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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5장 11절-31절, 숨겨진 부정(不貞)까지 - 매일성경 주석과 해설 정리

매일성경 본문인 민수기 5장 11절부터 31절까지의 말씀은, 사회적인 부정함과 개인적인 부부 사이의 부정함까지 완전한 정결을 요구하는 본문입니다. 이처럼 정결함이 유지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십니다. 설교를 위한 주석과 해설을 정리하였습니다.


민수기 5장 11절-31절, 숨겨진 부정(不貞)까지 - 매일성경 주석과 해설 정리


민수기 5장 11절-31절, 숨겨진 부정(不貞)까지



12절, 주석과 해설


말하여 … 이르라

직역하면 ‘말하라 … 그리고 말하라’이다. 이처럼 동일한 의미의 말을 두번씩이나 언급한 것은 전하고자하는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뒤이어 나오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하라’, ‘조금도 빠뜨림 없이 전파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탈선하여

의무에서 ‘벗어나다’, ‘그릇 행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사타’의 단순 미래형이다. 이것은 아내로서 남편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의 상황을 예상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간음과 같은 부도덕한 범죄를 지칭한다. 이처럼 정도(正道)를 벗어나는(사 30:21) 탈선은 ‘사탄’을 따르는 짓이다.



13절, 주석과 해설


한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하였으나

직역하면 ‘그녀가 어떤 남자와 함께 누워 성교(性交)를 하였다’이다. 즉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통정으로 인한 불륜(不倫)을 일컫는 말이며 강제 추행과 같은 불가항력적 상황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이는 ‘숨기고 비밀로 하다’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 히브리어의 두 단어는 모두 미래 재귀형(Niphal)으로서, 부정한 아내가 비밀 유지를 위해 스스로 애쓰고 있는 상황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증인

‘이중으로 하다’, ‘반복하다’, ‘중언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우드’에서 유래한 말로써, 그 목격한 상황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모세 율법에서는 위증(僞證)을 피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최소한 2인 이상의 ‘증인’이 요구되었다(신 19:15, 마 18:16).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즉 ‘현행범(現行犯)이 아니었을 경우도’라는 뜻이다(요 8:4). 그러나 만일 현행범일 경우, 그리고 분명히 목격한 증인들이 있을 경우, 그 여인은 모세 율법에 따라 돌로 치는 형벌에 처해졌다(레 20:10).



14절, 주석과 해설


주석

여기서는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는 두 경우가 제시되었다. 하나는 아내가 남편에게 의심살 만한 불륜을 저질렀으나 증거가 없는 경우, 또 다른 하나는 전혀 사실 무근한 일을 남편이 공연히 의심하는 경우이다.


의심

직역하면 ‘질투의 신(영)’이다. 따라서 본래 의심이란 질투심을 자극하는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이는 단순히 머리를 갸우뚱할 정도의 의혹이 아니라, 전인격을 불사를 정도로 심히 의심하는 것를 가리킨다. 그러나 한편 여기 제시된 ‘의심의 규례’를 따라 그 당시 남편이 가정의 평안을 사수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으키는 ‘의심’은 정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이것은 가정의 건전한 도덕적 윤리 및 공동체의 기풍 확립을 위해서 필요하기까지 했다. 그런고로 이 의심은 오늘날 소위 의처증(疑妻症)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 받는 여인은 실족하거나 불평치 말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하나님의 공의의 대변자인 제사장에게로 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만일 여자가 순결하다고 밝혀지면 그녀는 더 큰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28절).



15절, 주석과 해설


제사장에게로 가서

이는 곧 공의로운 심판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고 또한 백성의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는 중보자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하여

즉 ‘그 아내를 위하여’이다. 구약 시대의 규례상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 자는 빈손으로 나갈 수 없었다(출 23:15, 24:20). 그러므로 남편은 의심받은 아내를 위해 소제의 예물을 준비해야 했다.


