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역대하 35장 20절-27절로, 선한 왕 요시야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위대한 개혁가였던 그는 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지 않고 교만하여 불필요한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말았을까요? 요시야의 치명적인 실수와, 겟세마네에서 완전한 순종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분별력과 겸손을 배우고자 합니다.
역대하 35장 20절-27절, 승리에 취해 교만해질 때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 새 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
서론
여러분, 혹시 '성공의 저주'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한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 그 성공 공식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변화된 상황을 읽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수십 년간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CEO가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자기 고집을 부리다가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고, 한때 존경받던 영적 지도자가 과거의 업적에 취해 교만해져서 쓴소리를 무시하다가 부끄러운 마지막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 때 전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던, 일본의 소니라는 전자 회사입니다. 과거의 방식에만 집착했던 소니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현재는 쇠락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인물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남유다의 왕 '요시야'입니다. 요시야는 성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8살에 왕이 되어 평생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고는 옷을 찢으며 회개했고, 나라 전체의 우상을 부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바로 앞장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성대하고 완벽한 유월절을 지켜냈습니다. 그는 영적 개혁의 아이콘이자, 신앙의 정점에 서 있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0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영적인 부흥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바로 그때, 비극이 시작됩니다.
애굽 왕 느고가 북쪽으로 전쟁하러 가는데, 요시야가 굳이 그를 막아서겠다고 나섭니다. 이 전쟁은 요시야와 아무 상관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이 불필요한 전쟁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아마도 그는 영적, 정치적 성공에 도취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바로 유월절을 회복시킨 왕이다. 하나님은 무조건 내 편이시다."라는 교만이 그를 사로잡았을지 모릅니다.
본론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신앙적 성공이나 자신의 경험을 의지한 나머지, 교만해집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우리의 귀를 막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내가 예상치 못한 방법이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통해 말씀하실 때, 그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 고집을 부리려는 치명적인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선한 왕 요시야의 치명적인 실수를 통해, 우리의 교만을 깨뜨리시고 끝까지 겸손히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상치 못한 통로로 온 경고
요시야가 군대를 이끌고 나가자, 애굽 왕 느고가 사신을 보내어 말합니다. 2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 역대하 35: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여러분, 이 말이 요시야의 귀에 어떻게 들렸을까요? "가소롭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네가? 이방의 우상이나 섬기는 애굽 왕 네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려? 지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고? 웃기지 마라. 하나님은 유월절을 지킨 '나'와 함께 계신다!"
요시야는 이방 왕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모욕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신앙의 틀'에 갇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나 같은 경건한 왕, 혹은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를 통해서만 말씀하신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틀에 갇히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 나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고(민 22장), 심지어 이방 왕 느고의 입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전하십니다.
지금 혹시 여러분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느고'는 누구입니까?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배우자의 충고입니까? 나를 비판하는 직장 동료의 말입니까? 심지어 세상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입니까? 교만을 내려놓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지 겸손히 분별해야 합니다. 듣는 귀를 우리에게 달라고 하나님께 이 새벽 시간에 기도합시다.
2. 교만이 낳은 치명적 불순종
느고의 경고에 대한 요시야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22절입니다.
- 역대하 35: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그는 떠나기를 '싫어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감정적인 거부의 늬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변장'을 합니다. 왜 변장을 합니까? 자신감이 없거나, 혹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구약에서 변장하고 전쟁터에 나갔다가 죽은 왕이 또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최악의 왕, '아합'입니다(왕상 22:30). 하나님의 선지자 미가야가 '나가면 죽는다'고 분명히 경고했지만, 아합은 그 말을 무시하고 변장한 채 전쟁터에 나갔다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습니다.
지금 선한 왕 요시야가 그 마지막 순간에 악한 왕 아합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만의 무서움입니다. 평생을 선하게 살았던 왕이라 할지라도, 한순간 교만에 사로잡히면 악한 왕과 똑같은 불순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보인 이같은 고집스러운 태도는 정치적인 실수나 상황을 오판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영적인 불순종의 결과였습니다. 요시야의 귀는 과거의 성공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서, 현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경고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요시야만의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며, 모든 인간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변장하는 죄인들입니다. 요시야의 위대한 경건조차도 결국 이 교만과 불순종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요시야와 같은 '실패하는 왕'이 아니라, '완전한 순종의 왕'이 필요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도 자기 뜻을 꺾어야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간적인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시야와 달리, 예수님은 자기 뜻을 고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곧바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요시야는 자기 뜻을 위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을 거부했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위해 '자기 뜻'을 꺾으셨습니다. 요시야의 불순종은 자신과 나라에 죽음을 가져왔지만, 예수님의 완전한 순종은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길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보다 내 경험, 내 계획, 내 고집을 앞세우며 아합처럼, 요시야처럼 '변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는 하지만, 결국 내 뜻대로 할 겁니다."라는 고집은 변장과도 같습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내 고집을 꺾고, 겟세마네의 주님처럼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남유다 최고의 왕, 요시야의 충격적인 마지막을 보았습니다. 그는 영적 성공의 정점에서 교만해졌습니다. 그리고 교만은 그의 귀를 막았습니다. 그는 이방 왕 느고의 입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을 거부했고, 불필요한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고집'이라는 불필요한 전쟁터에 '변장'한 채 나아가고 싶어 하는 요시야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요시야처럼 '노력해서 교만을 이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너의 교만과 불순종을 대신하여 완벽하게 순종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요시야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내가 요시야처럼 되지 않는 것'에 있지 않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셨음'을 믿는 것에 있습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말씀하시는데, 내 고집으로 버티고 있는 영역이 있습니까? 예상치 못한 '느고'의 입을 통해 경고하고 계신데, 애써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그 교만과 변장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내 뜻을 꺾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순종하신 주님을 의지합시다.
우리의 힘으로는 교만을 이길 수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귀를 열어주셔야 합니다. "성령이여, 내 마음의 교만을 깨뜨려 주시옵소서. 과거의 성공이 아니라 오늘의 십자가만 붙들게 하소서. 그리고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지혜와 순종할 용기를 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 요시야의 실패를 반복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는 겸손한 순종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요시야와 같이 과거의 성공에 취하여 교만하였던 죄를 회개합니다. 나의 경험과 고집만을 내세우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였습니다. 연약하고 어리석은 우리의 교만과 고집스러운 태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예수님을 닮아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과거의 성공을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를 가지게 하소서.
-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내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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