대제사장 제도를 반영한 표현으로서 여기 ‘대제사장’은 헌직 대제사장과전직 대제사장 및 대제사장 가문에서 유력한 인물 등을 모두 포함한 말이다. 그러나 원래 대제사장직은 아론의 후손만이 할 수 있는 영구직이었으나, 헤롯이 율법을 어기고 대제사장을 임의로 면직 또는 임명하는 불법을 자행함으로써(Josephus) 종교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 그같은 사실은 솔로몬 성전 이래 바벨론 포수전까지(약 410년간) 18명의 대제사장이 교체된 것에 비해 스룹바벧의 성전 재건 후부터 헤롯때까지(약 420년간) 300명이 넘는 수의 대제사장이 교체된 것으로도 중명될 수 있다.


서기관

국가 기관에 종사하는 일반 서기관은 주로 문서를 담당하는 관리였는데(행 19:35) 비해 유대 종교 집단내의 서기관은 구약 율법에 능통하며 구약의 구전(oral tradition)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일종의 율법 해석자요 교사였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율법사(lawyer)로 불리워지기도 했고(22:35) 때로는 랍비로 호칭되기도 했다. 당시 시민법의 상당 부분이 서기관들의 해석에 근거해서 만들어졌을 정도로 그들의 권위는 대단했다. 한편 그들은 대부분 바리새인 출신들이었는데 반해 그들과 경쟁적 관계에 있던 대제사장 계급은 대부분 사두개인 출신들이었다고 한다(D.A. Carson). 따라서 당시 헤롯이 체질적으로 함께 모이기를 싫어하는 이들 두 계급 사람들을 동시에 부른 데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한 학자들도 있다(Schweizer). 그러나 간ry한 헤롯이 이 두 부류의 견해를 동시에 수렴함으로써 ‘유대인의 왕’ 탄생에 관한 사건이 종교, 역사적으로 거짓이 아닌지에 대한 사실 여부를 명확히 알아보고자 했다는 점에서 두 부류를 동시에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D.A. Carson).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헤롯은 그리스도(1:1)와 유대인의 왕(2:2)이 동일 인물이며,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자의 칭호였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27:37).


물으니(에퓐다네토)

동사시제가 미완료형으로서 질문이 집요(執拗)하리만치 끈질겼음을 암시한다. 더욱이 이 말은 종종 ‘시험삼아 물어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헤롯이 어떻게든 자신의 의구심을 풀어보려는 깊은 갈증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5절, 주석과 해설


가로되 … 기록된 바

‘기록된’(게그라프타이)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들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확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본문의 ‘선지자로’에서 ‘로’는 헬라어 ‘디아’에 해당하는데 정확하게 번역하면 선지자를 ‘통하여’ 기록된 것을 의미한다. 즉 전치사 ‘디아’는 구약의 예언을 전한 선지자가 말씀의 궁극적인 근원이 아니라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 일뿐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1:22).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헤롯의 질문에 조금도 주저치 않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구약 미 5:2에 근거하여 예언된 메시아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임을 지적했다(1절). 이는 그들의 해박한 성경 지식을 보여주며 더불어 그 당시 팽배해 있던 메시아 대망 사상을 반영해 준다. 실로 그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참믿음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기록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지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6절, 주석과 해설


유대 땅 … 목자가 되리라

이 부분은 미 5:2의 인용이며, 삼하 5:2(대상 11:2)이 첨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서 기자 마태는 히브리 맛소라 사본을 그대로 따르지도 않았고, 또 70인역(LXX)을 따르지도 않았다. 이처럼 마태가 독자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미 5:2과 차이가 나게 된 점을 살펴보면 (1) ‘베들레헴 에브라다’ 가 여기서는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변형되어 있다. 이것은 ‘에브라다’가 고전적 표현으로서 시적(詩的)인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변형을 이룬 것 같다(Gundry). (2) 미가서의 ‘유다 족속 중에’가 ‘유대 고을 중에’로 바뀌어져 있다. 이 차이는 단지 ‘족속’이란 용어가 ‘고을’의 의인화된 표현이란 점에서 큰 무리없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3) ‘작을지라도’와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가 상반된다. 이 두 구절들의 전체적인 해석을 보면 이 차이가 단지 형식적(표면적)인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즉, 두 구절은 모두 베들레헴이 메시아의 탄생 장소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크게 드러 내놓을 곳이 못되지만, 이제 메시아의 탄생으로 크고 위대한 처소(處所)가 될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Hengstenberg). (4) 한편 마태는 삼하 5:2에서 인용한 ‘목자’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이 표현의 목적은 미 5:2의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다름아닌 ‘다윗에게 주어진 언약을 성취하는 자’임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이다. 실로 예수께서는 양으로 비유된 성도들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먹여주시는 선한 목자(요 10:11) 가 되신다. 이를 가리켜 사도 베드로는 ‘영혼의 목자’, ‘목자장’(牧者長) 등으로 표현하였다(벧전 2:25, 5:4).