보리 가루

보통 소제는 고운 밀가루에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섞어 드려졌으며, 가끔 첫 이삭을 볶아 기름과 유향과 함께 드려지기도 했던 일종의 기쁨과 감사와 헌신의 제사였다(레 2:1-16, 6:14-23). 그러나 여기 ‘의심의 소제’ 예물로는 거칠고 질이 떨어지는 가난한 자들의 음식인 ‘보리 가루’가 사용되었다. 이는 의심하는 자나 의심받는 자의 상황이 매우 곤혹스럽고 애매한 처지였음을 대변해 준다. 사실 의심받는 자나 의심하는 자는 피차 영육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고로 유대 랍비들은, 남편이 그 아내를 의심의 법으로 고발하기 전에, 그 심증(心證)이 얼마나 객관적인가를 거듭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있다(Matthew Henry).


십분의 일 에바

여기서 ‘에바’(Ephah)는 구약 시대에 부피를 재는 고체량의 단위로서, 1에바는 약 23리터 가량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십분의 일은 약 2.3리터 가량 되는 고체 부피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1오멜(Omer)의 부피에 해당되는 것이었다(출 16:16, 36).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여기서 ‘의심의 소제’일 경우, 기름과 유향 없이 소제가 드려졌다. 그 이유는 이 의심의 소제는 여자의 행실과 관련하여 그 죄의 유무를 판별하기 위해 드리는 소제였기 때문에 다른 희생물과 더불어 드리는 일반 소제 때와는 달리 죄의 부정을 제하는 ‘기름’을 부을 수 없었고, 기도를 상징하는 ‘유향’를 곁들일 수 없었다(레 2:1-16). 한편 곡식 제사에서 기름과 유향이 사용되지 않는 또 다른 경우는 극빈한 자가 드리는 속죄제에서였다(레 5:11). 결국 이 두 제사는 드리는 자의 어려운 물질적 정신적 처지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의심의 소제요 기억나게 하는 소제

이 소제는 감격과 헌신과 봉사의 다짐이 있는 일반 소제와는 그 성격이 달랐다. 이 소제는 그 제물의 내역에서 볼 수 있듯이 여인의 순결이 의심받는 ‘의심의 소제’였다. 특히 여기 ‘기억’(히, 지카론)이란 말은 ‘지난 일을 기억하다’, ‘알아보기 위해 표시해 두다’에서 파생된 말로, 곧 이 소제의 취지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즉 이 소제는 (1) ‘의심’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실인지의 여부를 알아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2)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행실에 대해 옳고 그름을 돌아보고 기억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3)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판단의 근거를 하나님의 전지하신 지혜에 맡기고 그 분의 판단에 겸손히 따르겠다는 데 그 가치가 있었다.



16절, 주석과 해설


여호와 앞에 세우고

즉 여호와의 임재 처소인 ‘성막 앞에 세우고’라는 뜻의 관용적인 표현이다(레 1:3, 3:1).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제사장은 그 여인을 성막 뜰의 동쪽, 곧 성막 입구 쪽에 서도록 하였다고 한다(Matthew Henry). 한편 이것은 한 가정과 한 인격의 운명이 관련된 일을 인간의 지혜로 해결하지 않고,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맡겨 그분의 판결을 기다린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더욱이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전(Coram Deo) 의식은 오늘날 성도의 모든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한편 이 어구는 18절에도 다시 한번 언급되는데, 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신다(고후 5:10).



17절, 주석과 해설


토기

이 토기 그릇(초벌 구이인 듯하다)은 곤경에 처한 여인의 형편을 잘 반영한다. 즉 잘 다듬어진 놋그릇에 비해 조악하게 구워진 이 토기 그릇은 순결을 의심받고 있는 여인의 곤궁한 현실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그릇은 모든 행사가 끝난 후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없었고 깨뜨려진 것으로 추정된다(레 6:28).


거룩한 물

이 물은 성소 입구에 위치한 물두멍의 물인 듯하다(출 30:18). 제사장들은 이 물로 성막 봉사 전후에 손발을 씻었다(출 30:19-21, 40:31-32). 한편 유대 전승은, 이때 토기 그릇에 담긴 물의 양은 약 0.5리터 정도의 용량이었다고 전한다(Matthew Henry).


