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누가복음 22장 54절-71절로, 붙잡히시고 재판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 갔던 베드로에 대한 말씀과, 그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재판의 자리에서 실패하였지만, 예수님은 고통의 자리에서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본문을 큐티하고 새벽예배설교문을 작성하고 함께 나눕니다.
누가복음 22장 54절-71절, 실패의 자리, 은혜의 시선
함께 하는 찬송
- 새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 새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인간의 가장 연약한 모습과 하나님의 가장 깊은 은혜가 교차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실패와 그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론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굳게 다짐했던 결심이 무너지고, 믿었던 관계가 깨어지며, 때로는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충신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모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깊은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다윗. 그러나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고(시편 51편),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다시 받아주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 역시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지만, 그 자리에서 놀라운 은혜를 만나게 됩니다.
첫째, 베드로의 실패의 자리
불과 몇 시간 전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맹세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그 뜨겁고 강렬했던 결심은 위기의 순간, 싸늘한 현실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5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22: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예수님께서 붙잡혀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실 때, 베드로는 멀찍이서 그 뒤를 따랐습니다(54절). “멀찍이”(μακρόθεν, 마크로덴)라는 말을 통하여 누가는, 베드로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을 뿐 아니라, 그의 마음도 두려움으로 인해 예수님을 멀리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떠나지도, 그렇다고 담대히 곁에 있지도 못하는 그 어정쩡한 거리는 그의 마음속 두려움과 인간적인 계산, 불확실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대제사장의 집 뜰, 모닥불 앞에서 그는 그저 한 명의 구경꾼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과 질문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한 여종의 의심에서 시작하여, 다른 사람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그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그와 상관없다고 세 번이나 강력히 부인합니다(55-60절).
그의 마지막 부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닭이 울었고,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61절). 그 시선 앞에서 베드로는 주님의 예언(“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자신의 비참한 실체를 직면하며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62절). 그의 통곡은 단순한 후회를 넘어선, 자신의 철저한 실패와 배신에 대한 깊은 절망과 자기혐오의 외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서 즐기던 것들을 잃을까봐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가며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혹은 사람들의 비난이나 부정적인 눈초리 때문에 예수님을 모르는 척 부인하는 듯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둘째, 예수님의 은혜의 시선
베드로가 처절한 실패의 아픔 속에 몸부림치고 있을 바로 그 시간에,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상황에 계셨습니까? 그분은 밤새도록 군병들에게 온갖 희롱과 모욕을 당하시고, 눈이 가려진 채 누구인지 맞혀보라는 조롱 섞인 폭행을 당하셨습니다(63-65절).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굴욕과 고통 속에서 주님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하셨다는 점입니다(사 53:7 참조).
그러나, 날이 밝아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셨을 때는 자신의 신적 정체성을 조금도 숨기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66절). “네가 그리스도냐?”는 그들의 날 선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68-69절)고 담대하게 선포하십니다.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는 선언은 현재의 굴욕적인 상황 너머의 최종적인 승리와 통치를 내다보는 왕의 선포였습니다. 심지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직접적인 질문에는 “너희가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70절)고 확증하십니다.
이 극심한 고난과 불의한 심문 속에서도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을 결코 잃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고난의 정점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시선을 돌리셨습니다(61절). 6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예수님은 몸을 “돌이켜”(στρέφω, 스트레포)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몸을 돌이키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의도를 가지시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셨다는 뜻입니다. 고통 중에 계신 예수님이 왜 몸을 움직이시고 베드로를 보셨을까요? 그것은 베드로의 영혼 깊은 곳을 꿰뚫는, 그의 아픔을 함께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갈등하고 괴로워하며 두려워 하는 베드로의 심령을 보고 계시며, 여전히 그를 사랑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을 잘 표현하신 행동이었습니다. 정죄가 아닌 사랑과 용서, 회복을 향한 깊은 은혜의 초대의 마음으로, 몸을 돌이켜 베드로를 바라보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실패했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처절했던 실패는 자신을 의지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오직 주님의 능력과 은혜만을 붙들게 하는 깊은 영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따뜻하고 용서하시는 시선, 그 깊은 사랑 안에서 그는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고, 회복되어 초대교회의 반석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로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의 실패와 연약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은혜로운 시선 아래 있다면, 우리의 넘어짐은 결코 절망적인 끝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낮추시고 더 깊은 은혜와 흔들리지 않는 소망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시선을 굳게 믿고 오늘 하루도 담대히 믿음의 걸음을 내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봅니다. 주님을 향한 결심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요. 그러나 저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시선 안에서 새 힘을 얻고, 다시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연약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주만 바라보게 하소서.
- 넘어지고 실패했다 할지라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주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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