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역대하 28장 16절-27절에 나타난 아하스 왕의 실패를 통하여, 고난의 때에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도움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임을 전합니다. 위험하고 어려울수록, 우리의 진정한 도움과 위로는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역대하 28장 16절-27절, 고난의 때, 당신은 누구에게 달려갑니까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새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서론: 위기의 순간, 당신의 첫 번째 전화는 어디로 향합니까?
여러분, 살면서 정말 "이제 끝이구나" 싶은 절망적인 순간을 만나보신 적 있으십니까? 갑작스러운 사업의 실패, 깨어진 관계의 아픔, 심각한 질병의 진단 앞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도움을 줄 누군가를 찾습니다. 스마트폰을 열어 가장 힘 있는 사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번호를 찾을지도 모릅니다.
본론
오늘 우리가 만날 아하스 왕도 그랬습니다. 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고,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였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그가 선택한 '도움'은 결국 그와 온 나라를 더 깊은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심각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인생의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누구에게, 무엇에게 달려가고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숨겨진 믿음의 실체, 즉 우리가 진짜 왕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입니다.
1. 세상의 도움은 신기루와 같습니다.
아하스 왕은 위기에 처하자 하나님이 아닌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은과 금을 바치며 "나는 왕의 신복이요 아들이라"고 스스로를 낮추기까지 합니다. 16절과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 역대하 28:16-17, 그 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와 주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에돔 사람들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의 백성을 사로잡았음이며
아하스가 강대국인 앗수르를 의지하는 방법은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해 보이는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21절은 단호하게 증언합니다.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오히려 앗수르 왕은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그를 공격했습니다. 에돔과 블레셋도 유다를 침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하스의 죄 때문에 유다를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무릎 꿇기보다 통장 잔고를 먼저 확인하고, 유력한 인맥을 떠올립니다. 그것이 더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배제한 세상의 도움은 결국 신기루와 같습니다. 잠시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우리를 더 큰 문제에 얽매이게 만듭니다. 오늘 여러분의 '앗수르'는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사람입니까? 당신의 지식과 경험입니까? 그것이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에게 진정한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고난은 죄를 가속화시키는 기폭제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22절에 나옵니다.
- 역대하 28:22,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상식적으로는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아하스는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그는 자기를 친 다메섹 사람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며 "저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도울 것이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속성입니다. 죄는 우리를 비논리적이고 어리석게 만듭니다.
혹시라도 우리의 삶에도 이런 '아하스의 논리'가 숨어있지 않습니까? 세상적인 방법이 실패하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세상의 방법, 심지어 악한 방법을 찾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기도하는 대신 사기나 거짓말을 하고, 관계가 힘들어지자 하나님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대신 더 자극적인 쾌락을 찾아 헤맬 때가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같이 만들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는 죄를 가속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뿐입니다. 그 결과는 23절의 말씀처럼 "그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비참한 결말
결국, 아하스의 마지막은 비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 기구들을 부수고, 성전 문들을 닫아버렸습니다. 하나님과의 소통 채널을 스스로 완전히 차단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온 예루살렘과 유다 산당 곳곳에 우상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땅을 우상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역대하 28:27,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더라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열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했다는 말은, 왕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인생의 마지막이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한지를 보여주는 결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 하나님 없는 평안은 결국 우리를 이런 수치스러운 결말로 이끌 뿐입니다.
결론: 참된 도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가십시오
아하스는 고난 앞에서 세상을 의지하다가 더 큰 고난에 빠졌고, 우상을 의지하다가 결국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끊어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아하스와 같은 우리를 위해 새로운 왕, 참된 왕을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고난 앞에서 앗수르와 같은 로마의 힘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들을 동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직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시면서도 끝까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셨습니다.
아하스가 닫아버린 성전 문을,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찢어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피를 의지하면, 유일한 도움이시요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누구에게 달려가고 있습니까? 당신의 앗수르, 당신의 다메섹 신들은 무엇입니까? 이제 그 헛된 의지를 내려놓고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 나오십시오.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시며, 영원한 피난처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사, 어떤 위기 속에서도 세상이 아닌 주님을 먼저 찾고,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할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하스처럼 위기의 순간에 아버지를 찾기보다 세상의 힘과 방법을 먼저 의지했던 우리의 불신앙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끝까지 아버지를 신뢰하신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어떤 고난 속에서도 세상의 신기루를 좇지 않고,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참된 도움이심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만 예배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증거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세상적인 안정을 향한 의존을 버리게 하소서.
- 고난의 때에 오직 주님만 신뢰하는 믿음을 주소서.
- 우리 교회가 세상이 아닌 주님만 의지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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