7절, 주석과 해설


이에(토테)

이 용어는 마태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막 9회, 눅 14회, 요 10회) 자주 사용한(약 90여회)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로서 ‘그리고 나서’, ‘그 때에’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적 의미로 사용된 본 절 이의에는 대부분 단순히 다음 문장을 연결하는 연결사로 사용되었다(17절, 3:5, 13).


헤롯이 가만히

이는 헤롯이 은연(隱然) 중에 일을 추진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처럼 정치적 술수와 음모에 능통한 자였던 것이다. 한편 마리아와 아이를 살리려는 요셉의 의로운 행동 ‘가만히’(1:19)와 대조적으로 헤롯의 ‘가만히’는 아이를 죽이려는 음모를 암시하는 사악한 행동을 묘사한 것이다.


박사들을 … 자세히 묻고

아마도 헤롯은 박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극진한 예우로 대했을 것이다. 한편 ‘별이 나타난 때’를 묻는 헤롯의 질문을 통해 예루살렘에서는 그 별이 아직 감지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질문 속에는 어린 왕의 탄생기점을 알아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16절) 사내 아이들을 살해하려는 무서운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다. 헤롯은 태어난 ‘유대인의 왕’이 훼파된 다윗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임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간악한 계획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메시아 왕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던 셈이다.



8절, 주석과 해설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헤롯은 박사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었다는 자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박사들에게 염탐꾼을 딸려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생각이 빗나간 것(16절)임을 뒤늦게 알게되었다. 진정 그는 이 이방의 박사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으로 인한 지시(12절)대로 옴직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헤롯의 비상하고도 교활한 ‘지혜’를 아기 예수를 찾아가는 박사들의 ‘발’ 밑에 놓이게 하시는(고전 2장) 하나님의 섭리가 명쾌히 드러나게 된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자신의 추악한 음모를 은폐하기 위하여 경건을 가장한 혜롯의 위선이다. 아기 예수를 살해하기 위한 계략(stratagem)의 겉포장은 ‘경배’였다. 먼길을 마다 않고 자기 발로 걸어 와서 스스로 드리는 동방 박사들의 진정한 ‘경배’(2, 11절)와 어두운 데 웅크리고 앉아서 ‘나도 … 하게 하라’는 헤롯의 거짓 ‘경배’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거짓 경배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로마 군사들의 모독과 조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27:29)


9절, 주석과 해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본서의 기자 마태는 분명히 ‘별’이 박사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이 10절에서 별을 보고 기쁨을 표한 것은 적어도 별이 계속 보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 당시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던 박사들이 그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Meyer, Bengel) 유대인의 왕이 탄생할 장소는 당연히 예루살렘일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예루살렘을 찾았고, 또 그 당시 유대의 유력자 헤롯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헤롯의 경건하게 보이는 말에 고무(encouragement)되어 있었을 것이다.


동방에서 보던 그 별

자신들의 지혜에 의해 길을 잘못 들었던 박사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밝 은계시의 별이 다시 나타났다. 실로 혼탁하고 부패한 세상 가운데서 참 생명되신 예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의 계시 뿐이다(시 119:105). 한편 본문은 박사들이 궁(宮)을 떠날때 이미 밤이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낮이 무덥고 밤이 서늘한 중근동 지방에서는 먼길을 가기 위해 밤에 별을 보고 여행하는 것이 관습이었다(Meyer).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여기서 ‘문득’이란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 말로서 갑작스런 상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의미상 첨가한 말이다. 이제 박사들은 다시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앞서 인도하여’라는 헬라어 ‘프로에겐’은 서술적 미완료 시상으로 동작(인도)의 계속성을 나타낸다. 즉 ‘손으로 이끌듯 계속해서 인도해 가는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이다(Chryststom).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 말이, 별이 동방으로부터 베들레헴까지 옴직였다는 것과 베들레혭 상공에 계속 떠서 움직이고 있는 별을 보고 박사들이 왔다는 것(Bruce) 중 어느 것을 가리키는 말인지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사들은 그 별이 ‘유대인의 왕’(2절)을 가리킨다고 믿었고, 그 별은 그들을 ‘아기 있는 곳’으로 인도한 것이다.


아기 있는 곳 위에 … 섰는지라

여기서 ‘있는 곳 위에’(에파노 후 엔)란 ‘아기가 있었던 베들레헴의 한 특정한 곳 위에’로 볼 수도 있고, 그저 막연히 ‘베들레헴 동네 위에’로 볼 수도 있다. 만일 전자를 받아들인다면 이 사건의 초자연성을 더욱 강조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후자를 받아들여 일단 베들레헴에 도착한 박사들이 수소문하여 아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할지라도 이 사건의 초자연성을 감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여하튼 별은 아기가 ‘있는’ 곳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굳게 ‘머물러’ 있었다. 실로 그곳에 바로 인도(leading)와 축복과 그리고 구원이 있었다. 정녕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머물러서’(눅 18:40) 있는 곳에 구원이 있는 것이다.