성막 바닥의 티끌을 … 물에 넣고

본래 물두멍의 물은 성막 바닥의 티끌과 각종 오물을 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성막 티끌을 그 물에 집어 넣은 것은 이 물의 효과를 역(逆)으로 이용한 것이다. 즉 이때 이 물두멍의 물은 생명과 성결을 제공하기 보다 죽음과 심판의 효과를 자아내게 되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한편 ‘티끌’은 최초 범죄 이후 저주 받은 뱀의 음식으로 규정된 것으로서(창 3:14), 결국 거룩한 물에 ‘티끌’을 첨가한 것은 저주와 수치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Keil).



18절, 주석과 해설


그의 머리를 풀게 하고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머리털은 명예와 권위로 상징되었다(고전 11:3-10). 그래서 그들은 극한 슬픔을 만났을 때 가장 참담한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기 위하여 머리를 풀거나 머리에 재를 뿌리며(욥 2:12) 스스로 겸비해지곤 했다. 더욱이 이 행동은 나병 환자에게도 적용될 정도로(레 13:45) 비천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흉악한 범죄자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의심받는 그 자체가 아내에게는 크나큰 수치이며 주위 사람들에게 비난거리였기 때문에, 제사장은 그녀가 지금 욕되고 비천한 자리에 처해 있음을 상징하는 의미로 그 여인의 머리를 풀게 한 것이다. 한편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 경우 이 여인이 나중에 무죄로 판명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여인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여인의 집안 식구나 가솔들 및 가까운 친족들은 그러한 재판 장소에 입회하는 것을 금지시켰다(Matthew Henry).


기억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

이것은 일반 소제 예물(레 2:1-16)과는 다른 특별한 목적의 소제물로서, 곧 기름과 유향 및 소금이 첨가되지 않은 조악한 보리 가루 1/10 에바로 구성되었다. 15절 주석을 참조하라.


소제물을 그의 두 손에 두고

이것은 의심받는 여인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러내 놓고 그분의 정당한 판결을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저주가 되게 할 쓴 물

이는 성막의 티끌을 첨가한 이 물 자체가 저주의 효능을 가진 쓴 물이란 뜻이 아니다. 이는 의심받는 여자가 불륜의 사실이 있을 경우 그 쓴 물이 그 부정한 여인에게 하나님의 공의롭고도 고통스러운 형벌를 전달하는 매체가 될 것이라는 뜻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한편 여기서 ‘쓰다’(히, 마라르)란 말은 ‘괴롭히다’, ‘격동시키다’란 뜻으로서 영육간에 매우 고통스러운 지경에 이른 상태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 ‘쓴 물’을 특별히 제사장에게 맡긴 것은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19절, 주석과 해설


여인에게 맹세하게 하여

제사장은 의심받는 그 여인에게 21절에서 ‘저주의 맹세’로 규정된 그 맹세를 하게 해야 했다. 그러나 그 맹세는 여자의 무죄 가능성을 배제시키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 맹세에는 무죄의 경우 저주의 쓴 물이 여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리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이 맹세는 여인으로 하여금 ‘진리’에 절대 순응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한편 유대 랍비들은 말하기를, 이 경우 즉 여인에게 맹세를 시킴으로 말미암아 공식 재판 절차에 들어가기 전, 제사장은 먼저 그 의심받는 여인에게 만일 불륜의 죄가 있다면 숨김없이 고백하라고 강력히 설득하고 권고하는 과정을 반드시 밟아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만일 그 여인이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제사장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한다면, 처벌은 면제되나 남편으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운명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인이 제사장의 강력한 설득과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 제사장은 ‘의심의 법’에 따라 공식 재판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네 남편을 두고

직역하면 ‘네 남편 아래 있으면서’이다. 이는 곧 아내는 그 남편의 권위와 보호와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해독

‘심한 저주’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라르’에서 유래한 말로써 곧 ‘매우 쓰라린 고통’, ‘찌르는 듯한 아픔’을 의미한다. 여기서 20, 21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고통을 가리킨다. 한편이 해독의 정확한 병명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유대 학자들은 대개 수종증(水腫症)으로 본다. 즉 요세푸스(Josephus)는 일반 수종증(ordinary dropsy, hydrops ascites)으로 보고, 미카엘리스(Michaelis)는 난소 수종증(dropsy of the ovary, hydrops ovarii)으로 본다(Keil & Delitzsch). 여하튼 이 해독은 ‘간음’이라는 범죄의 행위와 결부되어 하나님께서 여자의 생식기에 내리신 치명적인 병임에는 틀림없다(Pulpit Commentary).


