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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장 13절-35절,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본 이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 설교문

4월 21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24장 13절-35절입니다. 본문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왜 동행하시던 예수님을 즉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슬픔, 잘못된 기대, 말씀 오해라는 결정적 이유를 심층 분석합니다. 혹시 당신도 삶 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놓치고 있진 않나요? 묵상을 통해 영적 시야를 가리는 장막을 걷어내고, 오늘 당신 곁에 계신 부활의 주님을 선명히 만나는 통찰과 실천 방법을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35절,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본 이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 설교문



누가복음 24장 13절-35절,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본 이유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 새 찬송가 165장, 주님께 영광



서론


혹시 바쁜 일상 속에서, 혹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 앞에서 문득 하나님이 너무 멀게 느껴지거나, 간절한 기도에도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분명 함께 하신다고 내가 믿고 있는데, 하나님의 임재와 응답을 느끼기 어려워 답답했던 순간들이 우리 신앙 여정에는 종종 찾아오곤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런 우리의 경험과 너무나도 비슷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모든 희망이 꺾였다고 생각한 두 제자는 깊은 슬픔과 혼란에 빠져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다가와 동행하시며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두 제자들은 자신들과 함께 걷고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그토록 따르고 의지해 왔던 예수님이심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바로 곁에 부활하신 주님이 계셨는데, 왜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이것이 단순한 해프닝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였을까요? 오늘 새벽에는 엠마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함께 묵상해 보고, 이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 곁에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주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본론: 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결정적 이유 3가지


본문의 16절은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κρατέω, 크라테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24: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렸던 걸까요? 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슬픔과 절망에 사로잡힌 마음: '보아야 할 것'을 가리는 감정의 장막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깊은 슬픔과 낙담이 묻어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 (눅 24:21) 라고 굳게 믿고 모든 희망을 걸었지만, 그 기대는 십자가 앞에서 산산조각 나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스승을 잃은 슬픔, 기대했던 메시아 왕국에 대한 희망의 좌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 이런 극심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들의 마음을 온통 뒤덮고 있었습니다.

마치 짙은 안개가 앞을 가리듯, 깊은 슬픔과 절망은 우리의 영적인 시야를 흐리게 만들곤 합니다. 실제로 여러 심리학 연구에서도 강한 슬픔이나 불안, 스트레스는 우리의 인지 능력, 특히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거나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상실감에 너무 깊이 빠져든 나머지, 바로 곁에 다가오신 부활의 주님, 소망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삶의 문제와 아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바로 곁에서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의 장막이 우리의 영적인 눈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2. 자신만의 기대와 선입견: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익숙한 틀

제자들의 눈을 가린 또 다른 장막은 바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선입견'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처럼, 두 제자들도 역시 메시아가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일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눅 24:21) 라는 그들의 말 속에 이러한 기대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오셨고, 다른 방식으로 일하셨습니다. 힘과 권력이 아닌 섬김과 사랑으로, 화려한 왕궁이 아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메시아 상(像)'이라는 틀에 예수님을 맞추려고 했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 특히 힘없이 죽으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셨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들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부활의 주님을 알아보는 것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은 이러이러해야 한다', '기도 응답은 이런 방식으로 와야 한다'는 자신만의 틀과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때로는 우리의 이러한 지나치게 확고한 기대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혹은 우리가 원치 않는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일하심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틀을 깨고 나오시는 주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열린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3. 말씀에 대한 영적 무지: '깨달아야 할 것'을 놓친 해석의 부재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슬픔을 꾸짖으시며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놀랍게도 예수님의 정체를 바로 드러내시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 (눅 24:27)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에 대한 영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분명 구약 성경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의 수많은 예언들이 가리키는 핵심, 즉 메시아가 고난받고 죽임 당한 후에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는 진리를 (눅 24:26)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문자적으로는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들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는 영적으로 무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풀어 설명해주시자, 비로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눅 24:32) 이 놀라운 장면을 통하여 우리는 말씀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이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고 예수님을 알아보게 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 역시 성경 지식은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오늘 나의 삶에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영적인 무지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 속에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경험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35절,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본 이유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 설교문



III. 결론: 우리의 눈을 열어, 지금 여기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려면


이처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데에는 슬픔과 절망이라는 감정의 장막, 잘못된 기대와 선입견이라는 생각의 틀, 그리고 말씀에 대한 영적 무지라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들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역시 비슷한 이유로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을 놓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은 결국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았습니다. (눅 24:30-31)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고, 교제 속에서 눈이 열리는 경험!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더욱 선명하게 발견하고 그분의 임재를 누릴 수 있을까요?

다음 네 가지를 함께 실천해 보면 좋겠습니다.

  • 솔직한 마음 내어놓기: 내 안의 슬픔, 실망감, 불안함을 외면하거나 억누르지 마세요. 주님 앞에 솔직하게 다 내어놓고 기도하며,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구합시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 마음을 만져주시고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 열린 마음으로 구하기: 내가 가진 기대와 생각의 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식과 때를 신뢰하는 법을 배웁시다. "주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했던 예수님처럼, 우리의 계획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실지라도 주님을 신뢰하며 따르겠다는 열린 마음을 구합시다.
  • 살아있는 말씀 붙잡기: 성경을 단순히 지식으로만 대하지 말고, 매일 꾸준히 읽고 묵상하며 그 안에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합시다.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인 눈을 밝혀주시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도록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 따뜻한 교제 나누기: 혼자 신앙생활 하기보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교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예배하고,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떡을 떼는'(넓은 의미의 교제) 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삶 속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엠마오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따뜻한 교제는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함께 걷고 계십니다. 비록 때로는 우리의 눈이 가려져 부활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나눈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살피고,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붙잡으며, 따뜻한 교제 가운데 나아갈 때, 우리의 영적인 눈은 더욱 밝아져 매일의 삶 속에서 동행하시는 주님을 더욱 풍성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부활의 생명과 기쁨이 여러분의 삶에 늘 가득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주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처럼 우리도 눈이 가려져 곁에 계신 주님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슬픔과 잘못된 기대를 넘어,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 영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주의 임재 안에 거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우리 마음을 지켜주시고 주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소서.
  •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깊이 알아 가게 하소서.
  • 우리 나라와 민족의 어려움을 헤아려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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