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의 매일성경 묵상 본문은 사도행전 24:1-23입니다. 본문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유대인들과 변호사 더둘로가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과 바울의 변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면서, 자신은 부활을 확신하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말합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바울이 말한 부활의 신앙과 올바른 양심에 대해 새벽설교를 정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4장 1절-23절, 부활의 신앙과 올바른 양심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505장, 온 세상 위하여
- 새 찬송가 490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서론
여러분, 오늘 아침에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순수한 양심에 대해 묵상하려 합니다. 우리 사람들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양심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나 있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주어진 것으로,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도와 주는 일종의 장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올바른 사람은 신앙을 가진 것과 상관 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반대로, 양심이 뒤틀린 사람은 신앙의 유무와 상관 없이 정직하지 못하고 부패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양심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 나가는 순수한 양심입니다.
본론
사도 바울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고소를 당해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 서게 됩니다. 그들은 더둘로라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바울을 고소하는데, 바울이 성전을 더럽히고 소요를 일으키며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바울을 '전염병 같은 자'라며 고발하였고, 유대인들을 선동하고 성전을 더럽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의 고발에 대하여 담대하게 변론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들과 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율법과 예언서를 믿는 자라고 증언합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지 않았으며, 평화롭게 예배드렸다고 주장합니다. 벨릭스는 이 변론을 듣고, 바울에 대한 판결을 미루며 그를 감옥에 가둬둡니다. 그러나 벨릭스는 바울을 자주 불러 대화를 나누며, 그에게서 돈을 받을까 기대합니다.
첫째, 부활이 있으리라
유대인들은 더둘로라는 변호사를 통하여 바울을 벨릭스 총독에게 정식으로 고소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 당시 로마 사회에서 정식적인 고소와 고발, 그리고 변호에 대한 순서와 과정들을 매우 정확하게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먼저 고발자인 더둘로가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의 죄에 대해 고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더둘로는 바울이 전염병 같은 자,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맹비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더둘로의 비난을 듣고도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벨릭스 총독 앞에서 고백하며 변호합니다.
사도행전 24: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고발인인 더둘로의 고발이 끝나자, 바울은 총독에게 변호의 기회를 받아서 자신의 신앙을 담대하게 변호합니다. 10절의 마지막에 바울이 말한 "변명하나이다"라는 말은 원문에 "ἀπολογέομαι"(아폴로게오마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원 뜻은 "허위 고발을 위하여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논쟁을 벌이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고소와 고발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도행전 24: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그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었고, 그 소망으로 인하여 거짓된 고발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림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소망을 믿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그마한 가정의 위기나 건강의 문제, 실패 등을 경험하면, 즉시 신앙을 버리고 떠나 버리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이 왜 이처럼 금방 믿음을 잃게 될까요? 부활의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에만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이 세상에서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바울과 같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담대하게 불의와 싸워 이겨 나가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둘째,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부활에 대한 소망, 즉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바울은, 이어서 자신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삶을 살아 왔다고 벨릭스 총독에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바울이 말하는 "양심"은 헬라어 성경에 "συνείδησις"(쉬네이데시스)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적인 삶을 뜻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성전에서나 민족에게 어떤 도덕적인 잘못을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발을 당했다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사도행전 24: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바울은 이미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자신에 대해 그리고 복음에 대해 변호한 바가 있습니다. 그 때, 자신이 양심에 거리끼는 일, 불의한 일을 행했는지 여부에 대해 공회가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도덕적으로도 잘못한 것이 없음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착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중요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 믿음은 우리의 옳은 언행과 삶으로 드러나야만 합니다. 우리의 언행이 올바르고 우리의 삶이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삶이 되어야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과 도덕을 같이 지켜 나가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좁은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힘써서 믿음의 좁은 길을 걸어야 하며, 도덕적인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오늘도 믿음의 기초 위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삶, 도덕적으로 칭찬 받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결론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해 변호하면서, 자신이 부활을 믿는 신앙인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 도덕적으로도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사람이라고 변호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하는 삶입니다. 바른 믿음과 정직한 양심이 함께 가는 삶, 그 삶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바른 믿음 위에 정직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함께 하는 기도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오늘 우리도 주님의 부활을 믿으며 주께서 다시 오실 것을 확신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도덕적으로도 올바른 삶이 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부활의 주님을 확신하며 믿음 위에 서서 살게 하소서.
- 주님 앞에서 순수한 양심을 지키는 삶이 되게 하소서.
- 불신자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할 용기를 주소서.
- 날마다 주께 더 가까이 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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