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22장 39절-53절의 말씀으로, 최후의 만찬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누가는 본문을 통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잠들어 있는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스승을 배반하는 유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첫 날 설교를 위해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설교로 정리하여 나눕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53절, 겟세마네의 기도, 배반 속에 나타난 사랑
함께 하는 찬송
- 새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 새 찬송가 457장, 겟세마네 동산의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주간 특별 새벽기도회의 첫 날 새벽, 주님 전에 나아오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혹시 깊은 밤과 같은 시간을 홀로 지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고민과 아픔으로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밤을 보내신 분은 없으신지요? 성경에는 우리처럼 인생의 혹독한 시련 앞에서 처절하게 기도했던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중 다윗을 떠올려 봅니다.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사울 왕의 끈질긴 추격 속에서, 때로는 아들의 반역이라는 가슴 찢어지는 아픔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홀로 나아가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솔직히 아뢰면서도, 결국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 속 예수님 역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실 십자가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고, 가장 어두운 배반의 순간 속에서도 사랑과 권위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어떤 고난 앞에서도 기도로 승리하며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은혜를 경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첫째,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의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후, '습관을 따라'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기도가 그분의 삶의 호흡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역시 매일 새벽, 이렇게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습관인지 모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당부하시고, 홀로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 기도하십니다. 그 기도는 평안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십자가의 고통이라는 잔을 피하고 싶은 인간적인 고뇌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셨기에, 그 고통의 무게 앞에서 힘겨워하셨습니다. 특히 누가는 예수님의 상황에 대하여 44절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수님의 기도가 얼마나 처절한 기도였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원함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겟세마네 기도의 핵심입니다. 나의 뜻, 나의 계획, 나의 감정보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힘을 더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힘과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슬픔으로 인해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깨우시며 다시 한번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새벽, 우리의 영혼은 깨어 있습니까? 잠든 제자들의 모습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의 기도가 단지 나의 필요를 아뢰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배반의 입맞춤과 치유의 손길
예수님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가룟 유다가 무리를 이끌고 나타납니다. 그는 예수님께 입을 맞추는 것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4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22:48,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원래 유대 사회에서 입맞춤은 사랑이나 친근함, 존경의 표시입니다. 특히 스승을 향한 존경의 표시였던 입맞춤이, 가장 끔찍한 배반의 신호가 되는 순간입니다. 가장 믿었던 제자에게 당하는 배신, 그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요?
이때, 옆에 있던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립니다. 스승을 지키려는 열심이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즉시 베드로를 말리시며 "이것까지 참으라" 말씀하시고, 그 종의 귀를 만져 낫게 해주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을 잡으러 온 원수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배반과 폭력이 난무하는 어둠의 현장 속에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과 긍휼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며, 예수님의 권위입니다.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치유로 어둠을 이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예수님은 잡혀가시는 것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때와 계획에 순종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유다의 배신과 같은 아픔, 베드로의 칼과 같은 인간적인 반응, 그리고 세상의 권세와 같은 위협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상처 주는 이들까지도 긍휼히 여기는 사랑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예수님을 닮아 사랑과 권위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려진 예수님의 기도는 십자가를 향한 순종의 절정이었습니다. 또한 배반과 폭력이 난무했던 체포의 현장은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예수님의 사랑과 권위를 보여주는 슬픔의 무대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수님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겟세마네 동산처럼 고통스럽고, 때로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처럼 혼란스러울지라도,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반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새벽에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힘과 능력이 되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이 새벽 저희를 깨우사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 저희도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배반과 위협 속에서도 사랑과 치유를 베푸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미움 대신 사랑으로, 분노 대신 용서로 반응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이 주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순종의 믿음을 주소서.
- 상처와 배신 앞에서도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로 반응하게 하소서.
- 우리 나라와 민족을 붙드시고 한국 교회와 우리 교회를 살펴 주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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