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삶의 문제로 힘드신가요? 7월 13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에 관한 강해 새벽설교를 통해, 모든 고통의 열쇠는 결국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욥의 절망과 요셉의 억울함 속에서도 일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위로와 평안이 시작됩니다. 은혜로운 새벽예배 설교문 전문과 기도문, 구체적인 기도제목 3가지를 통해 당신의 가장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 고통의 해결 열쇠도 주님 손에 있습니다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 새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서론: 절망의 구덩이에서 만난 주권자
혹시 칠흑 같은 어둠 속, 모든 것을 잃고 재 가운데 앉아 있던 욥을 떠올려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의 친구들은 고통이 분명 죄의 결과일 것이라며, 인과응보식의 날카로운 신학적 잣대로 그를 정죄하였습니다. 하지만, 욥의 상황은 인과응보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그 고난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놓지 않으려 처절하게 몸부림쳤습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과 혼란이 찾아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로 우리를 내몰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 성경은 모든 상황의 열쇠를 쥔 분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뿐임을 선포합니다.
본론
오늘 이 새벽에 우리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본문 말씀도, 우리의 고통과 아픔의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깊이, 그리고 인격적으로 만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우리가 마주한 세상의 고통 - 무저갱이 열리다
여러분! 혹시 지금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 9장의 말씀은 요한이 본 환상이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일 수 있습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무저갱(φρεατος της αβυσσου, 프레아토스 테스 아쉿쉬), 즉 끝을 모르는 깊은 구덩이가 열리고, 그 연기 속에서 나온 메뚜기 떼가 온 땅을 뒤덮습니다. 그리고 이 메뚜기 떼는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지만, 전갈에 쏘인 듯한 극심한 고통을 다섯 달 동안이나 안겨줍니다. 본문은 그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렇게 증거합니다.
- 요한계시록 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세상이 마주하는 고통의 실상입니다. 차라리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절규하지만, 그 끝마저 허락되지 않는 고통. 희망의 빛 한 줄기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이 우리의 영혼을 덮칠 때가 있습니다.
신실했던 선지자였던 예레미야마저 인생의 고통을 보면서 탄식하지 않았습니까?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렘 20:18)라며 예레미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주님, 이 고통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이 어둠의 터널은 과연 언제쯤 끝이 나는 것입니까?
2. 그러나, 열쇠는 주님 손에 있습니다 - 주권에 대한 믿음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든 고통과 혼돈의 시작점에서, 우리는 이상하고도 놀라운 말씀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요한계시록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다시 한번 자세히 보십시오. 그 악한 존재가 열쇠를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빼앗거나 훔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가 열쇠를 ‘받았다’(δίδωμι, 디도미)라고 증거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통의 밤을 지나는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이자 소망이 되는 진리입니다.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 같은 이 모든 고통과 혼돈의 시작과 끝을 여는 열쇠가, 사실은 하나님의 완전한 허락 아래, 그리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주권 안에 있다는 놀라운 복음입니다!
형제들에게 버림받고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캄캄한 감옥에 갇혔던 요셉의 시간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 그는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 계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고 형제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를 통해 우리에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고 고백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의 시간들, 눈물과 아픔의 순간들마저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안에서는 결국 가장 선하고 완벽한 섭리 속에서 진행되어 가고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주권 신앙이 주는 참된 평안 - 고통 속에서의 위로
그렇다면 이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진짜 평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옵니다. 끔찍한 메뚜기 재앙이 온 땅을 덮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재앙에게조차 한계를 정해주시며 명령하십니다.
- 요한계시록 9:4,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고통의 한복판에서도 주님은 자기 백성을 정확히 구별하시고, 눈동자와 같이 지키십니다. 우리의 안전은 환경이나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이마에 새겨진 하나님의 소유라는 보이지 않는 인(σφραγίς, 스프라기스), 성령의 인치심에 달려있습니다.
나치 수용소라는 지상의 지옥 속에서 가족과 모든 것을 잃었던 코리 텐 붐 여사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닿지 못할 만큼 깊은 구덩이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어떤 깊은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 있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은 언제나 그것보다 더 깊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우리가 온전히 신뢰할 때, 비로소 세상이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진짜 평안, 하늘의 평안이 우리의 상한 마음 가운데 조용히, 그러나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결론: 모든 열쇠를 주께 맡기는 새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당신의 두 손에 여전히 꽉 쥔 채, 차마 놓지 못하고 있는 그 무겁고 차가운 열쇠는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의 문, 밤새 뒤척이며 잠 못 들게 하는 염려와 불안의 문,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낸 관계의 문이 우리 앞에 닫혀져 있어도 절망하지 맙시다. 이제 그만 그 모든 열쇠를 우리 주님 발 앞에 겸손히 내려놓지 않으시겠습니까? 모든 고통의 해결을 위한 열쇠를 쥐고 계신 분이 바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이 고요한 새벽,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그 신실하고 강한 손길에 나의 모든 삶의 열쇠를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그리하여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세상이 결코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하늘의 평안과 위로를 가슴 가득 채워 돌아가는 복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문제 앞에서 두려워하며, 나의 힘으로 열어보려 했던 삶의 무거운 열쇠들을 내려 놓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고통을 해결하는 열쇠가 주님 손에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달픈 상황을 온전히 주님께 믿음으로 밑기오니, 해결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상한 심령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위로를 채워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고통 중에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신뢰하는 믿음을 주소서.
- 삶의 무거운 열쇠를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용기를 주소서.
-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으로 복잡한 내 마음을 채워 주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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