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주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아가 5장 2절-6장 3절을 바탕으로, 술람미 여인의 경험을 통해 영적 안일함과 나태함의 위험을 경고하는 새벽예배설교문을 정리하였습니다. 편안함 때문에 주님의 부르심에 지체하지 말고, 항상 깨어 주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가 5장 2절-6장 3절, 항상 깨어 있으십시오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86장,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 새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서론
우리는 익숙하고 소중한 것일 수록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기와 같이 흔하고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듯 여기는 것과 같이, 가깝고 친밀한 사람들을 소홀히 대하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의 요청을 무심코 지나쳐 버리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때로는 신앙 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구원자이시며 주인이신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영적인 나태함과 안락함에 취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은, 주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심에도 불구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기 싫어서 애써 외면할 때도 있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보고 나누고자 하는 본문의 말씀에도, 머뭇거리다가 후회하는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사랑하는 신랑인 솔로몬의 부름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던 신부인 술람미 여인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짧은 순간 동안 망설였다가 겪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살펴봄으로써,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나태하고 안일하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1. 어찌 더럽히랴마는
먼저,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신랑의 사랑 가득한 부름을 들었습니다. 신랑은 신부인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신부인 술람미 여인은 무엇이라고 답하고 있습니까? 3절입니다.
아가 5: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분명히 술람미 여인은 신랑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이미 든 잠자리에서의 편안함과 안락함 때문에 즉각적으로 응답하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특히, 발을 씻었다는 표현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모든 활동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부는 신랑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모습은, 세상의 편안함이나 자기 만족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음성에 너무나도 둔감해 있습니다. 또, 성경을 깊이 묵상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적인 안일함이 달콤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놓칠 수도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영적 안일함을 경계하십시오.
2. 내 혼이 나갔구나
잠자리의 편안함으로 인하여 주저하던 신부는, 신랑이 문틈으로 손을 내밀자 그제서야 마음이 움직여 일어납니다. 그리고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아가 5:6,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신부는 잠자리에서 잠시 잠깐 지체하고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체와 망설임 때문에, 사랑하는 신랑과의 결정적인 만남을 놓치게 되고, 예기치 못한 이별의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신부는 자신의 "혼이 나간 것"같은 당황스러움과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나태함과 게으름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감동과 은혜를 무시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할지라도, "다음에", "나중에"라고 미룬다면, 결국 받은 은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과의 생생하고도 행복한 동행의 은혜를 놓치게 됩니다. 신앙에서 미루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는 영적인 메마름과 공허함을 느낄 뿐 아니라 소중한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십시오. 말씀을 읽고 깨달았다면, 즉시 실천하십시오.
3.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신랑과 헤어지게 되어 당황한 신부는, 뒤늦게 집 밖을 나서서 신랑을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밤거리를 헤매며 신랑을 부르고 찾아 보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아가 5:7,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성을 순찰하던 자들을 만나서 사랑하는 신랑을 보지 못했냐고 물었던 신부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고 고난을 겪게 됩니다. 순찰하는 자들이 "쳐서 상하게 하였다"는 표현은, 실제로 신부를 쳤다는 뜻보다는 신랑을 소홀히 대하여 맞이한 이별의 결과에 대한 비난이나, 심야의 통행 금지 시간을 어긴 신부에 대한 처벌을 뜻하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신부는 뒤늦게 신랑을 찾아 나섰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나태하고 안일함으로써 겪게 되는 결과는, 단순히 기회를 놓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과의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게 되면, 우리는 세상의 풍파와 고난을 이겨낼 원동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술람미 여인은 잠자리 속에서의 편안함과 신랑의 거듭되는 부름에 지체하고 머뭇거리다가 사랑하는 신랑과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밤 거리를 헤매며 신랑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의 이야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음으로써 영적으로 둔감해 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지금 영적으로 깨어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편안함과 익숙함 속에서 안주하며 예수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깨어 기도하기에 힘쓰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사모하고 있습니까? 혹은, 주께서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라며 미루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 마음 문을 열고 두드리시며 교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영적인 안일함에서 벗어나 깨어 있으십시오. 언제나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셔 들이십시오. 그리고 주와 동행하며 오늘도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하는 기도
지금도 우리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신 예수님! 이 새벽에 깨어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주와 동행하길 원합니다. 내 마음에 곧 들어오셔서 동거하시고 나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오늘도 깨어 있어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하시고, 주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즉각 순종할 마음을 주옵소서.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영적 안일함과 세상의 편안함에서 깨어나 주와 동행하며 살게 하소서.
- 주의 세미한 음성을 분별하여 듣고 즉각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주와 동행하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 매일 주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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