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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 23절-34절,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으니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에 갔던 맹인은 밝은 눈으로 돌아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9:23-34에서는, 그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는 이유로 증인으로 소환되어 심문을 당하고 있다고 기록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는 위대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9장 23절-34절,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으니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요한복음 9장 23절-34절,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으니



서론


요즘은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현장을 목격하고도 자신이 목격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혹은 길거리에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돕는 일도 염려가 됩니다. 괜히 도왔다가 오히려 억울하게 덤터기를 쓰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증인이니 뭐니 해서 경찰서에 여러 번 불려가게 되는 일이 귀찮게 여겨지기도 하기에, 차라리 모른 척 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져야 하며, 억울한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본론


실로암에 보냄을 받았다가 눈을 뜨게 된 맹인은 예수님 때문에 곤란한 상황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찾아 가서 눈을 고쳐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복잡한 일에 휘말린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맹인이었던 사람은 놀라운 두 가지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으니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던 사람이 바리새인들에게 두 번째로 소환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규정을 어겼기에 죄인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자 맹인이었던 사람이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요한복음 9: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맹인이었던 이 사람은 육신의 눈을 뜨게 되었다는 분명한 사실을 증거합니다. 안식일 규정은 잘 모르겠고, 자신이 눈을 뜨게 된 것은 한 마디로 "팩트"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육신의 눈을 뜨고 있었지만, 영적인 눈으로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정체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맹인이었던 사람은 육신의 눈을 뜨고 영적 눈까지 뜸으로써 예수님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함께 걸었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식사 자리에서 영적인 눈이 열리기 전까지는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만할 뿐, 삶 속에서 예수님을 닮지도 않고 동행하지도 않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눈은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소경과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영적인 눈을 뜨고, 영안이 밝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영적인 공부와 기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영적 성장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곤 합니다. 시험이 다가와야 공부하고, 계획만 잘 세우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실천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성품만 자랑하며 영적 열심은 없으면 결코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고 은혜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홍해 앞에 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들 모두는 멀쩡히 눈을 뜨고 홍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또, 뒤에 추격해 오는 애굽의 전차 부대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였기에, 그들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통곡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바로 이 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라고 외쳤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순간에 모세만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했기에, 홍해가 가로막고 애굽 군대가 추격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 때문에, 가정의 문제 때문에,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우리는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급한 마음이 들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 눈을 뜨고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인가 대단한 기적이 일어난다고 소문난 곳을 찾음으로 영적 눈이 떠지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으로 안수한다고 유명한 곳에 가서 안수 받으면 영적인 눈이 떠지는 것도 아닙니다. 평소에 말씀 묵상과 기도로 영적 분별력을 기르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일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아보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으니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다는 것이니이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예수님이 자신의 눈을 고치셨고, 그분은 경건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들으시고 자신이 고침을 받았다고 30절과 31절을 통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백을 담아서 33절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9: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맹인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 즉 메시아이심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비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거나 인정하는 사람은 출교시키기로 결정하였기에, 맹인의 부모들조차 두려워서 예수님에 대해 올바른 고백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바리새인들의 위협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가정이나 지역 사회, 회당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할 위기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메시아이시다"라고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아마 농사를 지어 보신 분들이 많으시기에 "비와 햇빛을 충분하게 주셔서 풍년을 맞이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얼마나 위험한 기도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비바람도 불지 않고 날씨가 여름 내내 온화하고 따뜻하게만 하신다면, 알맹이가 맺히지 않을 것입니다. 온통 쭉정이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오며 뜨거운 한여름의 태양빛이 있어야 풍성한 알곡이 열리는 법입니다.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으며 때로는 심각한 손해를 각오하는 순간이 있어야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예수님에 대한 나의 고백을 올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언제나 평안하기만 하면 나의 신앙이 성장할 수 없으며,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기만 한다면 내가 교만하여 예수님을 향한 신앙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래 살고 싶으면 감기에 갈려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기에 걸리는 것은 피곤하고 귀찮은 일입니다. 아프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감기에 걸림으로써 우리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평소에 안가던 병원에도 가 보게 됩니다. 평소에 건강을 자랑하기만 하고 병원에 한 번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갑작스러운 큰 병으로 인하여 회복 불가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맹인은 신앙의 위협을 당하였지만, 담대하게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 고백은 그의 평생을 통하여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내 믿음을 점검하고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내 인생을 인도하실 주인이심을 겸손히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시며, 우리의 먹는 것, 입는 것, 잠잘 자리를 무상으로 제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값없이 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 것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맹인의 필요를 채우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이 오늘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신앙에는 항상 위협과 고난이 따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맹인을 고쳤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안식일을 어겼다는 사실로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본질은 맹인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이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신 것은 비난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하게 행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이유로 "세상을 모른다"느니 "너만 유별나다"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꿋꿋이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위협에도 "예수님이 나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라고 고백한 맹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할 때,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능력의 주님께서 우리의 영적 눈을 뜨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한 주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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