면하리라

이 말의 원뜻은 ‘깨끗하다’, ‘완진히 일소하다’, ‘무흠하다’이다. 따라서 이는 의심받았던 사실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게(무죄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20절, 주석과 해설


더럽혀서

기본 동사 ‘타메’는 종교 의식상 ‘부정’하게 되다’, 혹은 도덕적으로 ‘오염되다’, ‘때묻다’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도덕적인 불륜을 의미하는데 곧 통정(通情)으로 인한 ‘간음’을 가리킨다.



21절, 주석과 해설


저주의 맹세

즉 이것은 죄가 있을 경우 어떠한 저주도 달게 받겠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한다. 여기서는 다음에 이어지는 저주에 관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여호와께서 저주의 주권자를 밝히고 있다. 즉 공의로우신 심판자로서의 하나님께서 모든 선악을 다스리신다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넓적다리가 마르고

여기서 ‘넓적다리’(히, 야레크)란 본래 ‘부드럽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서, 대체적으로 ‘출산하는 부분’, ‘정강이’, ‘옆구리’, ‘허리’ 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는 말이다. 여기서는 성적(性的) 범죄에 대한 징벌이라는 점에서 여자의 생식기를 지칭하는 완곡한 표현인 것 같다(Keil, Pulpit commentary). 한편 그리고 이것이 ‘마른다’는 말은 ‘쓴 물’에 의한 치명적인 악질(惡疾)로 인해 여자의 생식기가 파손되어 더 이상 여성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수 없는 상태가 될 것임을 나타낸다.


배가 부어서

이는 생식기에 발생한 수종(水腫)에 의해 임파액이나 장액(漿液)이 괴어 몸이 엄청나게 부어오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Keil).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남편으로부터 의심받은 여자가 결국 간음한 것으로 판명되면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욕을 당하며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끊어지게 될 것(신 23:2)이다. 이같은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요 8:1-11 에 나오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사건이다. 한편 율법에 의하면 통간한 남녀는 모두 ‘돌’로 쳐 죽여야 했다(레 20:10, 신 22:22). 이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는 결코 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생히 교훈한다. 사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악을 징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마 3:2).



22절, 주석과 해설


네 창자에 들어가서

‘창자’(히, 메에)란 복부, 심장, 내장 등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말로서, 여기서는 구체적인 내장 부위(창자)를 일컫기 보다 단순히 배(복부)로 봄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결국 본문은 만일 의심받는 여인에게 죄가 있을 경우 저주의 쓴 물이 배에 들어가 여호와께서 일으키신 ‘해독’(19절)이 각 부위에 스며 들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시 109:18).


아멘 아멘

‘아멘’은 어떤 사실이나 대상을 ‘지지하다’, ‘확신한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만’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참되다’, ‘그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의심받는 여인이 제사장의 저주 선언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만일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제사장의 저주 선언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즉 이 말은 인간 앞에서의 맹세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이다. 한편, 여기서 ‘아멘’을 두 번 말한 것에 대해 혹자는 추정하기를, 여기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제사장은 그 여인에게 유죄일 경우의 저주 선언과 더불어 무죄일 경우의 축복 선언도 했다고 본다(28절). 그러므로 그 여인은 이 두 가지 경우에 대하여 각각 아멘 아멘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Matthew Henry).



23절, 주석과 해설


저주의 말을 …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말이 가득히 기록된 두루마리를 물에 빠는 것은 곧 그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 내용이 그 쓴 물에 옮겨진다는 의미가 담긴 상징적 행동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저주 곧 해독(害毒)이 그 쓴 물에 용해되어 물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방종교나 미개인 사회에서 사용되는 어떤 신비적이고 주술적인 방법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통치를 시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주가 기록된 두루마리 자체로서는 선악을 분별하거나 죄인을 심판할 능력이 전혀 없다. 단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그러한 가시적인 방법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열쇠가 쥐어져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단순히 하나님께서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한 가시적인 도구나 매체를 절대화 하거나 경외하는 일은 변형된 또 하나의 우상 숭배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대상은 하나님과 관련된 ‘그 무엇’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그 자체’여야 한다.


