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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1장 1절-15절, 지금, 여기, 다시 세우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11월 17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인 학개 1장 1절-15절은, "판벽한 집"에 안주하며 "구멍 뚫어진 잔대"처럼 공허한 삶을 사는 이유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너희의 행위를 살피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무너진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학개 1장 1절-15절, 지금, 여기, 다시 세우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학개 1장 1절-15절, 지금, 여기, 다시 세우라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 새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같이



서론: 무너진 자리를 살피라


성도 여러분, "열심히 사는데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으십니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통장은 비어만 가고, 마음은 공허하며, 관계는 메말라가는 것 같은 느낌 말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은 이런 우리 모습을 정확히 꼬집습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2,500년 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이랬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자기 집을 지었습니다. 4절을 보니 심지어 "판벽한 집"(천장까지 멋지게 마감한 집)에 살았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좋은 아파트, 멋진 인테리어에 살면서 나름의 안락함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졌습니다. 왜일까요?



본론: 다시 세우는 3가지 원리


하나님은 그 이유를 정확히 지적하십니다. 4절입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유다 공동체의 문제점은 돈이 없거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게 버려두고, 자신의 집(안락함)만 돌보는 데 급급했던 '잘못된 우선순위'였습니다. 영적 중심이 무너지자, 삶의 모든 영역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학개 선지자의 외침을 통해 우리의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1. 안주함의 유혹을 살피라.

현실적으로, 유다 백성들에게는 그럴듯한 핑계가 있었습니다. 2절입니다.

  • 학개 1: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라는 이 말의 숨겨진 의미는, "아직 경제가 어렵습니다." "방해 세력이 너무 강합니다." "좀 더 안정되면 그때 하겠습니다."입니다. 여러분, 익숙한 말 아닌가요?

하나님은 이 핑계 뒤에 유다 백성들의 숨은 본심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것은 '시기 상조'가 아니라 '안주함의 유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내 집의 안락함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6절의 '구멍 뚫어진 전대'입니다. 영적인 황폐함이 삶의 황폐함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안락함은 결코 우리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합니다.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2:19)만이 우리의 참된 안식처이십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의 '판벽한 집'을 쌓느라 지쳐 있다면, 이제는 참 성전이신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 내가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미루고 있는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나의 시간과 재정을 가장 많이 쏟고 있는 나의 '판벽한 집'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행위를 살펴야 합니다.


2. 우선순위를 재건하라.

하나님은 7절에서 다시 한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고 강력하게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주십니다. 8절입니다.

  • 학개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들의 경제적 궁핍과 가뭄(9-11절)은 자연재해가 아니었습니다. 9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또, 하나님이 '불어버리셨다'(9절)고 하십니다. 그들의 삶이 힘들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집을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부담'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회복할 '해결책'으로 주셨습니다. 우선순위가 바로 서면, 하나님이 그 삶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원리를 산상수훈에서 완벽하게 요약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리스도를 내 삶의 최우선순위에 모실 때, 우리의 모든 필요는 그분 안에서 채워집니다. 성전 건축은 곧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회복하라는 명령입니다.

오늘 내가 올라가서 건축해야만 할 '산'은 어디입니까? 다시 회복해야 할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 봉사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금 당장 나무를 가져오는 순종(작은 실천)을 시작합시다.


3. '함께 하심'의 복을 누리라.

학개의 책망은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여호와를 경외"했습니다. 그들이 두려움으로 순종을 결단했을 때,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십니다. 13절, 오늘 말씀에 기록된 가장 위대한 약속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 학개 1:13,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복이 무엇일까요? 물질일까요? 건강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그들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기로 결단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돈'이나 '자재'를 먼저 주신 것이 아니라 '나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이 그들을 움직였습니다.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 역사를 하였으니" 우리의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라는 약속과 성령의 '감동시키심'이 우리를 일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이 최고의 복,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약속은 학개 선지자의 예언이 있은지 500여년 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 1:23). 우리는 더 이상 무너진 돌 성전을 짓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성령이 거하시는 '살아있는 성전'(고전 3:16)입니다.

성도 여러분! 순종은 부담이 아니라 '임마누엘'을 경험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오늘 성령께서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즉각 순종하여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학개 1장 1절-15절, 지금, 여기, 다시 세우라 - 매일성경 큐티 새벽예배설교문



결론: 지금, 여기에서 다시 세웁시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나만의 '판벽한 집'을 짓느라 분주합니까? 그래서 '구멍 뚫어진 전대'처럼 공허하고 메말라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오늘 우리의 무너진 성전은 무엇입니까? 나의 개인적인 예배와 기도의 자리는 황폐하지 않습니까? 우리 가정은 세상 성공만 좇는 '판벽한 집'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작은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는 프로그램과 건물만 화려하고, 정작 영혼 구원과 선교라는 본질(하나님의 집)은 황폐해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속한 직장과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이 무너져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14절의 그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는' 분입니다.

이제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결단합시다. 지금, 여기, 무너진 예배의 자리를 다시 세웁시다. 지금, 여기, 멈춰버린 기도의 자리를 다시 세웁시다. 지금, 여기, 흩어진 교회의 자리를 다시 세웁시다. 그리할 때, 우리 삶의 모든 공허함과 황폐함 속에서 가장 위대한 약속의 음성,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 약속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하나님! 나의 편안함을 위하여 하나님의 집을 황폐하게 방치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우리 가정, 교회, 직장을 내버려 두고, 나의 편안함만을 추구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주심을 믿고, 오늘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나의 편안함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게 하소서.
  • 무너진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다시 세우는 순종의 자세를 주소서.
  • 나와 함께 하신다는 주의 음성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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