10절, 주석과 해설


저희가 별을 보고 …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별을 보고’라는 말은 그들이 새삼스럽게 별의 나타남(7절)을 보았다기 보다, 아기 예수위에 ‘머물러 서’있는 별이 자신들의 기나긴 여행의 최종적인 목적지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은혜, 곧 임마누엘이신 예수(1:23) 탄생을 드디어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는 말이다. 이 확신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무한한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다. 그러한 그들의 기쁨을 표현한 본문 중 특별히 ‘가장’에 해당하는 헬라 ‘스포드라’은 ‘충만하여 차고 넘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며, ‘큰’(메가렌) 역시 크고 놀랍고 장엄함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두 단어의 만남은 결국 그 기쁨의 실체가 최상에 이르렀음을 암시향다. 그리고 ‘기뻐하고 기뻐하더라’(에카레산 카란)는 기쁨을 뜻하는 헬라어 ‘카라’라는 동일 어근의 중첩(重疊)으로서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기쁨을 기뻐했다’(they rejoiced with joy)가 된다. 이는 어떤 의미를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동일한 의미의 단어를 중첩해 사용했던 셈어의 영향을 받은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이라 할 수 있다(Moule). 따라서 본문은 박사들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택한 백성들의 소동(3절)에 비하여 얼마나 값진 일인가. 그들은 샛별(벧후 1:19)의 인도를 따라 왔기 때문에 의(義)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뵐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그들의 기쁨은 자신들에게 닥친 크나큰 행운(메시아를 만나 보는 일)을 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1절, 주석과 해설


집에 들어가

누가복음에는 ‘아기가 나신 곳’이 마구간으로 되어 있다(눅 2:7). 그에 비해 본문에는 ‘아기가 있는 곳’이 집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방 박사들이 방문한 시기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27-A.D. 14)의 명(命)에 의한 호적, 곧 인구 조사(눅 2:1)가 끝난 얼마 후(아마 수개월 경과 후, Wycliffe) 요셉이 거처를 마련한 다음이었을 것이다(Theophylact, Lenski, Alford등).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여기서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헬라나 로마의 예법이 아니라 동방의 예법이다(2절).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마리아와 ‘함께’가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 뿐이었다. 즉 그들은 헤롯에게나 아기의 부친과 모친에게도 경배하지 아니했다. 경배의 대상은 오로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한 분 밖에 없는 것이다(4:10).


보배합

이 단어는 번역이 애매하게 된 것으로 ‘귀중품 상자’나 ‘보물 상자’를 의미한다. 그들의 ‘보배합’은 그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예물)의 저장소였다(6:20).


황금과 … 예물로 드리니라

이 내용은 이방의 왕들이 메시아 앞에 예물을 드리고 복종하게 될것이라는 구약 예언(시 72:10, 사 60:6)의 분명한 성취이다. 한편 고대 동양 풍습에서는 왕을 알현(audience)할 때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상례(常禮)였다(창 43:1, 삼상 9:7, 8, 왕상 10:2, Derett, Clarke). 박사들이 헌상(offering to a superior)한 세 가지 예물 중 황금은 동서 고금을 통해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다. 그릭고 유향은 값비싼 향료로서 반질반질하고 향내나는 흰색의 액체이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는다. 또한 몰약은 역시 주로 아라비아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것으로서 상당히 고가(高價)의 향기를 지닌 액체이다(시 45:8, 아 3:6). 이는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내지는 마취제로 사용되었다(막 15:23). 그런데 고금의 많은 주석가들(Origen, Hendriksen등)에 의하면 이 예물 가운데 황금은 메시아 왕권을, 유향은 예수의 신성(神性)과 향기를, 그리고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대하여 칼뱅(Calvin)은 왕과 제사장과 그분의 장사(葬事)되심을 각각 상징한다고 본다. 어쨌든 동방 박사들의 종교적 동기를 이해한다면 예물들에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기서 예물이 세가지라는 사실에서 동방 박사들을 세 사람이라는 교회 전승이 형성되게 되었다. 어떤 전설(legend)에 따르면 완전 수에 해당하는 ‘12’명의 박사라고도 전한다. 한편 이 세 예물들은 모두가 값비싼 것들로서, 예수의 가족이 애굽으로 피신하였을 때(14절)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12절, 주석과 해설


꿈에 … 지시하심을 받아

여기서 ‘지시를 받아’(크레마티스덴테스)란 신탁(神託)으로 의문시했던 사실에 확실한 해답을 얻는 행위, 또는 공무(公務) 수행을 위해 조언을 받거나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앞으로의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치 못하고 주저했던 동방 박사들의 계시 요청에 따라 하나님의 응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Vincent). 그런데 여기 언급된 ‘꿈’은 본서의 초두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데, 첫 번째(1:20)와는 달리 주의 사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꿈은 아기 예수를 지키시기 위하여 헤롯의 악한 계획을 무산시키시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로 볼 수 있다(P. Gaechjter).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하나님께서 박사듸에게 헤롯의 눈길을 벗어나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길을 가르쳐 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확히 어느 길로 갔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다만 예루살렘을 피하여 사해의 남단으로 돌아갔든지 요단 강을 건너 돌아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처럼 예수를 참으로 만난 자는 지금까지 걸어 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 즉 생명과 진리의 길(요 14:6)로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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