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실로암 연못에 가서 진흙이 발라진 눈을 씻고 밝히 보게 된 맹인은, 바리새인들에게 불려 와 조사를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3-41의 말씀에는, 예수님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 망설이는 사람들, 담대하게 고백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9장 13절-41절, 예수님을 향한 다양한 고백들
서론
우리는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13-41의 말씀에 나타난 맹인의 치유 사건을 통해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의 시각 차이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같은 성경을 읽어도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성경의 진리를 왜곡했습니다. 그들은 맹인이 고침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안식일에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글자를 지키는 데에만 집착하며 그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담긴 성경의 참된 의미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맹인을 고쳐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의 형식보다는 사람의 필요를 우선시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어도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기득권과 전통에 집착한다면,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경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되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본론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맹인의 눈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향하여 어떤 비난을 하고 있습니까?
첫째,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먼저, 본문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맹인을 고치신 사건을 인정하면서도,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억지 비난을 통하여,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은 바리새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지만,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와 평안을 주신 날입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기억하며,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일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주일의 참된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거 바리새인들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안식일과 주일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규칙과 형식에 매몰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오후예배에 성경 전체의 개요를 차례대로 살펴 보는 이유도, 성경을 더 가까이 하고 성경을 바르게 읽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과 주일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에 새기며, 이 세상에 그분의 빛을 비추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이어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메시아일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면 율법을 어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이, 맹인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목격하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비난하며 자신들의 관습과 교리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우리는 종종 우리의 전통과 관습,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더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생각과 주장이 가득차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말씀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십시오.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 들이십시오. 그리할 때, 말씀의 은혜가 내 삶에 충만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며 부인했으나, 고침 받은 맹인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들이 눈을 뜨게 된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께서 고치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고백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면, 공회와 마을,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맹인의 부모처럼 우리도 때로 진리를 알면서도 세상의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가정이나 직장, 이웃들 속에서 믿음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우리는 스스로 진리를 고백하지 못하고 감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행하다 보면, 그 믿음이 약해지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희미해지게 됩니다. 불신자들에 휩쓸리고 그들과 비슷하게 변해가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맹인은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며 빛이신 예수님을 직접 경험하였기에, 담대하게 자신을 고치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고백했다는 이유로 공회에서 쫓겨나며 마을로부터 추방되고 가정과 이웃에게서 버림 받거나 심지어 돌에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맹인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고 영적인 눈이 뜨였을 때, 담대히 그분을 증언해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불이익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입술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어떤 위협과 박해가 있더라도 그분을 증언하며 살아야 합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죄와 어두움으로 가득한 세상은 여전히 빛을 비난하며 거부하고 있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며 주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빛을 반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지 말라고 하며, 종교를 드러내지 말라고 강요합니다.
공평성을 위해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잠시 감추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이며 빛이신 예수님을 나타내는 증인들입니다. 내 이익이나 나의 사상, 나의 선입견을 과감하게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인정하며 살아갑시다.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또, 나를 구원하신 유일한 구주 예수님을 더 사랑하며 증거합시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위로와 평강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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