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의 매일성경 큐티 본문은 에스라 10장 1절-8절로, 이스라엘 귀환 공동체의 심각한 죄악인 이방 통혼과 절망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스가냐는 '이스라엘에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라고 외칩니다. 이 설교문에서 뼈아픈 회개와 고통스러운 결단을 통하여 회복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에스라 10장 1절-8절, 이스라엘에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함께 할 찬송
- 새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 새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서론: 절망의 자리, 기도의 자리
"이제 정말 끝이구나." 살다 보면 이런 절망적인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이 무너졌을 때, 사업이 실패했을 때, 혹은 도저히 회복될 것 같지 않은 관계의 깨어짐을 경험했을 때, 우리는 주저앉고 맙니다.
가깝게 지내던 한 권사님은, 최근에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처음 의사에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눈 앞이 캄캄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건강의 문제 뿐 아니라,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다양한 절망의 이유들을 만나곤 합니다.
오늘 본문 앞 장인 에스라 9장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맞닥뜨린 영적 절망의 끝을 보여줍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성전을 다시 짓고 율법을 배우며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 에스라가 발견한 백성들의 실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하고 이방 민족과 통혼하며 다시금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 절망적인 소식을 들은 에스라는 옷을 찢고 머리털을 뜯으며, 백성의 죄를 자기 죄처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또 범죄했습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9:6) 이것이 9장의 마지막 모습, 처절한 절망의 기도였습니다.
본론
그런데 오늘 본문 10장 1절은 놀라운 반전으로 시작합니다.
- 에스라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 한 사람의 눈물 어린 기도가 공동체 전체의 눈물로 번져나갔습니다. 남자, 여자, 어린아이까지 성전 앞에 모여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회복의 시작은 언제나 '나의 죄'를 깨닫고 '함께' 애통하는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여러분, 지금 영적인 절망 가운데 계십니까? "나는 틀렸어", "우리 가정은 끝났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 절망의 자리가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시는 기도의 자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절망 속에서 외치는 소망
그렇게 모두가 통곡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일어섭니다. 2절입니다.
- 에스라 10:2,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스가냐라는 사람은 이 절망의 한복판에서 가장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마알'(מעל), 즉 언약을 배신하는 끔찍한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정확하게 죄를 고백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종종 죄를 덮거나 축소하려 합니다. "남들도 다 하는데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죄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합니다. 혹은 반대로, 죄의 무게에 짓눌려 "난 이제 끝났어. 소망이 없어"라며 절망의 늪에 주저앉아 버립니다.
스가냐는 이 두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를 정직하게 인정함과 동시에, 절망 속에서 담대하게 외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이것이 오늘 설교의 제목이자 핵심 메시지입니다. 이 소망(미크웨, מקוה)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죄를 지은 백성들의 가능성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눈물이나 반성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소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 회개하는 자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근거한 소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죄를 지었든, 얼마나 깊은 절망에 빠져 있든, 오늘 스가냐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당신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소망을 붙잡는 고통스러운 결단
스가냐는 감상적인 소망만 외치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짜 소망은 반드시 구체적인 '행동'과 '결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가랴는 3절을 통하여 고통스러운 결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 에스라 10: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그들은 '언약을 세우자'(כרת ברית, 카라트 베리트)라고 말합니다. '언약을 자른다'는 뜻입니다. 죄를 끊어내겠다는 비장한 결의입니다. 그런데 그 결단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방 아내들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다 내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쉬운 일이었을까요? 몇 년을 함께 산 아내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입니다. 그들을 내보내는 것은 살을 에는 듯한,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이혼을 장려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당시 '거룩한 자손'이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 자체가 사라질 위기 속에서, 공동체를 살리기 위한 극약 처방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감정의 후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고통'과 '대가 지불'을 감수하는 구체적인 결단입니다. 우리는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라고 하고, 정작 내 삶에서 죄가 주는 달콤함, 죄악된 관계, 부정한 이득을 '끊어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끊어내기 아깝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뼈아픈 분리가 없이는 진정한 회복도 없습니다.
에스라와 백성들은 이 결단을 즉시 실행합니다. 지도자들은 맹세하고(5절), 3일 안에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이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재산을 몰수하고 공동체에서 '분리'(바달, בדל)시키겠다는 엄중한 경고까지 내립니다(8절). 소망을 붙잡는 길은 이렇게 단호하고 철저했습니다.
결론: 우리의 유일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에 우리는 절망 속에서 소망을 발견하고, 그 소망을 붙잡기 위해 뼈아픈 결단을 내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며 죄와 분리되기로 결단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들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끊어내기 위해 고통스러워할 때,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고통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아내와 자녀와 '분리'되어야 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십자가 위에서 고통 가운데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찢기고 끊어지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연합될 길이 열렸습니다. 그분이 모든 대가를 지불하셨기에, 우리는 죄와 싸울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끊어내야 할 죄악된 습관, 음란물, 거짓말, 탐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이방 아내'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끊어내는 것이 고통스럽습니까? 그 고통의 자리에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끊어지신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결단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눈물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스가냐가 외쳤습니다. "일어나소서! 이 일이 당신에게 달렸으니 힘을 내어 행하소서!" (4절) 오늘 성령께서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다시 시작하라! 이스라엘에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이 소망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죄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과 타협하며 안일하게 살았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절망 속에 있는 우리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다'라고 말씀해 주시며,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반복적인 나의 죄를 끊어낼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할 기도
- 죄를 깨닫고 함께 애통하는 마음을 주소서.
- 고통을 감수하고 죄를 끊어낼 용기를 주소서.
-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님만 붙잡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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