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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6장 1절-32절, 우리는 문지기로 부름 받았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6월 26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역대상 26:1-32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요구에 지쳐 있으십니까? 혹은 여전히 죄악과 유혹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자괴감을 느끼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는 마음의 문을 지키는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로 부름을 받았지만 실패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유일한 문이자 참된 문지기이신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역대상 26장 1절-32절, 우리는 문지기로 부름 받았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역대상 26장 1절-32절, 우리는 문지기로 부름 받았습니다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 새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서론


오늘 우리는 숨 가쁜 세상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켜면 쏟아지는 정보와 요구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 자녀 교육과 노후 걱정까지, 우리 삶의 문은 쉴 틈 없이 열려있고 우리는 그 문으로 밀려 들어오는 수많은 것들 속에서 길을 잃곤 합니다. 30~40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진되고, 50대 이상은 역할의 변화 속에서 목적을 고민합니다. 이처럼 모든 세대가 경험할 수 밖에 없는 불안과 공허함 속에서,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아주 낯선 직분 하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성전 문지기’입니다.



본론


그렇다면, 다윗 시대에 성전을 관리하던 인물들의 이름과 직무들이 나열되어 있는 이 긴 목록이, 오늘 지쳐있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나 바로 이 본문 속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정체성과 소명에 대한 약속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로 부름받았음을 깨닫고, 그 부르심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위로와 감사의 제목이 되는지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문지기의 사명, 그리고 우리의 실패

먼저 성경이 말하는 문지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문지기를 변방의 하찮은 직책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은 이들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기록합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역대상 26:8,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

"능력이 있다"(כּוֹחַ, 코아흐)는 말은 '문지기로서의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과 실력'을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즉, 이들은 가문의 명예를 걸고 하나님의 집, 즉 성전의 거룩함을 지켜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영광스러운 사명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거룩하고 속된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을 어떤 더러움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지켜내는 최전선의 파수꾼이었습니다.

이 사명은 사실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에덴에 두시며 그곳을 지키는 문지기로 삼으셨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세기 2:15). 여기에서 ‘지키다’(שָׁמַר, 샤마르)는 것은 경계를 설정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능동적인 행위를 뜻합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뱀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고, 에덴 동산의 문지기로서의 사명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에덴에서 쫓겨나고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마음이라는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로 부름받았습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성공에 대한 야망, 타인의 인정에 대한 갈망, 안락함만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세상의 가치들이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주인이 되려고 공격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기력하게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 때도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지키려 애쓸수록 오히려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합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속에서, 우리는 아담처럼 실패한 문지기일 뿐이라는 절망에 이르고 맙니다.


2. 예수, 유일한 문이자 참된 문지기

하지만, 우리의 이 절망과 실패의 자리에서, 복음은 우리에게 소망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마음을 지킬 수 없는 실패한 문지기이지만, 우리 마음의 유일하고도 참된 문지기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나은 문지기가 되는 법을 가르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문’이자 우리 마음을 지키시는 문지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요한복음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얻을 수 없었던 영원한 생명의 문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과 안전은 우리가 얼마나 문을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문’이신 예수님 안에 내가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문지기’가 되어 주십니다. 부패한 성전을 채찍으로 깨끗하게 하셨던 주님께서, 이제 보혜사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십자가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닌, 전적인 예수님의 선물입니다.


역대상 26장 1절-32절, 우리는 문지기로 부름 받았습니다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복음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지키는 이유는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 완벽한 문과 문지기가 되어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감사’ 때문에, 예수님을 닮아 세상의 것들로부터 우리의 마음의 문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문지기의 사명은 이제 무거운 율법의 ‘짐’이 아니라, 예수님의 감격적인 사랑의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이렇게 살아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삶의 모든 ‘문’을 열기 전에, 즉 지갑을 열어 돈을 쓰기 전에,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전에, 스마트폰을 열어 세상을 보기 전에, 1초만 멈춰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지금 이 문을 여는 것이, 나의 참된 문지기이신 예수님께 대한 나의 감사의 표현인가?’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 하나가 우리의 모든 일상을 주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로 바꾸어 줄 것입니다. 더 이상 두려움에 떠는 외로운 문지기가 아니라, 모든 것을 소유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서, 기쁨과 자유함으로 나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충성스러운 문지기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참된 문이시며 영원한 문지기이신 예수님, 스스로의 힘으로 마음의 문을 지키려다 실패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소서. 이제 십자가 은혜로 얻은 참된 자유와 감사함 속에서, 오늘도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일상의 모든 문을 열 때마다 주님을 기억하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을 지켜내는 충성스러운 문지기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세상의 유혹과 죄로부터 마음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게 하소서.
  • 참된 문이신 예수님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 일상의 모든 삶의 선택 속에서 주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게 하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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