두루마리

‘기록하다’, ‘열거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사파르’에서 유래한 말로, 곧 ‘책’, ‘조서’, ‘두루마리’ 등을 가리킨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문서 보관용 책자로 동물의 가죽, 또는 파피루스(Papyrus), 토판(土版) 등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처럼 기록된 글자를 물에 빨아 넣는다는 말에서 추축해 보면, 여기서의 두루마리는 동물 가죽(특히 양피지)으로 제조된 두루마리(NIV, scroll)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굴림 막대가 있는 긴 것이 아니라(렘 36:2) 낱장의 문서로 봄이 타당하다.



24절, 주석과 해설


여인으로 … 마시게 할지니

재판 순서상 이 일은 먼저 소지물을 여호와께 바친 다음에(25, 26절) 이루어졌다. 이처럼 순서가 뒤바뀐 이유는 저주의 글을 물에 빠는 행동과 그것을 마시는 행동은 밀접히 연관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25절, 주석과 해설


여호와 앞에 흔들고

이는 제물을 요제(히, 테누파)로 드리는 장면이다. ‘요제’(搖祭)란 화목제의 희생제물 중 가슴 부위를 드릴 때와 땅의 소산물을 드릴 때 제사장이 제물을 높이 들어 흔들다 내림으로써 진행되는 제사이다(출 29:24, 레 7:30). 이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와 더불어 그 드린 것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26절, 주석과 해설


한 움큼을 … 불사르고

소제는 제물 전체를 대표하는 ‘한 움큼’의 곡식만 취해진 후 불태워져 하나님의 몫으로 돌려졌고(레 2:2, 9). 그 나머지는 태우지 않고 하나님께 (거제 또는 요제로) 드린 뒤 다시 제사장이 취해 자신의 몫으로 삼았다.


기억나게 하는

‘표시하다’, ‘기억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자카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모두 드리는 ‘증표로’라는 의미이다. 즉 비록 ‘한 움큼’만을 취해 단에서 불사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곧 드리고자 한 예물 전체를 바친 한 ‘증표’가 된다는 뜻이다.


그 후에 … 그 물을 마시게 할지라

의심의 판결 절차 가운데 제일 마지막으로 여인의 순결 여부를 가려주는 ‘쓴 물’을 마시게 했다. 즉 최종 판결에 앞서 의심받는 여인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과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이 거룩한 백성의 일원이지만 지금은 의심받고 있는 비천한 처지임을 깊이 자각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의심받는 여인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는 표로 이 ‘쓴 물’을 마셔야만 했다.



27절, 주석과 해설


물을 마시게 한 후

유대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경우 만일 그 여인에게 죄가 있다면 그 쓴 물의 효과는 당장에 독(毒)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심한 하복부 경련과 더불어 마침내 살이 썩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 여인과 관계한 남자도 그 여인과 같은 시각에 같은 방식으로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그 여인에게 죄가 없다면 그 쓴 물은 오히려 약(藥)이 되어 그녀의 생식 기능을 더욱 강화시켜 주어 결국 자녀를 잉태하게 된다는 것이다(Matthew Henry).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즉 간음한 여인이 받게 될 저주의 본보기가 되어 두고두고 그 백성 가운데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비단 죽은 그 여인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이 소속된 가정과 가문에도 크나큰 수치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가 서로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자기 가족, 자기 가문, 자기 지파, 그리고 자기 나라 가운데서 그러한 저줏거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했다.



