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월요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스가랴 11장 1절-17절 강해 새벽예배설교. 은 삼십에 팔린 선한 목자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의 비유를 통해 참된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를 진단합니다. 우리를 위해 버림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가치를 발견하고 참된 목자를 따르는 길을 제시합니다.
스가랴 11장 1절-17절, 누구를 따라 가시겠습니까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 새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서론
선지자 예레미야는 눈물로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며 돌아오라 외쳤지만, 백성과 지도자들은 그를 핍박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경고를 전하는 참된 목자의 음성을 거부한 결과는 비참한 멸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울어주는 선지자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두 목자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와 그 비극적 결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먼저 ‘은총’과 ‘연합’이라는 두 막대기를 가지고 양 떼를 돌보는 선한 목자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목자의 수고와 가치를 하찮게 여기고, 결국 그는 ‘은 삼십’이라는 모욕적인 품삯을 받고 관계를 끊습니다. 이후 양 떼는 자신을 해치는 ‘못된 목자’의 손에 넘겨져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1. 은 삼십에 팔려버린 목자의 가치
본문 12절은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라고 말씀합니다.
- 스가랴 11: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기서 ‘품삯’(שָׂכָר, 사카르)은 단순히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선한 목자가 베푼 모든 수고와 은혜에 대한 가치 평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가치를 고작 ‘은 삼십 개’로 매겼습니다. 이 액수의 가치는 출애굽기 21장 32절에 나오는, 소가 받아 죽인 종의 몸값, 즉 노예 한 사람의 배상금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무한한 사랑과 은총, 주의 신실한 돌보심을 가장 천하고 모욕적인 가치로 되돌려 드린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행동은 단순히 한 선지자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그들을 목양하시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거절과 모독이었습니다. 훗날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길 때 받은 돈이 바로 이 ‘은 삼십’이었습니다(마 27:3).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가치 평가는, 결국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가치 평가로 정확하게 이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수많은 언론 기사에서 돈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무너지고, 배신이 난무하는 소식을 접합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가치를 쫓아 가느라,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은 삼십’처럼 하찮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 못된 목자의 필연적인 파멸
이어서, 본문 17절은 “화 있을진저 못된 목자여”라고 경고합니다.
- 스가랴 11:17,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선한 목자를 버린 결과, 그들은 ‘못된 목자’(אֱלִיל, 엘릴), 즉 ‘아무 쓸모없는’, ‘우상과도 같은’ 거짓 지도자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 못된 목자의 ‘팔’과 ‘오른쪽 눈’에 임합니다. ‘팔’(זְרוֹעַ, 제로아)은 힘과 능력을, ‘오른쪽 눈’은 양 떼를 인도하고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력과 분별력을 상징합니다. 목자의 가장 중요한 두 기능이 마비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묘사는, 거짓 지도자들이 양 떼를 착취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던 바로 그 수단들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무력화되고 파멸에 이를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양들을 지킬 힘도, 바른길로 인도할 지혜도 모두 잃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 칭하시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는데, 주의 모습과 못된 목자들의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지도자들이 국민과 조직의 안위보다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지키려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의 끝은 결국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힘과 지혜가 마비되는 스가랴의 예언과 같을 것입니다. 참된 목자이신 주님을 버리고 세상의 헛된 지도자를 따르는 삶의 결국은 파멸뿐입니다.
3. 십자가에서 증명된 영원한 가치
오늘 본문의 버림받은 선한 목자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말씀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선한 목자의 가치를 은 삼십으로 평가절하 하였듯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창조주를 노예의 몸값과 맞바꾸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인간의 가장 큰 배신과 거절을 사용하여 인류 구원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목자를 쳐서 양들을 흩으셨지만(슥 13:7), 그 흩어짐은 온 세상으로 복음이 퍼져나가는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버림받고 모욕당하셨지만, 그분의 죽음은 죄의 값을 치르는 완벽한 대속 제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은 은 삼십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온 인류를 구원하고도 남는 무한한 가치를 지닙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셨습니다. 세상이 그를 버렸을 때, 그는 우리를 품으셨습니다. 세상이 그를 헐값에 팔아넘겼을 때, 그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 위대한 사랑과 가치를 발견하고, 나의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원히 찬양하며 따라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선한 목자를 버리고 거짓 목자를 택한 이스라엘의 비극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의 가치를 은 삼십으로 매겼을 때, 그들의 결국은 파멸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세상의 헛된 가치를 좇아 그를 헐값에 넘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고, 오직 그분만을 따르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헛된 가치에 눈이 멀어, 생명까지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헐값으로 여길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의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바로 알고, 남은 생애 주님만을 섬기며 따라가는 신실한 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가치를 날마다 묵상하게 하소서.
- 세상의 거짓 목자들을 분별하고 미혹되지 않을 지혜를 주소서.
- 한국교회가 참된 목자이신 주님만 따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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