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 여러분의 진짜 왕은 누구입니까? 7월 17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요한계시록 11장 14절-19절을 묵상하고 정리한 이 새벽예배설교는 우리 마음속 가짜 왕들을 넘어, 요한계시록의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선포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나눕니다. 세상의 분노가 아닌 하늘의 경배를 선택하고, 흔들리지 않는 언약 안에서 참된 평안과 소망을 발견하는 길을 확인해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1장 14절-19절, 왕이신 하나님께 경배하라
참고할 글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 새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서론: 불안한 시대, 무너진 왕의 자리
혹시 최근에 개봉한 영화나 인기 있는 드라마 시리즈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유독 눈에 띄는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디스토피아', 즉 암울한 미래 사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강력한 소수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기술이 인간을 감시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망 없이 살아가는 세상. 왜 우리는 이런 어두운 이야기에 끌릴까요? 아마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감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매일같이 무너지는 신뢰의 소식을 듣습니다. 정치는 우리를 실망시키고, 경제는 불안하며, 사회는 분열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정의롭고 지혜로운 통치자,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견고한 나라를 갈망합니다. "제대로 된 리더 한 명만 있었으면..." 하는 한숨 섞인 바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잘못된 욕망이 아닙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심어두신 선한 열망 때문입니다.
본론 1: 내 마음 속 가짜 왕들
문제는 우리가 그 신뢰할 만한 왕을 찾지 못할 때 시작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왕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공적인 경력'이 그의 왕국입니다. 그 안에서 안정감과 정체성을 찾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정치적 이념'이 그의 왕입니다.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으며 모든 것을 바칩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자녀의 성공'이나 '안정된 가정'이 그의 전부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의 삶에서 단 하나, 그것을 잃으면 "내 인생은 끝이야"라고 느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대신 섬기고 있는 우리 마음의 진짜 왕, 우리의 '기능적 우상'일 수 있습니다.
본론 2: 하늘에서 선포된 역전의 소식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로 이 문제의 핵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천사가 마지막 나팔을 붑니다. 그러자 하늘에서는 엄청난 환호와 경배가 터져 나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 요한계시록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 드디어 진정한 왕이 오셨다는 선포입니다. 역사의 모든 혼돈과 고통이 끝나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하늘의 장로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며 외칩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말입니다.
본론 3: 분노와 경배, 갈라지는 두 길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땅에서는 정반대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 요한계시록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방들이 분노하매..." 하늘이 경배할 때, 세상은 분노합니다. 왜일까요? 왜 진정한 왕의 등장이 그들에게는 끔찍한 소식이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거짓 왕국, 자신들의 힘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방과 세상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 앞에서 자신들의 주권이라는 우상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방들의 분노는, 바로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불안과 불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만든 왕국이 위협받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결론: 결코 흔들리지 않는 약속의 증표, 언약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분노하는 세상과 함께 서야 합니까, 아니면 경배하는 하늘과 함께 서야 합니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도 세상을 향한 분노와 똑같은 반역의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불편해합니다. 내 삶을 내 뜻대로 통제하고 싶은 욕망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는 19절의 말씀을 통하여 참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 요한계시록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언약궤(ἡ κιβωτὸς τῆς διαθήκης αὐτοῦ, 헤 키보토스 테스 디아테케스 아우투)가 왜 여기에 등장할까요? 언약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속죄소', 즉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는 자리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의 왕국은 무자비한 폭력과 힘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언약에 기초하며, 그 언약의 중심에는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가 경배해야 할 왕은 멀리 있는 폭군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신 어린 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 오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의 폭풍을 온몸으로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십자가에서 모두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왕국은 심판의 왕국인 동시에 은혜의 왕국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담대히 선택해야만 합니다. 더 이상 내 힘으로 불안한 왕국을 지키려 애쓰며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께 엎드려 경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과 그분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묵상할 때 ,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던 거짓 왕들의 힘은 약해질 것입니다. 경력의 성공이 없어도,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통치하시며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나라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기도가 바뀌길 원합니다. "하나님, 내 뜻대로 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에서, "왕이신 주님, 주님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이다. 주님의 나라가 내 마음과 가정과 이 땅에 임하소서"라는 경배의 기도로 나아가십시다. 왕이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자유가 우리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스스로 내 삶의 왕이 되어 작은 왕국을 지키려 애쓰며 불안에 떨었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 나라가 아닌 영원한 주의 나라를 신뢰하게 하시고, 세상의 분노가 아닌 하늘의 경배를 선택하는 믿음을 주소서. 날마다 왕이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세상 나라가 아닌 주님의 나라를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 분노가 아닌 어린 양 예수님을 경배하며 오늘을 살게 하소서.
- 왕이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 참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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