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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2장 4절-15절, 겸손한 성도를 찾으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9월 12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스바냐 2장 4절-15절은, 교만과 겸손에 대한 말씀입니다.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과 경고의 말씀을 기록한 본문을 묵상하면서, 오늘 나의 자세는 어떠한지 살피며 설교문을 정리하였습니다. 심판을 넘어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된 생명과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스바냐 2장 4절-15절, 겸손한 성도를 찾으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스바냐 2장 4절-15절, 겸손한 성도를 찾으시는 하나님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 새 찬송가 532장, 주께로 한 걸음씩



서론: 교만의 정상에서 만난 하나님


성경 다니엘서 4장을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였던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등장합니다. 그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화려한 궁전 지붕을 거닐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이 말은 자신의 힘과 지혜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교만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고, 그는 왕위에서 쫓겨나 7년 동안 들짐승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함의 바닥까지 내려가서야 그는 비로소 하늘을 우러러보며 고백합니다.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느부갓네살의 이야기는 먼 옛날 한 왕의 특별한 사건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도 ‘자수성가’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학업을 성취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재산을 모았다고 생각할 때, 우리 마음속에도 느부갓네살과 같은 미세한 교만의 싹이 자라납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이루었다’는 생각은 우리를 스스로의 삶의 주인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만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처럼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지, 그리고 그 심판 속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소망은 무엇인지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본론: 겸손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유다 왕국의 요시야 왕 시대에 활동했던 스바냐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요시야 왕은 위대한 종교개혁을 단행했지만, 나라는 여전히 위태로웠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앗수르 제국이 쇠퇴하고 신흥 바벨론 제국이 부상하는 거대한 힘의 충돌 속에서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 즉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의 날을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인 2장 4절부터 15절은 그 심판이 유다의 주변 국가들, 즉 서쪽의 블레셋, 동쪽의 모압과 암몬, 남쪽의 구스, 그리고 북쪽의 최강대국 앗수르에 이르기까지 모든 열방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이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1. “나뿐이라” 외치는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나라는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앗수르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향한 심판을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스바냐 2장 15절입니다.

  • 스바냐 2:15, 이는 기쁜 성이라 염려 없이 거주하며 마음속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 어찌 이와 같이 황폐하여 들짐승이 엎드릴 곳이 되었는고 지나가는 자마다 비웃으며 손을 흔들리로다

여기서 앗수르가 마음속으로 외쳤다는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히브리 원어로 보면 ‘아니 웨아프시 오드’(אֲנִי וְאַפְסִי עוֹד)라는 이 표현은 단순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자신을 가리켜 사용하시는 절대적 유일성과 주권을 선포하는 언어입니다. 피조물인 앗수르가 스스로를 신의 자리에 올려놓고, 자신들의 힘과 문명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신격화의 교만은 성경 전체에서 나타나는 죄의 뿌리입니다. 이사야 47장은 앗수르에 이어 패권을 잡은 바벨론 역시 똑같은 말,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라고 외치다가 멸망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들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우리 이름’을 내기 위해 하늘까지 닿으려는 시도, 이것이 바로 교만의 원형입니다.

1912년, 인간이 만든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배였던 타이타닉호가 첫 항해를 떠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배를 ‘결코 가라앉지 않는 배(Unsinkable)’라고 부르며 인간 기술의 위대함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이라도 이 배를 침몰시킬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배는 첫 항해에서 작은 빙산에 부딪혀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기술과 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스스로를 신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교만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 비극적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앗수르처럼, 바벨론처럼, 타이타닉호처럼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모든 교만을 반드시 꺾으십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는 교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시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그들의 교만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조롱과 멸시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스바냐 2장 10절은 모압과 암몬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 스바냐 2:10,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하고 교만하여졌음이라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에 대하여 교만하여졌음이라” 그들은 자신들의 안정과 번영을 믿고, 고난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유다를 비방하고 조롱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업신여긴 것이 아니라, 그들을 택하신 하나님을 모독한 행위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교만을 거만한 태도나 자기 자랑 정도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교만의 본질을 더 깊이 파고듭니다. 에스겔 16장 49절은 소돔의 죄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소돔의 핵심적인 죄는 풍요 속에서 교만해져서, 주변의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었습니다. 즉, 성경적 관점에서 교만은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낳고, 이웃의 아픔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사회적 죄악의 뿌리입니다. 모압과 암몬이 유다를 조롱했던 것 역시, 자신들의 안정만을 믿고 고통받는 이웃을 멸시했던 소돔의 교만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3. 교만을 이기는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이처럼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교만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단 하나의 길을 제시합니다. 바로 교만의 정반대편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류의 교만은 바벨탑처럼 끊임없이 하늘로 올라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은 그 길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가장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죽음인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인류가 교만으로 쌓아 올린 바벨탑의 정상에서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셨지만, 예수님께서는 겸손의 가장 낮은 골짜기인 십자가 위에서 인류를 향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만을 이기는 힘은 스스로의 노력이나 다짐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나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십자가까지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묵상하고, 그 사랑 앞에 나의 교만한 자아를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겸손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하기 원합니다. 하루에 한 번, 자신의 성공이나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며 감사를 드리는 ‘겸손의 기도’를 드립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 “하나님, 오늘 하루도 제 힘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작은 실천해 나갈 때, 우리는 자신의 교만을 꺾고, 겸손의 자리에서 엎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스바냐 2장 4절-15절, 겸손한 성도를 찾으시는 하나님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겸손히 주를 찾는 자의 소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교만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앗수르와 같이 자신의 힘을 신뢰하고, 모압과 같이 이웃을 멸시하는 교만은 결국 황폐함과 수치로 끝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속에서도 소망의 길을 열어두십니다. 스바냐는 교만한 열방의 멸망을 선포한 후, “유다 족속의 남은 자”가 그 땅을 차지하고 회복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 ‘남은 자’는 바로 자신의 교만을 꺾고 겸손히 하나님을 찾는 자들입니다. 오늘 이 새벽, 세상의 힘을 의지하던 교만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 앞에 엎드립시다. 그리하여 심판이 아닌 구원을, 멸망이 아닌 영원한 기업을 얻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며 스스로를 높였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풍요 속에서 이웃의 아픔을 외면했던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늘 영광 버리시고 십자가까지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나의 교만을 깨닫고 오직 주님 앞에서 회개하게 하소서.
  •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 범사에 감사함으로 교만을 이겨내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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