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요한계시록 11장 1절-13절에 관한 강해 새벽설교입니다. 세상의 핍박 앞에 무력감을 느끼십니까? 순교자처럼 보였던 '두 증인'의 사명은 어떻게 하나님의 최종 승리로 역전될까요? 고난받는 교회의 사명과 하나님의 보호하심, 그리고 모든 것을 압도하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메시지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13절, 두 증인이 받은 사명
참고할 글
함께 하는 찬송
- 새 찬송가 348장, 마귀들과 싸울지라
- 새 찬송가 353장, 십자가 군병 되어서
서론
요즘과 같이 경제가 어렵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삶, 영향력 있는 삶을 꿈꿉니다. 편안하고 안정되며,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보고자 하는 요한계시록 11장 1절-13절의 말씀은 우리의 이런 기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조롱과 핍박 속에서 죽임 당하고, 그 시체가 길거리에 버려지는 처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처참한 상황이 과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일까요? 이것이 교회의 사명일까요?
본론
오늘 말씀은 혼란스럽고 두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교회가 붙들어야 할 가장 영광스러운 사명과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붙들어야만 할 핵심은 “교회의 사명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 고난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와 보호하심을 확신하며 끝까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의 정체성, 과정, 그리고 궁극적인 소망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증인의 정체성 - 측량된 백성, 성령의 사람
먼저 1절과 2절은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시며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측량’(μετρέω, 메트레오) 행위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확인하고, 그분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있음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교회를 흔들어도,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로서 영적으로 안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2절은 충격적인 말씀을 합니다.
- 요한계시록 11: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서 겪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안전하게 ‘측량’되었지만, 우리의 육신과 삶의 자리는 복음 때문에 세상의 핍박과 고난에 노출된 ‘짓밟히는 바깥 마당’과 같습니다.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이 땅을 사는 교회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를 3절과 4절은 ‘두 증인’이라 부릅니다. 왜 ‘둘’일까요? 구약의 율법에 따라 둘은 그 증언이 참되고 확실함을 보증하는 숫자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확실한 진리를 증언하는 공동체입니다. 또한 이들은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불립니다. 촛대는 요한계시록 1장에서 이미 교회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감람나무는 무엇일까요? 이는 스가랴 4장의 환상에서 온 것으로, 성령의 기름을 공급하여 성전 등불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즉, 교회의 증언 사명은 우리의 힘이나 지혜, 프로그램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감람나무이신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능력의 기름으로만 가능하다는 선언입니다.
2. 증인의 사역 - 십자가의 길, 마침내 완성되는 증언
그렇다면 이 증인들의 사역은 어떤 모습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 요한계시록 11: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원수를 삼키고, 하늘을 닫아 비를 그치게 하며, 물을 피로 바꾸는 권능을 행합니다. 이같은 모습은 모세와 엘리야의 능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선포하는 하나님 말씀의 심판적 권위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세상은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기보다, 10절 말씀처럼 이 증인들을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증언이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 괴로움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진리의 말씀 앞에서 느끼는 양심의 고통입니다. 세상의 어둠을 드러내는 빛이 미움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아무런 갈등 없이 너무나 편안하다면, 혹시 우리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마침내 7절에서, 증인들은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주목할 점은, 그들의 사명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마친 후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는 세상의 어떤 권세도 그들을 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사명의 완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외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의 시체는 ‘큰 성 길’에 버려지는데, 그곳은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이며,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의 고난과 순교는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영광스러운 발자취입니다. 세상은 교회의 침묵을 보며 기뻐하고 예물을 보내며 축제를 벌이지만 , 그것은 잠시뿐입니다.
3. 증인의 소망 - 부활의 능력, 하나님의 최종 승리
세상의 축제는 ‘사흘 반’이라는 짧은 시간 뒤에 끝이 납니다.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요한계시록 11: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1절을 보면, 죽음과 조롱의 자리에 하나님의 생기(πνεῦμα ζωῆς, 프뉴마 조에스)가 임하여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세상 권세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의 선포입니다. 세상이 내린 사망 선고를 하나님께서 친히 뒤집으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12절에서는 하늘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이 들리고, 그들은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것은 완전한 명예회복이며, 하나님의 공개적인 인정(Vindication)입니다. 세상이 짓밟고 조롱했던 그 증인들이 실은 하늘에 속한 자들이었음을 만천하에 증명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 속에서도 교회가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의 원천, 부활과 승천의 소망입니다.
이 사건의 결과는 놀랍습니다. 13절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고 칠천 명이 죽자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재앙 앞에서는 회개하지 않던 사람들이, 교회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이라는 전 과정을 목격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교회의 신실한 증언, 그 고난의 길이야말로 세상을 회개로 이끄는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증인의 사명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 교회,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끝까지 진리를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세상의 박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세상의 미움과 조롱을 감수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 끝에 부활의 영광과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두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우리의 연약한 증언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고, 마침내 모든 원수 앞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며 친히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세상의 조롱과 핍박 속에서도 두 증인처럼 십자가의 길을 걷게 하소서.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사, 끝까지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부활의 소망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세상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하소서.
- 예수님이 먼저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따르게 하소서.
-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소망을 굳게 붙들게 하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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