28절, 주석과 해설


정결하면 … 임신하리라

남편으로부터 그 순결을 의심받던 여인이 재판 후 마침내 순결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녀는 혐의에서 완전히 해방될 뿐 아니라, 그동안 당했던 마음 고생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답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즉 그 여인은 ‘임신’함으로써 지난날의 아픔을 가리고도 남는 보상을 받게 된다. 이 ‘임신’은 (1) 의심했던 남편과의 사랑을 다시 회복했음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이며, (2) 하나님께서 그녀를 기억하시며 사랑하신다는 표시이고(삼상 2:1, 눅 1:58), (3) 하나님께서 그녀를 축복하셨다는 증거이다(시 127:3). 더욱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임신을 확인하고 그녀에 대한 모든 의혹을 말끔히 떨쳐버릴 수 있었다.



29절, 주석과 해설


의심의 법

‘질투의 법’(NIV, law of jealousy) 혹은 ‘질투한 경우의 법’(RSV, law in cases of jealousy)이란 뜻이다. 이 법은 질투와 의심으로 인해 가정과 사회가 파괴되거나 부패되는 것를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법이다. 즉 이 법은 간통 혐의에 대하여 사실을 확인시켜 줄만한 어떤 물증이나 증인이 없는 경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폐단을 방지코자 마련된 법이다. (1) 괜한 의심으로 인하여 한 인격 혹은 한 평화스러운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요, (2) 간교한 음부 음녀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풍을 흐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폐단을 방지코자 하나님께서는 ‘신정(神政) 통치’라는 법적 배경과 ‘고대 사회’라는 시대적 배경하에서 본 의심의 법을 제정하셨다. 따라서 이 법의 입법자는 하나님이시며, 이 법의 운용자 또한 하나님이시고, 이 법을 통한 판결자 역시 하나님이시다. 이것이야말로 이 ‘의심의 법’은 당시대 이방의, 모두 주술법(呪術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30절, 주석과 해설


이 법대로 행할 것이라

여기서 ‘법’은 ‘의심의 법’을 말하는데, 곧 11-29절에 기록된 내용이다. 재판절차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먼저 의심의 법으로 그 아내를 고발한 남편은 의심의 소제물을 준비한 후 제사장에게 나아간다(11-15절).

2.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 하여금 머리를 풀게 한 후 회막 문에 세운다. 그리고 그 여인의 두 손에 의심의 소제물을 둔다. 그런 후 제사장은 토기 그릇에 물두멍의 물을 담고, 성막 뜰의 티끌을 취해 그 물에 넣은 후 자신이 들고 그 여인 앞에 선다(16-18절).

3.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 네 넓적다리로 마르게 하리라’는 내용으로 구성된 저주의 맹세를 그 여인으로 하여금 하게 하고, 또한 자신이 회중 앞에서 공식 선포한다. 이때 여인은 아멘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19-22절).

4. 저주의 맹세가 끝나면 제사장은 그 글귀가 기록된 두루마리를 자신이 들고 있던 토기 그릇의 물에다 뺀다(23절).

5. 그 후 제사장은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요제로 드린 후 그 중 한 움큼을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르는 의식을 치른다(25-26절).

6. 소제물 의식을 치른 후 제사장은 이제 끝으로 그 여인으로 하여금 두루마리를 빤 그 토기 그릇의 물을 마시게 한다. 이로써 재판의 절차는 모두 마쳐진다(24절).

7. 한편 재판의 결과는 죄의 유무에 따라 다음 두가지 경우로 나타난다. 즉 유죄일 경우, 그 여인은 저주의 맹세대로 치명적인 해독을 입게 된다. 그러나 무죄일 경우, 그 여인에게는 아무런 해도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조만간 임신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27-28절).



31절, 주석과 해설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진실을 밝히고 가정의 평화를 사수한다는(14절) 측면에서 비록 아내가 순결하다고 증명되더라도 아내를 의심했던 남편은 죄가 되지 않았다. 대신 ‘첫날 밤의 의심 규례’(신 22:13-19)와 연관시켜 고찰해 볼 때, 이때 순결한 아내를 공연히 의심한 남편은 정신적 보상금으로 장인에게 은 100세겔을 주어야 했으며(신 22:19), 또한 의심했던 아내를 평생 데리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어떠한 보상이 주어지더라도 남편으로부터 그 아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부 생활의 최선책은 사랑과 이해와 용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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